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 한 삶과 프리덤 한 삶

구속된 자유와 자유로운 구속

by 풍초김해수



리버티와 프리덤은 국적이 다르다. 어원이 Liberty는 라틴어(Libertas, 해방)에서, Freedom은 게르만어(Freiheit, 사랑하는, 친밀한)에서 생겨났다. 어원만 보면 의미가 뒤바뀐 듯하다. 해방이란 말이 주는 자유는 구속이 필요 없이 프리덤해 보인다.


리버티(liberty)이 약속한 규율 속에서 느끼는 절제된 자유이다. 공원의 잔디밭에 들어가지 않는 건 <리버티>이고 들어가서 즐기는 건 <프리덤>이다. 못 해석하면 프리덤(freedom) 방종에 가깝다.


리버티는 구속된 자유이다. 그러나 프리덤은 자유로움 속에서의 구속이다.


전자가 사회계약에 의한 제도 속의 자유라면 후자는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절제되는 자유이다.


리버티는 의미가 고정된 반면 프리덤은 양면성이 있다. 양심에 의한 자유일 수도 있고 방종한 자유일 수도 있다. 가장 바람직한 자유는 프리덤 한 양심적 자유이다. 리버티가 사회적 자유이면 프리덤은 개인적 자유이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리버티가 점점 억압을 느끼는 사이 프리덤의 갈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17세기 계몽주의시대가 열리면서 '존로크'는 "자유는 인간의 천부인권이다"라고 일갈했다.


1차 세계대전 후 발생한 다다이즘을 주도한 다다이스트들은 기성의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개인의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하려고 했다. 일종의 프리덤운동이다.


이 영향을 받은 사람 중에 우리가 잘 아는 백남준아티스트가 있고 존레넌의 연인 오노요코도 있다. 이런 프리덤 한 사고가 아방가르드예술을 주도하였다.


자유는 자격 있는 자들 만의 특권이다. 리버티던 프리덤이던 자유는 타인을 불쾌하게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누려야 한다. 나의 자유가 남을 구속 해서는 안 된다. 자유와 평등은 현대 사회를 이루는 핵심적 가치이자 이념이다.




요즘 사회가 점점 더 경직되어 간다. 이제까지의 규범이나 사회적 약속들은 일순간에 허물어지고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 속으로 흘러간다.




러우침략전쟁에 유엔은 속수무책이고 자칭 신이 선택한 나라라는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보복공격하여 가자지구를 쑥대밭을 만들었고 중국은 대만을 공공연히 접수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트럼프는 원칙도 없는 무소불위의 관세폭정을 휘두르고 있다.


이 대명천지에 국익과 전쟁이라는 명목하에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개미목슴처럼 초개草芥처럼 여겨도 되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차 대전 후 80년간 무난하던 세계질서가 다시 격변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는 독재도 정교해져서 법을 빙자한 민주적 독재시대를 맞고 있다.


리버티 한 프리덤이 그리워지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