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크로아티아

1 아주 잠깐 하이디

by 글마중 김범순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

TV에서 보고 홀딱 반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 있는 크로아티아로 정했다.

치약, 드라이기, 샴푸가 없는 호텔이 있다는 가이드 문자를 받았다.

하마터면 그냥 가서 짤짤이 고생할 뻔했다.


예쁜 여자 주인공이 가이드였던 드라마 두 편을 재미있게 봤던 터라 가이드에 대한 기대가 사뭇 컸다.

공항에서 만난 가이드는 독일 퇴역 병사처럼 늙고 초라해서 몹시 실망했다. 여자였음에도 그랬다.

2019년 4월 23일 오전 10시 15분 인천을 출발했다.


12시간 만에 뮌헨 공항에 도착했다.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여덟 시간 늦어 4월 23일 오후 2시 25분이었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일행 일부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안내원도 안내판도 없는 정사각형의 밀폐된 공간이 비정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황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우왕좌왕했다.

다음 엘리베이터로 내려온 가이드가 3분 있으면 공항 안을 운행하는 전동차가 온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가이드 동행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나도 늙었으면서 늙고 안 예쁘다고 잔뜩 실망할 때는 언제고?


공항을 나서자 9일 동안 타고 다닐 45인승 최신형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여동생을 포함한 일행은 열일곱 명이었다.

두 좌석을 한 사람씩 차지하고 앉으니 세상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독일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달린 지 20분도 안 됐는데 저 멀리 독일 알프스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 목적지가 크로아티아라 설산을 구경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횡재를 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 유채꽃이 핀 크고 넓은 밭이 있고 민들레가 섞여 있는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졌다.

멀리 보이는 알프스만 빼고 다 지평선이었다.

어쩌면 땅이 이토록 드넓을 수 있을까? 땅이 넓어서 그런지 한적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차창을 스치는 독일 목초지

갑자기 좁은 땅에 태어난 나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국과 부모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인 것!

비탈진 언덕 손바닥만 한 땅조차 채소와 곡식을 심는 우리의 농촌이 가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좁은 터전에서 경제 규모 11위를 이룩한 위대한 나라다.

부러움을 휙- 날려 보냈다.

잿빛 우유처럼 혼탁한 시냇물이 들판을 흐르고 있었다. 석회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신은 어찌 그리 공평한지. 우리에겐 맑은 물이 있다.


두어 시간쯤 달렸을까?

열선을 깔아 눈이 쌓이지 않는 독일 아우토반이 끝나고 오스트리아 국경에 도착했다.

유럽인들은 그대로 통과시키고 동양인인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국경을 넘으라고 했다.

백인 우월주의가 더럽게 아니꼬웠다.

국경 길가 목초지에 씀바귀는 지천인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쑥이 없었다.

종양 치유 효과가 탁월하고 면역력 향상에 으뜸인 쑥을 나누어주고 싶던 마음을 냉큼 접었다.

걸어서 통과시킨 앙갚음이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났다.

설산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집이 한두 채 있는 목가적인 풍경이 이어졌다.

아주 가끔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과 양떼가 보였다.

그곳에는 틀림없이 요들송이 메아리치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열 번도 더 읽었다.

나는 아주 잠깐 하이디가 되어 양떼 목에서 울리는 정겨우면서도 외로운 방울 소리를 들었다.


오스트리아는 방음벽을 설치하거나 키 큰 나무를 심어 차창 밖 경관 감상을 훼방해 무척 아쉬웠다.

험준한 협곡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얀 눈이 깔린 거대한 바위산은 한껏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거칠고 짙은 회색이라 그런지 사무치게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KakaoTalk_20220301_225908554.jpg 오스트리아 설산

오스트리아 란싸이트(땅시계)라는 휴게소에 들렀다.

접시 크기대로 돈을 받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작은 접시 5유로 (6,500원)

큰 접시 8유로 (10,400원)

때 이른 저녁이라 큰 접시 하나만 사서 동생과 먹기로 했다.

음식을 수북하게 담고 큼직한 새우도 네 마리 얹었다.

“노노노!!”

종업원이 황급히 뛰어오며 새우는 마리당 3유로(3,900원)를 내라고 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서 얼른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설명서를 붙이거나 분리해서 진열해야지 헷갈리잖아!

기분 나빠서 그런지 샐러드를 뺀 감자, 버섯 요리는 맛이 없고 짜서 욕심껏 담은 것을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