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한 사나이가 들판에서 승냥이 무리들에 쫓기고 있었다. 한 마리가 높이 점프하여 그의 등을 덮쳤다. 다행히 그의 살결이 물리지 않았고, 그는 입고 있던 털옷을 벗어 버리고 계속 도망을 쳤다. 잡힐 듯 말 듯하는 순간을 넘기며 그는 가까스로 언덕 위로 달아났고, 승냥이들은 자갈 능선을 힘겹게 오르며 그를 계속 쫓았다. 언덕 위에 다다르니 절벽이 앞에 놓여 있었다. 뒤를 돌아다보니까 그 사나운 짐승들은 그가 서 있던 곳까지 어느새 도착하여 다시 그에게 사납게 덤벼들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다행히, 절벽 중간에 걸려 있는 나무에 그의 몸이 걸리게 되었고, 그는 나무 끝가지를 손으로 잡은 채로 매달려 있었다. 이제 살았구나 생각하며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무슨 소리가 들려 그쪽을 바라보니, 나무 가지의 시작 부분에서 들쥐 한 마리가 이빨로 그가 잡고 있는 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 죽었구나!" 하며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식은땀이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 끈적한 무슨 액체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무 위의 절벽 면에 달려 있었던 야생 벌통에서 꿀이 한 방울씩 그의 얼굴 위로 떨어졌고 떨어진 꿀들은 얼굴을 따라 흘러서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혀 속에 야생 꿀이 닿게 되자 이루 말할 수 없는 달콤함에 그의 모든 감각이 정지된 듯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달콤함에 그가 처한 모든 상황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은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겪는다고 한다. 고통이 있더라도 그 뒤에 잠깐 맛보게 되는 즐거움으로 고통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우리의 인생살이일 것이다. 물론 즐거운 일이 생긴다면 말이다. 방콕에서 지냈던 지난 삼 년 동안은 불안감, 우울증, 불면증이 나의 주요한 고통이었고, 녹을 알게 되고 정기적으로 만나며 이러한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버렸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당시 녹은 나에게 이와 같은 존재였었다. 하지만 방콕을 떠나기 삼 개월 전 즈음에는 나는 또 다른 극심한 고통을 한 번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대상포진이라는 질병이었다.


대상포진의 의학적인 정의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소아기에 수두를 일으킨 뒤 신경 주위에서 무증상으로 남아 있다가 그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지면 신경을 타고 나와 피부에 발진이 생기면서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이라고 적혀 있다. 초등학교 이학년 때에 나는 머리에 열개 이상의 종기가 나서 물집이 잡혔고 이후 물집이 잡혔던 부위의 머리카락이 수북이 빠지는 일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져 있는 나를 보고 같은 반 아이들이 놀려대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을 되살려 보니까 의학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수두 증상을 겪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뒤 이십 년 정도 시간이 흘러서 이곳 방콕에서 근무가 종료되어 가기 시작하자 나의 스트레스는 극심해졌다. 스리랑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현지 이해 당사자들의 정치적 합의가 지연이 되고 있는 등 업무가 진통을 겪고 있었다. 또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여 원래 다니던 직장에 복귀하여 한국의 직장문화생활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에 대한 나의 또 다른 업무적인 스트레스가 더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녹과의 관계가 어느 순간부터 서운해지기 시작했고, 남은 삼 개월 동안 녹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오는 사적인 스트레스가 가중되면서 나의 면역력이 급격히 약해졌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좌측 어깨의 날갯죽지에 해당되는 부위에서 시작한 통증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며칠이 지나니 통증의 정도가 견디기 힘들 만큼 심해져 버렸다. 화장실의 거울로 등 뒤를 비쳐 보니까 붉은 반점들이 좌측 날갯죽지를 따라서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 날에 나는 병원에 가서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받게 되었다.


"요즈음 생활하시면서 스트레스가 많으신 모양이군요."라고 태국의사가 물어보았다.


"네. 이것저것 걱정할 것들이 많이 생기네요. 지금 제 몸에 생긴 것이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요?"


"반드시 스트레스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몸에 면역력이 약해진 것은 확실해요. 대상포진의 전형적인 증상이 선생님에게 보입니다. 요즈음은 약이 좋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 꾸준히 복용하시면 거의 완쾌되실 거예요.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까, 계속 복용하시고 혹시라도 완치가 되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병원에 다시 찾아오세요."


