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상선 블루오션호는 암스테르담으로 들어가는 겨울바다를 헤쳐 가고 있었다. 심연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검푸른 바다 색깔과 정월 초하루 날 밤공기 같은 매서운 바람은 박선장에게 북쪽 나라의 영해로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기나긴 항해의 연속이지만 이 또한 그 수많았던 항해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무표정의 얼굴로 조타실 창문을 통하여 항구로부터 스며들어 오고 있는 희미한 불빛을 응시했다. 19세기의 해양소설 속에 등장하는 낭만적 요소는 그에게 있어서는 단지 문학적 세계에 국한될 뿐이며, 배의 관리권한과 의무가 그에게 주어지며 다시 그것에서 벗어나게 되기까지의 기간 중에서 항해란 안전과 무사고가 최우선인 긴장의 연속인 것이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바다를 다녀 보았고, 무수한 항구들을 거쳐 보았다. 항구의 모습들은 몇 년 만에 바뀌어 있었지만, 바다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이는 당연한 말 같이 들리지만, 매일 뜨고 지는 해와 달처럼 단조로움의 연속들 속에 보내는 시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의 위대한 작품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VHF(초단파 단거리무선통신)를 통하여 나오기 시작하는 항내의 온갖 통신 소리들이 조타실 안의 적막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선원들에게 입항 준비를 지시하고, 조타실 밖으로 잠깐 나와서 북쪽 바다의 차가운 공기와 냄새를 온 감각기관으로 천천히 흡입했다. 정신이 다시 번쩍 들기 시작했다. 1등 항해사가 그에게 감기 조심하라고 말을 건넨다. 그는 다시 조타실로 들어왔다. 얼마 후 네덜란드 파일럿(선박을 항외에서 항내 부두로 운행해주는 사람)이 배로 올라와서는 ‘할로우’라고 현지어로 웃으며 인사를 건네며 조타실로 들어왔다. 잠시 후 파일럿은 항내를 조심해서 배를 몰아갔고, 잠시나마 박선장은 잠시 고향생각이 떠 올렸다. 지금 쯤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외손주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울산항에 잠깐 들렀을 때 봤던 그 녀석이 당시 100일을 조금 넘었으니까, 다음에 귀국하면 아마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을 것이라고 박선장은 생각하였다. 딸의 가슴팍에 안겨서 어깨너머로 외할아버지인 그를 바라보던 외손자의 눈망울이 다시 떠올랐다. 집에 돌아가면 그 녀석의 작은 손을 잡고 산책도 하며, 장난감도 사주고 하면서 외할아버지 노릇 제대로 해야지 하고 생각을 하니 그의 머릿속이 잠시 따뜻해졌다.
배가 항구에 접안하자, 암스테르담의 출입국관리소 공무원들이 배에 올라왔다. 통상적으로 선박의 대리점을 통하여 수속이 이루어지므로 네덜란드 공무원들이 검색을 위하여 배에 오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박선장은 본사로부터 이런 경우가 생길 수 있음을 이미 듣고 있었다. 최근 선박을 통하여 유럽으로 들어오는 밀항자들이 급증하여, 입항하는 외국선박에 대한 검색이 강화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나 출입국관리소 공무원들의 표정은 무표정이고 사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성격상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듯한 날카로운 표정으로 박선장 및 선원들을 일단 바라보았다. 그중 총책임자인 듯한 직원에게 선원명부 등의 필요한 서류들을 넘겨주었다. 그 들은 선박의 구석구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이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지만, 예상보다 검색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박선장이 조타실에 대기 중인 공무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불법입국자, 난민들이 급증하여 입국 검색이 강화되었으니 이해를 해달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래서, 조타실에 놓여 있는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업무가 마칠 때까지 더 기다려 주었다. 3등 항해사의 보고에 따르면, 보일러실, 화물창 등의 구석구석을 다 뒤지고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30분 정도 후에 3등 항해사가 다급히 조타실로 올라와서 박선장에게 외쳤다.
