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시합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스리랑카 사업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가자, 스리랑카 현지 이해 당사자들이 자기들끼리 토론하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 위한 준비 기간이 스리랑카인들에게 필요하였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논리적인 대화와 설득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결정을 내릴 타이밍이 중요하였고 때로는 정치적인 계산으로 서로 다른 의견들과 차이를 좁히고 절충과 타협을 통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비이성적이고 감성적 측면에 호소하는 것도 영향을 미치는 종합예술과 같은 것이 나의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였었다.


녹이 다시 나타나기를 내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제도에 대한 스리랑카 현지의 최종 결정을 나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단계에 나의 프로젝트는 들어왔다고 생각하였다. 스리랑카인들의 결정과정이 장막에 가려진 듯이 방콕에 상주하고 있는 나에게는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진행과정을 알 수가 없어서 나는 몹시 답답하였던 시기였다. 이럴수록 나는 초조함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체육관에서 매일 녹초가 되도록 훈련하는 세 시간 정도의 시간들이 내가 유일하게 만사를 잊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훈련이 끝나면 샤워를 하고 집으로 걸어오던 중 지나쳐야 하는 녹이 일했던 그 육중한 건물의 마사지 가게는 언제나처럼 네온사인을 희미하게 비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녹이 일하지 않는 곳이 되 버려서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장소가 되어 버린 곳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 육중한 모습을 아련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힘없이 집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면 언제나처럼 컴컴하고 썰렁한 공간이 나를 기다렸다. 방의 벽면에는 주인 없는 시간 동안 자기들의 놀이터로 내 방을 사용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조그만 도마뱀 새끼 두, 세 마리 정도가 붙어 있었다. 태국을 떠난 이후 이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지만 당시 적적한 나를 반겨주는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저녁에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이 나의 몸과 정신을 오히려 각성시켜서 새벽까지 나를 잠들지 못하게 깨어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타나카에게 이런 고충을 말해 보았다. 그는 턱에 손을 받힌 채 제법 전문가처럼 분석을 해 주었다.


"장. 원래 밤에는 우리의 몸이 잠을 잘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하는 거야. 너처럼 무에타이 같은 힘든 운동을 밤에 하면 말이야 우리의 생체 리듬을 거슬리는 거야. 너의 몸이 힘든 운동에 견디어 냈지만 오히려 피곤한 정신 속에서 몸은 깨어나게 돼버려서 밤에 잠이 오지 않도록 만들지. 어때 나의 설명이 제법 논리적인 분석이지 않아?"


"타나카. 제법 그럴싸하게 분석하는 게 의사 선생님 같아. 크크.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 상당히 논리적인 설명을 하고 있어. 하지만, 밤시간 말고는 주중에는 내가 운동할 시간이 없는 걸. 시합은 다가오고 말이야. 이번 시합은 관장이 특별히 주선해서 내가 참여하게 되었어. 아직 나 같은 아마추어 선수들은 그런 공개된 장소에서 시합을 갖는 게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데 말이야. 너도 한번 보러 올래? 하긴, 찾아오는 일본 손님들이 많아서 금요일 밤에 가게문을 닫기가 어렵겠다."


"나도 네가 경기하는 거 한번 보고 싶어. 너도 말했다시피, 내가 금요일 밤에 가게 문을 닫아 놓고 나가기가 힘들어. 그래도 마음으로는 네가 이기길 응원해 줄게."


"고마워. 타나카. 꼭 이기려고 시합하는 것은 아니야. 시합을 통해서 부족한 점을 찾아 나가는 거지. 관장님도 그렇게 말해 주고 있고. 아무튼, 경기 일주일 전에는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할 것 같아. 이대로 불면증에 시달리다 경기했다가는 내 기본적인 실력도 발휘 못하고 말 것 같단 말이야. 밤에 명상을 하든지 무슨 방법을 써야 할 것 같아."


타나카의 분석에 맞추어 보면, 나의 잠자기 전략은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나날이었고, 나는 밤에 잠이 들기 위해서는 무에타이 훈련을 최대한 격렬하게 하여 몸을 피곤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낮에는 일을 해야 하는 까닭에 저녁에만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밤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탓에 사무실에서 집중도가 떨어졌으며 다른 직원들 몰래 책상에 앉은 채 잠을 자기도 하였다. 녹으로부터 그리고 스리랑카 현지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고, 또한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매일매일이 되풀이되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두 번째 시합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합 전 날은 훈련을 쉬고 저녁 일찍부터 아예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시합 당일은 그래도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경기는 방콕 시내의 어느 백화점 앞에 있는 광장에 임시로 설치된 야외 링 위에서 개최되었다. 거기서는 주말에 무에타이 경기가 항상 개최되었는데, 왜냐하면 그 주위를 지나다니는 도시의 유동 인구들이 제법 많았으므로 그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지역은 녹의 남동생과 일본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쓰러진 장소와도 그리 멀지가 않은 곳이어서 사실 나는 여기에서 두 번째 시합을 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편하지는 않았다. 이 야외 링에서의 시합은 주말에 이벤트 행사로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나 같은 외국인이 참가하는 경기는 외국인들에 대한 무에타이 홍보용으로 다른 주요 경기들 사이에 삽입이 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여덟 경기들 중에서 나의 시합은 세 번째 경기로 배정되었다. 물론 나는 무에타이 프로선수가 아니어서 대전료가 없었고, 체육관 관장의 추천 덕분에 외국선수들 중 한 명으로 링 위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시합 장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에 나는 방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녹의 남동생과 일본 프리랜서 사진 기자에게 명복을 다시 빌었고, 그들이 쓰러진 장소 근처에서 경기를 가지게 되는 나를 용서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방문을 닫고 집을 나섰다.


