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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중 김범순 Oct 12. 2024

사는 게 즐겁다

5. 친구

사진 : 김범순 - 신라 매장이 있는 쇼핑센터(Gelderlandplein) 암스테르담


김 여사가 솜씨 좋은 찬모로 한창 이름을 날릴 때였다. 코흘리개 적 친구 선희가 물어물어 식당으로 찾아왔다.

 

하나 있는 아들은 외국에 살고 긴 세월 남편 병 치다꺼리로 가세가 기울어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고 했다. 마침 김 여사가 근무하는 식당에도 일손이 필요했다. 


  “어지간히 약해빠져야지. 너 그 몸으로 홀 서빙할 수 있겠냐?”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야. 써주기만 하면 내일부터라도 출근할게!” 


식당에서 일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선희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김 여사는 힘겨워하는 선희를 정성껏 보살폈다. 빈집에 들어가기 무섭다고 하면 기꺼이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거나 선희네 집에 가서 함께 잤다. 외롭고 가난한 처지의 두 사람은 2년 넘게 서로 의지하며 듬뿍 정이 들었다.


편편 약질인 선희였다. 선희는 끝내 힘에 부쳐 식당을 그만두고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매일 통화했지만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순자야, 나 축하해 줘!”

  “우리처럼 팔자 사나운 년들한테 축하는 무슨 얼어 죽을 축하?”

  “나, 결혼해!”


선희는 요양보호사로 수발들던 남자와 재혼한다고 했다. 


결혼식장에 가보니 신랑감이 번듯하고 퇴직한 공무원이라 연금을 꽤 많이 받는다고 했다. 김 여사는 곱디곱게 자라 몸도 못 가눌 정도로 힘들어하던 선회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런 한편.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럽고 강샘이 났다. 


김 여사는 예식장에서 돌아오는 길로 앓아누웠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했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갑자기 견딜 수 없을 만큼 온몸이 쑤시고 아픈 게 이해되지 않았다. 


결근한 지 닷새가 지났다. 


언제가 되었든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던 식당 사장이 전화를 했다. 정신 못 차리게 바빠서 뚜껑이 열릴 만큼 화가 날 텐데 염려 전화까지 하다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사장은 늘 말했었다. 10년 넘게 근무한 직원은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20년 넘게 근무하니까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는구나! 어서 빨리 나아서 출근하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 


벨소리 세 번 울리는 동안 김 여사는 많은 생각을 했다. 식당 주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사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김 여사는 감격해서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아직 그대로예요. 하지만 덜 낫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출근하도록 할게요."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으면 다른 찬모가 오기로 해서 연락했습니다. 식당 사정 누구보다 여사님이 잘 아시잖아요?" 

사장은 전화를 탁 끊었다.


건강만큼은 타고나서 감기 몸살 한번 앓지 않았던 김 여사는 그렇게 어이없이 직장을 잃었다. 


김 여사는 35년 동안 찬모로 일하며 추석 설 명절 외에는 쉬지 않았다. 새벽 4시에 식당 주인과 장을 보고 반찬과 메인 요리를 만들며 16시간 근무하고 밤 8시에 퇴근했다. 


다른 찬모들은 열흘에 한 번씩 쉬며 늦게 출근하고 주인이 사다 주는 대로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인은 이윤이 우선이고 김 여사는 음식 맛이 우선이라 직접 신선한 식자재를 골라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했으니 어쩌면 아픈 게 당연한지도 몰랐다. 


여주에 살고 있는 선희 부부가 이틀에 한 번씩 와서 청소하고 음식을 장만하고 물수건으로 세수까지 시키며 정성껏 보살펴줬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김 여사였다. 


당장 먹고살아야 해서 마음 편히 앓을 수도 없었다. 김 여사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선희한테 물었다.


  “나도 요양보호사 할 수 있을까?”

  “그럼, 할 수 있고 말고. 잘 생각했어. 너도 나이가 있잖아. 요양보호사는 세 시간, 다섯 시간, 여덟 시간, 입주까지  근무 시간이 다양해서 식당보다 훨씬 편해.” 


품팔이로 생계를 잇느라 어머니가 어린 동생 셋을 맡겨 김 여사는 초등학교 4학년도 마치지 못했다. 김 여사는 이론 시험에 자신이 없어 고민을 깊게 했던 것이다.


선희는 쉽고 친절하게 이론을 가르쳐줬다. 일류 대학을 나왔으니 말해 무엇하랴. 김 여사는 아픈 몸으로 간신히 실습 시간을 채우고 시험장에 갔다. 문제지를 받아 드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앞이 캄캄했다. 눈을 부릅뜨고 읽고 또 읽었지만 선희한테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생전 처음 접하는 문제 같아 사법고시보다 더 어려웠다.