“누군가 아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뭐라고? 자세히 보고해 봐!”라고 박선장은 말했다.
“네덜란드 공무원들이 배의 구석구석을 뒤졌는데, 화물창 밑의 공기환기용 공간에서 흑인 남자 한 명을 찾아냈습니다. 그 흑인은 전혀 저항은 하지 않았고, 지금 체포되어 있습니다.”라고 3등 항해사는 대답했다.
순간, 박선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골치 아픈 일들이 앞으로 전개되리라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지고 화도 났지만, 일단 선장으로서의 위엄을 되찾으려고 표정을 다시 고치며 말했다.
“일단 공무원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
잠시 후, 출입국관리 공무원들은 화물창 밑에서 붙잡은 흑인 남자 한 명을 데리고 올라왔다.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흑인은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표정이었다. 얼굴로 봐서는 30살 안팎으로 짐작이 되었지만, 외국인의 나이를 알아맞히기가 쉽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에게 본인의 배에 어떻게 타게 되었는지 그 자리에서 묻고 싶었지만, 네덜란드인들은 그런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중 총책임자가 박선장에게 다가왔으며, 조금 전과는 다른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선장! 보다시피, 당신의 배에 이 사람이 숨어 있는 것을 우리가 찾아냈소. 일단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모두 이 선박을 벗어나지 마시오.”
박선장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나이지리아에서 싣고 왔던 농산물에 대한 하역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니, 체포된 흑인이 항구에서 차에 태워져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동안 비슷한 사례들을 떠올려 보려고 노력하였다.
해가 저물어가자 항구의 불빛은 눈이 부시도록 밝아져 갔다. 박선장은 선원들에게 하선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저녁식사를 제공하도록 했다. 암스테르담에 입항하기 직전의 항구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항구에서 화물을 선적했으니, 그가 밀항을 시도한 곳이 라고스가 거의 확실시되었다. 그는 본인의 선원들 중에서 그 흑인의 밀항에 혹시 협조한 사람이 있는지 내부 조사를 진행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 큰 배에 누가 몰래 타는 것을 사전에 막기란 쉽지가 않고, 다른 항구까지의 항해 기간 동안에도 숨어 있는 자를 화물칸 등에서 찾아낸다는 것도 현실상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이해를 하였지만, 내부 선원들이 정박지에서 밀항에 대한 협조 연루가 만약 있었다면 선장으로서는 묵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발목이 잠긴 채 질퍽거리며 뛰어다녔던 고향의 갯벌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게 된 어린 시절 친구들이 갯벌에서 함께 웃으며 조개와 게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갯벌 끝 저 멀리서는 초가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어머니는 해가 지고 있으니 어서 빨리 갯벌에서 나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이제 늦었으니 갯벌에서 나가 집으로 가자고 말하기 위해 옆에 있는 친구들을 쳐다보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어머니가 계신 방향을 보니 해안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순간 겁이 나서 갯벌 밖으로 나가려고 뛰어 보았으나, 걸음걸음이 갯벌에 쑥쑥 빠져 들며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보다가 박선장은 꿈에서 깨어났다. 제정신을 차리게 되자, 몹시 갈증이 났다. 조그만 테이블에 놓여 있는 안경을 찾아서 착용한 후 컵에 물을 붓고 벌컥벌컥 마셨다. 이제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꽤 먼 거리를 달려왔구나 하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머리로 무질서하게 밀려오는 온갖 걱정과 고민으로 잠시 시달리다가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당직을 서고 있는 중인 필리핀 선원이 선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선장을 본 순간, 그 선원은 놀랐고, 흡연 제한 구역에서 담배를 피운 것을 들켰기 때문에 겁에 질려 있었다. 박선장이 그를 응시하자 담배를 급히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항해에 배치받은 선박과 선원들과 함께 10개월째 세계의 바다를 다니고 있었다. 