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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Key Apr 03. 2023

<무경계>를 읽으며 나의 '선'들을 마주하다 (1/2)

<누구한테 뭐래, 나부터 잘해야지> 시리즈 (1)


몇 해 전 굉장히 생소한 주제의 드라마가 히트를 쳤다.

야구 드라마이지만, 야구는 나오지 않는 드라마.

야구단이 비시즌 기간 동안 시즌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는지를 보여준 드라마, 바로 <스토브리그>이다.


탄탄한 줄거리와 배우들이 세세하게 표현한 열연으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탄생시킨 드라마인데

드라마에서 나오는 빌런이 만들어 놓은 어려운 상황, 선수들의 연봉을 삭감시킨 상황 속에서

구단 운영진과 선수가 서로 으르렁 거릴 수 밖에 없었던 연봉 협상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선수들 중에서는 삭감된 연봉을 강하게 저항하는 선수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팀에서 포수를 맡고 있던 선수였다.

단장과 운영팀장이 무릎 부상으로 힘겹게 야구를 하고 있던 포수와 

계약을 하기 위해 만난 자리는 술집이었다.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선수는 본인의 무릎 부상을 한번 느껴보라며 

서류를 챙기던 단장의 무릎에 양주를 쏟아붓는 무례함을 저지르게 되었고

이 상황에 너무 화가 났던 운영팀장이 술잔을 벽에 집어 던져 깨면서 

시원하게 사이다 욕설을 날리는 장면엔데,

이때 포수와 팀장이 나눈 대화에서 이런 대사를 주고 받았다.

포수 : "팀장, 너 선 넘었어 지금!"

팀장 : "선은 니가 넘었어!"


<스토브리그 드라마 장면 중>

박은빈 배우가 시원하게 내뱉은 이 장면은 드라마 촬영 이후 배우들이 꼽은 명장면 1위로 선정이 되었는데,

오늘 이 시간에 해보려고 하는 이야기는 바로 대사 속에 등장하는 '선'이다.




■ '선'과의 첫 만남을 경험하다 

'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다가

일상 속에서 자주 하는 행동 중 하나인 '선긋기'가 떠올랐다.

드라마 속의 장면에서 양쪽을 극단적으로 나누어버린 것은

어느 누군가가 그어 놓은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선'으로 인해,

그 선을 경계로 해서 내편과 내편이 아닌 쪽으로 명확한 구분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때로는 눈에 보이기도,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선을 긋고 구분을 하면서 지낼까?"


이 '선'이라는 주제는 나도 오랫 동안 고민해오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인생이 늘 그러하듯, 우연한 기회로 '선'에 대해 생각을 시작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켄 윌버의 <무경계>라는 책을 읽으면서 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켄 윌버의 의식과 관련된 통찰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서 

지금 이 시간에 <무경계>라는 책을 요약하거나 

책을 읽은 후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선'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나의 삶을 돌아보았는지,

그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지 정도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 지금 이렇게 미리 선언한 것도 어쩌면 선을 긋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아주 큰 고민 없이 사용해 오던 그 단어를 <무경계>라는 책을 읽게 되면 많이 만나게 되는데,

책의 첫장부터 한번에 수용하기 어려운 정도의 개념으로 소개가 된 것으로 기억한다.

책을 읽으면서 선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가장 먼저 구분한 선의 개념이 앞선 드라마의 사례와 같이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경계를 의미하는 '선'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선을 그으면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러한 선긋기는 1차원적이지 않다. 다차원적이다.

선 안쪽에 속하기 때문에 내 것에 포함이 되지만 

선 안에서 또 선을 어떻게 긋는가에 따라서 또 내가 되기도 나의 것이 되기도 하는

쉽게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미묘하게 생각을 계속하게 만드는

대단히 무거운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심지어 켄 윌버는 시간까지도 선을 이용해서 흔히 사용해오던 과거-현재-미래의 개념을 뒤틀어 버린다.

만일 당신 앞에 하나의 직선을 좌에서 우로 쭉 그어주고서 

과거, 현재, 미래를 한 점씩 찍어보라고 하면 어떻게 표기할 것 같은가?

내가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왼쪽이 과거, 직선의 한가운데를 현재, 그리고 

오른쪽 어딘가에 미래라는 점을 찍어서 표기를 했다.

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와 미래는 상대적으로 기준점을 잡기가 쉽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의 지점으로부터 지난 날의 시점을 과거라고 칭하는 것은 이견이 없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점의 일을 미래라고 하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거와 미래가 명확해지기 위해서는 이 둘을 나누는 기준점인 현재가 명확해야 한다.

