쎌리아는 아들인 안토니오를 데리고 부에나비스타 클럽으로 구경을 갔다. 그녀가 아들을 낳기 전까지 노래를 불렀던 클럽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오게 된 클럽을 둘러보니 감회가 깊었다. 봉수는 그들을 보자 말을 걸었다.
"어! 쎌리아 왔어? 언제가 한번 여기에 구경 온다고 나한테 말했던 것 같은데, 그게 오늘이었어?"
"오늘 온다고는 말했는데, 당신 연주하는 것도 구경할 겸 안토니오 데리고 왔어요. 안토니오가 요즈음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지겨워하더라고요. 저도 좀 바람을 쐬고 싶었고요."
"잘했어!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자기는 정말 오랜만에 여기 와 보는 거지?"
"네. 칠년 정도 만에 온 거 같아요. 그동안 안토니오 키운다고 여기에 올 생각을 감히 못했죠. 그리고.."
그녀는 다음 말을 하지 않고 중간에서 말을 끊었지만, 봉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피아니스트였던 루벤에게 버림을 받은 후에 그 실연의 아픔은 그녀를 한동안 음악에서 멀어지게 하였던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게 마치 그녀의 천직인 것처럼 쎌리아는 생각했지만, 음악을 통해 루벤을 만나게 되었고 사랑의 상처를 받자 이후에 마음이 음악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봉수와 같이 몇 년을 지내면서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녀의 마음은 봄이 오며 눈이 녹아내리듯이 이제는 치유가 되어 버렸다. 음악을 느끼기 위해 쎌리아는 오늘 부에나비스타 클럽을 찾아오게 되었다. 그녀가 안토니오와 함께 클럽 홀 안을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봉수는 한동안 관찰하고 있다가 다시 음악 연주에 집중하였다. 몇 곡을 단원들과 계속 호흡을 맞추며 연습을 이어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봉수는 쎌리아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안토니오! 여기에는 손대지 말라고 아까도 얘기했잖아? 엄마 말 안 들을거야?"
뜻밖에 쎌리아가 안토니오를 혼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쎌리아! 왜 안토니오에게 고함을 지르고 그래? 애가 무슨 잘못을 했어?"
그녀는 봉수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안토니오의 눈을 보았다. 아이는 방금 심하게 야단을 맞아서 그런지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봉수는 안토니오와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쪼그리고 앉았다.
"안토니오! 울지 마라. 아빠한테 말해 봐! 엄마가 왜 화 내고 있는지 말이야."
아이는 울기 시작하였으므로 말을 하지 못하고 대신에 손가락으로 어느 쪽을 가리켰다. 그 곳에는 오래된 피아노 한대가 놓여 있었다. 그제야, 봉수는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쎌리아를 쳐다보았다.
"안토니아가 피아노를 쳤어? 그래서 혼냈던 거야?"
"네. 당신이 연주하고 있는 동안 저는 앉아서 연주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을 보니 안토니오가 없어진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뒤를 돌아다보니, 여기에 놓인 피아노를 혼자서 치고 있지 뭐예요."
"아이가 피아노를 칠 수도 있지... 뭐 그리 혼낼 것도 아니네.."
쎌리아는 본심이 아니게 아들을 야단을 쳐서 그런지 그녀 자신도 마음이 아직 추슬러지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아직도 거센 파도가 치고 있는 듯이 안정이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러는 모습을 보고 봉수는 잠시 한 숨을 쉬었다. 그 자신도 말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마음속을 차분하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쎌리아! 당신 마음을 내가 다 이해할 수 있어.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당신도 정리가 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쉽게 치유되기가 힘들지... 내가 자기에게 더 잘 했어야 헸는데 말이야. 아무튼 이제 진정을 하도록 해.."
"미구엘 잘못이 아니잖아요. 당신은 정말 저에게 고마운 분이에요... 제가 오늘 좀 흥분했네요.. 미안해요."
그리고는 아직도 훌쩍거리고 있는 아들을 그녀는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엄마가 미안해. 안토니오. 네가 미워서 화낸 게 절대 아니야. 알지? 사랑해! 안토니오."
둘이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봉수는 마음이 울적해졌다. 마음속의 상처는 누구든지 그리 쉽게 지워지기 어려울 거라고 이해를 해 보았다.
"봉수형! 오늘 얼굴이 좀 너무 진지해 보여요. 무슨 고민이 있어요?"
