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시내의 총소리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요즘 들어 출퇴근 시간에도 그렇고 특히 주말에 시내 중심가를 지날 때에는 정치시위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통체증이 부쩍 심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떤 경우는 지상철에서 내려서 회사까지 삼십 분 넘게 걸어서 출근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방콕과 같이 날씨가 항상 무더운 도시에서 삼십 분 이상 걷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물론 익숙해지면 괜찮을 수 도 있는데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서 사무실에 도착하면 땀냄새가 옷에 베이기 일쑤였고, 샤워를 하기도 어려웠었다.


나는 태국에서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태국의 국내 정치를 관망만 하는 편이었다. 사무실에서 태국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경우가 있으면 태국 국내의 현 정치에 대한 대화는 일부러 꺼내지도 않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때도 잠자코 듣고만 있으려고 하였다. 정치와 종교는 사람들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친한 사람들도 이 민감한 주제로 싸우게 되고 거리가 멀어지게 만든다. 요즘 들어서는 쿠데타 이후에 쫓겨난 이전 수상의 국내 입국을 허용하라는 것과 민주주의 선거를 다시 개최하라는 내용 등을 정부에 요구하는 정치적 집회가 방콕 시내에서 잦아졌고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는 시내 중심가 지역이 집회의 주요 장소가 되었다.


"장. 주말은 잘 보냈어요?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태국여행을 많이 다니세요. 태국 곳곳에 여행할 곳이 많아요. 파타야, 아유타야, 콴차나부리 같은 방콕에서 가까운 곳도 많지만, 며칠 휴가 내고 치앙마이, 치앙라이, 푸껫, 끄라비 같은 휴양지도 가 보세요. 푸껫과 끄라비는 바다 빛깔이 너무 아름다워요. 섬투어도 추천드리고 싶어요."라고 사무실의 한 태국 여직원이 말을 걸었다.


"아. 그렇게 좋은 곳들이 있군요. 태국 떠나기 전에는 꼭 가 봐야겠어요.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지난 주말에는 방콕 시내의 교통 체증이 너무 심해서 꼼짝할 수가 없더군요. 운동하러 체육관 다니는데, 요즘에는 주말에도 체육관에서 거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시합도 있어서 준비해야 하거든요."라고 나는 대답했다.


"무에타이를 계속 운동하나 보군요. 다치기 쉬운 운동이어서 조심하셔야 돼요. 저는 주말에는 시암 파라곤 같은 시내 백화점에 주로 쇼핑을 하러 가요. 요즘은 정치 집회와 시위 때문에 교통이 막혀서 쇼핑하러 못 간지가 오래되었어요. 차를 몰고 백화점에 마지막 갔을 때는 두 시간 넘게 차 안에 갇혀 있어서 정말 죽을 것 같아 화가 엄청나더라고요. 시위하는 사람들은 정말 짜증 나는 인간들이에요. 빨리 정부에서 뭔가 조치를 해야 돼요. 집회 참가자들을 붙잡아서 강제로 거기에서 쫓아 버려야 해요."라고 태국 여직원은 그 백화점에 산 듯 한 명품 핸드백을 자기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최근 격렬해지고 있는 시위에 대하여 내 견해를 밝히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태국 땅이었고, 외국인인 나는 태국 현지인과 일부러 정치적인 얘기로 사이가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정치는 어는 나라든지 민감한 대화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나는 녹이 일하지 않는 날에 녹과 시내에서 만나게 되었다. 녹은 태국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로 가서 액세서리를 사려고 했으므로 우리는 만난 장소에서 시내 중심가를 통과하여 그 지역까지 걷기로 하였다.


여전히 그날도 집회가 열렸고 시위 참가자들이 많이 모여 있었으며 확성기 소리도 시끄러워져 가고 있었다. 큰 도로에서 골목길로 들어가려고 하던 중에 우리는 우연히 녹의 남동생과 마주쳤다. 남동생은 시위대들의 정치적 입장을 상징하고 있는 레드셔츠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도 붉은 띠를 매고 있었다. 우리와 마주친 남동생은 우리를 보자 놀랐지만 이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그에게 말없이 웃음으로 대답했다. 이전에 녹의 형제들과 식사를 같이 했던 당시의 나를 경계하던 눈빛은 이제 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녹은 남동생을 붙잡으며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여기에서 뭐 하고 있어? 얼른 머리에 두르고 있는 띠를 벗고 옷도 갈아입어. 그리고 여기에 있지 말고 집으로 돌아 가! 내가 너한테 이런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잖아. 고향에 계시는 엄마와 아빠도 생각해야지. 그리고 누나들도 좀 생각해서 우리말을 들어!"


"누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나도 이제 어른이야. 걱정하지 말어!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주말마다 나와서 정치 집회만 참석하는 거니까 별일 없을 거야. 장 선생님. 우리 누나 좀 잘 부탁해요. 누나! 같이 좋은 시간 보내!"라고 녹의 남동생은 말하고 황급히 동료들을 찾아서 큰 도로로 뛰어 나가더니 어느새 인파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녹은 남동생이 걱정되는 듯이 그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포기하고 가던 길로 돌아섰다. 나는 녹과 젊은이의 거리에 도착하여 액세서리를 고르려고 가게마다 돌아다녔고, 구경만 하고 선뜻 선택을 하지 않는 그녀를 두 시간 넘게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다소 불안한 듯이 보였고, 결국 한 개도 사지 못하고 말았다. 더위에 지쳐서 어느 카페에 시원한 차를 마시러 들어갔다. 그 안에서도 녹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 계속되었다. 아마 남동생에 대한 그녀의 불길한 예감이 있었던 것 같았다.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고 다시 나와서 큰 도로로 다시 나오게 되었을 때였다.


