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녹의 형제들과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녹과 나중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더 전개될 사이일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녹의 언니와 처음 봤을 때 내가 다음에 식사를 한번 사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으므로 날을 잡아서 녹의 언니, 녹, 녹의 남동생과 같이 한인 타운의 또 다른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내가 대접할 자리가 마련되었다. 다소 어색할 수도 있는 분위기였지만 녹의 언니가 분위기를 잘 주도해 나갔고 언니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렇게 좋은 식당에서 저희 가족들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시다니 너무 감사해요. 한국 드라마에서 봤던 그런 물건들이 이 식당 안에서 많이 볼 수 있네요. 저기 조그만 항아리도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에서 봤어요. 거기에 나왔던 여자 배우도 정말 이뻤어요."
"아. 이영애라는 여자 배우예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죠. 대장금이라는 드라마 재미있게 봤나 봐요?"
"한때 태국에서도 인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클래식이라는 한국영화도 옛날에 봤었는데, 너무 감동 깊었어요. 태국 영화관에서도 상영했었는데, 우리 태국사람들 정서에도 잘 맞았어요."
"오늘 제가 사드리는 한국 음식도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태국음식도 아주 좋아하거든요. 팟타이와 쏨땀을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과일은 두리안을 좋아하죠."
"두리안은 냄새가 날 텐데, 괜찮으세요? 다음에 제가 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대접해야겠네요."
"두리안은 냄새가 나지만, 그 맛은 과일 중에 최고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과일이거든요."
녹의 부모님들은 시골인 이산지방에서 살고 있으며 형제들만 방콕에 상경하여 살고 있다고 언니는 말하였다. 녹의 남동생은 누나들과 자주 만나는 일은 없는 것 같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이후 택시 운전도 하고 빌딩 경비도 하며 빠듯하게 방콕에서 살고 있었다. 남동생은 식사 자리에서 한국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어 치웠지만 누나의 남자친구인 나를 흘깃흘깃 보며 다소 경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녹의 남동생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색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그에게 말을 걸어 주었고 음식도 건네주었다.
그는 입을 열면 아주 길게 혼자 말하곤 하였는데, 나의 미천한 태국어 실력으로는 그의 말이 많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로 태국의 정치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듯했고, 그의 표정으로 봐서는 현재 정부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주말에는 여러 반정부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태국에 민주주의가 다시 도입되어야 해. 우리처럼 어렵게 사는 일반 서민들에게도 정부가 더 신경을 써 주어야 하고 말이야. 이전 정부에서는 잘했는데 말이야. 다시 그런 정책들이 도입되어야 해!"라고 남동생은 다소 무거운 정치에 관한 이야기로 식사분위기를 싸늘하게 하곤 했다.
"얘. 그런 이야기는 여기서 안 하면 안 되겠니? 모두가 너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미스터 장도 있는 자리인데, 제발 좀 신경을 쓰고 말해."라고 녹은 남동생을 조용히 타일렀다.
"알았어. 누나. 나 이제부터 조용히 입 닫고 있으면 되는 거지?"라고 남동생은 인상을 쓰며 말을 받았다.
"어머. 여기에 우리 형제들만 있는 거 아니잖아. 미스터 장과 오늘 귀한 시간을 갖고 있는데, 자. 얘들아. 우리 오랜만에 좋은 모습만 보여 주자."라고 언니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저는 괜찮아요. 저도 정치문제에 대하여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요. 남동생처럼 젊은 나이에는 대부분 철이 없이 사는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니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라고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조심스럽게 말을 하였다.
"호호. 미스터 장은 마음도 넓으셔라."라고 언니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녹은 나에게 자기 형제들과의 식사자리가 어땠느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오늘 우리 가족에게 식사를 사줘서 고마워요. 장. 근데, 식사자리는 불편하지 않았어요? 남동생이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오늘 처음으로 누나의 남자친구와 식사를 하게 되어서 좀 과잉반응을 보인 것 같아요."
"아니야. 괜찮았어. 나는 솔직한 성격이 좋아. 내가 오늘 혹시 녹의 가족들에게 실수한 것은 없었어?"
"전혀 그런 거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장에게 우리 가족이 혹시 폐를 끼치지 않았는지 걱정했는걸요."
그 후 한두 달은 인근 국가로 출장을 다니느라 녹을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간간히 통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나는 스리랑카 출장을 준비해야 할 즈음에 녹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출장은 혼자 가는 것인데 괜찮으면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장이 일하러 가는 출장인데, 제가 따라가면 방해가 안 되겠어요?"라고 녹은 되물었다.
"괜찮아. 매번 출장 갈 때마다 일만 하다가 왔는데, 이번 출장은 다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그리고 스리랑카 출장도 이제는 몇 번 남지 않아서 이번 출장 가서는 시간을 내어 가까운 해변가에 일박 이일로 휴양을 하다가 올 생각이었어. 녹이 만약 시간이 괜찮으면 나는 같이 갔다 오고 싶어."라고 나는 솔직히 그녀에게 얘기를 해 주었다.
