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을 찾아다니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또한 방콕사무소에서 맡겨진 업무들을 병행하여야 했다. 사실 이 일들이 방콕에 내가 와 있는 이유였고 향후 얼마나 더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느냐가 결정될 수 있는 생존의 문제였었다. 나의 눈물겨운 노력 덕택으로 방콕에 도착한 이후 내가 심혈을 기울였던 스리랑카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이 되었고, 관련 예산도 확보를 하였다. 스리랑카는 방콕 사무소의 큰 관심을 받는 나라가 아니었지만, 스리랑카 내전이 공식적으로 끝난 이후 처음으로 국제적 지원이 들어가는 사업이었으므로 사무소장인 셀린의 관심과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셀린은 나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메일은 나에게도 공유해 주었기 때문에 유럽에 있는 이 회사의 본사에도 프로젝트 추진 경과가 정기적으로 보고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콜롬보로 출장을 가는 횟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방콕에 체류하는 기간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녹에 대한 생각도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방콕에 있는 경우는 낮에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밤에는 거의 매일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성실하고 건전한 남자의 표상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녹이라는 여자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느껴졌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저녁에 나는 내 키보다 더 긴 체육관의 샌드백을 대상으로 로우킥, 미들키, 하이킥을 연속으로 차는 것을 훈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뒤에 아까부터 나의 강도 높은 훈련을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는 일주일에 한두 번 체육관에 오는데, 당신은 제가 올 때마다 항상 있군요. 도대체 일주일에 몇 번이나 여기 와서 훈련해요?"
누군가 뒤에서 갑자기 나에게 물어보았다. BMW를 몰고 나타나는 그녀가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거의 매일 오는 편이에요. 주말에도 빠지지 않고요. 하긴 근육이 쉬는 날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참을 만해요. 뭐, 저녁에 딱히 할 것도 없고요."
나는 그때 그녀에게 대답하면서 뒤를 돌아보았고 평소 내가 눈여겨보았던 그 여자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감격스럽다는 표현보다는 많이 놀랐다는 것이 더 적절하였다. 나는 땀이 흘러 윤이 흐르는 근육질의 상체를 그녀 방향으로 돌리고 더 말을 걸어 보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런 근육질의 몸매는 자기 주위에 많다는 의미의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나의 가슴팍과 얼굴을 보고 나서는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돌아서 버렸다. 순간 조금 전에 대답한 말 중에서 저녁에 딱히 할 것도 없다는 말을 괜히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녀에게 좀 더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던 것이다. 그녀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훈련하라고 트레이너가 부르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샤워를 마친 후 운동 가방을 들고 체육관을 나서려니 관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나보다 한 살이 젊었지만, 전성기에는 태국 무에타이 미들급 챔피언을 한 적 있었고 방콕의 유명 무에타이 경기장 중 하나인 룸피니 스태디움에서는 한때 대중의 인기를 누렸을 정도로 관록이 있었다. 따라서 체육관의 열 명 남짓한 트레이너들은 그의 말에 절대복종하였고 그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체육관 내 규율이 자율적으로 잡혀 있었다. 그런 그의 명성을 듣고 훈련생들이 몰려들었고, 일부는 처음부터 프로선수를 목표로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와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눌 때에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편이었다.
"장. 내가 전에 얘기한 적이 있을 거예요. 다음 달에 시내 중심 백화점 근처 야외 경기장에서 시합이 잡혔으니, 남은 기간 잘 준비해 봐요! 아직 시합 상대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장처럼 외국인으로 해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네. 좀 떨리기는 하지만, 여기서 잘 훈련받고 있으니까 시합을 잘 준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짧게 대답하고 나는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관장은 나를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관장은 조용한 목소리로 아까 얘기를 나눈 그 여자를 조심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녀는 방콕의 어느 재력가의 딸인데, 보디가드가 거의 붙어 다니고 있으니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다. 내가 그녀를 평소 눈여겨보고 있는 것을 관장이 눈치채고 나에게 앞으로 그 이상 오해받을 말과 행동을 하지 않도록 충고를 하는 것이 기분이 상하긴 하였다. 억울하다고 생각되어서 뭐라고 해명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관장은 나에게는 스승과 같은 존재였으므로 그의 말을 새겨들어야 했다. 그 이후는 나도 그녀에게 서서히 마음이 떠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타나카의 가게에 들러서 조금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타나카는 관장의 말에 수긍을 하며 이런저런 태국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남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서양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기존에 있었던 왕실들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고, 또한 공산화가 돼버린 경우가 많았던 반면에, 태국은 아직까지 이전 왕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했다. 