오랜만에 노천카페에서 만난 봉수와 차를 마시다가 명학은 말했다.
"아니.. 뭐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있잖냐?"
"뭐가요?"
"그 말이여..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말."
"무슨 일인데 그래요?"
"안토니오가 자기 친아빠를 닯아서 그런지 피아노에 엄청 관심을 보인다. 몇 달 전에 부에나비스타 클럽에 놀러 와서 피아노를 한번 쳐 보더니, 그 이후에는 피아노만 보면 쳐 보고 있어.. 아직 배우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이것저것 쳐보면서 음의 차이를 이해하기 시작해 가는 것 같아."
"아... 그렇군요. 피는 못 속이네요."
명학은 봉수의 얼굴을 잠깐 살펴보았다. 그러는 명학을 보고 봉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뭔 생각하는지 다 안다. 나는 괜찮혀. 지금 내 나이에 무슨 질투심이 있것냐? 대신에 말이여. 안토니오가 저렇게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데, 내가 어떻게 도와 줄 수 없을까 고민이 들어. 클럽에 데리고 와서는 단원들 중에 피아니스트에게 부탁하여 가르쳐 볼까도 생각중인데, 피아노 치는 애들이 이 클럽 저 클럽 다니면서 고생하며 돈 벌고 다니는데 부탁하기도 힘들 것 같아."
"아. 그런 생각하고 있었네요. 저도 한번 고민을 해 볼게요. 봉수형이 고민하고 있으면 저도 마음이 어디 편하겠어요?"
명학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봉수가 엉뚱한 질투심 등으로 사로 잡혀 있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봉수와 헤어지고 명학은 집으로 돌아갔다. 마리아와 늦은 저녁을 먹던 중에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안토니오가 피아노에 관심을 보인다구요? 얘기를 들어 보니까 혼자서도 피아노를 치며 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 같네요. 재능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제가 한번 가르쳐 볼게요. 산티아고에서도 애들 가르치면서 그런 아이들을 좀 봤거든요. 어릴 때부터 정식으로 배우면 커서는 아주 잘 할 것 같은 아이들이 보이더라고요. 어쩌면 안토니오도 그럴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마리아에게 피아노 배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안토니오가 당신에게 배우게 된다면 정말 다행이죠. 당신은 노래 실력 못지않게 피아노도 잘 치잖아요. 우리 집에 다행히 피아노도 있으니까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네요."
"네. 저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어요. 엄청 혹독하게 가르치셨어요. 어쩔 때는 제 어머니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그래서 실력이 엄청 늘었죠. 한때는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생각을 했었는데, 부모님들은 제가 노래에 더 소질이 있다고 판단하셨어요."
"클럽 뜨로삐까에 있던 시절에 마리아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어요. 정말 매력적이었지요."
"뜨로삐까 시절이면 이제는 지나간 시간들이네요. 저도 그때 시절이 간혹 생각이 나요. 아무튼, 안토니오를 집에 오라고 해서 피아노를 가르칠 테니, 미구엘과 쎌리아에게 그렇게 얘기해 주세요."
"고마워요. 마리아! 당신은 마음이 참 고운 여자에요."
"가르치는 것이 저는 즐거워요.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찾아내서 가르치는 것은 더 행복해요. 산티아고에서 가르칠 때도 그런 재미가 있었어요."
그 다음 주부터는 일주일에 삼, 사일 정도는 마리아가 집에서 안토니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친아버지로부터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인지, 안토니오는 마리아가 가르치는 수업을 빠르게 따라갈 수 있었다. 특히 음감은 정말 타고 났다고 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마리아는 생각했다. 천재들에게는 칭찬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그녀는 그런 생각을 내색하지 않고 꾸준히 수업을 진행하였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자 안토니오는 웬만한 피아노 연주자를 능가할 수준이 된 듯이 보였고, 처음 들어 보는 곡이라도 곡 전체를 기억하고 그대로 음을 재현하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다. 피아노가 없는 시간에는 곡 전체를 머릿속에서 재현하면서 상상 연주를 하였고 피아노에 앉아서 연주할 때는 그 상상 연주가 그대로 아름답게 현실 속에서 울려 퍼지게 되었다. 봉수와 쎌리아는 마리아에게 감사를 표시하려고 돈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녀는 받지를 않았다. 아이가 없었던 그녀는 안토니오를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피아노를 가르쳤다. 모든 열정을 그에게 쏟은 덕분에 안토니오는 십대 중반에 이르자 멋진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그는 봉수, 쎌리아, 마리아, 명학이라는 네 명의 어른들에게 아들이 되었다. 마치 자신의 자식처럼 애정을 쏟으며 안토니오를 음악적으로 키워 나갈 수 있었다.
