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의 중도사상과 인도인의 숫자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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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지금의 불교와 태초 석가모니부처의 공부 이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석가나 예수 혹은 공자나 마호메트 같은 흔히 성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노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사상가이고 선각자이면서도 다른 점은 대중을 상대로 적극적인 계몽과 인류공영의 행복과 사상을 몸소 직접 행동으로서 감동을 주고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공자는 학자에 가까웠으나 석가와 예수 그리고 마호메트 같은 사람은 그 이론이나 대중적 카리스마가 강해 사후에 제자들이나 권력자에 의해 대중적 요소가 가미되어 종교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역사를 지배하고 있다.
종교는 이러한 사상과 철학이 신과 만나면서 혹은 후에 제자들이 인위적으로 접목을 시켜, 이용한 측면도 있다. 사람들의 생활이 문명과 만나면서 도시화되고 국가화되어 가는 과정에 대중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능이 필요하였고 니즈(needs)가 공급을 만들듯이 자연스럽게 그 시대 미욱한 서민들에게는 절대신이 필요했던 만큼 선각자의 이념과 철학을 기존의 토속신앙과 접목시켜 지도자가 그 신을 추존함으로써 대중을 장악할 수 있었다.
종교는 권력이다. 지금까지 어떤 학자도 감히 종교에 도전하지는 못한다.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하여 후학들이 기존 교단의 창조론과 지루한 논쟁을 끌어 오면서도 결론에 가지 못하는 것 또한 다름 아니다.
불교는 석가가 6년 고행명상 후 철리(哲理)와 진리를 대각(大覺), 터득(攄得)하여 이를 인도 전역을 돌며 설파하다 입적한 후 1차, 2차, 3차 불교 대 결집을 거치면서 수행자들 사이에서도 분파가 생겨나고 이론도 각자 해석이 달라 애당초 석가가 쉽게 가르침을 주었던 이론들을 상좌부귀족승(소승불교:주류)들이 이에 더욱 복잡한 주석을 달아 승원을 중심으로 고도의 철학적이고 난해한 법 논리를 전개하면서 불교는 소수의 지식인들만이 알 수 있는 고급종교가 되어 있었다.
교단에서 배척된 비주류들이 이를 비판하면서 대중부 승단이 상좌부승단과 갈라지고 이에 대중부 승단이 후에 대승불교로 바뀌면서 카슈미르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일어났다. 재가신자들과 개혁적인 승려들은 중생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추상적인 논란만 일삼으며 권력과 유착하여 일신의 안락함만 누리고 있는 기존 승단을 비판하면서 부처님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 중생들을 구원하는 참된 불교가 되자는 명분으로 시작하였으나 이들 역시 나중에는 권력화 하였다.
대승불교는 창설 당시 부파불교(아비다르마)에서 소외된 승려들이 주도하여 석가의 가르침을 대승적으로 해석하고, 지식계급층의 독점적 교리를 대중을 상대로 하는 쉽고 일반적인 기복교리로 재구성하였다.
대승불교는 BC1세기에서 AD1세기 사이에 창설되었으나 교리가 완전히 확립되지 못하다가 나가르쥬나(용수보살)가 AD2~3세기에 중론을 통해 공사상(空, sunyata)을 체계화했고 대승불교에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고 철학적으로 심화 체계화 시켰다
대승불교는 그즈음에 발생하여 교세를 넓혀가던 힌두교의 박티신앙을 일부분 받아들여 부처님을 믿기만 하면 복을 짓는다는 발복신앙인 아미타불신앙과 죽어도 업보에 따라 사람이나 축생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설을 도입하여 내세(來世)의 구원과 현세(現世)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중종교를 창설하였다.
이러한 대승불교는 남방(동남아:상죄부)에서 배척되어 북방불교(동북아)와 만나면서 카슈미르,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 등으로 건너가면서 각 나라마다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엄청난 변화를 주면서 크게 발전하였다. AD520년 보리달마가 중국낙양에 들어와 소림사에 대승불교 선종(禪宗)을 창시하였다.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종교철학에 전문적 식견이 없는 필자로서는 어디까지나 사견을 전제로 불교의 윤회설을 나름대로 객관적, 과학적인 상상을 동원해 유추해 보았다.
