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과 고추 먹고 맴맴

여인네가 부르는 恨의 노래 아리랑

by 풍초김해수



여인네가 부르는 恨의 노래 아리랑


먼저 걱정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전래되어 오고, 온 국민이 사랑하는 민요와 동요를 정확한 자료 없이 추론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입장을 밝히자면 작자나 연대가 미상인 노래들이 생겨난 근원을 추리하고 분석해서 상상을 더해 나온 가설이라는 것을 말씀드린다.


해석은 읽으시는 분들이 각자 판단하기 바랄 뿐이다. 그러나 해석은 정확해야 한다. 다만 그 시대에는 남녀 간의 몸사랑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혐오 시 하였으나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당당하다.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이고 문화이다. 이제는 시각을 다르게 봐야 한다.


아리랑은 아무도 출처를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애국가 다음으로 사랑받는 노래인데도 말이다. 아리랑이 불려진지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다. 문헌을 참고하더라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오래 잡아도 고려 때 거란이나 몽골과의 전쟁 이후 이거나 가까우면 조선 때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이후 정도로 추정한다.


아리랑은 작자미상이다 작자미상인 노래들은 어떤 함의가 있다.. 노출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창작된 시대도 중요하다. 그리고 지적하려고 하는 점은 고대에서부터 모든 구전민요든 설화든 성 담론이 들어가지 않으면 심심하다. 심지어 코카콜라 병을 만들 때도 연상작용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본래 원본)


이것은 내가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 음약교과서에 나온 작사미상의 가사이다. <맴맴>은 맵다는 말과

<돈다>는 말의 중의적 표음이다. 어머니는 하필이면 왜 아버지가 장에 갔을 때에 건너마을에 있는 아저씨 집에 갔을까? 동요이지만 출원이 불확실한 민요 수준의 서동요 같은 노래가사이다.


지금은 어머니대신 할머니로 바뀌었지만 분명히 어릴 때 음악교과서에는 어머니였다. 할머니가 나오는데 어머니가 없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노래가사를 쓸 때 대칭되는 대상을 넣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금은 달래로 바뀌었지만 어릴 때 들을 때는 담배였다. 담배는 맵고 어지럽다. 고추 먹고 맵고 담배 먹고 돈다. 쳐다보는 가족도 다 맵다. 예나 지금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 내가 <고추 먹고 맴맴>을 예로 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사정으로 뜻이 바뀌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려 함이다




아리랑의 출처를 나름대로 모두 조사해 보았다. 아리랑의 시원에 대하여 허무맹랑한 백가쟁명식의 이론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혁거세와 알영설(閼英說), 밀양 아랑설(阿嫏說), 허황옥과 아리낭, 대원군의 경복궁과 아이롱(我耳聾)등의 많은 설이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모두 억측이다. 논리도 빈약하고 개연성도 없다.


자칭 인간국보 1호라는 양주동박사는 전국의 지명에 나타난 '아리랑고개'의 예를 찾아 아리랑은 '아리+령(嶺)'이라고 하였으며 '아리'는 밝음, 광명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나는 글쎄이다.


존경하는 신용하 교수님께서도 아리랑은 '고운님' 쓰리랑은 '그리움'으로 2009년 8월 10일 자 <아리랑의 어원>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올렸으나 이렇게 아름다운 뜻을 가지고 있다면 작자미상인 것도 그렇고 아리랑가사에서 느껴지는 민초들의 절절한 恨의 정서와도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 르완다어(kinyarwanda)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으며, 이운용교수는 인도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인도 타밀나두에는 ‘아리람’이라는 사원이 많이 있다. 여기의 ‘아리’도 ‘쓰리’처럼 ‘위대한’ 또는 ‘존경하는’이라는 뜻을 가진 존칭이며 아리람의 ‘람’은 신을 뜻한다. 결국 아리+람은 위대한+라마신이라는 뜻이며 쓰리람 역시 존경하는 라마신, 위대한 람이라는 뜻이다. 인도인들의 위대한 신 ‘람’을 모시는 사원 이름이 아리람 스리람이다. 따라서 신 앞에 ‘아리’와 ‘쓰리’를 붙이면 ‘아리 람’ ‘쓰리 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람'은 '랑'으로 변했다는 거다