아이는 크고 어른은 늙는 법이다. 봉수와 명학은 이제 완전히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클럽의 무대에서 연주하고 노래를 하였다. 밤 공연에서 수십 곡이 이어지며 노래하는 것은 어느덧 명학에게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어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생각하였고 자신과 같은 노인이 여전히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클럽, 단원들, 관객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클럽에서 공연을 마치고 걸어 나오다가 명학은 자리에 주저앉아 쓰러지고 말았다. 단원들이 그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데려 갔다. 마리아는 산티아고에 가고 없었고 봉수도 가족들과 모처럼 쎌리아의 고향에 갔던 날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보호자로서 명학이 다니는 성당의 미카엘 신부를 불렀다.
"안드레아. 이제 자네도 나이가 들었으니 무리하지는 말게. 의사가 다행히 큰 병은 아닌 것 같다고 얘기를 했어. 무리를 해서 쓰러졌다고 하던데, 이제부터는 나이를 생각해야지.."
"고맙습니다. 신부님. 밤중에 이렇게 와주시고.. 민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말게나. 나 같은 늙은 신부가 뭐 할 일이 있겠나? 마리아가 하바나에 있었으면 같이 있어 주었을 텐데 말이야."
"아. 마리아에게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알게 되면 걱정할 것 같아요. 음악 가르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산티아고에 한 번씩 갔다 오는 것이 그녀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데, 제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앞으로 산티아고에 가지도 않을거에요."
"흠.. 알겠네. 다행히 무슨 큰 병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니까 말이야. 앞으로는 제발 조심하게."
"감사합니다. 신부님."
그러나 안드레아는 그 후에도 무대에서 이전처럼 노래를 계속 하였고 몇 달 후에는 또 쓰러지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보러 봉수도 다녀갔다.
"명학아. 너 이전에도 한번 쓰러졌다면서? 왜 얘기를 안했냐? 오늘 처음으로 들었다. 마리아와 나한테 단원들이 말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하더라. 너도 참 고집이 센 놈이여. 어릴 때에 잘 먹고 커야 하는데, 우리가 뭐 조선에서 그렇게 클 수가 있었냐? 그래서 너무 무리하면 몸이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해서 더 그렇지."
"노래하다 무대에서 쓰러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랬더라면 공연을 망쳐 놓았겠죠."
"미친 놈! 끝까지 그런 소리 하냐? 너 몸이 제일 중요한 거야. 근데, 마리아는?"
"조금 전까지 옆에 있었어요. 저더러 잔소리를 하더라고요. 봉수형처럼요. 왜 이전에 쓰러진 거 얘기하지 않았냐고요? 자기 혼자 버려두고 먼저 하늘나라에 갈거냐고요?"
"그랬구나. 다 니가 걱정이 되어서 마리아가 그런 소리하는거지. 이해를 해 줘라."
"네. 제가 뭐 잘 못 한 거죠. 처음 쓰러졌을 때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입원해 있는 동안 의사가 몇 가지 검사를 해 보자고 하네요. 큰 병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큰 병 아닐 거여. 너도 이제 노인인데, 무리해서 그런걸 거여. 나도 이제는 무대에서 몇 시간 연주하면 피곤해서 다음 날 하루 종일 머리도 아프고 몸이 욱신거린다. 그래서 옛날처럼 너무 무리해서 무대에 안 서는 거다. 쎌리아도 간혹 무대에서 노래도 해서 돈을 벌어 오니까 옛날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아서 그런 것도 있고.."
"아.. 아까 미카엘 신부님이 다녀가셨는데, 오늘 신문기사에 한국에서 전쟁이 났다고 실려 있었다고 하네요."
"뭐. 전쟁이 나? 북쪽과 남쪽이 전쟁을 했단 말이야?"
"네. 북쪽에서 남쪽으로 먼저 내려 온 것 같아요. 서로 몇 년 동안 으르렁 거리 더만 결국 전쟁이 났네요."
"어쩌다가 조선이 둘로 나뉘어져 버렸단 말이여. 그것도 모자라서 전쟁까지 하구. 일본이 져서 전쟁은 이제 한동안 없을 것만 같았는데."