우리는 가끔 데자뷔(기시감)를 경험한다고 한다. 우주는 무한대인가? 우주물리학에서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 우주의 크기는 반경거리 465억 광년이라고 한다. 빛의 속도로 달까지는 1초, 태양까지는 8분 걸린다는데 그 크기가 짐작도 안된다. 우주의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를 광속으로 가면 930억 년이 걸린다고도 한다. 수치개념이 너무 커서 피부에 와닿지를 않는다. 그런데 고대 인도의 숫자를 보면 서로 공통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숫자의 크기로 볼 때 오히려 우주물리학에서 보는 우주의 크기보다 실재 우주가 더 클 수도 있겠구나 라는 함의(含意)를 준다.
흔히 옷깃 한번 스치는 인연을 18겁의 인연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1겁이 13억 4400만 년이라니 *18을 하면 241억 9200만 년 이라니 가히 인도의 숫자는 엄청나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일 큰 숫자로 흔히 억 다음에 조, 그다음에 경 정도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경 다음에 해, 서(자), 양, 구, 간, 정, 재, 극, 항아사, 아승기, 나유타, 불가사의(10의 64승), 백가사의, 천가사의, 무량수(10의 68승), 겁, 업, 무한대수(끝이 없는 수)-인도의 수이고
참고로 현대에는 구골, 아산키야, 센틸리온, 스큐스수, 구골플렉스(0이10억개), 구골플렉시안, 그레이엄수(0이 100조 개) 현존하는 수 중에서 가장 큰 수는 <리틀 바이겟돈>이라고 한다.
또, 작은 수로는 할, 푼, 리, 모, 사, 흘, 미, 섬, 사, 진, 애, 묘, 막, 모호, 준순, 수유, 순식(10의-16승), 탄지, 찰나, 육덕, 허공, 청정(10의 -21승) 등이 있다는데 불가사의나 무량수, 모호, 순식, 찰나(10의-18승), 허, 공, 청, 정(10의-23승) 같은 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듣던 말이다. 현대수로는 나노 피코미터 펨토미터 등이 있다.
분(分) 10의 -1승 1/10
이(釐) 10의 -2승 분의 1/10
모(毛) 10의 -3승 이의 1/10
사(絲) 10의 -4승 모의 1/10
홀(忽) 10의 -5승 사의 1/10
미(微) 10의 -6승 홀의 1/10
섬(纖) 10의 -7승 미의 1/10
사(沙) 10의 -8승 섬의 1/10
진(塵) 10의 -9승 사의 1/10
애(埃) 10의 -10승 진의 1/10
묘(渺) 10의 -11승 애의 1/10
막(漠) 10의 -12승 묘의 1/10
모호(模糊) 10의 -13승 막의 1/10
준순(逡巡) 10의 -14승 모호의 1/10
수유(須臾) 10의 -15승 준순의 1/10
순식(瞬息) 10의 -16승 수유의 1/10
탄지(彈指) 10의 -17승 순식의 1/10
찰나(刹那) 10의 -18승 탄지의 1/10
육덕(六德) 10의 -19승 찰나의 1/10
허(虛) 10의 -20승 육덕의 1/10
공(空) 10의 -21승 허의 1/10
청(淸) 10의 -22승 공의 1/10
정(淨) 10의 -23승 청의 1/10 모든 수 가운데 가장 작은 수
큰 수
억(億) 10의 8승 만의 만배
조(兆) 10의 12승 억의 만배
경(京) 10의 16승 조의 만배
해(垓) 10의 20승 경의 만배
자(禾+시) 10의 24승 해의 만배
양(穰) 10의 28승 자의 만배
구(溝) 10의 32승 양의 만배
간(澗) 10의 36승 구의 만배
정(正) 10의 40승 간의 만배
재(載) 10의 44승 정의 만배
극(極) 10의 48승 재의 만배
항하사(恒河沙) 10의 52승 극의 만배
아승기(阿僧祇) 10의 56승 항하사의 만배
나유타(那由他) 10의 60승 아승기의 만배
불가사의(不可思議) 10의 64승 나유타의 만배
무량수(無量數) 10의 68승 불가사의의 만배
무한대수
오늘(2010-7-7) 중앙일보 신문에 중앙 Sunday 지식팀장인 김환영의 <시시각각>이란 칼럼을 보다가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적고 있다. 잠깐 칼럼을 인용하면
공간에서 시간으로 옮겨가 보자. 미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철학에서 현재주의(presentism)는 현재만 존재할 뿐 미래나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반대로 영원주의(eternalism)에서는 미래가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의 일상생활 세계로 내려오자. 그래도 우리는 ‘미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가끔은 목격하고 체험한다.
