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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에서 본 아랍의 유산

딸과의 이별 및 홀로 여행의 시작

by 김주영

코르도바에 도착한 지 두 번째 날이 되었다. 딸은 어제 만난 선배 언니와 앞으로 살게 될 집을 알아보러 다닌다고 아침 일찍 나갔다. 둘이서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한 여러 집들을 집주인과 약속시간을 정하고 집구경과 위치, 가격 흥정을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걸린다고 한다. 나와는 저녁 10시에 어느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때까지 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코르도바에는 '메쓰끼따'(Mezquita)라고 하는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 있다. 이 사원은 스페인이 자리 잡고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아랍인들이 바다를 건너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후 회교도 사원으로 건축되었지만, 스페인이 다시 영토를 회복한 이후에는 이 사원 내부에 가톨릭 예배당을 만드는 등 개조를 했다. 하지만 건물의 외관과 내부 전체를 손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슬람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암튼 메쓰끼따를 미리 예약하고 아침에 방문하여 오전시간을 보냈다.


반 원 모양의 아치형 기둥들이 건축 내부를 받치고 있는데, 마치 숲 속의 나무들 같은 신비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메쓰끼따 사원의 내부는 시끄러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모두들 사원의 아름다움과 경건함에 매료되었는지 숲 속을 걷듯이 사원의 내부를 걸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나는 문득 이 풍경에 어울리는 음악이 떠 올랐다. "까쁘리쵸 아라베"(Capricho Arabe)라는 스페인 클래식기타곡이다. 스페인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따레가"(Tárrega)의 곡이며,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과 북아프리카를 여행하고 1892년에 작곡한 음악이다. 어쩌면 그가 안달루시아의 코르도바를 방문했을 때, 메스끼따 사원 안을 거닐면서 "까쁘리쵸 아라베"의 영감을 떠 올렸을지도 모른다. '아랍 기상곡'으로 제목이 번역되는데, 아랍적인 정취에 감흥을 느껴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뜻이다.

https://youtu.be/z-cNkuG3OqI?si=X3CgvbCuyQeu-kjX


날씨가 더워서 호텔로 다시 돌아갈까 생각을 하다가, 도보로 이십 분 정도 거리의 지방 미술관을 방문하였다. 여기서 재밌는 그림을 발견했는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항해를 떠나기 전에 재정적인 지원을 구하고자 여기 코르도바까지 왔고, 그가 기도를 하기 위해 '메스끼따'를 방문하는 그림이었다.


미술관도 나와서 더위를 피하고자 각종 박물관을 들락거렸지만, 오후 2시가 되니, 문을 닫는다고 나가라고 한다. 쫓겨 나와 노천카페에서 콜라를 시켜 먹으며 앉아 있으니, 오후에 문을 닫았다가 저녁에 다시 연다고 또 나가라고 눈치를 준다. 의자를 치우고 테이블 파라솔을 접고 난리가 아니다. 다시 거리를 이리저리 방황하다 갑자기 더위를 먹었다는 느낌이 들어 그나마 열려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거기서 한 시간 넘게 쉬며,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어느새 구름이 하늘에 드리워져 있어서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었다.


스타벅스를 나온 이후에는, 딸이 1년 동안 다니게 될 로욜라(Loyola) 대학교까지 걸어가 보았다. 캠퍼스는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였다. 근처 버스 정류장에 가서 버스 노선, 운행 시간들을 확인하여 딸에게 카톡으로 보내 주었다. 밤 10시에는 예약해 놓은 레스토랑에서 딸을 만났다. 오늘 하루에만 5개 정도의 집을 봤다고 하며 제대로 식사도 못했다고 한다. 내일까지 집을 몇 개 더 보고, 그중에서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는 아빠가 같이 더 있는 게 딸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같은 학교 언니와 내일부터 딸이 레지던스 형 호텔에서 같이 지내고, 그 후에 완전히 숙소가 결정 나면 거기로 또 이사하기로 될 일정이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살게 된 딸이 걱정스러웠지만, 언제까지 어린아이처럼 아빠가 품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걱정, 저 걱정으로 밤에 잠이 오지 않았지만, 다음날 일어나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딸의 짐들을 새 숙소로 옮겨 준 후에 기차역으로 향했다. 새 숙소의 문 앞에서 배웅하는 딸의 모습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갑을 열어 100유로를 꺼내어 손에 쥐어 주었다. 그나마 딸이 외국에서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오후 1시 25분에 출발하는 그라나다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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