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사후영혼설을 배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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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사상과 靈肉분리설은 종교를 창설하는 교리형성 과정에서 대중을 모으기 위한 장치로서 꼭 필요한 사상적 이론이었다. 힌두교 자이나교 등이 도입하였고 후에 불교도 교단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긴 했지만 기복신앙으로 이를 차용하였다.
그러나 붓다는 분명히 반대하였다. 삼법인과 연기론을 통해 영육이 일체임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아나탈라카나 숫타((Anattalakkhaṇa Sutta, 無我相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형색도, 느낌도, 인식도, 행위도, 의식까지도 나라고 할 수 없다. 그것들은 생멸할 뿐이니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다."
대각을 이룬 후 45년 동안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열반에 드시면서 마지막 敎示로 종교에 휘둘려 가산탕진하고 고생하는 대중들에게 "신을 믿지 말고 스스로를 섬으로 삼고 자기 스스로 등불을 밝혀 법을 깨우치라"라고 하였다(자등명법등명 자귀의법귀의).
이 말씀은 붓다께서 살면서 거듭 확인한 후에 가면서 남기신 확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것이 진리이다. 그리고 사후가 없다는 반증(反證)으로 무아(無我)와 연기법을 제1의 사상으로 제시하였다. 내가 없는데 사후가 있을 수는 없다.
三毒(탐, 진, 치) 중 치(痴) 는 어리석을 치인데, 붓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행하여 고통받지 말고 지혜(반야)로서 깨달아(보리) 스스로 섬이 되고 등불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라 하였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혹세에 휘둘리는 것을 안타까워하셔서 그런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교에서는 이와 배리 되는 교리를 받아 지금껏 대중교화에 사용하고 있다.
증동지역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一神敎는 조로아스터교의 일신교에서 善惡개념을 가져와서 사후심판론을 주장하였고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플라톤의 영육이원론 역시 기독교 교리에 영향을 주었다.
사람의 몸과 영혼은 별개의 것이어서 사람이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선악의 업보에 따라 사후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힌두교(브라만교의 후신)의 사후관과도 비슷하다.(모두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에서 파생)
붓다가 위대한 것은 붓다시대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은 지식을 가진 성자는 많았지만 붓다처럼 진실을 말한 이는 없었다는 것 때문이다.
붓다는 모든 종교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후영혼설을 주장하는 엄혹한 시기에 正見으로서 각 종교에서 주장하는 사후영혼설을 배격하고 그 당시 인도의 사상인 우파니샤드의 아트만(自我:atman) 이론에 의한 윤회도 부인하였다. 아나트만(無我:anatman)을 핵심고리로 한 <무상 고 무아>라는 삼법인을 緣起思想과 함께 깨달음의 우선적 사상으로 제시하였다.
붓다가 대각 후 육성으로 한 첫 설법인 초전법륜初傳法輪(중도, 사성제, 팔정도)과 두 번째 설법인 무아상경無我相經('Anātmalakṣaṇa Sūtra' 무아경, 무상경, 고경)과 세 번째 설법인 화火설법, 불타고 있음의 경(탐, 진, 치, 삼독)을 제시함으로써 무지한 대중을 인도하였으며 붓다는 브라만교의 엄격한 카스트 제도와 제의(祭儀) 중심의 종교관의 전통적인 억압적 관념에 도전하여 개인의 윤리적 행위와 깨달음을 통한 해탈을 강조하였다. 대자유를 대중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입멸 후에 불교에 윤회사상을 들여온 것은 붓다가 살아 있으면 大怒할 일이다.
불교에서 윤회를 부처님 말씀이라고 주장하며
我生已盡(나의 생은 이제 끝났다)
梵行已立(수행은 이미 다 이루었다)
所作已作(해야 할 일은 이미 마쳤다)
不受後有(다시는 생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다시는 생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를 윤회사상의 근거로 삼았는데
여기서 生은 생명의 태어남이 아니고 오온(정신과 육체를 원인으로 생겨나는 5가지 색수상행식)에 의한 번뇌와 욕망이 생겨남을 말한다.