몇 시간 전보다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과 경찰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군인들은 확성기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계속 큰 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순간 녹이 나의 손을 꽉 잡았고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나는 조금 전의 확성기 소리와 그에 대한 녹의 갑작스러운 반응을 보고 본능적으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녹에게 확성기에서 나는 소리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녹은 군인들이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은 시위대가 지금 바로 해산하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남동생이 걱정된다며 동생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약간 흘렀다.


'타당. 타당. 탕탕탕. “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고, 총소리는 연이어 계속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쓰러지기 시작하였다. 순간 나는 녹의 머리를 잡고 내 가슴으로 끌어내렸으며 내 몸을 그녀에게 덮은 채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거의 거리 바닥에 기다시피 하여 가장 가까운 골목 안으로 녹을 데리고 들어갔다. 식은땀이 흐르고 뇌리에 전기가 흘렀다. 군대에 있을 때는 자주 들었던 것이 총소리였지만 지금은 실제 상황이었다. 나는 지금 있는 골목 모퉁이에서 머리를 살짝 내밀고 방콕 중심가의 대로를 바라보았다. 도로 위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고 이미 죽어 버린 사람, 총을 맞았지만 숨이 붙어서 기어가는 사람, 제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신음만 내뱉고 있는 사람 등으로 거리는 온통 아비규환이었다.


내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는 얼굴들이 쓰러져 있었다. 다나카 가게에서 같이 술을 마시곤 했던 일본 프리랜서 사진기자였다. 이미 죽어버린 것처럼 그는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는 것을 보니 오늘 시위현장을 촬영하러 나왔다가 진압하는 군인들의 총을 맞고 봉변을 당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건 당시에는 나는 녹과 같이 그 현장을 안전하게 피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경황이 없었지만 나중에 정신을 차리게 되자 일본 프리랜서 사진기자의 직업적 사명감에 존경이 느껴졌다.


그러나 당시 나를 최악의 충격으로 몰아넣은 것은 일본 사진 기자 주위에 쓰러져 있었던 녹의 남동생을 본 것이었다. 머리 윗부분에 총을 맞아서 그의 머리 위의 삼분의 일은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뒤였다. 나는 순간 숨이 멈췄다. 군인들이 서서히 전진해 왔으므로 녹의 남동생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나는 골목 안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고 녹의 눈과 마주쳤다. 방금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 줄 수 없었다. 그리고 궁금한지 밖을 내다보려는 녹을 끌어안아 모퉁이에서 얼굴을 내밀려는 동작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골목길 안으로 계속 달려서 여기서는 가능한 멀리 도망가자고 했다. 녹이 대로변을 보지 않도록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골목 안으로 달렸다. 나중에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되더라도 지금은 동생이 죽은 모습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녹도 나의 손을 잡은 채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 군인들이 이 골목 안으로 들어와서 도망치고 있는 우리 등 뒤로 총을 쏠 수도 있다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공포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죽어라고 달려야 했었다.


조금 전에 군인들의 발포가 있었던 위험 지역을 간신히 벗어 나왔다. 하지만 군인들의 포위망이 좁혀져 왔고 우리는 얼마 가지 못하고 포위를 서던 군인들에 의해 정지당하였다. 녹과 나는 인근 경찰서까지 잡혀 가게 되었고, 오랜 시간 동안 대기한 끝에 조사를 받기 시작하였다. 나는 경찰에게 여권과 당시 내가 근무하던 회사의 사원증을 보여 주며 외국사람임을 밝혔고, 시위대가 아니라 우연히 시내중심가에 놀러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같이 있는 여자는 나와 결혼한 태국여자라고 거짓말을 했다. 경찰이 시큰둥한 표정을 보이자 나는 강한 어조로 한국대사관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항의할 것이라고 오히려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려는 동작을 바로 취하였다. 이것이 희한하게 통하였는지 태국 경찰은 일이 귀찮아지는 게 싫었던지 기세가 꺾이며 조사를 마무리하였다. 그날 밤늦게 나와 녹은 풀려났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하루 종일을 보내었던 것이다.


녹과 나는 녹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녀는 남동생에게 수십 번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받지 않자, 녹의 얼굴색이 노랗게 변하였다.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사실을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 순간에는 차라리 최선이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녹. 남동생은 괜찮을 거야. 우리 힘들겠지만 내일 까지 기다려 보자."


"아니에요.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어젯밤에 꿈자리도 너무 불길했거든요. 제가 그렇게 그런 집회에 다니지 말라고 타일렀는데, 말을 안 듣더니 오늘은 드디어 저런 일이 생기고 말았어요."


그녀는 걱정하는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고 나는 그런 녹의 모습에 침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