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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에서 만난 아랍과 집시의 유산

알람브라와 플라멩코

by 김주영

그라나다에서의 두 번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알람브라 투어에 초점을 두기로 하였다. 시내를 내려다보는 산 위에 있는 요새 겸 궁전터이므로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물론 호텔 근처에서 알함브라 입구 근처까지 직행하는 버스가 있었지만,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으므로 기분 좋게 시원해진 아침공기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이베리아 반도는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인들이 들어와 지배를 하다가 이후 서고트 인들이 살았고, 그 이후는 무어인(북아프리카의 아랍인들)이 바다를 건너와 약 700년 가까이 왕국들을 건설하며 살았다. 아라비안 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며, 이러한 점으로 인해서 스페인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 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랍왕국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번성하던 시기에 알람브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산 위에 있는 요새와 나시르 궁전, 정원 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왕국을 몰아내기 위한 영토수복 운동이 시작되었고, 그라나다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 가톨릭 군대에 항복함으로써 영토수복 운동은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 술탄은 그라나다를 떠나면서 알람브라를 가톨릭 세력에게 넘겨주게 된 것을 몹시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이후 알람브라에는 고딕, 바로크식의 가톨릭 성당과 건축물이 곳곳에 세워졌다. 하지만 이전의 아랍적 건물들과 구조를 모두 없애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자연스럽게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형태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슬람에서는 물이 사람의 영혼을 정화시킨다고 믿었으므로 사원 내부에는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알람브라를 거닐면서 물소리가 많이 들려왔다. 물소리가 크지가 않고 졸졸 흐르는 소리여서 나의 마음도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알람브라 궁전을 나온 후에는 아침에 올라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내려갔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도 있었는데, 안내판의 설명을 보니, 꽤 오래전에 생긴 길인 것 같았다. 하천 위에 있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가 보니, 어젯밤에 왔던 동굴 플라멩코 공연장과 알람브라 궁전의 전경을 봤던 전망대가 근처에 있는 것 같았다. 전망대는 여기서 약 20분 정도 도보로 더 올라가야 해서, 올라가는 길에 타파스 바에 들어가서 40분 정도 맥주와 타파스로 휴식과 요기를 하다가 나와서 전망대까지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올라갔다.

니콜라스 전망대에 도착하니, 저 멀리 알람브라 궁정의 전경이 눈에 다 들어왔다. 외국인에게 사진을 부탁하여 알람브라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 보았다. 날씨가 너무 더워 나무그늘에 앉아서 기타 연주자의 버스킹 공연을 한참 동안 보며 휴식을 취하였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올라왔던 반대편 내리막길을 따라가다가 배고 고파서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와 와인으로 늦은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호텔로 가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저녁에는 예약해 둔 플라멩코 공연장을 방문하였다. 딸과 코르도바에서 헤어진 후에 홀로 가야 할 나의 스페인 여행의 테마를 스페인 음악으로 정했고, 이런 차원에서 밤에는 플라멩코 공연장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오늘 밤에 간 플라멩코 공연장인 '라 엘보레아'(La Alborea)는 아담한 규모의 객석이 갖춰진 장소였으므로 가까이에서 공연자의 눈빛, 몸의 움직임, 격렬하고 빠른 발놀림을 볼 수 있었고, 기타 연주자의 화려한 손놀림과 주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추는 춤의 동작에서 절도 있는 플라멩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춤을 출 때는 스텝과 비트가 중요한데, 플라멩코 춤의 경우에는 화려한 구둣발 놀림으로 이 두 요소를 충족시키고 있었다. 기타 연주자와 가수, 그리고 본인은 춤을 추고 있지 않지만 박수로 장단을 맞춰 주며 한 번씩 "올레~'라고 외치며 추임새를 넘는 다른 댄서들도 지금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의 발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큼 플라멩코의 발동작은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댄서의 눈빛, 표정은 슬픈 듯, 진지한 듯, 강렬한 듯,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으며 춤경력만으로만 다 표현하기는 어렵고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보여주는 듯했다. 플라멩코는 좀 인생을 어느 정도 산 댄서가 춰야 더욱 맛이 살아날 것 같았다.


기타는 원래 스페인 악기이며, 나 또한 스페니쉬 기타의 일종인 클래식 기타를 배우고 있어서 스페인 여행 시 기타 연주 공연에 가고 싶었지만, 거의가 플라멩코 춤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밤의 플라멩코 공연장에서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원 없이 들을 수 있었다. 화려한 핑거 스타일 주법이 비트 있게 흥을 돋았고 어쩌면 클래식 기타를 배우며 피나게 훈련했을 정교한 연주법은 스페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타 소리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었다. 공연 중간에 댄서들이 무대를 비우는 동안에 이루어진 그의 기타 독주를 모든 관객이 숨을 죽이며 듣고 있었다. 공연 중에는 촬영이 금지되어 끝나기 전에 촬영이 허락되는 짪은 시간에만 사진 및 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참고로, 플라멩코는 형식적으로 기타 연주(Toque), 춤(Baile), 노래(Cante)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플라멩코 기타는 클래식 기타에 비하여 리듬감이 더 있으며 즉흥적인 연주와 함께 집시들의 감정을 반영하여 빠른 연주와 격렬한 그루브가 있다. 실제공연장에서 보면 댄서의 구두 소리가 너무 시끄럽게 들리는데, 같이 울려 퍼지는 플라멩코 기타 소리, 노래를 들으려고 하면 어느 순간 하모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플라멩코 공연장을 떠나서 호텔까지 걸어오면서도 스페니쉬 기타의 강렬한 리듬과 함께 애절하면서도 이국적인 멜로디가 나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아. 지금 이곳이 바로 스페인이구나! 그라나다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페인 플라멩코기타리스트인 '빈센떼 아미고'(Vicente Amigo)의 '까예혼 데 루나'(Callejón de la Luna, 달빛상자)를 들으며 씁쓸한 마음을 멜로디에 실어 보낸다.

https://youtu.be/KLXHkzpb36 I? si=_yHQbK7 rYh-0 Bn7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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