하지만, 계급의식이 아직 자리 잡고 있으며, 빈부격차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고 했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정도의 직업은 가질 수 있겠지만, 신분적 상승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러한 구조로 인하여 지금은 힘들지만, 벌어들인 소득에서 꾸준히 저축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방콕에 있는 그나마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일해도 벌 수 있는 돈이 한국 돈으로 이 십만 원 정도이며, 방콕의 물가가 너무 비싸서 월세를 내고 나면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서민들로서는 미래를 설계하기가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그리고 방콕 길거리에 흔하게 보이는 마사지 가게에서 마사지하는 여자들은 상당수가 이산 지방 같은 낙후된 시골에서 상경하여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방콕의 스카이라인을 수놓고 있는 마천루 빌딩과 거리를 달리고 있는 고급외제차들 속에서 언제가 혼자 산책하면서 우연히 지나가게 된 방콕 빈민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쪽방 촌이 있었으며 거기에서 여러 칸의 나무 칸막이로 나뉜 좁고 긴 공간의 한 칸에 한 가족이 비좁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공간에서 나온 듯 한 아이가 당시 그 거리를 지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천진난만하게 웃어 주었지만, 나는 그 모습이 오히려 슬퍼 보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우리 가족도 셋방살이를 한 적이 있었고, 그 당시 집주인 가족들에게 온갖 서러움을 받았던 기억이 되살아났고,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었다. 그런 저런 얘기를 타나카에게 듣고 나니 여기 타국의 하늘 아래에서도 빈부의 그늘이 드리워졌으며 사회계층 간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드디어 첫 시합의 날이 드디어 왔다. 나는 온몸에 기름을 바른 후 트레이너가 내 주먹에 밴드를 감아주는 것을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트레이너는 나에게 링 위에 올라가면 상대방의 펀치가 무서워도 절대 눈은 감지 말라고 주의시켜 주었다. 눈만 감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방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앞 순서의 시합들이 차례로 끝나 가자 내가 시합하는 차례가 되었다. 링 위로 올라서자 상대선수를 처음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영국남자였다. 짧은 갈색머리에 움푹 들어간 눈이 강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가 링 중앙에서 무에타이 시합 전에 행하는 춤을 추는 듯 한 의식을 시작했으며, 나는 링 가장자리의 로프를 잡으며 왼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선수들의 의식이 끝나자 나는 링 모서리로 가서 관장에게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관장은 손을 모으고 시합의 성공을 빌어 주며 내 머리에서 머리띠와 꽃다발을 벗겨 주었다. 트레이너는 안심이 되지 않는 듯 아래에서 계속 뭐라고 태국어로 나에게 외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종소리가 울리며, 삼 라운드 중에서 첫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서로 탐색전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공격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공격과 수비가 서로 이어졌다. 내가 동양인 치고는 키와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어서 그런지 영국인은 다소 경계하는 눈치였다. 원투 펀치를 좌우로 날리며 이어서 그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오른쪽 다리로 미들킥을 날렸다. 순간적 공격 패턴이었지만 그는 이런 패턴에 이미 익숙한 듯이 여유 있게 막아 내었다. 거의 반사적 수비였으므로 나는 그가 적어도 중급 이상 수준의 상대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뒤 이어지는 그의 반격을 겨우 막았다. 그는 하이킥에 자신이 있는지 킥 사정권 거리에 들어오면 절반 이상은 어김없이 하이킥을 날렸다. 다행히 그가 상급 수준은 아니었던지 그의 사전 발동작으로 하이킥을 미리 알아차릴 수가 있었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지만, 몇 번은 방심하다 급하게 팔로 머리를 막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면 나의 팔은 그 충격으로 멍이 들어갔다. 내 인생의 첫 무에타이 경기이자 첫 라운드의 삼 분이라는 시간은 마치 세 시간처럼 느껴졌다. 첫 라운드에서 거의 체력이 소모되어 버려서 나머지 두 라운드를 어떻게 이어갈지가 전혀 자신이 없어지며 머리가 캄캄해져 왔다. 휴식시간인 이 분동 안 트레이너는 나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빠르게 안마해 주었고, 관장은 다음 라운드를 어떻게 싸울지에 대하여 얘기해 주었다.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면서, 영국인은 자신이 붙었는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며 근접 전을 선호했다. 나와 맞붙어서 내 머리 뒷부분을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옆으로 흔들며 내 옆구리 부근에 무릎 공격을 가했다. 이것도 무에타이 공격기술의 하나였지만 막상 공격을 당하고 보니 이 기술의 충격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펀치와 킥으로 이루어진 패턴을 선호하였던 나로서는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급급하게 막다 버틴 두 번째 라운드에 이어서 세 번째 라운드 중간에서 나는 TKO패를 당하였다.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넋을 잃은 짧은 순간에 영국인은 순간적인 회전을 일으켜 만든 로우킥으로 나의 오른쪽 다리 윗부분 바깥 면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나는 다리를 들어 올려 그 공격을 막아야 했었지만 피로가 누적되어 그러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일, 이 라운드에서 쌓였던 충격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여 몇 초 후에는 서 있지 못하고 링 바닥에 주저 아 버렸다. 일어서기가 힘들어지자 심판은 시합종료를 선언하였다. 비록 경기에서 졌지만 체력 안배의 중요성과 근접 전에서의 무에타이 기술을 더 연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던 나의 첫 번째 시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