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나카의 가게에서 나와 길모퉁이를 돌아서 걸었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내가 이년 정도 살았던 낡은 아파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 건물에 거주할 당시에는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른 이 순간에는 희미한 불 빛 속에서 남루한 건물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건물 앞으로 다가서서 내가 살았던 이층의 맨 끝 공간을 쳐다보았다.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는 듯이 베란다 밖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외로움의 공간이었고 저 안의 유일한 친구는 벽면에 붙어 다니던 어린 도마뱀들이었다. 저 공간을 건물 밖에 서서 나는 한참 동안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 떠났다. 택시를 잡아서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나는 낮에 출장업무를 모두 마쳤고, 그다음 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딘가 가보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곳은 내가 이번에 방콕 출장이 결정된 순간부터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녹의 언니가 장사하던 식당으로 직행하였다. 복잡한 방콕 시내를 벗어나서 한참을 달려 녹의 언니가 살던 동네가 있었던 곳에 멈추었다. 차에서 내려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 년 만에 찾은 그 동네는 어느덧 낯설어져서 골목들이 기억에 희미해져 겨우 겨우 기억을 살리면서 한 발씩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녹의 언니의 가게 부근으로 가까이 갔다. 하지만 언니의 가게와 인접 건물들은 그 자리에 없었고 새로 생긴 듯한 낯선 건물들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과 오 년 만에 이 지역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여기 혹시 완이라는 여자가 하던 식당이 있던 자리가 아니었나요?”
나는 그 건물 안에 들어가 처음 마주친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속옷 상의 차림으로 선풍기를 틀어 놓고 쉬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들어온 외국인인 나를 보고 놀라는 듯하였다. 나의 서투른 태국어가 오히려 그를 더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차근차근 뭐라고 설명을 해주려고 하였다. 오 년 넘게 태국어를 쓰지 않았던 탓에 나의 태국어는 더 녹슬어 버렸고, 그의 말은 부분적으로만 이해가 되었다.
“식당은 없어요. 몇 년 전에는 있었죠. 그 식당 음식이 맛있었지. 그 가게 주인 여자가 완이라고 했었던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가게 건물이 없어지면서 여기를 떠나야 했죠. 아마 방콕으로 들어갔던지 아니면 방콕 외곽 다른 동네로 가서 가게를 다시 열었을 수도 있어요.”
“아. 그렇군요. 혹시 가게 주인과 같이 살던 여자가 또 없던가요?”
“여동생이 같이 살았어요. 어디 학교를 다녔던 것 같던데. 대학생 교복을 입고 나가는 것을 가끔 봤거든요.”
“그 여자들이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 수 없을까요? 혹시 이 동네에서 그 자매들과 친했던 사람들 없나요?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나는 그 식당에 가서 밥만 먹었지. 그 사람들 소식을 몰라요. 다른 사람들도 그 식당주인 소식을 몰라요.”
“네. 그렇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태국 남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방콕근교의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더 확대되어서 이 지역까지 지상철이 연장되게 되었고 지상철 근처의 지역들이 재개발에 들어가게 된 것 같았다. 나는 텅 빈 공허감으로 낯설게 변해버린 녹의 언니의 가게가 있던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녹의 소식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슬픔은 비가 되어 내 마음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시 태국에서 내가 사용한 폰은 이제 고장이 나서 전원이 켜지지가 않았고, 지난 시절 습관적으로 직통버튼을 눌러서 녹에게 전화를 걸었으므로 그녀의 전화번호가 더 이상 생각나지가 않았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추억 속에 묻혀 버린 사람으로 녹은 남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뒤돌아서 그 동네를 걸어 나왔다. 오 년 전에 녹과 헤어진 그날은 내 마음이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이 아팠다고 기억이 났지만 지금은 심한 공허감으로 모든 것이 포기되는 듯이 허탈해져 왔다.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방콕시내로 향했다.
어수룩해진 밤거리의 방콕이 다시 나를 맞이해 주었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택시를 어느 거리에서 멈추게 하였고, 거기에서 계산을 하고 내려 버렸다. 녹의 언니의 가게는 세월 속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육중한 그 건물은 여전히 나의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밤안개 속에서 건물의 네온사인은 희미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녹과 처음 만나게 되었던 그 건물 앞에서 나는 잠시 서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일했던 과거를 잊고 싶어 했지만, 나에게는 그녀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또 하나의 장소였던 것이다. 건물 앞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방콕의 밤하늘로 뿜어 보았다. 지난날처럼 거리의 가로등은 나를 무심하게 비추고 있었다.
길을 걸어 타나카의 가게에 다시 찾아갔다. 오늘은 어제보다 손님이 적었고 타나카는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랬다.
“타나카. 나 오늘 또 왔어.”
“장. 네가 오늘 다시 올 줄 몰랐어. 암튼. 다시 와주니 고맙네. 이제 한국으로 가버리면 언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잘 왔어. 너 한국으로 가기 전에 이야기나 실컷 하자.”
“조금 전에 녹을 찾으러 갔다 오는 길이야.”