정박한 항구는 선원들에게는 잠시 동안의 휴식인 것이다. 그에게 박선장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선실 밖의 공간으로 나와서, 쓸쓸하고 차디찬 암스테르담 항구의 밤공기를 깊이 들여 마셨다. 그리고는 몇 달째 선장실 서랍에 방치되고 있던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반년 넘게 금연한 뒤의 담배 한 모금은 쓴 맛이었지만 그는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서 이 이국의 밤 속에서 금연의 약속을 깨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그 날 오전에, 네덜란드 대리점으로부터 무선연락이 왔다. 오후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조사가 있으니 내사에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그는 출입국관리소 건물로 들어갔다. 해당 사무실로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마르고 키가 아주 큰 백인 조사관이 들어왔다. 선박소유자, 박선장의 국적, 선원 인적사항, 항해기록 등에 대한 기본적 질문부터 시작되었다. 이전 항구부터 여기까지의 항해기록에 대해서는 그동안 작성해 왔던 항해일지(로그북)를 토대로 박선장은 얘기해 주었다. 밀항자였던 흑인 남성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밀항에 협조한 사실이 없음을 추가로 명백히 하였다. 어느덧 두 시간의 조사가 끝났다. 정보국의 직원으로부터 추가 조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는 제외되었고, 밀항자에 대해서만 추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박선장은 조사 경과에 대하여 본인에게도 공유해 줄 것과 관련 당국과의 협의에 본인을 참석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을 당했다. 오후 늦게 다시 자신의 선박으로 돌아왔다.
나흘의 시간이 더 흘렀고, 그동안 대리점에서는 박선장과 선원들에게 기본적인 생필품과 향후 항해에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여 주었다. 밀항자 사건과는 별도로 박선장은 다음 항해를 위해 준비를 시켜야만 했다. 오후에 그는 대리점으로부터 온 연락을 다시 받았다. 다음 날 오전에 다시 출입국관리소를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출입국관리소 사무실에 도착해서 관련 공무원에게 그동안의 경과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받게 되었다. 밀항자는 나이지리아 국적이 아니라 시에라리온이라는 아프리카 서쪽 해안 국가 출신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밀항자가 여권을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벨기에 브뤼셀에 소재한 시에라리온 대사관에서는 본국 국민이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협조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했다. 다행히, 유러 폴(유럽연합 내 인터폴과 같은 기구)에서 관리하는 위험인물이나 테러리스트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네덜란드에 입국허가를 내릴 수는 없다고 했다. 난민지위 인정을 해주기에도 곤란하며, 인정여부 결정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며, 국적이 불명한 이 흑인의 경우는 이를 혼자 해결하기에도 벅차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선장이 이 밀항자를 태우고 네덜란드에 들어왔으니, 다시 데리고 돌아가 달라고 말하였다. 그는 그동안의 조사 내용에 대한 경과를 그들로부터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그들의 마지막 결론에 이르자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덜란드 정부에서 이 사건을 해결해 주기를 원했고, 본인은 이 사건에서 벗어나 다시 출항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이냐! 폭탄을 이리저리 던져 옮기다가 마지막에는 나에게 오게 되도록 그들이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공식적인 결론이냐고 박선장이 물으니, 그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결론이 이렇게 나온 바에야 다음 항해를 지연시킬 수가 없다고 그는 순간 판단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다음 항구로 가져갈 화물의 선적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을 향하여 출발하도록 선원들에게 준비를 지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케이프타운에서는 과일을 선적하여 또 다음 항구로 가야 했기 때문에 일정이 촉박해졌다.