몇 주 후에 녹과 나는 스리랑카행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 정도 이동한 후 콜롬보에 도착하였다. 다음 날에는 스리랑카의 수도인 콜롬보에서 나는 하루 종일 일하여서 출장업무를 모두 마쳤고, 녹은 호텔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리고 콜롬보에서 하루를 더 보낸 후, 현지 여행사에 미리 예약한 기사와 차량을 이용하여 콜롬보에서 약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벤토타 해변으로 우리는 떠났다. 스리랑카는 인도 남부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동남아시아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녹에게도 서남아시아의 풍경은 이국적으로 비쳤다.
인도양을 따라 나란히 뻗어 있는 해변가 철로를 따라서 달리는 열차 안에는 스리랑카 현지인들이 가득히 타고 있었고 우리가 탔던 차는 그 열차와 한동안 나란히 달렸다. 남루한 열차 안에 실려 가는 서남아시아인의 얼굴들은 여유가 없는 일상에 지쳐 있는 표정이었지만 한 번씩 웃음 짓는 모습을 볼 때면 동남아시아인들처럼 따뜻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낙후되었지만 그들은 천성적으로 건강한 웃음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이 들었다.
벤토타 해변으로 들어가기 전에 운전기사는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본인이 벤토타로 올 때면 찾아가는 불교 사원으로 우리를 데려 가 주었다. 스리랑카의 국민들 대다수는 불교를 믿었고, 운전기사도 불교신자였던 탓인지 사원에 도착하자 그는 불상을 보며 합장을 하기 시작했다. 녹도 사원의 중앙에 위치한 불상 앞으로 가서 한참 동안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빌었다.
"녹. 조금 전에 무슨 소원을 빌었어?"라고 나는 차 안에서 물어보았다.
"저에게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어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빌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욕심을 품는 것에 해당한다고 갑자기 생각이 들어서 이 모든 것을 부처님의 뜻과 가르침에 따르겠다고 소원을 바꾸었어요."
녹은 나를 보며 장난기가 담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삼십 분 후 우리가 탔던 차는 벤토타 해변 휴양지로 들어왔고 예약을 해 둔 리조트 건물 현관 입구에 멈추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후에 벤토타 해변을 거닐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운 빛의 모래사장과 더불어 강하류와 바닷가가 만나는 지역에 무성한 갈대숲이 이어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는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연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흰색의 풍성한 긴소매 셔츠를 입고 나란히 손을 잡은 채 시야 가득히 펼쳐진 해변을 거닐어 남쪽으로 내려갔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해변에 놀러 온 스리랑카 현지인들은 보이지 않았고, 간간히 유럽인 관광객들과 스리랑카 현지인 어부들이 보였다. 서남아시아 해변가를 그린 한 폭의 풍경화 속을 우리는 걸어가고 있었고 그 누구의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그들에게 일부러 인사를 먼저 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우리의 조용한 행복을 깰 수 없었고 설사 누군가 들어와서 우리의 고요함을 깨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그런 세계에서 영원히 남고 싶었다.
벤토타 해변의 끝머리에 도착하자, 인도양의 하늘과 바다는 서서히 일몰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 내내 해변가를 따라 걸어왔던 우리는 이제 발걸음이 지쳐 버렸고, 근처의 해변 식당에 들어가 해산물 요리를 저녁식사로 주문했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에 흔들거리는 테이블 위의 램프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녹의 얼굴을 더욱 이글거리게 하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로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쳐다보기를 되풀이하였다. 해변 식당의 스리랑카인들은 그들과 다르게 생긴 우리의 얼굴이 낯선 듯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밤이 서서히 깊어가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났고 식당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은 택시가 오기 전에 뭔가를 구경시켜 주려는 의도로 우리를 식당 앞 모래사장으로 안내했다. 알에서 태어난 수많은 거북이 새끼들이 달빛에 물든 인도양의 바다로 이동하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세상에 태어난 피조물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숙명을 가지고 세상으로 와서 그 삶을 살다가 다시 저 세상으로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숙명은 무엇이고 녹의 숙명은 또 어떤 것일까? 그리고 녹과 나는 서로의 숙명에서 우연을 계기로 잠깐 같이 머물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우리의 인연은 언제까지 이어질까?'라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갔다. 녹은 어떤 생각을 지금 하고 있을까 궁금하여 그녀를 돌아다보니 나는 갑자기 내 마음 어딘가에서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앞날에 대한 슬픔이 몰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들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안한 느낌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고 있었지만 나는 조금 전 감정을 솔직히 얘기할 수 없었고, 대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녹을 최대한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세발 달린 현지 택시가 도착하였고, 우리는 인도양의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달려서 리조트에 다시 돌아왔다.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