"우리 동포들이 서로 싸우는 거라서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가게 생겼어요. 왜 서로 미워하면서 그러는 걸까요? 같은 민족끼리.."
"그 놈의 사상인가 뭔가 하는 거 때문이여. 공산주의와 자유주의가 대결하고 있다고 하더라. 사람이 제일 중요하지. 그 놈의 사상이 더 중요하다 하니까, 생각이 틀린 사람은 적으로 생각하고 서로 죽이는 거지..."
"봉수형 말이 어렵기는 한데, 약간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조선이 망하고 일본 놈 밑에서 수십 년간 그렇게 고생했을 텐데, 해방되고 나니까, 그 놈의 사상 때문에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이 나 이제는 전쟁까지 해 버리리니.. 썩을 놈들... 다 정치하는 놈들 때문이여. 너와 나 같은 놈들이야 그런데 관심이 있었냐? 저멀리 조선에 있는 우리 동포들도 마찬가지 거여. 그냥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게 뭔지도 모르고 싸우게 될 거란 말이지.."
"네. 전쟁이 빨리 끝나고 동포들끼리 제발 죽이고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전쟁은 그 뒤 삼년이란 세월동안 진행되었고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전쟁참가국들은 전쟁을 잠시 쉬자는 취지의 휴전에 서명을 하게 되었다. 전쟁기간 동안에 하바나에서 전쟁 상황을 유심히 보고 있던 명학과 봉수는 하바나의 신문 속에서 전쟁사진과 더불어 폐허 속에서 전쟁고아들이 남겨진 채 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그들은 마음이 아팠다. 비록 몸은 지구의 반대편에 떨어져 있었지만 저 멀리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 마음이 슬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멈춘 이후에도 북쪽과 남쪽은 서로 으르렁거리는 관계를 지속하였고 언젠가 다시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살벌한 상황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런 관계가 향후 계속되리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안드레아! 당신이 다시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다고 클럽 매니저에게 얘기했다고 들었어요. 나한테 얘기라도 먼저 해 주면 안 되었나요?"
마리아는 어느 날 식탁에 앉아 있던 명학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몇 달 정도 쉬고 나니까 몸이 좀 괜찮아졌어요. 당신 혼자 돈을 벌어 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안 편했어요. 병원비도 그동안 많이 들었을 테고요."
"그런 생각은 제발 하지 마세요. 당신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낭비만 하지 않으면 살 수 있어요. 그보다 저는 당신이 무대에서 다시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같은 가수로서요. 그래서 제가 이제는 앞으로 당신과 같이 무대에서 노래할거라고 매니저에게 얘기를 했어요. 당신 혼자서 곡을 부르는 것 보다는 체력적으로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 조건이라면 저도 당신이 노래를 다시 하는 것을 허락해 줄 수 있어요."
명학은 마리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는 목소리에 진심을 담아 고맙다는 말을 마리아에게 하였다.
명학이 부에나비스타 클럽의 무대에 다시 서던 날에는 마리아가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여러 곡을 부르면서 마리아는 일부 곡을 메인 보컬로서 했고, 나머지 곡은 명학에게 메인 보컬을 맡겼다. 공연이 거의 끝나가게 되자, 준비했던 마지막 곡을 둘이서 같이 부르기 시작하였다. 단원들이 그들을 위해서 선곡해 주고 연습한 '도스 가르데니아스'(Dos Gardenias, 치자꽃 두송이)였다. 명학과 마리아는 잔잔한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서로 마주보며 쿠바의 유명한 볼레로 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당신의 아름다운 영혼과 인생에 제가 들어갈 수 있었던 순간이 제 인생에 최고의 축복이었어요.'