사회과학자들에게 미래는 예측의 대상이다. 그러나 행동하는 비저너리(visionary)들에게 미래는 창조의 대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창조할 수는 있다”(댄드리지 콜),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피터 드러커)라는 말을 신조로 삼는다. 어쩌면 미래 창조가 미래 예측보다 더 쉽다.
예컨대 우주가 무한(無限)하다면 우주 곳곳에 지구와 거의 똑같은 행성이 무한히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중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도 있는 지구들이 있을 것이다.
앞의 인용문 중 밑줄 친 부분이 나의 평소 생각과 같은 논리이다. 우리 인간이 가보지 못한 우주공간을 시계에 비유하고 지금 지구를 6시 위치에 두면
1시, 2시,,,,,5시(과거지구) 7시, 8시,,,,,11시, 12시(미래지구) 마다 또 다른 우주(은하계가 있고 태양계와 지구)가 있어 時와 空을 초월해 각각 과거와 미래가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이건 정말 순수한 상상일 뿐이다)
※첨서: 이 글을 발표하고 있는 15년 뒤인 지금 스티븐 호킹박사가 다중우주이론을 소명하는 논문을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에 제출했다
일찍 문명이 발달한 인도에서는 점성술사들과 철학자들에 의해 그런 논리들이 있었을 것이고 성자(석가부처) 전의 수행자(아라한)에 의해 바라문(브라만) 교와 힌두교의 윤회설로 전이되었다가 대승불교 창설 시 불교교리에도 들어왔다고 본다.
탄생 시 인간의 몸에 들어간 우주의 기(숨결;숨의 파동)가 죽음과 동시에 다시 우주로 돌아가 몇 초 혹은 몇 만년을 떠다니다 또 다른 사람의 몸이나 짐승의 몸에도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인도의 철학자들과 아라한(수행자)은 이런 것을 윤회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가정).
대승불교의 경전은 총 30 만송(경 10만, 율 10만, 논 10만)인데 이중 8만 4000 송을 고려 때 목판대장경으로 편찬하여 지금까지 해인사에 보관 중이다. 반야심경은 반야경 600권을 270자로 줄인 게 <반야심경>이고 이 것을 다시 8자로 요약한 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중관학파(空思想-모든 사물은 自性이 없고 상호 의존적인 緣起관계로만 존재한다)인 나가르쥬나 의 영향을 받은 것이 대승불교이기 때문이다. 중관학파의 반대학파인 유식학파(唯識學派=瑜伽學派:유가학파)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카롤 융이다.
대승불교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고 공사상을 주창한 나가르쥬나 는 무자성을 주장하였는데 그런 대승불교에 자성이나 自我(아트만:Atman)를 고리로 하는 힌두교의 교리를 차입하는 것 자체가 無我(아나트만:Anatman)를 핵심교리로 가르친 석가부처님을 모욕하는 일이다.
색과 공에 관한 유명한 선문답이 있다.
고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저기 네가 지금 쳐다보는 저 별의 수명이 3만 광년이고 저 별과의 거리가 5만 광년이면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저 별은 현재 있는 별이냐 없는 별이냐라고 물었다. 실제로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저 별이 이 시점에 사실은 소멸하고 없는 별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물질에 대한 부질없음을 깨우쳐주는 일화이다. -과거에 있다 없어진 별이지만 지금 현재 엄연히 보고 있으니까 色이요 사실은 소멸하고 없으니까 空이다(색즉시공, 공즉시색)
여기서 空과 色은 영원한 화두이다. 공은 무자성(無自性;無我)을 색은 실유이고 색수상행식 오온 중 識에도 제1 식인 안(眼)식, 2식=이(耳)식, 3식=비(鼻)식, 4식=설(舌)식, 5식=신(身)식과 제6 식인 意識이 있고 무의식의 한 부분인 제7식 말나(末那)식(아집의 본원)인 잠재의식, 그리고 제8 식인 저장식 아뢰야(alaya:阿懶耶)식은 무의식 속에 삼층적으로 존재한다.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도 모든 사물과 파동은 心 즉 識에서 형성된다 라는 말이다.
이런 선문답(풍동번동)도 있다.
