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사비에서 맞은 아침
2025년 5월 27일 오전 5시 51분
미용장 골프 모임에 참석하려고 4시에 일어났다. 게으른 나로서는 초인적인 부지런을 발휘한 것이다.
5시에 출발해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리는데 뒤쪽에서 해가 뜨고 있었다. 졸음쉼터에 들러 얼른 사진부터 찍었다. 평생 통틀어 일출을 직면한 게 열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아주 감동적이고 귀한 광경이었다.
백제 CC 클럽하우스 로비
더우면 더위 먹어서 일주일 씩 알아 눕고
추우면 천식이 도져 한 달 이상 앓는 바람에
골프 모임에 자주 빠졌다.
다들 이곳에 왔었다는데 나는 처음이라 마냥 신기했다.
예쁜 양난과 마음에 꼭 드는 화분 밑의 짚방석
소설집 원고 마감이 5월 말까지였다. 퇴고 지옥을 헤매느라 골프 모임 단톡도 대충 읽었다. 장소를 잘못 인지하는 바람에 까딱하면 혼자 엉뚱한 곳으로 갈뻔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 정도면 치매 수준이다.
한가로우면서도 사색적인 사비의 아침
땅에 닿을 것 같은 소나무
인고의 역사가 뒤엉켜 회오리치는 바람에 똑바로 서지 못한 것 같아 왠지 숙연해졌다.
저 빨간 의자에 앉으면
뒤에 서있는
우산 닮은 나무가
단편소설을 읽어 줄 것 같다.
백제가 연상되는 석등과 석탑
우리 카트가 왔다. 이럴 수가? 내 골프백만 없었다.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어 등록을 안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치매 검진을 받아봐야겠다. 6시 57분 시작이라 몇 분 안 남은 상황.
헐레벌떡 클럽하우스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어느 결에 윤정 짱이 따라와 키오스크로 단숨에 해결했다. 마음씀이 따사롭기 그지없다.
우리 팀 넷 중 나만 실력이 젬병이라
소 몰고 다니랴 땅 파랴 몹시 바빴다.
땅에 떨어진 꽃이 예뻐서 주웠다.
드라이버는 실력 순으로 친다.
네 번째라 막간을 이용하여
얼른 잔디밭에 놓고 찍었다.
9홀 마치고 30분 쉬는 시간. 아까 자세히 못 본 그림과 실내를 구경했다.
정갈한 식당 입구
고려청자를 인용 제작한 세 작품
민족의 정서와 감정이 깃든 조선 백자
왼쪽 : 청화용 항아리.
가운데 : 백자 달 항아리.
오른쪽 : 철화노송항아리
그늘집에서 회장님 팀과 만났다. 서로 못다 한 정담을 나누며 맛있는 간식을 얻어먹었다.
저질 체력인 데다 실력이 줄어들 나이에 시작한 골프는 좀체 늘지 않았다. 하지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번에는 웬일로 파3에서 나이스 온을 다했다.
형편없는 내 실력을 잘 아는 팀원들은 자기가 홀인원이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나 역시 내가 치지 않았어도 창공을 가르며 속이 뻥 뚫릴 만큼 아득하게 공이 날아가면 진심으로 나이스샷을 외쳤다.
초록 융단 같은 잔디
셋은 공을 멀리 보내서 카트를 타고 떠났다. 나는 코앞에 떨어진 공을 띄워보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런데도 잘 가꾸어 폭신폭신한 잔디를 밟으면 천국의 정원을 걷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꿈과 추억이 함께 어우러진 것 같은 마가렛꽃무리
서로 아끼며 응원하고 환호하는 우리 팀!
미용장 안 됐으면 내가 어디서 이렇게 예쁘고 실력을 겸비한 뛰어난 인재들과 함께할 수 있겠는가. 시의원을 지낸 박이 끊임없는 유머를 날려 얼마나 웃었는지. 아마 10년은 젊어졌을 것이다.
라운딩이 모두 끝났다. 본격적으로 클럽하우스 안팎을 돌아봐야겠다.
홀딱 반한 나무 작품들
창밖의 솟대
나뭇가지가 예술로 재탄생했다.
빗살무늬 토기를 연상시키는 항아리
공들여 빚은 오래된 항아리 하나로 창턱이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우리나라 아니면 세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작품이라 아주 자랑스러웠다.
아래층 벽면에 붙은 그림
상상을 초월하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화가가 희화화해서 그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러 작품인데 사진 상태가 형편없어 안타깝게 두 편밖에 못 올렸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골프를 시작했을까?
네이버 지식백과 검색결과 1897년 우리나라에 있던 영국인들이 골프 코스를 만들어 즐기기 시작했다. 영친왕은 골프 광이었고 효창 공원 안에 9홀의 코스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클럽하우스 왼쪽
클럽하우스 오른쪽의 수많은 장항아리
골프 클럽과 장독대! 나는 색다른 이 조합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
알뜰살뜰 모임을 챙기는 회장님 우리 회장님
클럽하우스에서 점심 먹는 줄 알고 느긋하게 어정거리다 회장님을 만났다. 단톡을 했다는데 소리를 죽여놔서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약속한 식당에 도착했다. 회장님이 땡볕에 서서 손 많이 가는 문제 투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나 미안하고 또 고맙던지!
점심 식사가 끝나갈 무렵 차에서 토마토를 꺼내왔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꿀벌 유기농으로 재배했다는 토마토를 썰어 통에 담았다. 더위에 지쳤을 때 시원하게 먹이고 싶어서 아이스박스 안에 넣어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집에서 먹을 때는 그렇게 맛있었는데 썰어와서 그런지 밍밍하기 짝이 없었다. 토마토가 많이 남았다. 속상했다.
내가 아끼고
나를 아끼는
특별한 절친들과 헤어졌다.
사비문
오전에는 고속도로로 와서 못 봤던 사비문을 오후에 국도에서 만났다. 백제는 538년부터 660년까지 123년 동안 사비(부여)를 수도로 삼았다.
절친 누군가가 토마토가 차서 이가 시리다고 했다. 집에 와서 토마토 그릇을 식탁에 놓았다가 저녁 식사 후 먹었다. 본래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아이스팩을 너무 많이 넣어서 맛이 없었나 보다.
다정도 지나치면 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