의사의 말대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니 그렇게 심하였던 고통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참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통증이 약 몇 알에 깜쪽같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이상하게 허무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마치 내가 꽤 병을 부렸었던 것도 같았다는 생각도 났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내가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에 치러야 했던 하나의 통과의식 중에서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녹과는 이전처럼 자주 보지를 못했지만 간간히 전화로 대화를 하였고 주중이나 주말에 가끔씩 만났다. 하지만 예전처럼 녹에게 느껴졌던 그런 분위기는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남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내뱉은 말실수로 인해 그녀를 심적으로 더 방황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그녀는 나와 정리하기 위한 그녀만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지금 회상을 해보면 녹은 나를 방콕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하고 싶어 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간 속에 처해진 나로서는 그러한 녹의 마음과 소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녹과의 문제 이외에도 여러 걱정과 고민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설령 방콕에서 새로운 직장이 생겨서 태국에 더 남아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녀와 계속 살아갈 그런 사이, 쉽게 말하면 결혼할 사이로 녹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당시에 사랑했던 여자였지만 결혼할 수는 없었던 여자, 그런 여인이 녹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자, 나는 내 자신이 스스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되었다. 쾌락의 상대로만 그녀를 바라보기에는 녹은 훨씬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와의 관계에서는 나의 영혼이 가득히 담길 수 있었다고 지금도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다. 만약, 그녀가 밤에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녹과 계속 사귀거나 같이 살려고 했겠는가? 만약 태국의 여성 중에서 나처럼 학력 수준이 높은 사람과 사귀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녹에게 끌렸고 이후 그녀를 찾아다녔던 시간들 속에서 녹의 교육 수준이 낮거나 밤에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따뜻한 영혼, 쾌활한 성격, 불면증에 시달렸던 나를 곤히 잠들게 해 주었던 녹의 자상함과 그녀의 아파트, 그리고 외로운 나의 영혼과 육체를 누구보다 잘 이해를 해 주었던 녹의 마음과 매력적인 얼굴, 육체 등이 나를 녹으로부터 떠나지 못하게 잡아 두었던 것이다.


대상포진의 고통을 겪은 뒤에 나는 녹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녹과의 로맨스를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사실, 사람들이란 남의 연애 이야기에는 당사자들만큼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고, 하나의 잡담의 소재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들어왔던 얘기들이 떠올랐다. 동남아 여성들을 상대로 한국 남성들이 현지에서 아이를 만들고 다시 한국으로 도망쳐 오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필리핀에서는 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코피노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코피노들을 현지 여자 혼자서 힘들게 키우며 살고 있는 이야기를 다루며 한국 남성들의 무책임한 현실을 비판하는 텔레비전 뉴스나 인터넷 기사들이 떠올랐다. 한국의 여성단체에서는 이에 대한 예방책을 마련하자고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근무할 당시, 같은 회사의 사무실 여직원들의 얘기를 엿들어 보면, 그런 남성에 대한 한국여성들의 분노는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것은 단지 필리핀에서만 일어났던 일은 아니었다. 태국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한국교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비슷한 사례가 주위에 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몇 년 동안 사귀던 태국여자를 버려두고 한국으로 가버리는 남자들을 많이 봤다고 한다.


그렇게 동남아시아에 사는 동안 현지 여성과 아이를 낳았지만 혼자 한국으로 도망 오는 남성들과 나는 어떤 점이 다르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그런 남성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무대는 필리핀이 아닌 태국이고, 상대 여성은 필리핀 여자가 아닌 태국 여인인 녹이었고, 남자는 신문기사에 나오는 한국의 나이 든 중년 남자가 아닌 삼십 대의 바로 나일 것이다. 아직 녹이 임신이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그녀가 나와 계속 만난다면 임신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전에도 녹은 가끔씩은 나와의 관계에서 피임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결국 피임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아마 언젠가는 우리도 피임 없이 관계를 맺게 되는 일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결국 녹이 임신이 된다면 나는 그녀를 버리고 한국으로 도망가서 그렇고 그런 한국남자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그리고, 설사 녹이 임신이 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사귀어서 정이 든 그녀를 버리고 나는 한국으로 떠나버릴 수 있는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속에서 나는 이제야 스스로 나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녹에 대한 사랑을 다른 누군가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태국 윤락여성을 데리고 쾌락의 밤들을 보내고 왔다고 생각할 것이며, 만약 녹이 임신이 되어 내가 한국으로 도망가 버린다면 나의 부도덕성은 더 확실해질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기 위해 내가 녹을 찾아다녔던 설렘과 기다림 그리고 애틋함을 그 누구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나의 선택은 무엇일까? 대상포진의 극심한 고통이 가시던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잠 못 들며 생각에 잠겼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베란다 커튼 사이로 여명의 빛이 서서히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