시험을 보고 난 김 여사는 크게 낙망했다. 아파서 식당 근무는 꿈도 못 꾸는 처지라 현재로는 요양보호사 밖에 없는데 물 건너간 것 같아서였다. 


정오가 넘도록 아침도 못 먹고 끙끙 앓고 있는데 선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귀찮아 죽겠구먼 어제 왔다 갔으면서 왜 전화는 하고 난리야? 짜증이 났지만 선희가 누구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희 전화는 받아야 하는 김 여사였다.


  "왜-?"

  "발표하는 날이라 확인했나 하고."

  "확인하나마나 떨어졌다니까!"


알았다고 끊었던 선희가 또 전화를 했다. 


김 여사는 확 짜증을 냈다.

  "왜? 또? 뭐?"

  "순자야, 너 합격했어. 축하해!" 



6. 요양보호사


사진 출처 : 고은별 인스타그램


김 여사는 매일 다른 집으로 출근했다. 


여자 노인 혼자 사는 집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숨넘어가는 시늉을 하며 아파죽겠다는 하소연과 귀여운 손자와 성공한 자식 자랑을 온종일 곱삶이로 들어야 하는 만만찮은 고충은 있었지만 비교적 깨끗했으니까. 


팔자를 고쳐볼까 부푼 기대를 걸었던 남자 노인 집은 번번이 실망만 했다. 


난방이 제대로 안 돼 방 안에 있는 걸레가 빳빳하게 얼어붙는 단독 주택 단칸방이 허다했다. 노후를 의탁할 배우자는커녕 오히려 발 벗고 나서서 도와야 할 불우이웃이었다. 


집이 추운 건 그렇다 치고 음식물 찌꺼기와 쓰레기가 더께로 말라붙은 방바닥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면 이해하겠지만 나이만 많을 뿐 충분히 치울 수 있는 상태인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를 애먹이려고 잔뜩 벼른 것 같아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 나빴다. 


말이 좋아 요양보호사지 근무 환경은 가사도우미보다 훨씬 열악했다.


칠십 갓 넘긴 편마비 수급자의 집에서는 경악할 정도로 모욕감을 느꼈다. 쓰레기통과 물통은 물론이고 각종 술병과 냄비, 국 대접에까지 오줌을 누고 요양보호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여사는 오줌을 들어 그대로 얼굴에 끼얹어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휙 돌아 나와 버렸다. 


센터에 가서 그 집엔 절대 가지 않겠다며 근무 환경이 나은 집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직원이 시건방진 투로 말했다.    

   “그 정도는 힘든 거 아니죠. 그렇게 까다롭게 구시면 일할 데가 없을 걸요.” 


보험공단에서 따박따박 지원금을 받는 센터의 역할에는 틀림없이 요양보호사 인권 보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 몰라라 하다니! 확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나마 센터 아니면 일자리를 못 구하니 입이 써도 할 수 없다. 


오줌 잔치가 모자라 덤도 있었다. 


덥석덥석 손을 부여잡는 추잡한 얼간이가 있는가 하면 야릇한 눈빛으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신음 소리를 내는 관음증 환자도 있었다. 아픈 몸으로 안간힘을 다해 청소하고 있으면 등 뒤에 바짝 들러붙어 귀 뒤에 콧김을 뿜으며 성기를 손으로 잡고 엉덩이에 비비는 변태까지 있었다.


정조 관념 뭐 그런 건 옛날에 엿 바꿔 먹은 김 여사였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고 돌아올 때마다 재수 없고 참담해서 길가에 자꾸 침을 뱉게 되었다. 


사명감 운운하는 인성교육은 개나 줘 버려! 


그런 한편 깊은 자괴감이 안개비처럼 몰려왔다. 


결정적으로 능력 있는 남자가 유혹해 주기 바라서 천직인 찬모를 그만두지 않았던가. 돈 많은 남자는 괜찮고 병들고 가난한 남자가 그러는 것은 혐오스럽고? 고달프게 살다 보니 인간쓰레기가 다 되었구나! 


김 여사가 찬모 모임에 나가 늘어지게 신세 한탄을 했다. 


미숙이 손님한테 들은 새로운 일감이 있는데 해볼 의향이 있냐고 했다. 그 일은 수입도 짭짤할 뿐 아니라 누군지 모르고 가는 요양보호사와 달리 마음에 드는 상대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장점은 또 있었다. 센터 직원 눈치 볼 필요 없고 수시로 교육받으라고 들볶이지 않으며 심지어 수수료도 없었다.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었다. 


