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클럽 뜨로삐까 시절부터 부에나비스타 클럽까지 같이 연주를 한 적이 있었던 단원들은 그의 부고를 듣고 모두 찾아 와 주었다. 주위를 쾌활하게 만드는 성격 탓에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 하였다. 마음에 들었던 친구가 이제 저 세상으로 가 버렸다고 생각을 하며 '아디오스 아미고'(잘가게! 친구여!)라는 말을 저마다 남기며 그의 관 위에 꽃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슬픔에 잠겨 있는 쎌리아와 안토니오에게 위로의 말을 빠짐없이 해 주며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명학은 조문객들의 행렬을 보면서 마리와와 조용히 한 편에 서 있었다. 명학과 봉수의 나이로 미루어 보아서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살아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갑자기 허망하게 봉수가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50년 정도 전에 조선에서 봉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 순간은 첩첩히 쌓여 있는 시간들을 꿰뚫으면서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소리패 형님들과 정처 없이 조선팔도를 떠 돌던 몇 년의 시간들, 화물선의 짐짝처럼 빼곡히 들어차서 1,000여명의 조선인들과 태평양을 건넜던 일들, 멕시코에 도착하여 유칸탄까지 대륙을 횡단했던 순간들, 유카탄 에네켄 농장에서의 지옥 같던 생활들, 노예와 같은 농장생활에서 해방된 이후 10년 넘게 살게 된 베라끄루쓰에서의 생활과 마리아치들에게 배웠던 멕시코 음악들, 쿠바에 넘어 와서 보낸 농장생활과 쿠바 손 음악과의 만남, 그리고 하바나로 오게 된 시간 들이 주마등처럼 명학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모든 시간들 속에 봉수는 항상 그와 같이 하고 있었다.
'봉수형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쩌면 멕시코 유카탄에서 농장생활을 계속하며 늙어 갔을 테고, 거기에서 지금쯤이면 조선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함께 어느 무덤에 외롭게 묻혀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반바퀴를 그와 같이 지나왔고, 50년이 넘은 시간들을 봉수와 동고동락하면서 보내왔었다.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서 명학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을 만큼 너무나 빨리 장례식까지의 시간을 보냈던 명학으로서는 이제 찾아온 슬픔으로 인해 마음이 몹시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내렸지만, 멈추지를 않았다. 이를 본 마리아는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어 명학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주었다.
"안드레아. 슬퍼하지 마세요! 미구엘은 천국에서 이제 편안히 지내실거에요. 모두들 그를 사랑했잖아요? 그리고, 미구엘의 마음속에는 당신이 영원히 있을거에요."
명학은 흐르는 눈물을 겨우 멈추고는 그녀에게 힘없이 기대었다.
몇 주 뒤에 부에나비스타 클럽에서는 봉수를 기리는 공연을 개최하였다. 공식적으로는 추모 공연의 자리로 마련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연의 후반부에서 마지막 곡까지는 평소 봉수가 좋아했던 쿠바 음악을 연주해 주었던 것이다. 관객들은 그런 의미를 모른 채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었다. 하지만, 단원들은 마음속으로 이제는 저 세상으로 떠난 친구인 봉수를 위해 연주하고 있었다. 마지막 몇 곡은 봉수의 평생 친구인 명학이 노래를 불렀다. 이제는 무대에서 그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가 무대에 등장하자 환호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그가 떠난 자리를 메우고 있었던 젊은 가수들이 그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 명학은 자리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몸과 눈은 힘없이 보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전처럼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봉수는 죽기 전까지 몇 년 동안은 '베니 모레'의 노래들을 즐겨 들었기 때문에 그가 평소 좋아했던 곡 중에서 '이리 이리 봄'(Yiri Yiri Bom)이라는 노래로 시작하였다.
"이리 이리 봄
이리 이리 봄
....
짐바라 짐바라
....
룸바 음악은 나를 즐겁게 해요
쿠바 흑인들의 음악이죠
...
이리 이리 봄
이리 이리 봄
..."
젊은 가수들은 정성을 다하여 명학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어 주었다. 그는 마지막 곡으로 역시 '베니 모레'의 노래인 '시구아라야 나무'(Mata Siguaraya)를 이어 불렀다.
"쿠바에는
신성한 나무가 있죠
허락을 받지 않고는
절대 벨 수가 없죠
...."
모든 노래들이 끝나자 관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단원들도 오늘 연주한 음악들과 함께 이제는 봉수를 떠나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명학은 즉흥적으로 한 가지 요청을 관객들과 단원들에게 하였다.
