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영혼이고 유전이 윤회이다(8)

神이란 사람의 몸과 마음속에 있다. 精神이 그것이다

by 풍초김해수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은 우주뿐이다. 우주창조가 신이 아니라 빅뱅에 의한 물리현상인 것처럼 사람의 사후 모습은 그냥 물질이 변화하면서 돌고 돌뿐이다.


내가 멘토로 생각하는 한국 최초의 시대학자인 이어령박사 얘기를 좀 해보려 한다. 이 분은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다가 73세에 기독교에 귀의했다. 미국에 사는 목사인 큰 딸이 암에 걸려 죽기 직전에 "아빠가 예수를 믿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였다. 죽어가는 자식 앞에 평생의 소신도 꺾였다. 이교수 역시 암으로 5년여 투병을 하다가 88세에 소천하였다. 췌장암선고를 받고도 쉬지 않고 집필을 하였고 마지막 기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죽음은 정적(靜寂)이다. 시간에도 무게가 있어 매일 가벼워지거든 죽음이란 없어지려고 있는 거야 사라져 버리는 게 최고다>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이고 늦게 종교에 입문한 사람 치고는 죽음의 변이 너무 담담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세례를 받았다는 사람의 말은 아닌 것 같다. 하나님과 예수를 말하지 않고 원래 자기 소신대로 생을 마쳤다.


나는 평소 사람의 복은 하늘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격이 만든다라고 말해 왔다. 다만 유전적 윤회는 성품(DNA)을 타고 업보가 대를 이어 내려가기 때문에 이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과보(果報 : 내가 지은 업의 경중에 따라 인과응보를 받는 것)를 받는다. 나 자신이나 후손에게 성품이 대물림해서 고통과 평안을 준다. 이 것은 유전 때문에 생기는 윤회이다.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둔다. 내가 오늘 먹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의 전부가 내 자손에게 이식되어 應報를 받는다. 이 세상이 행복하면 '극락'이고 고통스러우면 '지옥'이다.


현생에 내가 말하고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해악을 끼치는 행위는 당사자인 나만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유전자에 저장된 유전인자에 의해 대대손손 내 자손들에게 좋지 않은 성격을 물려줘 세상을 힘들게 살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현생을 잘못 살아 천성+환경성이 다른 사람이 혐오하는 성격으로 변하면 사회에 적응하기 너무 힘들 것이다. 이런 것이 지옥 아닌 지옥 아니겠는가.

유전적으로는 그렇고, 내 몸과 영혼에너지를 보면 몸은 四大로 변하여 여러 사람의 양분이 되고 靈氣는 대류활동을 하며 공기 중에 기체로 있다 숨으로 변할 수도 있다.


영혼도 살아 있을 때 영혼이고 죽고 나면 영혼에너지(靈氣)로 변하여 살아온 근기대로 공기 중에 흩어진다.

사람의 영혼이 죽지 않고 계속 다른 사람의 몸을 받아 돌고 돌면서 업보에 의한 인과응보를 받는다는 상상은 과학이 없던 시절에 생겨난 논리이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얼마나 적고 미천한지를 안다면 그런 상상은 할 수 없다.





<코스모스>의 작가 칼 세이건이 미국 NASA에 기술고문으로 있을 때인 1977년 보이저 1,2호를 쏘아 올렸는데 1990년 태양계 끝 지점을 지나면서 찍은 지구의 모습(창백한 푸른 점)은 말 그대로 먼지 한 톨이다. 이 먼지(지구) 속에 사는 사람이 사후 영혼을 논하는 것은 망망대해 바다 위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을 찾는 것과 같다.



출처:NASA Science, 창백한 푸른 점 (보이저 1호가 태양계 끝에서 찍은 지구사진)


이 사진은 물리학자 칼세이건의 요청으로 논쟁이 있었으나 결국 미국 나사(NASA)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보이저 1호 사진촬영기를 지구 쪽으로 돌려 찍은 유일한 먼지 같은 지구의 모습이다.


