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과거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벤토다 해변 리조트에서 배정받은 방갈로는 해변을 바로 바라보고 있는 곳이었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인도양의 파도는 해변으로 잦아들었고 하얀 거품을 뿜으며 모래사장과 만나는 지점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또한 하늘에서는 인도양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은 하늘 위에 조용한 또 하나의 바다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는 방갈로 입구에 놓여 있는 폭넓은 안락의자에 같이 기대어 앉아서 귀로는 쇼팽의 야상곡과 같은 파도소리의 운율을 듣고 눈으로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 속과 같은 밤하늘의 별빛을 같이 감상하고 있었다.

"장. 지금까지 살아 온 세계와는 여기는 아주 달라요. 같은 하늘일 텐데, 여기의 풍경은 왜 이리도 아름답죠? 바다에서도 빛이 빤짝거리고, 하늘에서도 무수히 별들이 아른거리네요. 도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정말이야. 나도 저렇게 찬란한 밤바다의 풍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스리랑카는 옛날부터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바닷길을 이용해서 여기까지도 왔다고 전해져. 신밧드의 모험으로 알고 있는 천일야화에서도 지금의 스리랑카가 보석이 많이 나는 섬으로 묘사되고 있어. 그리고, 이후에 포르투갈인, 네델란드인, 영국인이 차례로 이 땅을 찾아왔지. 서양인들은 물론 이 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지만 말이야."


"그랬군요. 장은 아는 것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먼 옛날 아라비아에서 온 상인들도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저 밤바다와 밤하늘을 똑같이 보고 있었겠지요?"


"아마. 그랬겠지. 그 뒤에 온 서양인들은 이 섬나라의 지배자로 왔었지만 저 풍경을 마찬가지로 감상하고 있었겠지."


"장. 와인 가지고 왔죠? 지금 여기로 가지고 와서 마셔요. 저런 아름다운 경치를 그냥 보기는 너무 아까운 것 같아요. 저는 더 감성적으로 되고 싶어요."


나는 방갈로로 들어가서 와인과 잔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녹의 옆으로 와서 그녀에게 와인을 따라 주었다. 녹은 잔에 담긴 와인을 먼저 마시고 천천히 나의 얼굴로 향하더니 나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녹은 나의 입술 속으로 그녀의 체온으로 데워진 와인을 입을 통해 부어 넣어 주었다. 그녀의 온도가 와인을 타고 나의 목을 따라 내 몸속 전체로 흘러내려왔다. 우리는 어느덧 서로 끌어안고 해변용 의자 위로 쓰러졌다. 녹은 나를 뒤로 돌아 눕게 한 후에 애무해 주었다. 그리고는 나의 목덜미를 타고 들어 와서 나의 입술에 다시 뜨겁게 키스를 해 주었다. 우리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도 되는 듯 서로 거칠게 애무하며 키스를 퍼부었다.


누군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묵고 있는 방갈로는 휴양 리조트 시설 내의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설사 누군가 본다고 하여도 우리는 당시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쾌락의 순간에 나는 그녀의 머리와 어깨너머로 인도양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열대림의 야자수가 어우러지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로부터 목, 가슴, 허리, 엉덩이를 거쳐 다리의 끝까지 멈춤 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선은 완벽한 예술작품이었다. 신의 예술작품 중 하나를 나는 감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거칠지만 짧은 신음을 시작하였고 곧이어 그 소리들은 규칙적인 음악의 선율로 변해 갔다. 모든 것이 완벽한 하모니였다. 인도양의 파도소리와 그녀가 만들어 내는 음악은 그 어떤 지구상의 소리보다도 훌륭했고, 나는 규칙적인 몸 움직임으로 교향곡이 이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몇 십분 후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나란히 누워 인도양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오늘 밤은 이 해변을 우리 둘에게만 세를 놓은 듯이 그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파도소리만이 연이어 들리고 있었다.


"장. 오늘 밤은 저에게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아마 잊지 못할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야. 녹. 내 인생에도 최고의 밤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들어."


"이제. 약간 쌀쌀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우리 이제 방갈로 안으로 들어가요. 장."


"그래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으니까 이제 좀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는 것 같아. 들어가자. 녹"


나는 녹의 몸에 해변가용 긴 타월을 걸쳐 주었고, 방갈로 문으로 같이 걸어갔다.


