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을 원하다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인생에 당신은 만족하고 있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 현재 몸담고 있는 직장에 계속 다니며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당신이 어릴 때부터 꿈꾸어 왔던 그런 것인가요? 꿈꾸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보람이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있나요?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된다면 우리들 중에 과연 얼마나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녹은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틀림없이 하였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방콕에서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은 그녀가 어린 시절 이산 지방의 대자연 속에서 커 오면서 꿈꾸었던 것이 아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녀는 나와 있을 때는 항상 자신의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말을 했었다.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 걸어가 버렸던 그 길에서 그녀는 아제는 다시 나오고 싶어 했었다. 그 탈출의 실마리를 어쩌면 나에게서도 찾았을 것이다. 직장이 괜찮은 외국 남성과 결혼하여 자신의 인생의 변화를 꿈꾸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녹과 결혼하여 태국에 남는 것은 어렵다고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판단했고, 스스로 다른 길을 만들어 가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붙잡아 두려는 그녀의 미련과 나와는 결별하고 이제는 새로운 길로 다시 가려는 의지와의 갈림길에서 그녀는 나에게 말을 하지 못한 채 많은 방황을 하였던 것이다. 내가 '방콕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라는 방황을 이후에 했던 것과 같이 그녀는 나 몰래 혼자서 많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저는 이제 마사지 가게 일은 완전히 그만두었어요. 이전에 그만두긴 했지만 제 이전 고객들을 상대로 조금씩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이제는 거의 정리가 다 된 듯해요."라고 어느 날 녹은 나에게 말하였다.


"그래. 잘했어. 옛날부터 녹이 그만두고 싶어 했잖아?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어? 아니면 당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쉴 거야?"라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낮에 일하던 옷가게 매장 일은 당분간 계속해 줘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거기 일도 다른 직장이 생기면 그만둘 것 같아요.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이 많지는 않지만 있거든요. 내년에는 전문대학에 입학해서 학교를 다니려고 해요. 제가 영어는 자신이 있어서 회계업무 지식 등을 배워서 회사에서 근무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호텔관리 분야도 생각하고 있고요. 태국이 관광 사업이 많이 발달했잖아요. 아무튼 저도 이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빨리 결정을 내려야겠어요."


"녹의 언니가 이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해 줬던 것이 기억이 나거든. 아. 그리고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나는 녹이 그동안 했던 일에 대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녹이 지금 말해준 그 계획은 녹을 더 발전시켜 줄 거야. 태국은 아직은 경기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전문대학교를 나온다면 녹 정도면 직장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몇 달 후에는 이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가서 언니집에 이사 들어가려고 해요. 방콕에 있는 아파트 월세 내는 것도 그동안 너무 부담이 되었거든요. 언니집에서 신세를 지면 월세는 아낄 수 있을 거예요. 전문대학 입학하기 전까지 공부도 할 필요가 있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부를 그만둔 지가 몇 년이나 흘러 버렸어요."라고 녹은 말했다.


나는 녹의 눈을 바라다보았다. 녹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눈에서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말이 진심임을 알 수가 있었다. '오랜 시간 공부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전문대학 가는 것도 쉽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라는 염려가 들었지만 태국의 고등교육 현실을 모르는 외국인의 입장에서 나는 굳이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해서 용기를 꺾고 싶지는 않았다.


"언니는 결혼했어? 그때 녹의 언니 식당에 갔을 때에 언니 남편은 못 봤어."


"언니는 혼자 살아요. 하지만 언니한테 아이는 있어요. 저처럼 나이가 어릴 때에 남자를 만나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죠.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돈 버는 게 쉽지가 않죠. 언니가 방콕 근교에서 돈을 벌고 아이는 시골에서 저희 부모님이 봐주고 있어요. 언니가 매달 부모님에게 양육비를 보내 주고 있어요. 태국에는 이십 대 안팎의 나이에 여자들이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좀 있어요. 피임을 했어야 하는데, 그때는 너무 어렸죠. 남자들도 대부분 비슷한 나이의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능력이 못 되죠. 저는 약간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요. 하지만 저는 아이를 그 남자에게 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만약 제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웠더라면 저의 삶이 더 힘들어졌을 거예요."라고 녹은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괜히 녹의 언니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후회가 들었다.