“녹? 아 그 여자. 장이 태국에 있을 때 만났던 여자 맞지? 그래. 너는 그 여자가 생각이 많이 났을 거야. 보통 인연이 아니었던 사이였는데. 그런데, 그 여자 만나 봤어?”
“아니. 못 만났어. 녹의 언니가 하던 가게를 가 보았는데, 그 가게자리가 이제는 통째로 없어졌어. 아예 그 동네 전체가 재개발이 되었는지 완전히 모습이 변했더라고.”
“아. 그랬구나. 음. 안타깝네. 몇 년 사이에 방콕 외곽지역으로 개발이 많이 되어 버렸어. 지상철 노선도 더 연장되었고.”
“나는 그런데, 녹과 녹의 언니 전화번호를 외우지를 못해. 참 한심하지?”
“요즘 사람들이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바로 눌러서 그래. 편하기는 하지만 그런 단점이 있는 거야. 한국에 가서 핸드폰 기계를 바꾼 모양이구나.”
“맞아. 태국에서는 아이폰 구형을 쓰다가, 한국에 가서는 갤럭시로 바꾸었지. 그때 저장된 정보를 이동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아.”
“나는 녹이라는 여자를 너한테 얘기만 엄청 많이 듣기만 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내가 찾아 줄 수도 없겠구나. 방콕에 사는 인구도 엄청나니까 어려울 거야. 그리고 그 여자는 녹이라는 이름도 아마 다른 이름으로 바꿔서 사용할 거야. 애칭이니까, 새 인생을 시작하려면 다른 이름을 쓰기 시작했을 거야.”
“그래. 아마 그랬을 것 같다. 타나카. 너는 태국여자를 만나서 헤어지지 않고 결혼까지 했구나. 나는 대신에 녹이라는 태국여자를 사귀다가 버렸고.”
“장. 그런 소리 하지 마. 모두 다 인연이 없어서 그런 거야. 너와 녹의 인연은 아마 거기까지였을꺼야. 하지만 둘이 만나고 있을 때의 시간들은 추억이 되어 서로에게 영원히 남을 거야. 녹도 아마 너를 그리워하며 간간히 너와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살고 있을 거야. 지금 만날 수 없다면 너도 마음속으로 그녀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며 살아가면 되는 거야.”
“고마워. 타나카. 나도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언제 방콕으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메일로 간간이 소식 전해 주께. 너도 잘 살고 있고. 내년에는 애기 아빠가 되겠구나. 안녕. 잘 있어.”
타나카의 가게를 나왔고, 한 시간 넘게 일부러 걸어서 호텔에 도착하였다. 더운 낮의 열기가 가라앉은 방콕의 밤공기는 그런대로 선선하였으나, 밤거리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들은 나의 마음을 더 쓸쓸하게 하였다. 다음날 출국준비를 위해 짐을 정리를 하고 난 후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스완나폼 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다 교통체증이 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상철을 어느 정도 타고 가다 내려서 택시를 다시 잡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출근 시간 이후의 지상철은 이동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조금 전에 도착했던 지상철을 그냥 보내고 다음 지상철이 올 때까지 나는 플랫폼에 서 있었다. 순간, 나는 시선이 멈추었다. 같은 플랫폼의 저 멀리 서 있는 여자 대학생은 녹이 틀림없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새하얀 원피스에 치마를 입고 맵시 있게 가방을 메고 있는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는 녹이 아니었다. 낯선 외국인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 여대생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태국인 특유의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도 머쓱한 얼굴의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정말 녹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녹이 그토록 바라던 대학을 다녔더라면 분명히 저 여대생처럼 보였을 것이었다. 조금 전 그 여대생은 지상철이 오자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자 지상철은 그녀를 싣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녀가 타고 떠나버린 지상철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다보고 있었다. 녹과 헤어지던 그 순간에 그녀가 타고 사라졌던 택시의 모습이 떠올랐다.
녹과의 추억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나는 쓸쓸함만을 가진 채 방콕을 떠나게 되었다. 스완나폼 국제공항은 오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행자들의 심정과는 아랑곳없이 크고 씨끌벅쩍한 소리가 가득 차고 있었다. 그 소음을 가로질러 나는 출국장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 후에 다시 몇 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어는 날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만나 뵈었다. 최근 들어서 건강이 더 안 좋아지신 얼굴이었다.
“서혁아. 너는 이제 결혼해야 할 나이가 훨씬 지났으니, 올해는 반드시 장가를 가거라. 나도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결혼해서 애들 낳고 사는 모습 보고 이 어미가 죽고 싶구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엄마. 앞으로 몇십 년은 더 사셔야죠.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엄마 건강에만 신경 쓰세요. 요즘도 꾸준히 병원 다니시죠?”
나는 그날 고향을 떠나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기 전에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는 몇 달 후에 어머니의 친구 분의 소개로 만난 여인과 만나서 사귀다가 다음 해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너무 과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능력도 있고 마음씨와 얼굴이 고운 여자였다. 지금의 나의 아내를 만나면서 나는 마음의 안정을 다시 찾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방콕에서의 지난 삼 년 동안의 추억들을 내 마음속 어느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지금은 한 여자의 남편이자 그리고 두 아이들의 아빠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