"오늘 마지막으로 부른 몇 곡들은 몇 주 전에 세상을 떠난 저희들의 동료인 미구엘을 위한 노래들이었습니다. 그는 꼬레아에서 온 쿠바인이죠. 저도 마찬가지구요. 우리는 젊었을 때 저희 조국이었던 꼬레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태평양을 건넜고, 멕시코를 횡단하면서 마지막에는 쿠바에 오게 되었죠. 온갖 어려움이 있었던 시간들이었고, 어떤 때는 차라리 아침에 눈을 뜨면 하늘나라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버티게 한 것은 음악의 힘이었습니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우리는 언제나 음악과 같이 있었죠. 그리고 쿠바에 온 이후로 쿠바의 아름다운 음악들과 또한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전에 떠나 온 나라였던 꼬레아의 노래를 한 곡 부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의 한평생 친구였던 미구엘을 위하여 부르고 싶습니다."
관중들과 단원들은 그의 긴 말을 조용히 들어 주었고, 그의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박수를 쳐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명학은 '아리랑'을 천천히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
단원들은 아리랑을 처음 들어 보아서 그 멜로디와 리듬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노랫가락이 한번 지나가고 다시 돌아 올 때는 즉흥적으로 현악기 연주자들이 노래에 어울릴 수 있는 멜로디를 넣어 주었고 타악기 연주자들은 조심스럽게 노랫가락에 맞는 리듬으로 맞추어 주기 시작하였다. 젊은 코러스 가수들은 한국어를 이해 못했지만 흥얼거리는 소리로 명학의 노래를 즉석에서 보조해 주었다. 몇 번이고 아리랑은 반복되었고, 조선의 아리랑은 어느 순간 쿠바 연주자들의 반주 속에서 아프로 쿠바적인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서로 다른 대륙의 음악이 혼합된 순간이었다. 관객석에는 '사브로소!(멋져요!)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순간 명학은 이전에 봉수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조선의 소리들도 쿠바처럼 충분히 유명해 질 수가 있단 말이여."
"아! 그럴 수가 있을까요?"
"얘네들 소리도 말이여. 아프리카에서 넘어 온 흑인들이 가지고 온 리듬에 유럽의 현악기, 관악기 멜로디가 섞인 것이란 말이지. 그래서 이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소리가 생겨난 것이지."
"그렇다면, 우리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우리가 소리패 썽님들한테 배운 것들은 쿠바로 치면 타악기들 소리란 말이지. 우리도 태평소 같은 멜로디 악기들도 있지. 유럽 현악기 멜로디 소리가 더 들을 만 한 것은 인정한다고 치더라도 조선도 멜로디 악기가 많아. 암튼 말이여. 우리 조선의 가락도 쿠바인들처럼 여러 대륙의 소리가 혼합되면 완전히 세계적인 소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여. 내 말은!"
"아! 봉수형 말이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그러면 우리가 한번 그런 소리를 만들어 볼까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 못 했었는데. 봉수형이 그런 생각을 해 내다니 정말 대단해요!"
"너는 나를 평소에 아주 거시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냐? 나도 음악 하는 사람이랑께!"
어쩌면 지금 불렀던 노래가 쿠바인들의 즉흥적인 연주와 어우러지면서 그 때 생각했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냈으리라고 명학은 생각이 들었다.
"명학아! 너 노래에는 너의 인생과 한이 담겨 있어야 한다. 저마다의 소리에는 부르는 이와 연주하는 이의 인생과 한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소리인 것이야."
조선에서 소리를 가르쳐 주신 이제학 선생님의 가르침이 또한 마음속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내 노래에는 나의 인생과 한이 녹아 있는 것일까?'
명학은 마음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는 무대 옆에 서 있는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명학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였을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그를 향해 마리아는 조용히 마음을 통하여 대답을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더 지나갔고, 어느 날 아침에 명학은 눈을 뜨지 못하였다.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밤사이에 그는 숨을 거둔 듯이 조용하게 누워 있었다. 마리아의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왼손에는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다. 그가 죽은 것을 깨달은 마리아는 눈물을 흘렸다. 최근 들어 급격하게 체력이 더 떨어져 버린 명학이 너무 걱정이 되었지만, 죽음의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그녀는 전혀 예상을 할 수 없었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노년의 시간에는 맞을 수가 있다는 것이 명학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평온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에 그녀는 뺨을 비볐다.
"안드레아! 일어나요! 이렇게 가 버리면 저는 어떡하란 말이에요?"
