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권리

6. 무능한 너

by 글마중 김범순


크로아티아 자다르.jpg

크로아티아 자다르 로만프롬 광장 부근


너는 아기를 낳았어도 숨 막히는 고통이 가라앉지 않았다. 네가 헐떡거리며 온몸을 기름틀에 넣고 비틀어 짜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그런 너를 보며 시어머니가 비웃었다.


“하이고 지저바 낳은 주제에 엄살은!”


밤 12시 20분 고통은 절정에 달했고 너는 비명을 지르며 잠깐 정신을 잃었다. 툭! 소리와 함께 사타구니 생살이 10센티가량 터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시어머니는 네가 칠칠치 못해서 아까운 솜이불이 피에 젖어 못 쓰게 되었다고 펄펄 뛰었다. 너는 너무 아프고 서러워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보다 못한 K가 빽! 소리쳤다.


“어머니 제발 좀!!”


시어머니는 애지중지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신세 한탄을 하며 잠 부족하면 약해진다고 등짝을 두들겨 패서 K를 윗방으로 쫓았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가 미어터지게 불을 땠다. 절절 끓던 방은 금방 불가마처럼 변했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견디다 못한 네가 이불 밖으로 손을 꺼냈다. 도끼눈을 뜨고 감시하던 시어머니가 불호령을 내렸다. 산후조리 잘 못 해줘서 손목 시다고 원망하지 말고 얼른 집어넣으라고. 그러고는 눈을 흘기며 또 불을 때러 부엌으로 나갔다.


친정어머니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팔을 을러메고 윽박질렀다.


“너는 어째 하는 일마다 이 모양이냐? 아무리 무녀리라고 해도 그렇지. 온 집안이 나서서 쌍수 들고 환영하던 국민학교 동창 S는 본 체도 안 하고 마음대로 연애질 하더니 아주 꼴좋다 꼴좋아!”


시어머니가 딸 낳았다고 구박하고

친정어머니가 비웃고

산후통으로 아파도 너는 괜찮았다.


그제 밤 며칠 먹지 못하고 진통에 시달려 심한 변비가 왔다. 시어머니가 잠든 걸 확인하고 윗방에서 곤히 잠든 K를 깨웠다.


“나 변소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 무서워!”


K는 소리 없이 일어나 변소에 가서 아기 오줌 뉘는 자세로 너를 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요강에 똥을 누게 하고 말끔히 치웠다.


K와 너는 환하게 뜬 달을 쳐다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없이 다정하고 달콤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너는 괜찮았다.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바짝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울었다. 예정일보다 20일 먼저 낳아서 젖이 나오지 않았다. 보다 못한 친정어머니가 아침나절 보리차를 끓여 수저로 떠서 아기 입에 흘려 넣었다. 구역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시어머니가 기겁해서 수저를 빼앗았다.


“사부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저 먹을 것 다 준비해서 세상 밖으로 보내십니다. 제발 거룩하신 우리 주님 뜻 거스르지 말고 젖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세요.”


아기 울음소리에 점점 힘이 빠졌다. 통증과 피가 그치지 않아 일어나 앉을 수조차 없는 너는 아기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해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저녁에 K가 보리차를 떠먹였다. 아기는 허겁지겁 끝없이 받아먹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오던 시어머니는 수저를 빼앗고 하나님 운운하며 K 등짝을 후려갈겨 윗방으로 쫓았다.


아기 죽게 생겼다고요!


너는 시어머니와 싸우지 못하고 속만 태웠다. 너는 그렇게 무능한 너 자신이 정말 싫었다.


누가 아기에게 보리차 먹이지 않나 감시하던 시어머니가 잠들었다.

이틀이나 밤잠을 설치고 피범벅이 된 요와 이불 빨래로 지친 친정어머니도 잠들었다.

울다 지쳐 잠든 아기를 오래도록 토닥이던 너도 잠이 들었다.


“캬악!”


천둥 치듯 울리는 아기 단말마에 모두 놀라 잠을 깼다.

아기는 얼굴이 까맣게 탄 채 숨을 헐떡였다.

시어머니가 울부짖었다.


“아이구 K 새끼야. 아이구 내 새끼야!”


K가 황급히 아기에게 보리차를 떠먹이며 소리쳤다.


“하여튼 우리 어머니 사람 여럿 잡을 양반이라니까!”


생살 터진 자리 통증으로 너는 여전히 꼼짝을 못 했다. 친정어머니가 시어머니한테 생살 터진 상처가 커서 한약방 좀 갔다 오겠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시간 지나면 낫는데 왜 유난을 떠느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정어머니는 읍내 나가 마른 약쑥을 사 왔다. 친정어머니는 시어머니 교회 간 사이에 약쑥을 달였다. 너는 반신반의하며 환부에 펄펄 솟아오르는 약쑥 김을 쐬었다.


생채기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닷새가 지나자 누름돌을 얹은 것 같던 젖이 돌아 아기에게 먹일 수 있었다.


친정어머니는 일주일을 머물고 울면서 돌아갔다.


무능한 네가 천하의 여장부를 울린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죽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