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두 번째 시합에서 부상을 당한 사실을 시간이 지나자 나는 알 수 있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촬영해 보니 갈비뼈에 살짝 금이 간 것이 확인되었으나 의사는 아주 경미하고 심한 수준은 아니라고 하였다. 보호대와 진통제를 처방받아서 돌아왔다. 상대 선수의 하이킥 공격으로 생긴 얼굴 부위의 통증은 남들이 보기에는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약 이 주 정도 흘러서야 겨우 없어질 수 있었다. 무에타이 경기는 부상이 일어나기 쉬운 위험한 것임을 이번 경기에서 알 수 있었다. 평소 공격과 수비로 이어지는 연습이 충분히 되어 있지 않으면 사고가 생기기 쉬웠다. 내가 왜 부상을 감내하면서까지 계속 시합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링 위에서 들렸던 관중들의 환호성이 다시 들리면서 그 의문은 바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 후 부상이 다 완쾌가 되었고 다시 훈련을 하고 싶어 지도록 몸과 마음이 준비가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시합이 끝난 지 거의 한 달 만에 체육관을 다시 찾아갔더니 나의 인기가 대단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수강생들의 절반 정도는 당시 내 시합을 구경하러 왔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비록 패배한 경기였지만 그들은 나의 경기에 반하게 되었다고 했다.


"장 선생님. 그때 링 위에서 정말 대단하셨어요. 룸피니 경기장에 가서 가끔 무에타이 경기를 보는 게 저의 유일한 낙인데, 그날 장 선생님의 시합은 룸피니 경기장의 프로선수들 경기보다 더 화끈했어요. 저는 장 선생님이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판정이 정말 아쉬웠어요. 근데 몸은 좀 괜찮으셨어요?"


"아. 이제는 괜찮습니다. 다 완쾌가 되었어요. 경기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해요. 상대 선수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하고 경기한 것도 저에게는 영광이에요. 이겼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죠."


이런 분위기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뒤돌아서 그때를 바라보노라면 당시의 나는 앞이 막혀 있던 나날들 속에서 그날 있었던 두 번째 시합이 유일한 해결 통로인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상당히 화끈한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이 들었다. 관장은 나의 두 번째 경기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표정이었고, 몇 달 후에 다시 다른 시합을 뛰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다음 시합은 나에게 잊지 못할 시합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장. 첫 번째 경기보다 두 번째 경기가 더 훌륭하게 잘 진행했어요. 특히 체력안배가 라운드마다 균형 있게 잘 되었어요. 그리고 근접 전 기술도 많이 보강되었고요. 다음 경기는 이제는 한번 이기는 시합을 한 번 해 봐요. 지금처럼만 남은 기간 준비하면 충분히 승산이 이제 있어요."


세 번째 경기에서도 많은 부상이 예상되겠지만, 나는 이제 두렵지가 않았다. 점점 더 무에타이 전사가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관장님. 경기를 계속하다 보니 제가 부족한 것을 찾아서 보충할 수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 경기도 주선을 해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날들을 나는 보내고 있었다. 무에타이 선수로 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까 생각도 해 보았다. 그렇지만, 무에타이 프로선수를 시작하기에는 나는 이미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버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태국의 무에타이 프로선수들은 대부분 십 대 초반부터 이미 무에타이에 입문하여 십 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 중반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 편이었다. 그리고, 무에타이 프로선수로 성공하여 돈과 명예를 얻으려는 꿈을 가지고 시작하는 서민층 출신 선수들로 각 체급별 선수층은 상당히 두터운 편이어서 경쟁이 극심하였다. 그리고 당시 내 나이에는 태국 선수들은 은퇴를 하여 트레이너 혹은 체육관 관장으로 경력을 바꾸는 시기였었다. 여하튼, 내가 무에타이 프로선수로 경력을 바꾸어 보려고 꿈을 꿔 본 짧았던 시간이었다.


어느 날 오후에 사무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내 방으로 들어왔을 때에 녹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거의 세 달 만에 처음 보게 된 녹의 이름이 나의 핸드폰 화면에 뜨게 되자, 나는 놀랍게도 잠시 사무실 내 방 안 입구에 멈추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열 번째의 진동음이 울리고 있을 즈음에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으며 내 방 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았다. 전화기 너머로 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살짝 긴장한 듯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장. 잘 지냈어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죠? 저하고 통화할 시간 있으세요?"


"오랜만이야. 녹. 지금 통화할 시간 있어. 방금 두 시간 넘게 진행된 회의를 마치고 이제 막 내 방에 들어왔거든."