몇 시간을 울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집에 들른 이웃집 할머니가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해 주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명학에게는 사망확인이 내려졌다. 이로서 공식적으로 그는 이 세상을 떠난 또 다른 한명의 사람으로 기록이 되었다. 장례식을 치른 후에 명학은 봉수의 무덤 옆에 묻혔다. 봉수의 무덤은 몇 년 전에 먼저 그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그의 비석은 명학의 무덤을 향해 '명학아! 그래. 잘 지내다 왔어?'라고 말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가 죽은 후에 마리아는 거의 매일 그의 무덤을 찾아 왔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꽃을 새로 꽂아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덤을 찾는 빈도는 줄어들기는 했지만 마리아의 발길은 끊어질 줄 몰랐다.
어느 날, 마리아와 쎌리아는 안토니오를 데리고 명학과 봉수의 무덤을 찾아 갔다. 요즘 들어 일이 바빠서 한 달 정도를 찾아오지 못해서 그런지 야생화들이 무덤 주위에 나 있었는데, 명학과 봉수의 무덤에 나 있는 야생화들이 서로 얽혀서 마치 같은 뿌리에서 자라 난 듯 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마리아와 쎌리아는 명학과 봉수의 비석을 다시 닦아 주기 시작했고, 그러자 먼지에 가려져 있었던 비석의 글자들은 선명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조셉 안드레아
1884 ~ 1958
꼬레아에서 태어나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를 거쳐
쿠바에 도착하여
여기 하바나에서
편안히 잠들다'
'호세 미구엘
1881 ~ 1956
아시아의 작은 나라
꼬레아에서 나서
쿠바까지 오게 되었고
하바나에서 가족을 만나다
평안히 잠드소서'
그들의 영혼은 시간을 거슬러 멕시코 만을 거쳐서 멕시코에 닿았고 다시 대륙을 횡단하여 태평양을 힘차게 넘어 갔다. 그리고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조선의 고향땅의 하늘 위에서 어린 시절의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마리아와 쎌리아는 안토니오에게 조용히 말했다.
"여기 계시는 미구엘과 안드레아는 너를 무척 아끼셨다. 그들에게는 안토니오는 친아들과 마찬가지였다. 너도 잘 아는 것처럼. 그들은 원래 쿠바인들이 아니었지만 우리와 결혼하면서 정식으로 쿠바인이 되었지.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고국인 꼬레아가 항상 있었지. 우리가 그들의 친자식을 낳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너는 그들에게는 아들이었어. 그래서 그들의 고향인 꼬레아는 우리들에게는 또 큰 의미가 있단다. 여기 우리 중에서 아무도 거기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들이 평소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꼬레아의 여권을 오늘 이 자리에서 너한테 주려고 한다. 그들이 꼬레아를 떠나서 멕시코로 갔을 때 사용했던 꼬레아의 여권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없어진 조선이라는 나라의 여권이라고 하지만, 이것을 소중히 간직하거라. 오늘 여기 묻혀 계신 두 분의 도움으로 너도 이렇게 훌륭하게 커서 피아니스트가 된 것이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이지만, 꼬레아는 너의 또 다른 나라라고 생각을 해라."
안토니오는 마리아와 쎌리아에게 색이 바래버린 누런 종이 두 장을 받았다. 알 수 없는 글씨로 적힌 종이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소중히 보관되어 온 듯이 구겨짐이 없었다. 어머니인 쎌리아는 아들을 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안토니오야! 마리아와 너의 장래에 대하여 많이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너는 미국으로 건너가거라."
"네. 미국으로 가라고요?"
안토니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그래. 너는 아직 많이 젊기 때문에 여기 쿠바에서 활동하는 것 보다는 더 큰 음악 무대인 미국으로 가는 것이 너의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될 것이다. 마리아가 미국에 건너간 로드리게스 씨에게 편지를 써 놓았단다. 여기 그 분의 답장이 적힌 편지를 너에게 줄 테니, 거기 적힌 주소를 보고 미국에 도착하면 그 분을 찾아 가거라. 네가 안정이 될 때까지 미국에서 그 분이 도와 주실 거다."
"하지만, 두 분을 두고 제가 어떻게 조국인 쿠바를 떠난다는 말이에요?"
"아니다. 여기는 이제 잊도록 해라. 네가 미국에서 음악적으로 성공한다면 그것이 조국인 쿠바를 더 자랑스럽게 하는 일이다. 우리도 여기에서 너를 항상 응원할 것이다."
몇 달 후에 안토니오는 하바나항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배위에 있었다. 고국을 떠나가는 쿠바인들 속에서 그는 바다를 보며 눈물을 짓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봉수와 명학의 조선 여권 두 장과 함께 로드리게스 씨의 주소가 적힌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