방갈로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였다. 나는 녹을 거품이 듬뿍 묻어 있는 스펀지로 씻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정성껏 감겨 주었고, 손잡이용 샤워기 탭을 잡고 그녀의 등 뒤에서 머리를 헹구어 주었다. 방콕에 있는 그 육중한 건물 안에서는 우리는 항상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였고 나는 녹의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곳 벤토타 해변의 방갈로에서는 우리는 대등한 관계였고, 나는 그동안 그녀에게 받았던 서비스를 다시 베풀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였다. 물방울이 튀고 있는 가운데 바라보게 된 그녀의 옆모습은 그녀의 긴 속눈썹과 갸름한 얼굴선이 어우러지며 나의 시선을 다시 고정시켰다. 샤워를 마친 후에 우리는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린 후에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였다.


우리는 서서히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어느 사이에 녹은 나를 만나기 전에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나에게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그녀에게 그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 적이 없었지만 그날 밤 그녀는 나에게 자기의 과거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나는 녹이 당시에 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지만 그녀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아시다시피 태국의 이산 지방이에요. 태국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지방이죠. 라오스와 가까워서 저는 어릴 때부터 태국어와 라오스어를 다 할 수 있었어요. 라오스에 유명한 절이 있어서 가끔씩 거기까지 부모님을 따라서 갔다 오기도 했어요. 제가 언어적인 면에서 재능이 생긴 것은 아마 이런 것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두 나라 말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고향에서 우리 형제들은 고등학교까지 모두 나왔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산지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농사짓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그래서 동네 오빠들, 언니들은 방콕으로 그리고 방콕 인근에 있는 공장지역까지 일하러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갔어요. 장이 봤던 친언니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방콕으로 먼저 떠나서 간간이 소식을 전해 주었고 돈도 부쳐 주었어요.


그 후 저도 고향을 떠나 처음에는 파타야의 어느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받는 돈은 너무 적었어요. 그래서 얼마 후 방콕과 파타야 중간에 있는 촌부리 지역의 공장에 우연히 일자리를 구하여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 해 보았던 공장 일은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었지만 무척 고되고 힘들었어요. 익숙하지 않았던 일들이어서 다치기 쉬웠죠. 같이 일하던 친구들 몇 명은 크게 다쳐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저하고 나이 차이가 많은 공장 지배인과 사귀게 되었죠. 저는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가 정말 저를 사랑해 주는 듯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당시에 너무 힘들고 외로웠거든요. 하지만 그와의 사이에 아기가 한 명 생겼어요. 원하지 않았던 임신이었고, 제가 스무 살 때 출산한 아이여서 저는 자신이 없었어요. 더구나 그는 유부남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처음으로 낳은 그 아이를 그 남자에게 맡기고 혼자서 방콕으로 나와 버렸어요. 애기는 남자아이였는데, 제가 비정한 여자로 보이겠지만 그 당시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저 혼자 그 아이를 키울 자신이 전혀 없었어요."


그녀가 과거에 아이를 낳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듯 표정을 유지했고 그녀의 말을 진진하게 계속 들어주었다.


"방콕으로 나와서 일자리를 구해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더군요. 레스토랑 종업원으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지만 방콕의 월세와 물가는 너무 비싸서 그 월급만으로 계속 생활하기도 힘들었지요. 하지만 당시 더욱 저를 슬프게 했던 것은 미래가 없는 암담한 현실이었죠. 밤에 술집에서 서빙도 해 보았지만 남자들이 저에게 추근대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그러다가 낮에 조그만 사무실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생활도 했는데 벌이가 신통치 않았어요. 그래서 저같이 젊고 반반하게 생긴 여자들이 쉽게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일하게 되었죠. 처음 일했던 곳은 너무 힘들었어요. 거의 일주일 내내 손님을 상대해야 했죠. 이전 직장들보다 훨씬 큰돈을 벌 수가 있어서 처음에는 돈 버는 재미로 힘든 것을 버텼지만 반년이 지나자 몸이 안 좋아져서 그만두어 버렸어요. 그 후에 일을 하지 않고 몇 달 동안 병원에 다니며 건강을 회복하며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되었죠. 지금은 낮에는 의류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밤에는 예약을 받아서 그 마사지 가게에 나가고 있어요."


여기까지 말하고 녹은 말을 끊었고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녹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나와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아왔던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는 녹을 다시 한번 끌어안아 주었다.


"나에게 녹의 과거에 대해 말해 주어서 고마워."라고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다소 복잡해져 가고 있었다. 녹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많이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내가 그녀를 진심으로 나의 인생 속으로 받아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 나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녹과 함께 내가 영원할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어수선해지자, 나는 모든 것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지금 감정에 단지 충실하고 싶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침묵하고 있는 녹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