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에서 선택한 삶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녹의 가족들에게 남동생의 죽음이 알려진 것은 거의 삼주가 흘러서였다. 그동안 녹과 녹의 언니는 남동생의 친구들에게 행방을 수소문하러 다녔고 경찰서 등을 돌아다니며 동생의 생사를 알아보고 다녔다. 어느 날 관할 경찰서에서 녹의 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안녕하세요? 경찰서입니다. 몇 주 전에 실종 신고를 접수하신 분이시죠? 죄송스럽지만 선생님의 남동생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인가요? 언제 어떻게 죽게 되었죠?"


"죄송합니다. 저희도 다른 곳에서 오늘 연락을 받게 되어 자세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정리되시는 데로 저희 경찰서로 오셔서 남동생 분의 물건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녹의 언니는 남동생의 죽음을 통보받게 되자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특히, 녹은 그 소식을 언니에게 들었을 때 자리에서 쓰러지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마침, 그녀가 나와 있을 때 그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녹을 업고 택시를 잡아 현지 병원에 데려가서 입원시켰다.


"녹.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의사가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 말했어. 빠르면 내일 정도 퇴원해도 된다고 조금 전에 나에게 얘기했어. 남동생 일은 정말 유감이야. 깊이 애도를 표하고 싶어. 정말 내가 어떻게 녹에게 슬픔과 애도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하더라도 지금은 녹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이 들어."


나는 눈을 뜨게 된 녹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물이 든 컵을 입에 갖다 대어 주었다. 그녀는 물을 약간 받아 마시더니 갑자기 마셨던 물을 토해내 버렸다. 나는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과 옷을 닦아 주었고, 다시 침대에 눕도록 도아 주었다. 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한동안 흘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침대 모서리 부분에 계속 앉아 있어 주었다.


병원 창문을 통해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열대 지방의 강렬한 태양은 야자수 잎 사이에 걸려 있었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일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무심한 마음을 품은 채 서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관망하듯이 바라보고 있는 대자연의 거대함 속에서 인간은 힘없이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다 다시 때가 되면 자연의 품으로 사라지는 그런 연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의 시신은 태국의 전통적 방식대로 화장되었고, 녹의 부모님들도 방콕으로 올라와서 녹의 가족 전체가 사원에 모여서 남동생의 명복을 비는 의식을 올렸다. 남동생이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하려는 듯 하늘에서도 비가 내렸고, 주지승의 염불 소리가 울려 퍼지며 향의 연기는 자욱해져만 갔다.


나는 녹의 가족들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우산을 들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들과 같이 장례 의식을 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내 마음을 담아 남동생의 명복을 빌었다. 비록 그와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죽기 몇 시간 전에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저 멀리 인파로 사라져 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그리고, 누나를 잘 부탁한다고 나에게 마지막 건넨 인사말이 귀에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녹의 가족들에게 내가 남동생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족 중 한 명인 남동생이 행방불명된 후에 생사를 알기 전까지 녹의 가족들이 겪었을 혼돈과 그리고 그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받아들여야 했던 슬픔과 좌절을 나는 녹의 곁에서 같이 지켜보아야만 했었다. 녹의 아파트에서 보았던 가족사진이 기억났다. 짜오프라야 강에 유람용 보트를 타고 녹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같이 찍었던 사진이었다. 녹은 자기가 방콕에 처음 도착하여 삼 개월 뒤에 모든 가족들이 방콕에 모여 같이 찍었던 사진이라고 하였다. 이제는 그 사진 속에 같이 있었던 남동생을 가족들이 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방콕을 관통하는 짜오프라야강의 탁류는 오늘도 인간세상의 희로애락의 온갖 찌꺼기를 담아서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을 것이다.


녹의 가족들과 얽히게 된 시간들 속에서도 나는 내 생계를 위하여 정신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계약의 연장 사유가 되었던 스리랑카 프로젝트도 이제는 반년 조금 넘게 남게 되었다. 순조롭게 프로젝트는 진행되었지만 마지막 과정에서 현지 이해 당사자들의 대립으로 인하여 마지막 단계가 안정되기까지는 예상 밖의 난항이 예상되었다. 호사다마라는 사자성어처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올 때는 한꺼번에 닥쳐오는 모양이었다. 녹의 가족일로 나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을 때 순조로 왔던 나의 업무도 복잡해지기 시작하였고, 프로젝트가 끝나기 육 개월 동안은 어려움이 앞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업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치러야 할 대가 들이고, 이는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이후 수없이 거쳐 온 과정들이었다. 단지 해결해야 할 일들 일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이었다. 녹은 남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심적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계속 주시해야만 했다.


