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녹이 떠나는 택시를 바라다본 후에 뒤돌아 서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를 태우고 간 택시는 이제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을 뒤돌아보기를 반복하다가 어느덧 지상철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착하였다. 걸어 올라가는 걸음걸음이 천금만금만큼 무겁게만 느껴졌고 서글픔으로 가득 찼다. 플랫폼에 선 태국인들의 얼굴은 주말에 나들이를 나가는 듯 한 가족들과 데이트하러 가는 듯 한 젊은이들의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중에서 방금 누군가와 이별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지상철 안에서 보이는 밖의 풍경은 나의 마음과 아랑곳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지상철 안의 행복한 사람들과 같이 몇십 분을 타고 가다가 통로역에서 나는 내렸고, 집 근처 거리 식당에 앉아서 맥주와 음식을 시켜 아침 겸 점심을 때우려 했다.


"맥주는 레오비어이고 음식은 파타이꿍으로 드시는 거죠?"


식당의 여종업원은 나에게 웃으며 물었다.


"네. 언제나처럼요. 그리고 아가씨의 아름다운 미소도요."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사라지고 조금 있다가 주문한 것을 가져왔다. 이쁘지는 않았지만 성격이 싹싹한 젊은 여인이었다. 씁쓸한 마음이 약간은 위로를 받았다.


식당을 나와서 나는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동네를 크게 한 바퀴 걸어서 돌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요일 오후를 혼자서 방안에 쳐 박혀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헤어지고 온 날은 정처 없이 걸어야만 나의 마음이 달래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채 방콕의 낮거리를 걸어 다니기 시작하니 눈이 몹시 부셔서 힘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이렇게 태양을 가득 받으며 사람들로부터 노출된 상태가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서 그냥 계속 걸어 나갔다.


주택가 구역을 지나가고 있으니 현지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철을 모르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과 그 아이들의 꽁무니를 마냥 즐거워하며 꼬리를 흔들며 뒤따르는 강아지들, 그리고 지나가는 나를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정답게 느껴지며 나를 잠시나마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태국인들의 미소는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주말 오후에 여유롭게 거닐어 보는 것은 내가 태국에 온 이후로 어쩌면 처음인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왠지 나는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국을 떠나는 즈음에 망중한 속에서 태국의 삶의 한 평화로운 단면을 나는 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잤고, 더운 기운이 느껴져 더 이상 잠을 자기가 힘들어지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리게 되자 나는 오늘이 녹과 헤어진 다음 날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마음이 허하였지만 이상하게도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어쩌면 내가 이전부터 이별을 준비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또한 '녹은 어제 어떤 하루를 보냈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녀도 나처럼 헤어진 다음 날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녹이 궁금해졌다. 어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상대방이 누구일지를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애를 썼다.


샤워를 하고 나는 집을 나왔다. 건물 관리실로 가서 며칠 후 이사를 나가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관리실 직원은 이사 나가는 날 아침에 모든 비용에 대해 정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얘기를 해 주었다. 이 아파트는 이사 당일 날 한꺼번에 정산이 이루어질 수 있어서 편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살았던 고급 아파트는 주인이 인도인이었는데, 이사를 나오며 비용 정산을 하는데 꽤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집주인은 당시에 여러 가지 트집을 잡으며 내가 맡긴 보증금에서 하자보수비용을 상당 부분을 제외하고 나에게 주었는데, 그 돈을 돌려받는데도 몇 달이 걸렸었다.


오후에는 무에타이 체육관에 가서 관장과 트레이너들에게 며칠 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미 그들은 내가 귀국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귀국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많이 아쉬워했다.


그날 오후와 저녁은 무에타이 체육관에 앉아서 별도로 훈련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다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년 넘게 땀을 흘리며 보냈던 곳이라고 생각하며 그 공간을 최대한 기억 속에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모든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입력하고 있었다. 라차담넘 경기장에서의 시합 이후에 나는 어느덧 체육관에서는 유명스타가 되어 있었다. 나의 경기 모습 영상이 편집되어 체육관 홍보를 위해 몇 분 동안 반복하여 재생되도록 제작되었고, 체육관 벽에 걸려 있는 텔레비전에서 계속 그 영상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만들어진 체육관 홍보용 포스터에도 나의 모습이 들어가 있었다. 평소 운동하던 연습생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할 때마다 나는 그들과 같이 포즈를 잡아 주었다.


저녁 아홉 시가 되고 체육관이 끝나고 나서 나는 트레이너들과 같이 체육관 소품들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관장과 트레이너들을 데리고 한국식당으로 가서 갈비를 사주었다. 한국 대중문화와 함께 한국음식들도 태국인에게 많이 알려진 후로 한국음식은 태국인들이 먹어 보고 싶어 하는 외국음식이 되어 있었으므로 그들은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먹었고 나는 그들과 같이 취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녹과 헤어진 다음 날 밤을 보내며 하루를 마감해 갔다.


