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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마중 김범순 Oct 13. 2024

사는 게 즐겁다

8. 산새

사진 : 김범순 - 암스테르담 근교 


   - 누나, 보고 싶어. 오늘부터 산에 가지 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갈게! -


다음날 등산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며 김 여사는 민호 전화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김 여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버스에서 내려 광장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생리현상을 해결하려는 남자들로 넘쳐 오늘도 고객은 많을 것 같았다. 


모든 남자 뒷모습이 민호처럼 보여 혼란스러웠다. 전화를 걸어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지만 일하는데 방해될 까봐 꾹꾹 참았다. 내일 만나면 전화 걸고 싶어 죽을 뻔했다는 말까지 할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민호만한 남자가 없다. 이거 참 큰일 났다. 한참 고르다 그런대로 괜찮은 남자를 발견했다.  못생기고 작았으며 나이도 민호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은가.


  “일행이 없으시네요. 동행해도 괜찮을까요?”  


남자가 김 여사를 쳐다보더니 반색하며 손을 덥석 잡았다. 뜻밖으로 손이 따뜻하고 목소리가 성우처럼 좋았다. 의미 없던 오솔길이 금방 비단길로 바뀌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서른대여섯에서 마흔 갓 넘겼을 젊고 예쁜 산새 셋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산새 하나가 잇새로 침을 찍 갈기며 말했다.


  “할머니, 상도가 있지. 신고도 안 하고 영업을 개시하시겠다?” 

  “뭐, 할머니?”


김 여사가 치를 떨며 간절한 눈빛으로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자는 고개를 돌리며 얼른 손을 놓았다. 와락 배신감이 몰려왔다. 약이 바짝 오른 김 여사가 본색을 드러내고 산새들한테 악다구니를 썼다.  


  “흥, 신고?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다!”

  “이 할머니 말귀를 통 못 알아듣네. 그럼 자릿세 한 푼 안 내고 장사하시게?” 


산새 두 명은 김 여사를 으르고 하나는 남자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오빠 나는 유축 기법 전문, 재는 밴드 기법, 저 언니는 오럴 기법인데 단돈 만 원에 모시고 있거든. 오빠야는 우리 중 누구랑 놀고 싶어?”


남자는 오럴 기법의 손을 잡고 장난을 치며 멀어졌다. 산새 둘이 김 여사를 협박했다.


  “여긴 우리 구역이야. 얼쩡거리지 말고 당장 꺼져. 거시기에 공고리 치기 전에!”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고 수요가 늘면 공급과잉 현상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산새들은 셋뿐이 아니었고 김 여사는 매일 고객을 빼앗겼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텃세 부리는 축과 다리 놓아줄 인맥도 없고 비밀병기나 노하우가 있을 리 없는 김 여사였다. 쌈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싸워서 져본 적이 없었지만 노련한 성적 기술을 무기로 들이대며 여럿이 작당해서 고객을 가로채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큰 힘 들이지 않고 쉽게 돈 버는 일이었지만 닷새 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등산로는 또 다른 약육강식의 현장이었다.



9. 강민호


사진 출처 : 고은별 촬영 - 상하이 동방명주 주변 풍경


김 여사는 등산로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객이었던 민호를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 처음 산을 타 본 김 여사였다. 민호 때문에 기분 좋고 몇 달 심하게 앓기는 했으나 워낙 노동으로 단련된 몸이라 힘들지 않게 정상에 도착했다. 


  “이렇게 넓고 이렇게 많은 집들이 있었다니!”


김 여사는 처음 내려다보는 서울 시가지에 넋을 잃었다. 여태 저 속에서 개미처럼 바글거리며 살았구나! 이 감동적인 광경을 민호와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다. 


이 시간 이후의 삶은 햇솜처럼 가볍고 포근할 것이었다. 김 여사 어깨를 감싸 안고 말없이 토닥여 주는 강민호 눈빛에 사랑이 가득했다. 산을 내려올 때는 더 다정하고 자상했다. 


  “조심조심! 무릎에 무리 가지 않게 조심해요. 우리 어머니 무릎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다고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운 민호였다. 김 여사는 돈도 몇 푼 없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민호는 막내가 어려서 빨리 가야 한다며 등산복 주머니 지퍼를 열고 지갑을 꺼냈다. 


  “누나 어떡하지? 돈이 하나도 없어. 여기는 현금 인출기도 없는데!”


돈이 있다면 듬뿍 쥐여 주고 싶은 김 여사였다. 민호는 내일은 선약이 있고 모레 저녁에 만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민호는 헤어지는 게 죽기보다 싫다며 조금이라도 더 보겠다고 뒷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시동을 걸었다. 창밖으로 몸을 반쯤 내민 민호는 머리 위로 크게 하트를 그리며 소리쳤다. 


  “모레 만나요. 사랑합니다!” 

  

김 여사는 눈이 빠지게 민호 전화를 기다렸다. 며칠을 기다리다 못해 용기 내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자마자 기다렸던 것처럼 금방 전화를 받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걸어볼걸 그랬다. 김 여사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확인하시고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번호를 거짓으로 알려주다니! 

그렇다면 이름도 가짜일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미숙이 주의 줬던 모든 것들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민호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온종일 김 여사를 가지고 논 것이었다. 


그랬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민호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김 여사는 오랜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목 놓아 울었다. 


민호는 잊지 못할 선물을 남겼다. 날이 갈수록 통증과 악취가 심해 선희에게 돈을 꾸어 병원을 찾았다. 간호사가 지시하는 대로 아랫도리를 홀딱 벗고 이상 야릇하게 생긴 진료대 위로 올라갔다. 


촤르륵! 얼굴 가리는 커튼이 쳐졌다. 가랑이를 쫙 벌리고 누워서 오지 않는 의사를 기다렸다. 


  - 그 치욕스러움이라니! -


죽어도 강민호를 용서할 수 없었다. 민호와 더불어 산새들도 미웠다. 바짝 독이 오른 김 여사는 등산로의 수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해서 산새들에게 고스란히 성병을 전염시켜 복수하고 싶었다. 


미숙이 꼭 챙기라고 강조했던 준비물이 그제야 생각났다. 콘돔이었다. 


김 여사는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다. 

원수 같은 정신머리. 

이래놓고 누구를 탓해 누구를!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오전 오후 세 시간씩 두 군데 일자리가 있다고. 


둘 다 남자 노인의 집이었다. 매번 실망했으면서도 김 여사는 또 그럴듯한 남자를 꿈꾸며 일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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