1950년대
1950년대는 쿠바음악의 황금기로 분류되는 시기였다. 19세기부터 20세기 상반기까지도 쿠바의 하바네로, 차랑가, 손 몬투노, 볼레로 등의 음악장르는 멕시코, 중남미의 여러 국가들, 미국 등의 음악에 영향을 미쳤고, 라디오 방송을 타고 더 확대되었다. 1940년대에는 멕시코의 라디오 방송에서 페레즈 프라도, 베니 모레 등의 쿠바 음악인들이 인기를 떨쳤고, RCA Victor , 콜롬비아 등과 같은 미국의 대형 음반제작사들과 계약을 맺고 미국시장으로도 쿠바음악이 더 활발하게 진출하게 되었다. 1950년에는 이스라엘 카차오 로페즈가 만든 빅 밴드가 미국에서 맘보 열풍을 일으키며 미국인들 사이에 쿠바 음악팬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1953년에 쿠바에서 열풍을 일으킨 '차차차'라는 음악장르는 동일한 이름의 춤과 함께 다음 해인 1954년에 미국에 상륙하여 또 다른 쿠바 음악과 춤의 열풍을 일으켰고 초강대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한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맘보, 차차차의 음악과 춤이 세계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되었다. 특히, 맘보는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을 통하여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우리나라에도 맘보 열풍이 일어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부걸루'(쿠바의 음악이 미국 흑인음악인 알엔비, 블루스와 결합된 형태로 뉴욕을 중심으로 생겨남)라는 장르를 거치며 1970년대에는 '살사'라고 하는 유명한 음악과 춤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쿠바의 차랑가 오케스트라 밴드들은 미국 뉴욕으로 활발하게 진출하게 되었다. 1955년에는 쿠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겸 밴드리더였던 '페레즈 프라도'가 프랑스의 샹송이 원곡인 '체리핑크 앤 애플 블러섬 화이트'(Cherry pink and apple blossom white)를 맘보, 차차차 스타일로 편곡하여 발표를 하였는데, 미국에서 10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를 달성하는 대성과를 기록하게 되었다. 멕시코에서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하고 쿠바로 돌아 온 '베니 모레'라는 남자가수는 그의 아름다운 테너 토운의 물흐르는 듯 한 창법으로 1950년대 쿠바 음악을 선도하게 되었다. 쿠바의 볼레로 음악은 1940년대에 멕시코에서 볼레로 열풍을 일으켰는데, 1958년에는 미국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고 볼레로 특유의 느린 4분의 2박자의 리듬은 미국에서 내쉬빌 스타일의 컨츄리 음악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1950년대의 쿠바음악의 폭발적인 인기는 세계 음악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59년에 카스트로가 쿠바혁명을 성공하고 1961년에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여 이후에 미국의 쿠바 봉쇄정책으로 인하여 쿠바음악이 세계의 음반시장에서 멀어져 버리기 전까지인 1950년대는 쿠바음악이 그 황금기의 절정을 거쳐 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쿠바의 음악적인 성과와는 달리 쿠바의 정치경제의 상황은 순조롭지 못하였다.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룩하였으나,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미군정의 시기를 거쳐 쿠바가 독립되었고,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탓에 미국의 자본에 종속된 사탕수수 단일작물재배의 경제가 형성되어 버렸다. 따라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이루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토지는 미국의 자본가들과 쿠바인 대지주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구조에서 일반 국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1958년 통계에 의하면 미국기업은 쿠바 서비스업의 90%, 제당산업의 40%, 경작이 가능한 농지의 75%를 소유하였다. 미국 자본은 담배, 과일, 운송, 전기, 전신 및 은행 등도 장악을 하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국내 기업과 사탕수수 농지는 정권을 잡은 바티스타 일가의 소유였다. 총인구 600만 명 중에서 50만 명이 실업상태였고, 아동 중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비율은 1/3에 불과하였으며 전체 국민의 문맹율도 43%였다. 쿠바의 아름다운 해안가는 미국인들의 별장을 짓기 위한 땅으로 팔려서 쿠바 현지인들은 백사장을 밟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1933년 쿠데타로 집권한 바티스타 독재정권은 친미정권을 표방하였으며 정권의 부패가 심화되어 여러 차례의 쿠바 민중들의 봉기가 있었지만 미국의 보호 하에 진압이 되었다. 바티스타의 독재에 대한 쿠바 국민들의 불만이 정치권과 노조를 통해 조직적으로 확산되었지만 독재정부는 암살과 처형과 같은 수단을 동원하여 이러한 불만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 출신인 '카스트로'의 주도하에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무력투쟁의 성격으로 저항운동은 점차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1953년 7월 26일에는 카스트로의 주도하에 산티아고 지방의 몬카다 병영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면서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이 처음 생겨났다. 비록 이 공격은 실패하여 참가자들은 즉결 처형되는 등 진압이 되어버렸으나 카스트로는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그는 재판을 받으면서 '역사가 나를 무죄로 심판할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된다. 이후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망명을 하였고, 거기에서 동생과 함께 훗날을 기약하게 되며 또한 체게바라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었다.