만일 기준점이 분명하지 않게 된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과거와 미래에 대한 구분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거듭할수록 현재를 정의하는 방법이 정말 말도 안되게 어렵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고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시간에 이렇게 무감각하게 막 살아왔다니)

현재를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 또한 잘못 생각해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정말 세상에 맙소사'라며 놀라거나,

'뭘 그렇게까지 세상을 복잡하게 사니'라며 적당히 타협하는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 이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선'이라는 개념을 만나게 되니 생각의 확장이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난 경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선' 이야기를 계속하다보니, 

이 선은 2차원 공간 속의 직선인지 곡선인지 혹은 

3차원 공간의 구의 형태인지 생각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고

장소만 나누는 것인지, 시간과 함께 나눠지는 것인지 등 

세상을 그리고 내 기억을 완전히 색다르게 인식하게 되어 전과 다른 관점을 갖게 되는 경험들이다.




■ '선찾기' 놀이에 빠지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그동안 그어 왔던 다양한 '선' 찾아보기 놀이에 빠졌다.

다양한 선들을 발견하고 관찰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내가 선 안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었고, 

선 밖에 있으면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더욱 더 선 안쪽에서 머무르기를 원했는데

이는 어쩌면 생존을 위해 외부의 적으로부터 안전함을 유지하려는 경험이 쌓이며 

이것들이 DNA에 각인된 자산일 수도 있다.

*선 안에 머물기를 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선 찾기 놀이에 한창 빠져 있을 때 발견한 또 신기한 것은

내가 그어 놓은 선은 때로는 계속 추가가 되기도 하고

이동을 하기도 하고, 흐릿하게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떠한 선을 긋는다고 해서
평생 그 선들과 함께 사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큰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처음 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선은 나를 정의내리는 기준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짓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누군가 그 선에 대해 공격을 한다고 느껴지면 본능적으로 내 선을 보호하려고 했다.


나를 정의내리는 너무나 강력한 선은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선 넘어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껍고 높아서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절대적인 기준처럼, 결코 변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높고 두터운 선이 움직인다? 심지어 어느 순간 선이 흐릿해지면서 없어지기도 한다고?

이러한 생각의 발전은 개인적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이 새로운 발견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선에 의해 압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유 의지를 갖고 선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는 느낌이 너무 소중했기에 즐거운 발견이었다.

다만, 이렇게 선을 움직이거나 선을 흐릿하게 지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 선은 나만 긋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선들 중에서는 내가 그은 것 이외에도 남들이 만들었지만 나에게 영향을 주는 선들도 굉장히 많다.

예를 들면 가족 구성원으로서 이미 정해진 선 안에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속한 모임, 조직에서 정한 선 안에서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흔한 예를 한 가지 든다면 그것은 '명함'이 아닐까?

처음 나를 만난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흔하게 활용하는 것이 명함이다.

이거 한장이면 어느 정도 나를 알릴 수 있으니 참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 작은 종이 위에는 내가 어느 회사에 소속이 되어 있고

그 회사에서는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대략 어느 정도 일을 했고 어떻게 나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 정보 하나 하나가 '선'이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생각보다 우리는 많은 선들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그 조직에서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그 선들은 지워지지도 않고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선들을 지우려고도 하지 않게 된다.

그 선이 바로 나를 정의내리고 있기 때문이고, 

어쩌면 그것이 '나'라고 생각하며 안정감 속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선을 인지한 후에도 선을 움직이거나 지우는 행동을 하기 어려워 보인다.

꼭 그럴 필요성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굳이 어려운 선택을 할 이유는 없겠지만.

어쩌면 선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낼 가능성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옆에 있었다면 그 존재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어 있는지 조차 잊고 지내기도 하니까.




지금까지 '선'이라는 주제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았다.

자주 사용하기도 했던 선이라는 단어이지만 

내가 삶을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세상과 소통하는 데에 영향력이 큰 필터인

선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관찰은 내가 내 의지대로 살아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하나의 인식이라 생각한다.


선을 긋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내가 그 선을 통해 어떻게 구별을 하며 살아오게 되었는지,

또 어떠한 선을 그리고 있는지, 그 선은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등

선 찾기 놀이를 통해 내 삶의 기준을 조용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 선들은 영원불멸한 존재가 아니라 나의 자유 의지로 새로 만들 수도 옮길 수도 그리고

필요하다면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떠한 선들 속에서 지내왔는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그 선들을 하나씩 찾아서 마주해보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시작하면서 이러한 선놀이에 잠시 빠졌었다는 것은 참 의미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선을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게 되니, 그 다음엔 그 선을 넘어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인데

선을 넘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아주 짧게 경험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만일, 나의 '선'에 대한 주절거림에 조금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면

오늘 나는 어떤 선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꼭 해보라고 제안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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