세계각국에는 '아리'란 말과 '쓰리'란 말의 <음>을 가진 언어는 많다. 유럽과 중동 문화를 일으킨 종족도 아리안족이다. 나 역시 후술 하는 내용이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하는 이론은 아니나 설득력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리랑은 <알이랑>의 연음법칙에 따라 생겨난 글자이고 쓰리랑은 <슬이랑>의 변음이다. <쓰>는 된소리 발음이고 <랑>은 국어사전에 이음토시, 接續助詞(단어와 단어를 같은 자격으로 이어 주는 기능을 하는 조사)로 나와있다. 누구랑과 같이 더불어의 뜻을 가진 복수형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알>은 무엇이고 <슬>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알>은 남녀의 몸에 있는 장기이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게 되면 <알이랑>이 되지 않겠는가. 쓰리랑의 <슬>역시 무릎슬(膝) 일 것이다. 무릎과 무릎은 <슬이랑>이 될 것이다. ('슬이랑'의 해석은 '알이랑'을 전제로 한 해석이다)

남자에게도 태아일 때 자궁이 있었는데 퇴화되었다. 남자의 자궁을 '전립선자궁'이라고 한다. 흔히 남녀 간의 사주를 맞춰보는 것을 '궁합'이라고 하고 초야를 치르는 것을 '합궁'이라고 하듯이 '알이랑'도 자연스러운 단어이다


'아라리' 역시 <알알이>의 변음이고 남녀의 만남을 상징한다고 본다

조선 영조시절 진도 지산면 목장에 설이향이라는 처녀가 진도 골원에 사는 소영이라는 총각과 정분이 나서 매일같이 만나는 모습을 보고 초군(樵軍)들이 ‘아애랑 설이향 <아라리>가 났네’라고 놀려댔다.

<'아라리'는 정분이 난 모습을 말한다>

1977년 11월 <월간진도> 이상보 (전고성중학교장의‘진도아리랑’중에서 )

※ 초군은 땔나무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개>역시 상징적 은어라고 본다. 옛날에 걸어서만 다녔던 일반인들로서는 고개는 힘들면서도 땀을 식히는 장소였고 이를 남녀의 어울림에 비유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태고이래 제3공화국이전까지의 역사는 전쟁과 가난의 연속이었다 위정자는 백성을 배반하고 속이고 자신들의 안위만 챙겼다 이런 난세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민초들은 오직 즐거움이라곤 남녀의 어울림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얼굴을 붉힐지 모르겠으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20만 년 전부터 이 <알이랑>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가 태어날 수 없다. 지금도 못 사는 사람들은 힘들지만 옛날에는 오죽하였겠는가. 첩첩산중 초막에서 의지할 데라곤 오직 체온을 나누는 부부와 가족밖에 없는데 그런데,


걸핏하면 부역 나오라 징집 나오라 하는데

나가면 돌아올 수 있기라도 했는가? 죽었다는 통지를 받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엎어져 울었을 우리의 어머니와 부인들을 생각해 보라,,, ,,, 옛날에 여자는 집에 일을 하고 남자가 바깥일을 해서 먹고살았기 때문에 남자가 없으면 앞으로 살아갈 생각에 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처음에 누군가에 의해 한 곳에서 불리던 노래가 이 마을 저 마을로 동화되어 불려지면서 인생의 질곡과 연동되어 아리랑은 고단한 삶, 그리고 아리랑고개는 삶의 역경과 끝내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까지 함축하는 철학적 국민가요가 되었다고 본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네>는 대개 남자들이 전쟁과 질병 등으로 십 년 이상 일찍 죽는 현실에서 이 험한 세상에 나 혼자 두고 가지 말라는 여인네들의 초혼가(招魂歌)적인 의미도 포함한 恨의 노래이다. 특히 정선아리랑 수심 편은 너무 슬프고 마음이 징하다.


-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 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



정선아리랑(아라리)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시도무형문화재 1호이다. 고려가 망한 후 고려의 마지막 신하들이 불사이군을 외치면서 강원 송도(松都)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두문불출의 어원, 후에 이방원이 불을 질러 강제로 나오게 함)


72명의 신하들 중 7명의 충신들이 정선 남면 거칠현동(居七賢洞;옛명:낙동리)으로 옮겨 은신하며 산나물만 먹고 생활하면서 망국의 설음과 한을 한시(漢詩)로 지어 부르던 것이 일반인에게 전해져 강원도 특유의 격리된 산골문화에서 오는 외로움과 빈곤 그리고 척박한 삶과 한을 덧씌워 전래가요로 전해져 오고 있다.