1956년 12월 2일에 카스트로는 그란마호를 타고 체게바라를 포함한 82명의 혁명가들과 같이 쿠바의 산티아고에 상륙하였으나 미리 기다리고 있던 쿠바 정부군에 의하여 기습을 받게 되었다. 겨우 10명만이 생존하였고 이후 몇 명이 더 합류하여 카스트로, 체게바라 등의 17명의 혁명가들은 쿠바 남부의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악지역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게릴라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력을 규합하여 차츰 하바나로 진격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혁명 취지에 공감하는 다른 쿠바인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며 마침내 1958년 12월 31일에 체게바라의 군대는 산타끌라라에서 마지막 남은 정부군의 항복을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다음날인 1959년 1월 1일에 바티스타 대통령이 쿠바를 탈출하여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하면서 권력이 비게 된 하바나에 입성하면서 그들의 혁명은 성공하였다. 쿠바혁명은 민주적 절차에 의해 권력을 잡지 않은 바티스타 대통령에 대한 민주주의 혁명의 성격을 정치적으로 띠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부의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된 현실을 바로 잡으려는 성격도 지니고 있었으므로 혁명 후에 토지개혁 등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쿠바에 있던 미국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하였는데, 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켜서 마침내 1961년 1월에 미국과 국교가 단절되어 버리게 되었다. 이후 쿠바는 1961년 4월에 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선언함으로써 사회주의 국가의 길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 바로 아래에 있었던 쿠바는 소국이었으므로 미국이 마음을 먹기에 따라 정권이 또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가능하였다. 이러한 미국에 의한 쿠바의 정권 전복 시도는 1961년 4월에 있었던 피그만 침공사건으로 이루어졌고, 동 작전은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들을 이용한 침공 작전이었고 CIA가 계획하였으나 쿠바를 너무 과소평가한 착오에 의해 실패로 끝났다. 또한,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쿠바는 소련과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졌고,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설치하려고 했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이 일어났다. 핵전쟁 직전까지 갔었던 상황에서 미국은 쿠바의 정권 전복을 이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소련은 쿠바의 미사일 기지 설치를 철회하게 되었다. 이후 쿠바는 철의 장막이 무너지면서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의 약 30년 동안은 소련을 주축으로 한 사회주의 국가 경제권에 속하게 되었고, 사회주의 국가들의 동맹이 무너진 1990년대 후반부터는 독자적인 생존의 길을 걸어야 했고, 미국의 계속적인 경제봉쇄 때문에 어려운 경제상황을 보내야만 했다.
몇 년 사이에 기력이 쇠약해진 명학은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기회가 많이 줄어 들게 되었다. 다행히 마리아가 클럽에서 노래하며 집에서 다른 음악지망생들에게 노래와 피아노를 가르치는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명학은 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을 듣는 것을 그나마 낙으로 살며 살고 있었다. 요즈음 라디오를 틀면 '체리핑크 앤 애플 블러섬 화이트'라는 곡이 자주 나오고 있었다. '페레즈 프라도'가 프랑스의 샹송을 쿠바 음악 스타일로 편곡하여 그의 밴드가 연주한 곡이 미국에서 최근 10주 연속으로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쿠바인들에게는 경사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음반시장을 겨냥한 탓인지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어서 그 뜻을 몰랐지만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으면서 명학은 의미 없는 소리를 내며 멜로디에 즉흥적 코러스를 넣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그를 보고 마리아는 가사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아. 그런 뜻이었군요. 가사가 무척 로맨틱하군요."
"네. 원곡이 샹송이라고 하던데, 아마 프랑스어 가사를 영어로 번역했을 것 같아요."
"프랑스인들 노래가사는 사랑이 넘치는 것 같아요."
"근데, 안드레아가 멜로디에 즉흥적으로 넣은 코러스도 꽤 들을 만한데요. 역시 재능이 있어요. 당신은."
"그래요? 들을 만 했어요? 나는 영어가사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즉흥적으로 흥얼거리기만 했는데.."
"클럽에서 다시 노래하고 싶으시죠? 안드레아."