시합장소에 도착하여 나는 트레이너와 관장과 같이 경기를 준비하였다. 나는 말없이 내 주먹에 밴드를 감기 시작하였다. 트레이너는 나의 온몸에 기름을 발라주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합 당일 날 앞의 두 경기가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끝나가고 있었고, 나는 내 시합이 곧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링 쪽을 바라보니 지상철이 커브를 돌며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고 링 주위의 청중들은 점점 더 몰려 들어서 보도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분위기에 의하여 당연히 긴장되어야 했지만, 오히려 이번 시합은 즐기고 싶다는 기분이 들며 마음이 편해졌다. 경기 결과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상대는 태국 선수였다. 링 위에서 처음 보게 된 상대방 선수였지만, 오히려 그에게 이상하게도 정이 갔다. 그는 나의 첫 시합 상대였던 영국인보다 마르긴 했어도 근육이 단단해 보였다. 그의 몸과 근육상태로 보아서 무에타이 경력이 오래된 선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에타이 링 위에서 시합 전 선수들이 행하는 의식이 끝나자 나는 관장에게 걸어가서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고, 관장은 나의 머리에서 띠를 벗겨 주며 나에게 시합의 행운과 시합이 무사하게 끝나기를 빌어 주었다.


종이 울리며 드디어 나의 두 번째 시합이 시작되었다. 나는 거칠게 상대 선수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상대방은 의외로 나의 공격에 수비로 일관해 나갔다. 녹의 무소식과 나의 업무로 인하여 받고 있었던 당시의 스트레스와 분노가 상대 선수에게 집중되어 해소되어 가고 있음을 링 위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고된 훈련으로 나의 몸에 자연스럽게 체득된 공격 패턴들이 계속 상대 선수의 몸에 가해져 충격을 주어 갔다. 첫 번째 라운드가 끝나 갈 때 즈음에 시도한 나의 미들킥과 엘보우 공격이 상대 선수에게 어느 정도 적중하여 그는 쓰러지게 되었다. 내가 획득한 최초의 다운이었다. 첫 번째 라운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는 그가 KO패가 안되도록 구해 주었다. 우레와 같은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소리가 주위에서 들려왔다. '이런 맛과 기분으로 링 위에 선수들이 올라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상대 선수가 처음부터 거친 반격을 가해오며 시작되었다.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 공격과 수비는 나도 익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 막상막하의 접전이 될 수 있었지만, 서로를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근접 전에서는 나는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갈비뼈와 옆구리에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면서 그의 무릎과 다리 아래 부분을 이용한 공격을 겨우 버티어 내었지만 종이 울리기 전 십 초 전에 나는 순간 링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버렸다. 그도 마지막에 다운을 획득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의 근접 전 공격을 겨우 버티어 낸 시간들로 두 번째 라운드를 넘겼다.


세 번째 라운드는 나와 태국 선수의 난타전으로 시작되었다. 나의 로우킥에 그가 휘청거렸고, 그의 엘보우 공격에 나의 양팔들은 통증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나의 하이킥을 그가 겨우 손으로 막아 내었고, 그의 스트레이트, 어퍼컷 공격을 순간적으로 피하였지만 몇 대는 그대로 맞아 버렸다. 세 번째 라운드가 끝나기 일분 전에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서 팔이 서로 잡힌 채 엉키어 있었다. 서로 밀어내고 좌우로 순간적으로 밀며 상대방을 링에 쓰러뜨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순간 태국 선수는 재빨리 나의 몸을 밀어 버리게 되었고, 나는 그와 일정 거리가 벌어지며 떨어지게 되었다. 그의 발동작으로 하이킥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이미 나는 방어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잠깐 내가 방심을 한 틈을 타서 그는 순간 회전력으로 하이킥을 날렸고, 나의 오른쪽 얼굴에 적중하였다. 하이킥의 통증은 시합이 끝난 후에 오히려 느껴졌다. 반대편 얼굴의 빰이 몹시 아파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 그의 하이킥을 맞았을 때 순간적으로 나의 턱관절이 반대편으로 움직였고 얼굴 반대편 뺨에 부딪혀서 충격이 반대편으로 전달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이킥 공격에 나는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합이 끝나고 판정에서 나는 그에게 아깝게 패하고 말았다.


비록 진 시합이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한 경기였었다. 상대방 태국 선수도 내가 만나 본 상대 중에서 최고의 상대였다고 기억된다. 중요한 경기가 아니면 선수들은 마지막 일분은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는 청중들의 야유가 이어지지만 당시 우리는 마지막 종이 울리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하여 경기를 하였던 것이었다.


링 위에서 걸어 내려오니 관장과 트레이너는 수고했다며 나를 안아 주었다. 나의 오른쪽 얼굴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을 본 관장은 트레이너에게 시켜서 얼음 팩을 현장에서 구해다 주었다. 나는 그 얼음 팩을 부어 오른 부위에 대고 쩔뚝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은 정신없이 잠들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