정선아리랑은 구슬픈 여음이 특히 가슴을 파고드는 그런 타령조의 노래이다. 한편 채록된 정선아리랑은 생활 편 317곡 인간관계 편 347곡 이성 편 136곡 환경 편 157곡 기타 185곡 등 총 1200 여수가 발굴되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정선아리랑(정선아라리) 중 수심 편(愁心篇)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며는 해당화는 왜 피며

묘춘삼월이 아니라며는 두견새는 왜 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후렴)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오늘 갈런지 내일 갈는지 정수정망(定數定望)이 없는데

맨드라미 올 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https://www.youtube.com/embed/xOwdWF6lGfQ

황선남의 정선아리랑(정선아라리)

<노래라기보다는 차라리 울음에 가깝다>





아리랑은 구전으로 떠돌던 구한말인 1893년 고종황제의 외교고문으로 와있던 미국인 호머 베잘릴 헐버트(Homer B Hulbert)가 처음 영문가사로 채보하여 Korea Repository란 잡지에 소개하였다. 헐버트는 이 글에서 “한국인에게 있어 아리랑은 쌀과 같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아리랑이 국민민요로 애창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최초의 영화 <아리랑> 감독인 나운규가 주제곡으로 경기아리랑을 편곡하여 '신조아리랑'곡을 만들었는데 나운규(羅雲奎)가 작사하고 김서정(金曙汀)이 편/작곡한 곡을 이상숙(李上淑)이 불러 크게 히트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의 애환과 체념과 한을 대신하며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되었다.


아리랑은 본조아리랑(경기아리랑)과 별조아리랑(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등)으로 구분한다.


아리랑은 남존여비시대의 여자의 한이고 바람이고 노래이다. 잦은 전란(戰亂)과 부역(賦役)으로 집을 비우거나 죽어서 돌아오는 남편을 원망하는 초혼적 함의(含意)도 있다. 아리랑을 앞서 서술한 대로 해석해 보면




경기아리랑(본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남녀가 사랑하는 모습 (정든 님과 사랑하며 사는 모습)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남녀가 사랑하는 모습(인생 고생고개를 지나는 모습)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아쉬움을 표시(부부 중에서 먼저 죽는 님)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쉬움을 원망하는 표현(먼저 죽는 님을 원망하는 넋두리-초혼가)



밀양아리랑

날좀 보소 날좀 보소 날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좀 보소

나와 어울립시다/ 한겨울에 꽃을 본 것처럼 날 반갑게 맞아주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알이랑 슬이랑 아라리가 났네/ 날 행복하게 해 주오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도 못해

정인이 날 찾는데 부끄러워서 말은 못 하고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방긋

그냥 행주치마만 들어 님을 맞이하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알이랑 슬이랑 아라리가 났네/ 날 행복하게 해 주오



강원도 아리랑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간다. (후렴)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 마라 누구를 괴자고 머리에 기름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여는가

(<열고> <여는가>는 동음이의(同音異意) 괴자고(꾀다의 방언))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 만나보세

아리랑 고개에다 주막집을 짓고 정든 임 오기만 기다린다

(아주까리 밭은 밖에서 잘 보이니 살구나무 밭에서 만나세)

산중의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나 하나라

흙물의 연꽃은 곱기도 하다 세상이 흐려도 나 살 탓이지

(세상 원망 말자고 스스로 위로하는 흥얼거림)



진도아리랑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알이랑 슬이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알이랑 콧소리(의태어;擬態語) 내며 아라리가 났네)


문전세재는 웬 고갠가 (문경새재가 아니고 문전세재가 맞다. 여자가 시집와서 넘는 세 개의 문턱고개 : 고생고개)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인생고개마다 한이 서린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알이랑 슬이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알이랑 콧소리(의태어;擬態語) 내며 아라리가 났네)

만경창파에 두둥둥 뜬 배

(세파에 휩쓸려 사는 인생)

어기여차 어야 디어라 노를 저어라

(그러나 용기 있게 헤쳐가 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알이랑 슬이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알이랑 콧소리(의태어;擬態語) 내며 아라리가 났네)

노다가세 노다나 가세

(나랑 놀다 가십시오)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노다나 가세

(새벽까지 밤이 새도록 놀다 가십시오)

따라라 따라라 나만 졸졸 따라라/ 뒷동산(?) 좁은 길로 나만 졸졸 따라라



진도아리랑에서 현재 해석에 문제가 있는 <문경새재> 부분은 진도지방에서 주장하는 <문전세재>가 맞다고 본다. 전라지방 민간풍습유흥요에 경상도 고개(문경새재)가 나온다는 것은 좀 뜬금없어 보인다.