"미안해. 내가 일부러 언니가 결혼했는지에 대해 물어본 것은 아니야. 그리고 녹의 과거에 대해서는 이전에 나한테 얘기해 줬잖아. 그때 내가 녹에게 먼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먼저 솔직히 말해 주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해."라고 나는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녹이 아이가 있던 여자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마음에 각인되게 되었다.


녹과의 대화가 어색한 단계에 접어들게 되자, 나는 뭔가 분위기를 바꾸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에 나는 최근에 출장 갔다 오며 사온 고급 화장품을 녹에게 말없이 건네주었다. 그녀는 나의 선물을 받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나의 입술에 키스를 해 주었다. 또한 그녀는 나의 목에 자신의 팔을 감더니 자신에게 더 나의 몸을 당겼고 더욱 강렬히 나의 입술에 키스를 이어 갔다. 그녀의 키스는 정말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촉촉하며 적당히 뜨거운 입술과 혀의 체온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게 나를 만들었다. 그날 밤은 그녀에게 선물만 전달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아파트를 나오고 싶었다. 어느덧 그녀의 혀는 나의 귓불과 목덜미로 옮겨 왔다. 그녀에게 도망쳐 나오기는 이제 힘들다고 느껴졌다. 내가 그녀를 그동안 그리워하며 사랑했던 것은 어쩌면 이러한 육체적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완벽한 기술로서 그녀는 나의 모든 성적 환상을 만족시키고 나의 내면의 외로움을 잊게 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바다와 같은 존재였다. 나의 거친 마음을 안아 주는 거대한 바다였던 것이다. 오랜 항해에 나는 지쳐 가는 뱃사람이었지만 그녀라는 바다는 내가 타고 있는 배에 평온한 물결과 따쓰한 햇살을 비추어 주며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녹은 샤워실 벽면에 기댄 채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에 '나는 과연 녹을 떠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규칙적인 움직임이 계속될수록 그녀는 신음 소리와 함께 온몸을 뒤틀어 대었고 손으로 이마의 머리카락을 잡아서 뒤로 넘기기 시작하였다. 절정의 환희는 조금 뒤에 찾아왔다.


우리는 샤워장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고, 샤워기의 물줄기는 열대지방의 소나기처럼 세차게 우리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물소리에 녹이 우는 소리가 가리어졌지만 그녀는 분명히 울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또한 울고 있었다. 그 좁았던 샤워장 바닥에서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그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다음날 새벽 동이 터오고 있음을 느끼면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녹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곤히 잠든 모습이었다. 그녀의 자는 얼굴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혼자서 방콕에 온 이후로 여러 고생을 해오면서 풍파를 겪었던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아직 앳댄 소녀티가 남아 있기도 한 얼굴도 보이는 등 여러 모습의 얼굴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간 동안 나의 눈에 비추어지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영혼도 그날 새벽에 그녀의 얼굴에서 볼 수가 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그런 일을 해 왔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지금 천사의 얼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어느 누가 이 여자를 부정하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동안 방황하던 나의 영혼에 안식을 준 유일한 영혼이 바로 그녀였다.


몇 달 전에 내가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을 때에 나를 바라보고 있던 녹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녀는 당시에 무슨 생각을 하며 나의 얼굴을 보고 있었을까? 그녀의 인생에서 갑자기 나타나 그녀를 구원해 줄 외국인 남자로 나를 생각했을까? 그렇게 단정을 짓기에는 녹은 나보다 더 강인한 영혼을 또한 지니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 나에게 이런 말을 녹이 한 적이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인생이 있어요. 장은 장이 살아가야 할 인생이 있는 거고요. 저는 제가 살아가야 할 인생이 있어요. 각자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야겠죠. 실수나 실패라는 것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요. 그 또한 우리의 인생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조그만 일부분이죠."


그날도 나는 녹의 아파트에 와서 그동안 지쳐 왔던 영혼을 달래고 가지만 지난 시간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녀의 영혼을 바라보고 가게 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남아야만 될 것인가?'라고 생각하니 나의 마음이 아파왔다. 침대에 자고 있는 녹의 뺨에 손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옷을 챙겨 입고 녹의 아파트를 나왔다.


일하러 나가기 시작하는 태국 현지인들의 소리들로 밖은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방콕은 이러한 소음과 함께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거대한 인파의 물결 속에 나는 조금씩 묻혀 갔으며 어느덧 거리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