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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114. 생일 선물

by 글마중 김범순

현관문 앞에 놓여 있던 과일 상자


2025년 3월 8일 (음력 2월 9일) 토요일


오후 3시 45분

지인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 준비를 모두 마쳤다. 아들은 아까는 없었지만 혹시 그사이 평행 주차한 차가 있으면 밀어주고 친구 만나러 간다며 앞장서서 현관문을 열었다.


쓰슥 쓰윽 -!

뭔가가 현관문에 밀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 과일시켰어요?"

"아니 왜? 어머나 이게 뭐라니. 과일이잖아!"

오픈된 상태의 상자에는 주소는 물론 보낸 사람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이런 선물 보낼 사람 없어. 배달 사고야. 앞집 쪽으로 확 밀어놔."


그래도 혹시 몰라서 전화기를 살펴봤지만 과일 보냈다는 소식은 없었다.


5시 정각에 예식이 시작되었다. 신랑 아버지 덕담이 막 시작되는 5시 11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형님이었다. 형님은 남편의 누님으로 우리 가정의 은인이시다. 안 받을 수 없는 귀한 전화라 목소리를 낮췄다.

"형님, 예식 중이라 길게 통화 못해요."

"누가 이 시간에 결혼을 해?"

"친구 딸요."

"과일 사다가 현관문 앞에 놓고 왔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찡했다. 내일 음력 2월 10일은 남편 생일이다. 여든넷 누나가 일흔아홉 남동생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과일까지 사들고 왔다가 사생활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현관문 밖에 놓고 그냥 가신 것이었다. 몸 불편한 동생이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고 많이 보고 싶으셨을 텐데.


시간 계산을 해봤다.


4시 10분에 일행과 우리 아파트 주차장에서 출발한다니까 아들은 차 안이 더럽다고 청소를 하고 3시 35분쯤 들어왔다. 그로 미루어 형님 부부가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한 시간은 3시 40분 전후. 그 시간 나는 화장을 끝내고 막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형님은 사전 연락 없이 방문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현명한 분이시다.


예식과 식사를 끝내고 바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형님 사랑이 담겨있는 과일 상자가 까막까막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 남편 앞에 과일 상자를 놓으며 말했다.


"내일 당신 생일이잖아. 형님이 선물하셨어. 얼른 감사 전화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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