문전세재(門前歲岾)는, 안방에서 부엌으로 나가는 쪽문, 부엌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부엌문, 마당에서 밖으로 나가는 싸리문(북망산천)의 세 개의 문으로 세월고개(歲岾)를 의미한다는 뜻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출처:진도예향신문박종호편집국장)


- 역사라고 다 맞는 것은 아니다 때론 왜곡되기도 한다 -

옛날에 시집온 여인네들은 친정나들이를 못했다. 여기서 싸리대문 혹은 동구(洞口) 안 세상(시집)에서만 사는 여인네의 삶을 의미한다고 봤을 때 시집온 여인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건 죽어서 만이 가능했다.


이 세 문턱이 여인네의 삶에 태산준령같이 높고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 시집와서 초야를 치르고 부엌에서 손에 물을 묻히기 시작하고부터는 친정에는 못 가고 평생을 부엌과 마당을 오가며 살다가 죽어 시신이 되어서야 대문밖을 나가 자유를 얻는 여인네의 한을 노래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진도는 섬이기 때문에 더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가사가 만들어지던 시기와 장소에 따라 경북에서는 문경새재라고 불렀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진도아리랑에서 만큼은 <문전세재>가 맞다고 본다)


- 문전(門前) 세재(세월고개)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


https://youtube.com/watch?v=0IvQK_q2u7s&feature=shared


진도아리랑에서 후렴구(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 응 아라리가 났네)는 똑같지만 메기는 소리는 10연 20연 100연도 만들 수 있고 메기는 사람에 따라서 내용도 즉흥적이다.(진도아리랑은 500수 정도 된다고 함)


우리나라 민간역사에서 설화나 민요들은 직설화법보다는 은유화법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민초들의 본능과 생리적 욕구같이 드러내기 예민한 사안이나 생과 죽음같이 절박한 처지에서의 삶과 한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이 흥얼흥얼 그냥 노래로 풀어낸 것이 아리랑이고 그중에서도 진도아리랑은 정과 한을 그나마 직설적으로 풀어냈다.


아리랑은 필자가 풀이하는 대로의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 따라 감정에 따라 똑같은 문장도 다른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 (중의(重意)적 함의가 많다).






그 외에도 (문경시청홈페이지> 전통문화> 문경아리랑>에서 채집)


니월아 시월아 가지 마라

(네월아 세월아 가지를 마라)

압갑운 청춘이 다 늘는다

(아까운 청춘이 다 늙는다)

홍득게 방마치 얼마나 조와

(홍두깨 방망이 얼마나 좋아)

큰 애기 손에 다 녹아지니

(큰애기 손에 다 녹아 지나)

-울산지역 <초부가>




거재봉산 박달나무

(거제봉산 박달나무)

홍득게 방마치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동래부산 큰 애기는

(동래 부산 큰 애기는)

콩지름 장사로 다 나간다

(콩기름 장사로 다 나간다)

-창원지역 <제목 없음>

※지금은 부산시 안에 동래구가 있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동래부 안에 부산진포 였다


이상과 같이 아리랑은 사대부 선비들이 불렀으면 어디 기록이라도 남이 있을 텐데 무지렁이 민초들이 막걸리 한잔하면서 지게 작대기로 장단 맞추며 불렀던 속 풀이 타령이었기에 구전으로만 남이 있고 또 가사도 세월 따라 환경 따라 변하기도 했다.


발생어원이 어떻든 지금은 8천만 한민족이 국가처럼 사랑하고 있고 같이 부르면 괜히 가슴이 찡함을 느끼는 국민가요인 아리랑을 모두 잘 보존하고 아껴서 자자손손 불리게 했으면 한다.



https://youtube.com/watch?v=oD6inlRkAhE&feature=shared

KBS교향악단의 일본 오사카 심포니홀 공연



2012-10-25 작성

2025년 8월 발표

風草생각




외설과 문학과의 차이


치마/문정숙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티/임보

-문정희의 <치마>를 읽다가-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팬티와 빤스/손현숙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팬티로 갈아입어야 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살살 끼우면
약간 마음이 간지럽고 살이 나풀댄다
나는 다시 우아하고 예쁜 레이스공주


밖에서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한다면
세상에, 땡땡이 빤쓰인 채로 공개되면 어쩌나
비싼 쎄콤장치로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듯
유명 라펠라 팬티로 단단한 무장을 한다


오늘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혹시라도 치마가 팔랑, 뒤집힌다면

나 죽어도 꽃무늬 레이스로 들키고 싶다


풍초편집












작가의 이전글신 지역주의(new regionalism)를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