그 말을 듣자 아프던 몸이 거짓말처럼 말짱해졌다. 


팔랑귀 김 여사는 금방이라도 팔자가 필 것 같아 풍선 먹은 강아지처럼 가슴이 부풀었다.



7. 첫 출근


사진 출처 : 고은별 인스타그램


첫 출근하는 날이 밝았다.


김 여사는 설레는 가슴으로 가방에 돗자리, 점심, 물병, 휴지, 물티슈 등을 꼼꼼하게 챙겼다. 그런데도 뭔가 빠트린 것 같아 몇 번이나 내용물을 모두 쏟아놓고 살폈다. 


버스를 타고 미숙이 추천한 유명한 등산로 입구로 갔다. 


고생에 찌들었을 뿐 아니라 몇 달 동안 죽도록 앓고 난  쉰일곱 김 여사였지만 생기를 되찾은 얼굴에 화장을 하니 나이보다 일곱 살은 젊어 보였다. 김 여사는 다람쥐 아줌마가 된 것이다. 


신바람이 난 김 여사는 돈 많아 보이는 남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고르다 보니 눈이 점점 높아졌다. 이왕이면 돈 많고 젊고 잘생긴 사람이면 좋겠다. 마침 그런 사람이 눈에 띄었다. 미소를 머금고 다가갔다. 남이 볼 때는 자연스러울지 모르지만 김 여사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일행이 없으시네요. 저도 혼자 왔는데 동행해도 괜찮으시겠어요?”


 젊은 남자라 싫다고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네, 좋습니다!”


의외로 선선하게 대답했다. 안도의 숨이 저절로 내쉬어졌다. 미숙은 등산객과의 관계는 일회성이므로 신뢰와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강민호입니다. 김 여사님은 우리 어머니와 많이 닮았어요. 핸드폰 번호 알려주세요. 몇 번이라고요? 아, 네. 저장했어요. 외로울 때마다 전화할게요. 내 전화 씹으면 절대 안 됩니다!”

  “씹으면 어떡할 건데요?”

민호가 달려들어 두 손으로 김 여사를 간질였다.

  “이렇게, 이렇게 할 거예요!”


간지럼을 잘 타는 김 여사는 숨을 몰아쉬며 전화 잘 받겠다는 약속을 거듭하고 겨우 풀려났다. 김 여사가 눈을 흘겼다. 민호가 눈 흘기니까 더 매력적이라며 와락 껴안았다. 


김 여사는 처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마구 설레고 두근거렸다. 


  “나는 이 산을 좋아해요. 높은 봉우리들을 돌고 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니까요. 다른 날은 습관처럼 걷기만 했는데 김 여사님과 함께 있으니까 비로소 이 산이 아름답게 보이네요. 오늘은 끝까지 나하고만 있어 줘요. 사례는 적지 않게 할게요.”


미숙은 고객 하나에 30분을 넘기지 말라고 했다. 다람쥐 아줌마가 잊지 말아야 할 수칙 같은 것 민호에게는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다.


김 여사는 한시바삐 미숙을 만나 무슨 일이든 예외가 있더라며 민호 자랑을 마구 떠벌이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민호와 함께 있는 시간을 김 여사가 더 즐기는 것 같았다. 


산 공기가 맑고 달았다. 


민호가 홀아비라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관계를 묻는 건 큰 실례라고 했지만 산 중턱쯤 올랐을 때 더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부인은요?”

  “그딴 거 없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잘하면 민호와 재혼할 수도 있겠다. 


이혼인지 사별인지 궁금해 미치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아이들은요?”

  “아들만 넷요.”

좀 많다. 아니, 아주 많지만 좋아하는 사람의 자식이라면 얼마든지 거둘 수 있다. 

  “민호 씨 직업은요?”

  “회사 다녀요.”

  “회사 다니는데 어떻게 평일에 등산을 해요?”

  “열흘 가까이 야근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월차 냈어요.”

 

김 여사가 힘내라며 민호 손을 잡고 크게 흔들었다. 민호가 환하게 웃었다. 


민호는 열 살이나 어렸다. 김 여사는 세 살 더 먹었다고 나이를 속였다. 


갈대밭에 민호 팔을 베고 누웠다. 걱정 근심이 모두 사라지고 요람처럼 아늑하고 포근했다. 이대로 민호 품에서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의 김 여사는 거친 삶에 지친 초로의 아낙이 아니라 연둣빛 사랑을 꿈꾸는 아름다운 여자가 되어 있었다.


청량한 가을바람이 산골짜기를 타고 한꺼번에 불어왔다. 수많은 갈대가 일제히 어깨동무를 하고 수수수! 휘파람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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