선박으로 돌아와서 박선장은 본사에 무선 교신을 하였다. 그동안의 경과 및 오늘 내려진 네덜란드 당국의 결정에 대하여 보고를 마쳤고 밀항자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의견도 구하였다. 하지만, 본사에서도 뭔가 시원한 확답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케이프타운으로 가는 일정이 지연되었으니 이를 고려해서 박선장의 재량을 발휘하여 일정을 다시 맞추도록 하라는 점만 강조하였다. 밀항자에 대한 그의 보고는 무시되는 듯 여겨졌다. 밀항자를 출항 전에 선박 안에서 찾아내지 못한 점에 대한 본사의 추궁이 덧붙여졌다.
“나이지리아에서 출항하기 전에 선박 검색을 확실히 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 아닌가요?”
박선장은 “지금 이 선박에 타고 있는 선원들 모두 동원한다고 해도 이 정도 큰 선박을 이 잡듯이 뒤질 수는 없습니다. 아시잖아요?”라고 대답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기한 내에 도착해야만 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화물 계약자가 우리 회사의 주요한 고객사입니다.”라고 말하며 본사 교신은 끊겼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는 것을 박선장은 겨우 다스렸다. 수십 년 동안을 배를 몰아 왔지만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책임감과 고독감이 뒤따라 왔다.
며칠이 지나고, 그의 선박은 대서양의 공해상에 떠 있었다. 진행방향을 다시 남쪽으로 잡고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항로로 재설정을 한 뒤였다. 선실 하나를 비워 밀항자를 가두었고, 도망치거나 선상 난동을 피우지 않도록 발목에 수갑을 채우도록 하고 선장 이외에 다른 선원들이 밀항자에게 접촉하지 않도록 그는 지시를 내렸다. 하루 세끼 식사와 물을 제공하였고, 계속 행동을 감시하도록 하였다. 일단은 이러한 임시조치를 취하였지만,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네덜란드 당국의 조치가 서운하기 짝이 없다고 느껴졌다. 난민지위에 대한 국제협약이 있을 터이지만, 이 또한 나라마다 주권국가로서 고유하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닌가 하는 방향으로 이해를 해보려고 그는 애써 노력하였다.
박선장은 그 밀항자를 일대일로 면담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부하 선원들에게 그가 그동안 선실에서 뭐하며 지내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주어지는 하루 세끼 식사를 섭취하고 있으며, 별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고 있고, 종교적인 의식인 듯 보이는 행동을 가끔 하고 있다고 답변을 들었다. 박선장은 부하 선원 두 명과 함께 밀항자가 있는 선실로 내려가서 문을 열었다. 밀항자는 눈을 감고 벽을 응시하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흰색 선실과 대비되는 그의 검은 얼굴에 자리 잡은 흰 눈동자는 더욱 하얗게 보였다. 무슨 딴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박선장 일행을 보자 밀항자의 눈은 초점을 잡아가고 있다가 겁에 질린 눈으로 다시 변했다. 박선장은 의자 2개를 가져오게 하였고, 그와 마주 보고 앉았다.
“이름이 뭐냐?”라고 박선장은 입을 떼었다.
“모하메드입니다.”라고 밀항자는 대답했다.
“국적이 어디냐?”라고 박선장은 두 번째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밀항자는 선장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였다. 이에 박선장은 쉬운 말로 다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디서 왔지?”라고 바꾸어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밀항자는 “시에라리온”이라고 대답했다.
시에라리온이 밀항자가 온 나라라는 것은 암스테르담에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박선장은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하였다.
“내 배에는 어떻게 탄 거지?”
이 질문에 밀항자는 바로 답을 하지 않았다. 박선장은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지만, 그가 질문을 이해하였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몇 초간 대답이 없어서 박선장은 다음에 어떤 질문을 할 것이지 마음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그가 외치 듯 말했다.