"그렇군요. 고생이 많으세요. 음. 먼저 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그동안 장에게 연락을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도 좀 여러 사정이 있었거든요. 언니가 장이 언니 식당까지 직접 찾아왔었다고 얘기를 해 줬어요. 저는 제 아들을 찾아갔었어요. 그리고 같이 시간을 좀 보내려고 아들을 데리고 고향에 내려갔다 왔어요. 그리고는 다시 아들을 지금의 아빠에게 돌려보내 줬고요. 그러고 나서 저는 삼주일 전에 다시 방콕으로 돌아왔어요. 그동안 일하던 곳의 여사장이 연락 와서 이전 손님들을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했고요. 제가 거기에서 여전히 일을 하는 줄 알고 가게에 저를 찾는 사람들도 계속 있어서 가게에 정리를 해 줘야 했어요. 그런데도 계속 저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 전화를 받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장의 전화도 받기가 힘들어지게 되었어요. 앞으로 전화번호를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기가 힘들지만, 제가 그동안 장에게 아무 연락도 못했던 점에 대하여 정중히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계속되고 있는 녹의 말을 나는 말없이 듣고 있다가 그녀의 말이 잠깐 멈추게 되자,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를 들으니까 이제 좀 녹의 마음이 정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녹에게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동안 내가 많이 걱정하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이제는 죽은 남동생에 대한 위로의 말은 일부러 녹에게 꺼내지 않았다.


"낮에 옷가게 매장에 나가서 일을 봐주는 것은 다시 시작했어요. 언제까지 거기서 일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조만간 거기도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살아간다는 게 참 쉽지가 않네요."


수화기 너머에서 녹이 쓸쓸히 웃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날 저녁에 나와 녹은 방콕 시내의 어느 한적한 태국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였다. 열대지방의 넝쿨나무에 걸려 있는 은은한 전등 불빛이 방콕의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고 녹의 얼굴 윤곽도 그 불빛에 따라서 명암이 바뀌어져 가고 있었다. 몇 달 만에 본 녹의 얼굴은 처음에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지만 다시 옛날의 느낌이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나에게서 사라지기 전에 보았던 녹의 얼굴은 웃음이 사라진 모습이었지만, 이제 그녀의 얼굴에서는 쾌활한 눈빛과 웃음이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성숙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생의 깨달음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석 달 만에 본 사이여서 그런지 다소 서먹서먹함을 서로 느끼고 있었다. 가족이 아닌 이상에 석 달의 시간은 서로를 남으로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에 녹은 나에게 갑자기 물어보았다.


"장. 이제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반년도 채 남지 않았죠? 삼 년만 방콕에 있을 수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되고 만 것 같네요. 시간이 정말 쏜 살 같이 흐르네요."


"나는 올해까지만 지금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삼 년 동안이나 태국에서 근무할 줄은 전혀 생각을 못했었어. 너무 태국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는 것이 솔직히 두렵게 느껴져."


"한국에 꼭 돌아가야 하나요? 여기 방콕에 남아서 살면 안 되나요? 장은 혹시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방콕에 남아서 계속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길이 없나요?"


녹은 이 말을 하고는 진지하게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당시 나의 아둔한 성격은 그녀의 말의 의도를 알아차리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진지한 질문과는 다르게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을 하였다.


"지금 방콕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는 원래는 내가 소속되어 일하던 곳이 아니야. 방콕 이전에 내가 근무했던 직장으로 일단 돌아가야만 해. 그리고, 내가 방콕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아마, 방콕에서 돈 벌 수 있는 다른 일자리가 생기기는 쉽지 않을 거야."


녹은 나의 영혼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은 이런 대답을 듣고 실망한 듯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모습을 보고도 나는 바보처럼 그녀의 진심을 모르고 있었고, 술이 계속 들어가자 나는 취하기 시작하였다. 덩굴나무에 걸린 전등이 바람에 흔들리자 나의 취기는 더해만 갔다. 그 이후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이 말 저 말들이 녹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장은 왜 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나를 한 번도 데려가지 않는 거죠? 오늘 저를 장의 아파트로 데려 가 주세요."


이런 녹의 말을 듣고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아무 연락도 없이 세 달 만에 나타나서 그동안 걱정하며 기다린 나에게 고작 하는 말이 이런 것이고 또한 계속 부담을 느끼게 하는 얘기만 그녀가 나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몹시 상하였던 것이었다.


"녹. 자꾸 왜 이런 말만 오늘 하는 거야? 그리고 녹을 내 아파트로 데려갈 수 없어. 왜냐하면....."


"제가 그런 일을 하는 여자라서 그런 건가요? 혹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다른 한국인 이웃들에게 나 같은 여자를 데려 온다고 소문이 날까 봐서 그런 건가요?"


나는 더 이상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취중진담으로 조금 전에 나는 녹에게 뭔가를 말해 버렸던 것이었다.


"녹도 본인이 어떤 일을 하는 줄 알잖아? 우리가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요.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라고 녹은 표정 없이 대답하였다.


그날은 택시를 잡아 타고 녹의 아파트로 나는 뻔뻔하게 같이 갔다. 서로 말이 없었고 같이 침대에 누운 채 불편한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하였다. 회사에 도착하여 정원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며 제정신을 차리려고 하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어제 밤일들이 생각나기 시작하였고, 나는 그녀에게 상처가 되어버린 말실수를 하였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