우리 은하계성단에는 태양 같은 항성이 1000억 개가량 있고 또, 은하계 같은 성단이 우주 전체에 1000억 개 정도 있다 이 말은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했을 때의 숫자이고,


2022년 1월 이후 제임스웹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결과 지금은 은하계성단에 4000억 개의 항성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을 별이라고 한다)(지구는 스스로 빛을 못 내기 때문에 별이 아니고 행성이다)이 있고 우주에는 2조 개의 성단이 있다고 한다.


태양계 끝이 아니라 우주 끝에서 본다면 지구가 다시 이 사진 속의 지구보다 8000조 분의 1 크기 작아질 텐데 이렇게 작은 지구에만 있는 인간이 사후영혼을 논한다는 자체가 맞는 말인가.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이 3차원인데 시간이 합쳐져 4차원의 시공간이 만들어진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전부인데 스티븐 호킹박사는 "우주가 모두 11차원으로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아는 우주가 여러 개 있다는 이론이 다중우주인데 이 다중우주를 인식할 수 있는 차원이 11차원이라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에서 떨어져 있는 공간은 만날 수 없지만(공간꼴) 떨어져 있는 시간은 만날 수 있다(시간꼴)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은 일정하지 않고 휘어진다라고 하였다. 물리학이 사후 세계 보다 더 신비롭지 않은가. 현실에 있는 것이라고 모두 실제 있는 것은 아니다. 북극이나 남극에서는 동서남북 방위가 없다. 저녁에 우리가 엄연히 보고 있는 저 별도 사실상 없는 별 일 수도 있다.


5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수명이 3만 광년인 별은 2만 광년 전에 소멸하고 없다. 지금 내 눈으로 분명히 보고 있는데 사실은 없는 것이다. 저 별빛이 내게 오는데 5만 광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별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5만 광년 전의 별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색즉시공>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사실은 空하다는 것이다. 있다와 없다의 구분도 사실 애매해진다. 진실이란 이렇게 애매한 것이다. 사후영혼이 있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종교에서 주장하지만 그것 또한, 많은 사람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뿐이다. 종교와 정치는 권력이다. 토론이 불가이다.


붓다는 이런 것을 염려하여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을 그렇게 강조했지만 후기불교에서는 역시 종교가 권력화되어 힌두교에서 많은 신과 아트만 윤회(samsara)를 가져와서 순수한 초기불교의 붓다의 원음과 향훈에다 섞어 버렸다. 붓다의 초기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이고, 천체물리학이고, 정신심리학에 가깝다. 붓다 반열반 후 종교화 하면서 기복신앙 때문에 힌두교의 윤회가 들어왔다. 지금의 불교윤회가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거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는 인도에서 20여 개 부파불교 시대에 자비와 교화를 목적으로 한 대중부 승단이 생겨나고 대승불교로 바뀌면서 카슈미르 지역을 통해 티베트와 중국으로 다시 한국과 일본으로 교세가 확장되면서 교리도 지역적 특성과 융합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붓다의 속명인 고타마 싯다르타가 이 세상에 태어난 기원전 624년 경엔 붓다의 고향인 지금의 네팔 틸라우라코트(옛 지명:카필라바투스)에서 서쪽으로 파키스탄과 이란만 지나면 튀르키예(당시:소아시아)가 나오고 튀르키예의 에게 해변 쪽에 밀레토스라는 그리스령의 도시가 있었다


탈레스라고 하는 철학자가 주도하는 <밀레토스학파> 혹은 <이오니아학파>라고 하는 자연주의철학 학파가 있었는데 붓다하고 같은 해에, 혹은 1년 뒤에 태어난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탈레스(BC624, 623)는 "신들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물리적 힘의 결과로 만물이 만들어졌다"라고 하였다


아낙시만드로스 (BC610)는 일식을 예언하였고 피라미드의 높이를 그림자를 이용해 계산해 내고 인간의 조상이 물고기라고 최초의 진화론을 주장하였다. 붓다 보다 48년이나 먼저 태어난 공학자 에우팔리노스(BC672)는 사모아섬에 직경이 1km나 되는 돌산을 기하학으로 계산하여 양쪽에서 뚫어 오차 없이 수로를 개통시켰다.

이 외에도 연대는 조금 떨어지지만 수학자 피타고라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 원자를 발견한 데모크리토스 공기를 발견한 아낙시메네스 지구의 둘레(40,075km)를 비슷하게 계산해 낸 최초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인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nes BC274) 같은 물리학자들이 번성하였다. 그렇지만 이후 2000년 동안 과학발전은 암흑기로 들어간다.


