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시인처럼 한 세상 잘 놀다 갈 뿐이다
ㅡ
할머니가 내가 어릴 때 무릎에 앉혀두고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어릴 때라 그때 들은 詩句까지는 기억 못 하지만 내용은 이렇다.
옛날에 선비가 과거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빈천하여 부인이 쌀겨(쌀껍질, 糠)를 얻어와 강에 씻어 말려 끼니를 해서 먹었다.
하루는 비가 많이 와서 널어놓은 쌀겨가 다 떠내려 갔다. 그런데도 모르고 책만 보고 있는 서방이 한심스러워 "도저히 같이 못 살겠다" 하면서 떠나버렸다.
이후 선비는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여 고향 마을에 원님으로 행차를 하게 되었다. 전에 자기가 살던 강변을 지나가다 보니 그 아낙네가 아직껏 쌀겨를 말리고 있는 게 아닌가.
선비가 이를 보고 시조를 지었다. 글 뜻은 "불쌍한 아낙네야 팔자를 고치려고 나갔으면 잘 살기나 할 것이지 아직까지 고생을 못 면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는 내용이다.
<팔자는 나라님도 못 바꾼다>는 말이 있다. 아낙은 삶이 그것밖에 되지 않은 거다.
아마 할머니는 손주에게 어떤 일을 할 때 주변에 휘둘리거나 환경에 구애를 받지 말고 목표를 가지고 선비처럼 꾸준히 하라는 말씀이었을 게다.
할머니께는 죄송스럽지만 나는 선비가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 가장이 출세보다 중요 한 건 가족의 입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 넣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호구지책으로 애써 말리는 쌀겨를 비가 오는데도 챙기지 않는 건 요즘 같으면 <가장직무유기>이다.
그럼에도 할머니 말씀대로 살지는 못했다. 이제 세상을 한 바퀴 돌아와서 보니 기대만큼 살지는 못했고 훌륭한 가장도 되지 못했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는 살았다. 그럭저럭 살았다. 그럼 된 거 아닌가?
.
세상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는다. 뇌리에 담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이 오감으로 접한 모든 건 기억나지 않는다고 흘러간 게 아니고 세포 속에 아뢰야식으로 저장된다. 그랬다가 몸이 병약해지면 정신을 공격한다. 그래서 나쁜 소리나 장면은 일부러 피한다. 무슨 일이든 좋게 생각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으려 다짐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amor-fati>이다.
천상병시인의 '귀천'처럼 한 세상 잘 놀다 갈 뿐이다. 그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