이 세상 삶의 근원적 두카(불만족)인 고통(사성제)을 인지하고 수행(팔정도)으로서 마음의 평안(열반)을 성취할 수 있음을 해탈하였다는 오도송이다. 영혼의 윤회가 아니다.
무신론자인 니체도 붓다를 좋아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무신론을 말했는데 불교를 접하면서 붓다의 사상이 니체의 생각과 비슷함을 알고 스스로 <유럽의 붓다>라고까지 칭명하였다.
니체는 붓다도 예수도 훌륭하지만 제자들이 종교를 만들면서 原思想이 변질되었다고 봤다.
특히 붓다를 좋아했다. 니체가 붓다와 예수를 비교하는 일례로 두 사례를 말했는데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죽은 지 4일이나 돼 몸이 썩고 있는 나사로에게 일어나라라고 하니 살아났다고 하였고,
붓다는 인근에 사는 고타 키타미라고 하는 여인이 애지중지하던 죽은 아들을 안고 와서 제발 살려 달라고 하소연하니 붓다가 그럼 마을에 가서 한 번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의 겨자씨를 구해 오라고 시켰다. 결국 그런 씨앗을 구하지 못한 여인에게 붓다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위로하였다고 하는 법화경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어느 사례가 논리에 부합하는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여담이지만 붓다가 來生의 아트만(자아) 윤회를 주장하였다면, 여인에게 아들은 천상에서 잘 살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하였을 것이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물리현상으로 누가 살려 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니체나 붓다는 신이 허구라는 사실을 말하려 했을 것이다.
知人인 성시정 인류학박사는 저서 <UFO학 인류학과의 조우>란 책에서 신과 믿음에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남태평양 피지섬에 엘처링가(Alcheringa, 지상낙원)를 꿈꾸는 원주민들이 천년왕국운동(millennium movement)을 통해 지금도 조상신이 하물(cargo)을 내려주기를 기도하며 주술의식을 행하고 있다."
2차 대전 때 미군이 비행기로 시레이션 선물을 내려주던 것이 피지섬에서는 종교의식이 되었다.
비행기를 처음 본 원주민들이 하늘에서 각종 선물이 떨어지니까 이 비행기가 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조상신이 선물을 보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신과 믿음(종교)이란 이렇게 해서 시작된다.
니체는 붓다와 사상이 같다고 생각했으나 욕망이라는 카테고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다
붓다는 욕망이 삼독(탐, 진, 치) 중의 하나로 마음속에서 벗겨내야 할 독소로 봤는데,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은 탐심(貪心)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이 욕망을 절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열반의 길로 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니체는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위대함을 역설하려다 보니 초인(Ubermensch)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였다.
니체는 욕망을 인간본성의 전정한 의미(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로 보고 인간이 허무주의를 벗어나 인간답게 살려면 욕망을 통해 초인적인 위버멘시가 되어야 하고
심지어는 병이 들면 고통스러운 자연사를 기다리지 말고 몸이 힘들어지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하라고 까지 하였다. 요즘 말로 安樂死를 적극 주장하였다. 자기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니체를 좋아하지만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은 붓다의 논리가 맞다고 본다. 사람이 욕망 때문에 잘 살기도 하지만 욕망 때문에 죄도 짓고 분노하며 힘들어한다. 특히 죽을 때
죽음마음(쭈띠찟다:cuti-citta)이 힘들어져 영면(영원한 잠)을 방해받는다.
시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한 사람이 길을 가는데 차가 지나면서 흙탕물을 쳐서 옷을 다 버렸다. 그래서 이 사람은 가는 차를 향해 험한 욕을 하며 화를 냈다. 이 광경을 본 스님이 "여보 당신을 화나게 한 그 차는 가고 없는데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혼자 욕을 하며 화를 내면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 당신만 몸에 화가 들어와 병이 생기니 이는 당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지 않소"라고 했다는 거다.
욕심과 분노를 버리고 下心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보다 욕망이나 분노는 잃는 것이 더 많다.
니체는 붓다의 열반사상(nirvana)을 오인한 것이다. 불교의 脫慾望을 무기력한 허무주의로 본 것이다.
열반은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극적인 경험을 통해 정신적 완성을 경험하고 영혼에너지(영혼이 아님)의 물리적 윤회를 멈추고 탈 지구화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