기독교의 큰 잘못 가운데 하나는 기원후 1500년 동안 과학의 발전을 막았다는 것이다.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1500년까지 사실상 2000년 동안 우리는 "지구가 돈다"는 말은 입밖에도 내지 못했다. 천동설을 주장하였으며 지금 유럽의 정신문회를 만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도 천동설을 주장하여 종교권력의 폐해에 일조하였다. 종교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항상 진실의 왜곡현상은 힘을 가진 자들 때문이었다.


동쪽으로는 노자 공자 묵자 등의 철학자들이 출현하여 지구 역사상 최초의 문화부흥 르네상스시대가 펼쳐진 시대였기 때문에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이를 <축의 시대>라고 명명했고 후에 카렌 암스트롱이 <축의시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카필라왕국의 왕자인 싯다르타는 아라한(수행자 중 가장 높은 경지)에게 요즘 말로 과외수업을 받았는데 4~500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의 지식과 철학을 붓다가 충분히 인지하였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붓다는 일찍이 철학과 물리학과 정신심리학에 일정한 지식을 갖고 출가하였다고 추정한다. 전법활동 중에 사람들을 통해 서학과 동양철학을 접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과연 인간이 죽음의 공포를 씻어 내고 100년 짧은 인생을 마음 편하게 살다 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고 각자가 생각할 일이다. 죽기 직전에 잠깐 생각한다는 죽음마음(쭈띠찟다:cuti-citta)이 중요하다. 이때 잘 살아온 사람은 숨을 내쉬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숨을 놓기 싫어서 들이쉬다가 턱 하고 죽는다고 한다.

인간이 모여 살기 시작한 12,000년 전 이래로 항상 신이라는 존재는 있어 왔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면 절대적인 무엇인가에 의지 하려는 마음이 모여 희생제(犧牲祭:동물희생제)는 꾸준히 있어 왔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테미즘 등과 같이 神靈(신과 정령)과의 교감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하고 위로를 받았다. 이것은 마음의 신이다.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에 스스로 위로받기 위한 처방이었다.


샤머니즘은 주술사인 사먼(무당)이 신을 대신하여 인간과 교감하는 신앙의 일종이고 애니미즘은 돌, 나무, 산, 물 등 모든 자연물에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그 힘을 숭배하고 그 힘에 대해 존경과 두려움을 갖고 기도하며 따르는 믿음이며 토테미즘 은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자연현상을 숭배하는 신앙의 형태이다. 이런 류의 민간 풍습신앙이 종교화(기원전 4000년~1200년) 하면서 사후영혼설이 태동하였다. 인간의 역사에서 종교는 짧은 시간이다. 우리나라도 석기시대 이후 고조선(BC2000년 전) 때부터 샤머니즘이 발생하여 무속신앙화 하였다





종교의 거짓형태를 지적함으로써 나의 주장을 합리화한다.


불교는 <輪廻>를 거짓하였으며

기독교는 <天動>을 거짓하였으며

이슬람은 신의이름으로 살해한다

말도 안 되는 <戰>을 거짓하였다.






그 이전에도 신은 있었다. 그러나 그 신은 사람이 만든 신이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설정된 신이었다. 신이 없다고 아무도 증명하지 못하듯 신이 있다고 아무도 증명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신이 있다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들이 너무 많다. 비견한 예로 이 세상이 생기고 일어나는 모든 전쟁의 반 이상은 종교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유럽의 200년 십자군전쟁에서만 20여 만 명이 사망했고 근대에 와서 극단적 이슬람교 종파인 IS 등이 아무 잘못이 없는 부녀자와 아동들을 처참하게 살해하거나 방송을 통해 살해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일 등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천인공노할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 사람들이 믿는 신이 정말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나쁜 짓을 하고도 신만 믿으면 천상에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절대적으로 신은 없다고 단정 짓는 이유이다.

神이란 사람의 몸과 마음속에 있다. 精神이 그것이다. 이 정신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도 절대정신이 神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있는 精神이 신이다"라고 말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정말 엄청난 진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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