"그러고 싶은데, 그러다간 언젠가는 무대에서 노래하다 쓰러질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명학을 보고 마리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그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더욱 슬퍼지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는 그가 걱정이 되었다. 병원을 가도 뚜렷하게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일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의 몸 상태는 악화되지 않았지만 이전처럼 건강하게 회복된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명학도 마리아의 신세만 지고 오랫동안 생활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러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녀는 항상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제발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였다. 명학은 자신이 다시 건강해지기를 기도했고, 갑자기 봉수의 걱정이 들었다. 그도 자신만큼 노쇠해졌기 때문에 이전에 그와 동고동락을 했던 봉수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봉수는 쎌리아와 같이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일은 아들인 안토니오의 생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생일음식을 마련하기 위해서 특별히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데 사용할 재료들을 사서 무겁지만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고급 승용차들이 도로를 누비고 다니고 있었다. 국민들은 여전히 가난하였지만 권력을 잡은 이들과 그들과 공생하고 있는 관료, 경제인 및 그들의 가족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 하바나의 거리는 국제도시의 명색답게 온갖 호화스러운 차들과 건물들로 도시의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거리를 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던 봉수와 쎌리아에게 갑자기 어떤 승용차가 도로를 이탈하여 달려왔다. 봉수는 순간적으로 쎌리아를 옆으로 밀어서 차를 피할 수 있게 하였으나 그는 불행하게도 차의 정면에 부딪히며 유리창에 머리를 심하게 박았고 이후 공중에 뜬 후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어느 부잣집 아들이 미국에서 새로 수입한 스포츠카를 타고 부주의하게 하바나 거리를 운전하면서 벌어진 사고였던 것이다. 쎌리아는 그 광경을 보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서 그에게 달려왔다.
"미구엘! 괜찮아요?"
하지만 봉수는 머리에 피를 흘리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몸은 크게 상처를 입었는지 이미 힘이 빠져 축 늘어져 있었다. 다행히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정신없이 외쳐대고 있는 쎌리아의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그들의 주위로 몰려 들었다. 얼마 후 출동한 경찰들에 의하여 그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하지만, 그는 교통사고로 머리에 출혈이 일어났고, 바닥에 떨어질 때 받은 충격 때문에 몸속의 골반 뼈들이 심하게 부서져서 그의 장기를 이미 많이 손상시켜 살아나기가 힘들다고 진단이 내려졌다. 사고소식을 듣고 명학은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왔다. 죽음의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봉수는 진통제로서 겨우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병실에 들어 온 명학은 봉수를 바라보았다. 가족들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중에 그는 눈을 겨우 떠서 명학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힘들게 말을 이어 나갔다.
"어이. 동생! 왔냐?"
명학은 대답을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내기만 하고 있었다.
"뭐. 그리 울고 있냐? 허긴. 다들 많이 놀랐겠다. 나도 많이 놀랐어. 다행히 쎌리아는 구했네..."
그리고는 거친 호흡을 하면서 다시 어렵게 말을 시작하였다.
"이제 너하고도 여기에서 이별이구나. 참 우리 인연이 징한 사이였제? 같이 보낸 시간이 몇 십 년이여?"
호흡이 다시 가파오자 명학은 말했다.
"봉수형. 힘들게 말하려고 하지 마요. 나는 형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알고 있어.."
"그래도... 이게 이제 너하고 마지막으로 하는 얘기니까.. 내가 숨 넘어 가기 전까지 계속 뱉어야것다."
"...."
"내가 태어나길 잘했다고 싶은 게 몇 개 있는디... 조선에서 소리패 썽님들 만난 거... 그리고 명학이 너를 만나게 된 거... 그리고 우리 쎌리아 만나서 저놈 안토니오를 아들처럼 같이 키운 거... 뭐 이 정도면 나 잘 산 거 아니냐?"
"맞아요. 봉수형... 저도 형 만나게 된 것이 가장 큰 축복이었어요. 형을 만나지 못했으면..."
"지랄 같은 나를 만나서 뭐 고생했지.. 암튼.. 명학아. 내 먼저 가서 있을텡께...너도 남은 시간.... 잘 보내다 와라.. 그리고 쎌리아! 자네도 너무 고생했어. 내 자네 마음 잘 알제.. 안토니오야! 너도 내가 친아빠 아닌가 알면서도 잘 커 주어서 고맙다. 너는 나한테 아들 이상이었어...아.. 다들...나 먼저 가요! 아.... 자꾸...말이여.... 눈이 감긴다...."
잠시 후에 봉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의 숨은 멎었고 이제는 평안히 잠이든 것처럼 보였다. 순간 병실은 울음소리로 가득하였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 온 마리아는 봉수의 임종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대성통곡하고 있는 쎌리아와 안토니오를 끌어안아 주었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명학의 손을 잡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