다음 날은 짐정리를 시작하였다. 크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짐정리는 하루종일 걸리는 작업이었다. 모든 것을 다 한국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었으므로 비행기로 가지고 갈 물건의 양만큼으로 줄여야만 하였다. 그동안 입었던 옷들 중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만 가방 속에 넣고, 나머지는 종이 박스에 넣어 밖에 놔두었다. 버려진 헌 옷들은 방콕에 일을 하러 온 미얀마인들이 주로 가져갔으며, 그들은 아파트에서 주로 청소 일을 하고 있었다. 선풍기, 다리미 등 가전제품들은 타나카에게 주기로 했다. 태국에 도착한 이후에 돈을 어느 정도 주고 구입한 전자제품들은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이었다. 저녁이 되자, 모든 것이 정리되었고 나는 언제든지 가방을 끌고 이 공간을 나와서 공항으로 가버리면 될 정도가 되었다.


밖이 어두워지자 밖으로 나왔다. 언제나처럼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평범한 얼굴의 태국 아가씨가 일하는 길거리 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다. 식탁에 앉아서 거리를 바라보니 이곳 길거리 식당 거리에서 저녁을 해결하려고 모여든 현지인들과 외국인 배낭여행객들로 붐비기 시작하였다. 그들을 술안주처럼 한참 동안 구경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술에 약간 취해서 얼큰해져 있는 상태에서 녹이 옛날에 일하였던 그 육중한 건물 앞까지 걸어가서 입구의 문 앞에 섰다. 녹을 처음 만났던 이 건물은 여전히 육중한 자태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건물 안의 로비에는 여전히 여사장과 남자 지배인, 종업원 아가씨들과 그리고 큼직한 열대어들이 느릿하게 움직이는 수족관이 오늘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건물 앞 버스 정류장의 의자에 한 시간 넘게 멍청하게 앉아서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해 보았다. 여기서 녹을 혹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막연하게 기다렸던 많은 밤들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차라리 그 애틋한 시간들이 그 이후의 시간들보다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귀국하는 날 아침이 밝아 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열어 보았지만 녹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메시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다가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샤워를 마친 후 옷을 입고 가방을 끌고 방을 나왔다. 오랫동안 나의 거처였던 조그만 공간의 방문을 마지막으로 닫았다. 이층 복도의 맨 끝이었던 나의 공간은 그동안 조그만 나의 안식처였었다. 복도로 걸어 나와서 계단을 힘겹게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관리실 건물로 가서 직원에게 정산을 하고 보증금 중 나머지 돈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백 바트를 관리실 직원에게 주며 저녁에 돌아올 테니 가방을 보관해 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아파트를 나와서 지상철 역으로 가서 동쪽 방향으로 가는 지상철에 몸을 실었다. 지상철의 동쪽 마지막 정거장까지 타고 가서 그 역에서 내렸다.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이미 한번 타본 적이 있던 버스노선이어서 익숙해져 있었다. 태국인들이 차창 밖을 무표정으로 바라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들의 얼굴들을 관찰하다 어느새 그들과 같이 무표정이 되어서 차창 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어느 정거장에서 나는 버스에서 내렸고, 그 동네 속을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녹의 언니가 하는 식당 가게 앞에 멈추었다. 식당 종업원에게 사장님이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한 시간 뒤에 돌아올 거라고 들었다. 아마 어디 볼일이 있거나 저녁 장사를 위하여 음식재료들을 사러 갔으리라 생각되었다.


나는 녹의 언니 식당에 앉아서 맥주와 돼지고기 다진 요리를 시켜서 두 시간 정도를 보냈다. 늦은 오후가 되자 녹의 언니가 나타났다. 그녀는 나를 보자 몹시 놀랬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렇게 연락도 드리지 않고 불쑥 나타나서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 오늘 밤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다시 태국에는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장 선생님. 그렇군요. 귀국하실 거라고 녹에게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에 떠나시는 줄은 몰랐어요. 녹이 혹시 공항에 나오는가요?"


"아니오. 녹은 공항에 나오지 않을 겁니다. 며칠 전에 그녀와 헤어졌습니다. 서로에게 이별에 대한 말은 전혀 없었지만 저도 그리고 녹도 이전부터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 왔던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안타깝네요. 장 선생님 좋은 분이셨는데. 그리고 우리 녹과 잘 어울렸는데요."


"제가 부족한 탓이죠. 녹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저에게 영원히 기억될 거예요. 그리고. 저.. 이 것을 녹에게 전해 주세요."


나는 돈이 든 봉투를 녹의 언니에게 건네주었다.


"제가 직접 녹에게 주었으면 그녀는 절대 받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녹이 전문대학을 가고 싶어 했어요. 이 돈이 있으면 앞으로 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제가 왔었다는 얘기는 제가 떠난 이후에 녹에게 해주세요. 저의 마음도 괴롭지만,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나는 뒤를 돌아서 바로 나와 버렸다. 나의 마지막 무에타이 시합에서 승리한 후에 내가 받은 대전료와 승리포상금을 전부 녹에게 주었던 것이다.


방콕으로 다시 돌아와서 가방을 찾아 스완나폼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였다. 나의 마지막 방콕의 야경은 그림처럼 차창 밖으로 지나가고 있었고 어느덧 택시는 스완나폼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자정이 지나자 내가 탄 비행기는 힘찬 엔진소리와 함께 활주로를 이륙했다. 방콕에서의 삼 년 동안의 추억을 뒤로한 채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