녹의 부모님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 녹도 다시 생계를 위해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가야 했다. 나는 녹이 걱정되어 매일 전화를 걸어 통화를 나누었다. 이전에 녹에게 느낄 수 있었던 활기차고 발랄한 기운을 이제 그녀에게 찾기가 힘들어졌다. 녹의 말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간간히 만난 주말에는 녹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원하는 선물도 사주려고 했지만 녹을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녀의 건강이 걱정이 되었지만 녹이 스스로 마음의 평온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그녀는 뭔가 다른 선택을 하려는 듯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떤 때는 나의 전화도 일부러 받지 않는 듯했다. 나의 전화를 왜 안 받았냐고 내가 그녀에게 물어보면 그녀는 바빠서 그랬다고 했지만 나는 녹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제 더 이상 그녀에게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녹. 요즘 전화도 잘 안 받는 것 같아. 내가 자기 걱정 많이 하고 있다는 것 알지? 밥도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고 다녀. “


"장. 제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시간이 지나면 제 마음이 다 정리될 거예요."


마침내 녹은 내 전화를 일주일 넘게 받지 않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옛날처럼 녹이 밤에 일하는 그 육중한 건물 앞에서 밤늦게까지 기다려 보았다. 하지만 며칠째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서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여사장에게 물어보았다.


"삼십팔 번 아가씨 오늘 출근하지 않았나요?"


"삼십팔 번 아가씨는 이제 여기서 일하지 않아요. 그만두었어요."


나는 녹의 아파트 건물로 가서 그녀가 살고 있는 층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아파트는 컴컴하게 불이 꺼져 있었고, 올라가서 초인종을 눌러보았으나 안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녹의 아파트였다.


어느 날 방콕 외곽에 있는 녹의 언니가 하는 식당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지상철을 동쪽으로 계속 가서 마지막 역에서 내렸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언니의 가게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식사하며 얘기를 나누던 중 들었던 언니의 가게가 있는 동네 위치와 어떤 음식을 팔고 있는지 등의 기억을 되살려서 방콕 외곽의 그 동네에 가서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녹의 언니는 나를 보자 놀라며 식당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녀의 가게까지 내가 찾아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제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많이 놀라셨죠? 뭐라도 선물을 들고 왔어야 했는데, 제 마음이 지금 그럴 여유가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녹이 요즈음 몇 주 동안 저의 전화를 받지 않아요. 그래서 녹의 소식을 알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머. 그렇셨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날씨가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셨군요. 가게가 누추하지만, 안에 들어오셔서 시원한 물도 드시고, 식사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니까 저희 집 태국음식도 드세요. 제가 녹의 이야기는 천천히 해 드리게요. 일단 녹은 무사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장"


녹의 언니는 나에게 식당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며 식사도 대접하였다. 언니 가게의 태국음식은 맛이 있었다. 덕분에 식당의 손님들도 많은 편이었다.


"녹은 고향에 잠깐 내려갔어요. 거기서 시간을 좀 보내다 방콕으로 다시 올라 올 거예요. 녹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 혹시 들으셨어요? 녹이 아들을 안 본 지가 오래되었던지 아들이 많이 보고 싶었나 봐요. 아마 남동생이 죽어서 마음의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갑자기 자기 아들도 보고 싶어졌나 봐요. 장이 좀 이해를 해 주세요. 녹에게 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라고 언니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서 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는 나의 잔에 맥주를 부어 주었다. 나는 기분이 우울하여 녹의 언니가 따라 주는 술을 많이 마셨다.


"녹이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으로 생각해요. 충분히 저도 이해를 해요. 계속 기다려 줘야죠. 다시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요. 그런데, 선생님도 아직 남동생에 대한 마음이 정리가 안 되었을 텐데요. 정말 유감입니다. 어떻게 애도를 표해야 될 모르겠습니다. 저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동생을 직접 만나서 식사도 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방콕 시내에서 군인들이 총을 쏘았던 그날 남동생을 우연히 시내에서 봤거든요. 그때만 해도 전혀 남동생이 죽게 될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가족 모두가 슬퍼서 정상적인 생각을 못하고 있을 어려운 시기에 장녀인 저까지 흔들리면 안 되죠. 모두가 태어나서 언젠가는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죠. 그런 걸 보면 멀리 생각할 필요 없이, 지금 순간순간들이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시간들이죠. 아무튼, 우리 가족들을 걱정해 주시고, 제 동생인 녹을 끝까지 걱정하고 챙겨 주셔서 감사해요."


녹의 언니 가게를 나와서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지상철 역까지 이동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덜컹거리는 외로운 지상철에 몸을 싣고 밤늦게 방콕으로 혼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