“유럽에 가려고요. 나는 유럽에 가고 싶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내 말에 답하는 것 같지는 않아’라고 박선장은 생각이 들었다. 유럽이 그에겐 무슨 희망과 행복의 땅이라도 되는 듯 눈빛은 들떠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너에게 일어난 일을 너는 벌써 알고 있잖아. 너는 유럽에서 환영을 못 받았어.”라고 박선장은 바로 말을 내뱉었다. 그의 표정은 선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계속 “유럽으로 가요!”라는 말만 실성한 사람처럼 되풀이하여 중얼거리고 있었다. 더 이상의 대화가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박선장에게 들었다. ‘밀항자의 현지어를 할 수 있는 영어 통역사를 이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구할 것인가’하고 생각하니 오늘의 면담은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이 든 것이다. 방에서 나와 조타실로 그는 돌아왔다. 커피 잔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참 막막한 상황이다. 이 자를 앞으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걱정이 앞섰다. ‘본인의 국적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어떤 나라가 이 자를 쉽게 받아 줄 것인가? 그리고 이 자가 속해 있는 시에라리온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종족 간의 내전으로 국가의 경제는 황폐하고 정치 시스템은 혼란스러워 이 자에게 신경을 쓸 수 있는 형편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그는 들었다.
선장과 짧은 면담이 이루어진 그날 밤에 모하메드는 방에 앉아 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벽의 중앙에 있는 검푸른 얼룩을 보고 있으면 그는 회상에 잠기는 습관이 어느덧 생겼다.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반란군에 의해 붙잡혀서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가던 날이었다. 모모(Momoh)는 마을 친구들 틈에 끼여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모하메드가 아들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의 양 눈가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애써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정부군과 반란군 간의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마을은 점점 더 황폐화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덧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정부군이나 반란군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떠나기 시작했다. 식수가 오염되어 질병이 퍼지자 죽는 사람들도 생겨났으며, 그의 부인의 목숨마저 거두어 갔다. 하지만 그는 마을을 떠날 수가 없었다. 혹시 살아서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였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마을로 돌아온 친구를 통하여 그의 아들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광산으로 끌려가서 몇 달을 일하다가 다시 소년병으로 차출되어서 전투지로 이동하던 중 도망치다가 평화유지군을 만났고, 국제 자선단체를 통해 유럽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족들이 모두 떠나가게 된 마을에 계속 남아서 살고 있는 모하메드는 하루하루를 연명하다시피 살고 있었지만, 그가 살아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가 이제 힘들어져 가고 있었다. 이를 본 친구가 그에게 어느 날 말을 걸어왔다.
“자네. 점점 여위어 가고 있어. 그러다가 죽을 것 같아. 여기서 죽느니, 차라리 어디로 떠나게. 나이지리아는 유럽으로 가는 배들이 자주 들어오지.”라고 말하며 슬쩍 운을 띄어 보았다.
돈을 벌기 위해 나이지리아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간혹 보았는데, 모하메드에게는 유럽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자네가 말한 것처럼 내 아들이 유럽으로 갔다고 들은 것이 확신한가?”라고 모하메드는 물었다.
“틀림없어. 유럽으로 가게 해 준 국제 자선단체의 구호물품을 그때 내가 운반해 줬어. 자네 아들인 모모를 그 당시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지. 그래서 내가 알게 된 거야. 모모에게는 정말 잘 된 일이야. 아마 네덜란드로 가게 되었을 거야. 그 자선단체 직원에게 그렇게 들었던 것 같아.”라고 친구는 대답했다.
“모모는 아직 어리지. 나 같은 어른도 유럽에서 받아 줄까?”라고 모하메드는 말했다.
“모모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이 자네에겐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라고 친구는 말했다.
