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셀린은 차갑게 말하였지만 그녀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고, 조금씩 가지 말라는 눈빛으로 변화고 있었으며 그녀의 애달픈 푸른 눈동자는 나를 몇 초간 그녀의 사무실 안에 붙잡아 주었다. '셀린과 좀 더 일찍 인연이 엮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마음에 일기 시작하였고, 그녀 또한 방콕을 떠나는 무렵에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셀린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다보며 드넓은 지중해 바다에 작별을 고하듯이 천천히 돌아 섰다. 셀린의 방문을 나오니 그녀의 태국비서는 나를 보자 당황해하며 황급히 얼굴을 고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다보았다. 아마 나와 셀린의 대화를 밖에서 엿들었으며 우리 둘만의 분위기가 어떨까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나의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 의자에 앉았다. 왠지 텅 빈 공간으로 가득하다고 느껴졌다. 정신없이 살아왔던 지난 삼 년간의 방콕생활과 이전 한국에서의 일들이 마치 남의 일이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흐르며 기억의 저편으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셀린이 나에게 새로운 프로젝트의 자리를 제안하며 내가 방콕에 향후 몇 년간은 더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은 실로 커다란 기회임에 틀림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책컨설팅 회사였으므로 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는 꿈에서라도 한 번은 근무해 보고 싶은 직장이었던 것이다. 나는 비록 파견 신분으로 어중간한 지위로 여기서 지금까지 일을 해 왔지만, 어쩌면 향후 몇 년 이내에 이 회사의 정식적인 직원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셀린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으면 앞으로도 나의 앞길은 창창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먼 훗날 나는 셀린의 제안을 뿌리쳐 버렸던 것을 어쩌면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나는 사무실 컴퓨터를 다시 켜고 출장 결과보고서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는 번민과 불안을 안정시켜 보고자 최대한 집중해서 스크린을 보며 키보드를 두드려 나갔다.


퇴근 무렵, 나는 셀린이 걱정이 되어서 그녀의 사무실로 찾아가 보았지만 그녀의 방은 불이 이미 꺼져 있었다. '나는 왜 그녀가 내밀었던 손을 잡으려 하지 못했을까?'라는 애잔함이 마음에 흐르기 시작했다.


건물 밖에 나오니 열대 지방의 늦은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나의 기분에 무관심한 듯이 나를 빗겨 지나가고 있었다. 오토바이 택시기사를 불러서 카오산 거리로 가자고 하였다. 위험하지만 거침없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오토바이 기사의 뒤에 앉아서 맞바람으로 나의 얼굴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의 슬픔을 달래 보았다. 길가의 가로수들이 가까이 오며 다시 뒤로 빠르게 비껴 나가 버리기를 되풀이하였고, 나이 머리카락들은 오토바이가 달리는 속도로 생기는 바람에 거칠게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고, 나도 모르게 양손을 옆으로 뻗었다. 모든 것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리길 바랐고 얼굴에 느껴지는 바람의 손길이 나의 방콕 생활의 추억을 모두 가져가 버리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다시 그들의 일상사로 관심을 돌려 버렸다.


'만약에 셀린과 좀 더 일찍 가까워졌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어느덧 내가 타고 있었던 오토바이는 카오산 로드에 도착하였고 나는 내려서 계산을 하자 오토바이 기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바로 떠나 버렸다. 그의 떠나는 모습을 보자, '이십 분 동안 그의 광적인 질주에 우리는 짧은 시간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지만, 예정된 시간이 되자 그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마치 내가 방콕을 떠나는 것과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오산 거리를 정처 없이 배회하다가 구십 년대의 팝송 명곡들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으로 나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가 버렸다. 나는 저녁식사 대신에 독한 술과 간단한 스낵을 주문하고 바에 앉아서 바텐더의 서빙을 받았다. 나의 등 뒤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는 웃음과 속삭임 등으로 분명히 즐겁고 행복한 소리들이었다. 젊은 서양인 배낭족들의 대화소리를 들으니 그들의 거침없는 젊음이 부러워졌다. 어떠한 구속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가고 싶은 여행지로 부담 없이 떠나 버리는 그들의 대열에 나도 합류를 하고 싶어졌다. 독주의 기운이 목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슴, 배 그리고 온몸을 감싸더니 어느덧 나의 영혼까지 가져가 버린 것처럼 나는 술에 금방 취해 버렸고, 음악소리와 손님들의 얘기 소리가 섞여 머리가 온통 혼미해져 버렸다.


갑자기 올라버린 취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의 물로 얼굴을 씻어 보려고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손에 흘러내리고 있는 물을 멍하니 보다가 나는 갑자기 총에 맞은 것처럼 심장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 땅을 떠나려는 사람은 나였으므로 내가 녹과 셀린을 모두 떠나는 것이었지만, 그녀들을 버리고 가려는 나의 마음 또한 편하지가 않았던 것이었다. 녹에 비하여 셀린은 방콕을 떠날 무렵에 갑자기 나의 인생에 가까워지며 들어온 인연이었지만 콜롬보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방콕에 돌아와서도 여러 번 관계가 있었던 터여서 어느덧 녹과 셀린 모두를 두고 나는 괴로워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떠나가 버리면 녹 혹은 셀린, 아니면 그 두 여인 모두를 어쩌면 영원히 볼 수 없을 인연인지도 몰랐다. 아직은 시간이 있어 방콕을 떠나고자 하는 나의 결정을 되돌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방콕에 나는 계속 남아서 그 두 여자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카사노바와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마치 신기루와 같은 나의 바람일 것이라고 여기고 단념하는 편이 우리 세 명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결심이 다시 서기 시작하였다.


