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른 거 주세요!
마트에 가면 항상 과일을 골라주시는 아저씨가 계신다. 내가 천천히 보고 고르고 싶어도 아저씨가 뭐 드릴까요? 하면서 다가오시니 뭐 주세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된다. 아저씨는 이게 신선해요. 저게 신선해요. 이게 이렇게 보여도 맛은 있어요. 이건 보기보단 덜 익은 거예요 하면서 이것저것 추천해 주신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는 전문가겠거니. 하면서 아저씨가 골라주시는 복숭아며 수박이며 사과를 샀다.
그런데 작년 여름에 어른들이 오실 거라고 좀 잘 익은 복숭아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더니 복숭아를 골라주셨다. 집에 가서 막상 뜯어보니 물러도 너무 무르다. 신선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어른들이 드실 거라고 말을 했으니 이렇게 좀 많이 말랑한 복숭아를 골라 주셨겠거니 생각했다. 그 뒤에 수박을 사러 갔다. 내가 알기론 수박 꼭지가 신선하게 붙어 있고 검은색 줄이 선명하며 밑에 꼭지가 조그만 것이 가장 맛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걸 고르려고 했더니 아저씨가 그런 건 덜 익은 거란다. 그러면서 약간 흠집 있고 꼭지가 덜 신선한 것을 나에게 추천해 주셨다. 수박은 사실상 그런 게 더 맛있는 거란다. 아저씨가 너무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샀다 그런데 사각사각하고 좀 아삭한 수박을 좋아하는 우리는 그 수박이 너무 익었다 싶기도 하고 신선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번에 또 수박을 사러 갔는데 아저씨께서 또 그런 것을 추천해 주시는 거다. 순간 조금 화가 났다. 내가 너무 고분고분 골라주는 대로 받아가니까. 신선하지 않은 걸 나한테 팔아 넘기려고 하는 생각인가 싶은 삐뚠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저번에 골라주신 거 신선하지 않았어요라고 말씀드렸다 말하고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아저씨도 기분이 나쁘신 듯 이건 종이 달라요라고 큰소리로 무뚝뚝하게 한마디 하셨다. 그리고 내가 고른 것을 계산대 위로 옮겨주셨다. 내가 조금 더 부드럽게 말을 했어야 했나 싶었다
근데 난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항상 좋은 게 좋은 거지. 서로 감정 상하지 말아야지. 안 볼 사이도 아닌데 이런 이유들로 항상 상대방의 뾰족한 말도 좋게 받아들이고 좋게 대우했다. 항상 웃으며 반응했고 모난 말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근데 그렇게 진심으로 대우하니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 대신에 쉬운 사람이 되었다. 나 스스로는 내가 쉬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사람들은 자신에게 보이는 면이 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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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취향도 까다롭고 사람도 가려 사귀고 속으로는 저 사람이 어떤지를 하나하나 재는 편인데 정작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상대방은 내가 웃으면서 다 받아주면 그냥 다 받아주는 사람인가 보다. 쉬운 사람인가 보다 좀 막 해도 되는 사람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요즘 그게 화가 났다. 그래서 그 삐뚠 마음이 엉뚱하게도 과일가게 아저씨한테 표출됐었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주면 주는 대로 받아가니 호구손님 같아 보이나 보다라는 삐뚠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다음 주에 또 그 마트 가야 하는데 뭔가 마음이 불편해졌다. 몇 년간 인사 주고받던 아저씨와 대면대면 불편할 걸 생각하니 조금 멀어도 다른 마트를 갈까 싶기도 하다. 아 인생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