그는 한 달 뒤 목선에 몸을 싣고 나이지리아로 흘러 들어갔다. 천신만고 끝에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항구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몇 달 동안 품팔이를 하며 목숨을 연명하며 입항하는 배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있었다. 드디어 라고스에서 유럽으로 가는 배가 내일 입항한다는 얘기를 나이지리아 현지인들끼리 하는 것을 건너 듣게 되었다. 이틀 후에 하역인부들 틈 속에 끼여 선박으로 올라갔다. 미리 손을 써 놓은 워치맨(선박 하역과 선적 등을 감독하는 현지인)이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박 안으로 들어 간 후, 그는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으며, 화물창 밑의 냉장장치 환풍기가 있는 장소에 숨을 곳을 찾았다. 사흘 후에 누군가 아래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숨어 있는 구멍에서 발을 들어 올렸다. 선원들이 랜턴으로 그가 있는 쪽을 비추었지만 그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 이후에 엔진 소리와 함께 배가 출항하는 듯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몇 시간 뒤에 다시 검색이 이루어졌지만 그는 다행히 발견되지 않았다. 가지고 탔던 소량의 음식과 물로 근근이 생명을 유지해 나갔으나, 그것도 떨어져 버리자 그의 의식은 나날이 희미해져 갔다. 날이 갈수록 기온은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서 추운 지방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검색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은 그가 깜빡 잠들어 있었고, 전기 빛이 어둠을 파헤치고 있는 사이에 그는 빛이 비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그가 숨어 있는 구멍에서 다리를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 네덜란드 공무원들에 의해 그는 바로 체포되어 갑판 위로 올라오면서 본 하늘은 그가 유럽에서 본 최초의 하늘이었다.
며칠째 박선장의 배는 남쪽으로 항해를 계속했고, 아프리카 서쪽 해안의 공해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밀항자를 다음 목적지인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데려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안이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박선장의 마음은 계속 복잡했다. 이런 고민을 알아차린 몇 명의 선원들이 그에게 방법을 제안했다. 공해상에서 밀항자를 배에서 내리게 하자는 것이다. 그냥 바다에 버리자는 의견도 있었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처리방법이 일반화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 사실의 진위와 잔혹함을 판단하기보다는 박선장은 같은 선장으로서 그 당시의 선장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 상황들이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 선장도 또한 많은 고민과 함께 힘들게 그렇게 했을 것이라 추측까지 되었다. 또 다른 방법은 무인도가 발견되면, 밀항자를 그 섬에 두고 가자는 것이었다. 그냥 바다에 빠뜨려 상어밥이 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인도적인 방법이지만, 며칠간의 식량과 함께 밀항자를 무인도에 놓아두고 가버리는 것은 시간상의 문제이지 그를 죽게 만드는 것과 피차일반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오히려 죽기 전까지의 순간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 뻔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다른 인간에게 잔인한 결정을 내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박선장의 머리를 스쳐가자 갑자기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이런 귀찮은 물건 같은 존재인 밀항자를 데리고 언제까지 기약 없이 항해를 지속하는 것도 위험스러운 것이었다. 하나의 생명으로 존엄성을 가져야 할 인간이 이렇게 국적의 문제로 귀찮아지며 어떻게든 해치우고 싶은 물건 따위로 취급되는 것이었다.
며칠이 더 흘러가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선원들 사이에는 선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지 내기를 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또 며칠 뒤면 배가 적도를 넘어갈 것이고, 밀항자의 고향이 시에라리온이라면 적도를 넘어가기 전에 무슨 결정을 내릴 필요도 있다고 박선장은 생각이 들었다. 코트디부아르부터는 해안선이 급격히 아프리카 동쪽으로 들어가 버렸고, 남아공까지의 효율적 항로상 해안에서 상당히 멀어져서 항해가 이어지게 될 예정이었다. 박선장은 담배 한 모금을 길게 앞으로 뿜어내었다. 연기가 자욱해지며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프리카 서부연안 해도, 컴퍼스, 삼각자, 연필 등을 책상에 펼쳤다. 그리고 해도에 무언가 열심히 선을 긋고, 표시를 하며 적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선장실의 등이 꺼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자, 박선장은 조타실로 나타났다. 그리고는 선박을 진행방향에서 연안에 가깝게 약간 진로를 변경시켰다. 몇 시간을 배가 달리고 나자 저 멀리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속도를 줄여 배를 더 접근시킨 후에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상륙용 보트 한 척, 식량과 물을 준비시키게 하였다. 부하 선원을 시켜 밀항자를 데리고 오게 하였다. 모하메드는 영문도 모른 채 갑판으로 끌려 왔고, 눈부신 태양을 보자 순간 시각을 잊어버린 듯 고통스러워했다. 박선장은 부하 선원에게 발목 수갑을 풀어주게 한 다음, 보트에 식량과 물과 함께 태우게 지시했다. 그리고 박선장은 같이 보트 앞까지 걸어 간 후 말했다.