'만약 당시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이었을까?'라고 생각이 들게 되면,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내가 내렸던 결정에 운명이 정해져 버렸으므로 '지금의 내가 행복한가?'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온 이후로 녹과 그리고 방콕에서의 모든 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회상하며 살아왔었다. 그 추억으로 매일 힘들었지만 그 하루하루가 찬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힘을 내었던 것이다.


비틀비틀거리며 술집을 나왔다. 똑바로 걷기가 다소 어려워졌다고 판단이 들었다.


'태국을 떠나며 녹과 셀린을 두고 가야 할 결정을 나는 이미 내렸고 또한 그로 인해서 이렇게 마음이 괴로운데, 나는 왜 이렇게 독한 술로 나의 몸을 괴롭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의 힘으로 잠시나마 이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지만 별 수가 없었다.


거리 한 모퉁이로 돌아 들어가 나는 급하게 토를 했다. 속이 뒤집힐 만큼 연이어 토를 한 다음에야 겨우 멈출 수가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토의 잔여액과 함께 나의 얼굴은 범범이 되어 있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에 나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지만 정신이 핑 돌았다. 조금 지나자 어지러운 기운이 사라졌고, 나는 다시 제대로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언젠가 녹은 나에게 '왜 저를 장의 아파트로 데려가 주지는 않아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방콕에서 내가 처음 살았던 비싼 집에서 이사를 나온 이후로 나는 이전에 살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초라한 곳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당시 파견 비용으로는 이전에 살던 집이 경제적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었고, 한국에 귀국한 이후에도 나는 돈이 필요할 것이었으므로 약간이라도 돈을 모아 놓기 위해 초라한 곳으로 집을 옮겼던 것이다. 녹의 입장에서는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집도 그리 나쁘지는 않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녹에게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었다. 그녀가 내게 가지고 있을 환상을 나는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중간한 신분의 외국인이 당시 방콕에서는 나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녹은 어쩌면 이런 나의 모습에 개의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외국인으로서의 알량한 자존심과 우월의식이었지 않았을까?


누군인가 나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근처의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 종업원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 다시 독한 술을 주문해 마셨고 그녀에게도 술을 사주었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녹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녹이 될 수는 없었다. 다시 취기가 돌기 시작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코리아타운으로 가자고 했다. 이전에 한국인들과 가끔 다녔던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마셨던 독주에 비하면 소주는 부럽게 느껴졌다. 마시고 또 마셨다.



며칠 후에 나는 사무실에서 프로젝트 삼 년간 수행 최종보고서를 완성하였고 셀린의 서명 난을 비워 두었다. 보고서가 인쇄가 되면 공식적인 성과가 셀린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문서적 절차를 다 마쳤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셀린의 비서에게 모든 문서 작업 내용을 알려 주었고, 셀린에게 모든 것을 이메일로 전송하였다는 것을 추가로 얘기해 주었다.


방콕에서 삼 년 동안 겪은 모든 것들이 마치 꿈을 꾸었던 것처럼 지나온 세월이었고, 이 꿈을 꿀 수 있도록 직장에서 도와준 셀린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갑자기 셀린이 보고 싶어 졌지만 나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셀린은 내가 왜 그녀의 제안을 뿌리치고 그녀를 떠나야만 하는지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셀린은 녹의 존재를 모를 것이며, 녹 또한 셀린의 존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만 태국을 떠나면 모든 것이 정리될 것이고, 나의 여운이 그녀들의 기억 속에 잠시 남아 있을 테지만 또다시 각자의 삶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먼 훗날 이따금 나처럼 그녀들도 나와의 추억을 꺼내서 회상에 잠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지금까지의 나의 방황의 여정이 오늘 밤 서서히 정리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정 무렵이 다 되어 가자 종업원들은 퇴근준비를 하고 있었고 선술집은 이제 영업을 종료하려고 서서히 준비를 했다. 몇 시간 동안 여기서 눌러앉아 백일몽을 하고 있었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선술집을 나와 집까지 한 시간을 걸어갔다. 술이 조금씩 깨어져 가고 있었고, 거리의 네온사인들이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의 삼십 대의 어느 날 추억들이 이 밤과 같이 지나고 있었으며 나는 삼 년 동안 이곳 방콕에서 때로는 힘들었지만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시간을 보내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길에는 인적인 드문 자정 무렵이었으므로 나는 애써 눈물을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와 옷을 입은 채 바로 샤워실로 들어가 물을 틀어 놓고 바닥에 앉아 버렸다. 나의 눈물과 같이 샤워기에서 나온 물은 저 강으로 저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