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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중 김범순 Sep 23. 2024

딱 기다려 네덜란드

11. 색다른 추석

호텔 오쿠라 암스테르담


9월 17일 추석

33년 만에 처음으로 제사 지내지 않는 추석을 맞았다. 우리는 설과 추석 두 명절만 제사를 모신다.


형님댁은 교회에 다녀서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준비해 놓고 추억담을 나누며 추도 예배만 드렸다.


재산 문제로 형님댁과 의절하면서 우리는 남편 외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나의 외할머니 이렇게 네 분의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시숙이 쫓아와 기독교 가정에서 우상숭배가 웬 말이냐고 펄펄 뛰었다. 남편은 무슨 참견이냐고 소리치며 맞서고 나 역시 한마디 했다.


  "제사는 우상숭배와 엄연히 다릅니다. 조상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거라고 봐주시면 안 될까요?"


종부인 외할머니가 제사 지내는 모습만 보며 자란 나는 제사가 좋았다. 사돈지간을 한 제사상에 모신다는 건 제례에 어긋나지만 나와 남편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오쿠라 호텔 사잔카 식당  입구


벽을 파내고 꽃 장식을 하다니

아이디어가 통통 튄다.


수반에 꽂은 꽃


꽃이 호텔 주인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맞이하는 것 같아 기분 좋다.


그릇과 수저 


옛날에 사용하던 그릇의 모양과 질감을 살려 재현한 것 같다.


일식 클래식 코스


놋그릇으로 덮어 놓은 곳에서 고기가 익고 있다. 철판 가장자리를 만져봤더니 따뜻했다.


딸이 지난해 왔을 때는 안쪽에 있는 다른 곳이었다며 이 식당은 철판요리로 유명하다고 했다. 자식이 아니면 누가 나한테 골고루 맛보게 해 주려고 이렇게 마음 쓰겠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일본어와 한자 벽 장식


이 식당은 철판 하나에 여덟 명이 앉도록 예약을 받기 때문에 생면부지의 미국인들과 동석해야 했다. 영어를 할 줄 알면 특별한 인연이라 즐거울 수 있겠지만 벙어리나 다름없는 나한테는 그림의 떡이었다.


첫 요리


두말할 것 없이 쇠고기 장조림 맛이었다.


직원이 왜 안 먹느냐고 물어서 맛이 없어서라고 했다.


생선을 덮고 있는 하얀 구름송이


맛있겠다고 했더니 사위가 웃었다.


완성된 생선 요리


하얀 꽃구름 위에 김이 깔리고 생선과 바삭하게 구운 껍질을 올렸다.


꽃구름부터 집어 들었더니 사위가 크림처럼 만든 소금이라 짜서 못 먹는다고 했다. 생선에 소금을 직접 뿌리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스미게 해서 풍미를 더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선 맛은 그냥 그랬지만  껍질 구이는 일품이었다. 김은 조화로운 색을 내기 위한 곁들이 장식이었고.


언제나 반가운 바닷가재


우리 팀은 사위, 딸, 작은손녀, 초등생 손님까지 다섯이고 동석한 팀은 미국인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으로 셋이었다. 그런데 가재는 일곱 마리뿐이었다. 사위한테 물어보니 미국인 남자 한 사람이 다른 요리를 시켜서 그렇다고 했다.


직원이 갑자기 전등을 껐다. 내가 놀라니까 사위가 웃으며 사진 찍을 준비를 하라고 했다.


철판 요리 불꽃쇼


처음 보는 거라 축제가 열린 것처럼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자태를 드러낸 바닷가재


바닷가재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많이 먹어본 것 같으나 사실은 자주 못 먹었으니 맛이 훌륭할 수밖에


요리사는 열심히 철판을 닦아내며 바닷가재에 이어 쇠고기를 구웠다.


직원이 어떻게 익힐까요 하기에 바짝 구우라고 했다. 쇠고기 바짝 구우면 딱딱하다고 누가 그랬지? 부위가 어디인지 어디서 생산했는지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다.



고기에 이어 볶음밥이 나왔다. 채소, 버섯, 닭고기를 구워 정성껏 볶은 밥인데 싱겁고 맛이 없어서 거의 먹지 않았다.


후식을 위한 팬케이크와 파인애플


군침을 흘리며 아이스크림과 딸기를 쳐다보았다.


두 번째 불꽃쇼


후식을 만든 요리사가 경력이 더 오래됐는지 불꽃이 장엄했다. 이번에도 호들갑스럽게 탄성을 질렀다.


내 앞에 놓인 스페셜 접시


사위가 예약할 때 네덜란드 방문을 환영하다고 스페셜 접시를 나한테 주라고 한 것이다.


작은손녀와 초등생 손님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스페셜 접시의 하미과는 환상적으로 맛있었다. 비행기에서 주는 하미과는 박이나 다름없어 원래 그렇게 맛없는 과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호텔에서의 저녁식사이고 스페셜 접시까지 받을 줄 알았더라면 정장을 입고 올 걸 그랬다. 추석 전후로 너무 추워서 티셔츠를 세 개나 껴입고 잠옷 바지도 내복처럼 입었으니 행색이 참!


아름다운 후식 접시


팬케이크는 정성을 들여 만든 것에 비해 맛없고 딸기와 구운 파인애플과 아이스크림은 아주 맛있었다.


2024년 추석은 그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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