“모하메드! 지금부터 너는 자유야. 육지에 내리면 그냥 저 큰 산 쪽을 향해 곧장 가야 해. 거기가 너의 나라가 있는 쪽이야. 시에라리온.”
박선장은 육지 멀리 우뚝 서 있는 산을 가리키고 나서는 모하메드의 손에 미화 100달러를 쥐어 주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전환에 모하메드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윽고 결심이 선 듯이 박선장의 눈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라고 모하메드는 대답했다.
박선장은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 듯이, 다시 한번 말했다.
“여기는 기니라는 나라야. 산이 있는 방향으로 곧장 가야 해. 그러면 시에라리온에 도착할 거야. 여기에서 시에라리온은 그리 멀지 않아. 알겠어? 내 말 이해하는 거야?”
그러자 모하메드는 고개를 끄떡이며 하선하는 보트를 타고 육지 쪽으로 사라져 갔다. 얼마 후 보트가 육지에 도착하고 모하메드가 내리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박선장은 지켜보았다. 모하메드는 해안을 잠시 걸어가다 바다에 떠 있는 배를 바라다보는 듯이 잠깐 서 있었다. 그러다가 손을 흔들고는 내륙으로 걸어가다 수풀 속으로 사라져 갔다.
박선장은 어린 시절 고향의 갯벌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모하메드가 무사히 그의 고향에 도착하기를 기원하였다. 배가 다시 움직여 항해를 시작하자, 이것이 내가 내린 최선의 결정인가 그리고 이 결정은 모하메드에게 도움을 준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박선장의 마음을 맴돌았지만, 부하 선원들에게 그의 마음을 보이지 않도록 무표정의 얼굴로 돌아왔고 선장으로서의 위엄을 다시 보이려 하였다. 그날 밤에 박선장은 잠을 뒤척였다. 애써 잠을 자 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괴롭기만 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불침범을 서고 있는 선원과 마주쳤다. 그는 손에 조그만 애완용 거북을 들고 있었다.
“자네. 거북이를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군?”라고 박선장은 말을 걸었다.
“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키우고 있습니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자네는 내가 오늘 내린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박선장은 돌연히 물어보았다.
“제가 선장님이라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맘에 담아 두지 않으셔도 되실 것 같습니다. 그 사람도 선장님을 충분히 이해할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선원의 말에 위로가 되었다. “자네는 왜 배를 타게 되었지?”라고 박선장은 말을 이어 갔다.
“필리핀 남자들은 배를 많이 타요.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든요. 고향에 돌아갈 때 되면 행복하죠. 이번에 배에서 내리게 되면 필리핀 시골마을인 제 고향에 돌아가서 정착할 예정입니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생각입니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갈매기 한 마리가 그때 박선장의 머리 위에서 맴돌며 날고 있었다.
“육지에서 제법 멀게 왔을 텐데, 웬 갈매기가 있는 거지?”라고 박선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전에 흑인 남자를 육지에 내려 주었을 때 갈매기가 그때 배 위에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계속 보이더라고요.”라고 그는 말했다.
“저 갈매기도 밀항자인가? 케이프타운까지는 어쩔 수 없이 태워 가야겠군”라고 박선장은 그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달빛에 물들여진 바닷길을 가르며 블루오션호는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약 세 달이 지나면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는 생각에 박선장은 마음이 설레어져 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