한 스님이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니까 깃발이 흔들리는구나라고 하니까 다른 스님이 깃발이 흔들리니까 바람이 이는 것이라고 하며 다투는 것을 보고 육조혜능이 바람도 가만히 있고 깃발도 가만히 있는데 두 사람의 마음이 흔들려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일체유심조-
나는 여기서 신라시대 고승 원효대사의 무애(無碍) 사상이 소승이냐 대승이냐라고 하는 논쟁의 해답을 말해 준다고 생각한다. 당시 신라의 불교가 대승불교였으나 원효는 굳이 분류하자면 사상적으로 소승 쪽에 가까웠던 것 같고, 자기 구도는 소승 쪽을, 중생구제는 대승 쪽을 함께 추구하였고 교학적으론 중관학파(대승)와 유가학파(소승)의 논리를 모두 취했으나 유식(유가) 파 쪽에 조금 더 가까웠다고 한다(학자들).
의상과 함께 당나라 현장법사를 만나기 위해 당항성으로 가던 중 비를 만나 토굴 속에서 자다가 해골 물을 마시고는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이치를 깨닫고, 법은 인도나 당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큰 깨달음(만물일체유심조)을 얻고 혼자 돌아와서 평생을 저술과 대중교화에 힘썼다. 원효는 소승의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사고와 대승의 자비실현과 중생구제활동의 교리를 모두 취하여 어느 쪽에도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무애사상을 설파했으며 학문적으로는 자기의 이념과 일치함에 크게 감명하여 대승기신론에 주석을 단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등을 저술하였다.
마명(馬鳴)의 <대승기신론>은 인도에서 그 당시 대립되고 있던 양대 불교사상, 즉 중관파(中觀派)와 유가파(瑜伽派:유식파)의 사상을 지양, 화합시켜 진(眞)과 속(俗)이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현실생활(俗) 가운데서 깨달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추구하고 수행함에 의하여 완성된 인격(眞)을 이루어 갈 수 있으며, 깨달음의 단계(眞)에 이른 사람은 아직 번뇌의 단계(俗)에 있는 중생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임을 주장함으로써 진속 일여(眞俗一如)·염정불이(染淨不二)의 사상을 잘 나타낸 논서이다.-지식in
현재 지구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듯 불교 내에서도 분파가 많다. 주장과 논리가 백가쟁명이다. 원효는 1500년 전 이미 부처의 참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종교이전에 구도자이면서 사상가인 원효는 많은 저술에서 자신의 주장을 폄에 있어 '화쟁'(和諍)이라는 방법을 썼다. 그는 어느 일종(一宗)이나 일파(一派)에 구애됨이 없이 “세상의 모든 물이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듯이 만법(萬法)이 일불승(一佛乘)에 통합되어야 한다”라고 하여 대승과 소승 선교와 밀교등 상호 대립적인 교의를 모두 화의 하여 일불승(一佛乘)에 귀결시키려 했다.-지식in-
이 화쟁방법은 근원적으로는 석가의 화합(和合)과 중도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석가모니는 당시 수많은 사상들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형이상학적 철학문제에 대한 논쟁에 가담하지 않았다.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진실한 실천적 인식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진실하게 사는 길과 진실에 대한 실천적 인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 하였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불교를 만들면서 이런 가르침을 왜곡하였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윤회설 역시 지금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윤회가 신자를 만들기 위한 고리로서 종교가 갖추어야 할 조건인 선악개념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애초 그 기원은 기(숨결)의 순환을 의미 한 사상철학적 사유에서 연유하여 종교와 접합한 것이다.
<도올 김용옥도 윤회를 "인도문명의 윤리적 요청에서 나온 신화적 구성"이라고 했다> -mbc특강에서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설명하면서-
과거와 미래 역시 시공을 초월하면 동시간에 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의 시간꼴:타임머신)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구현)
타임머신은 아직까진 공상소설 단계이나 실제로 비밀리에 연구하는 곳도 많고 공간이동과 같은 연구는 실제 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과학이 더 발전하여 진짜 타임머신을 만들어 낸다면 그래서 80년 전의 제1회 우루과이월드컵도 직접보고 80년 후의 월드컵도 직접 볼 수 있다면 종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의 비밀도 직접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타임머신의 요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순간이동이 빛의 속도(1초=30만 km) 보다 빨라야 밝혀질 수 있는 화두인데, 그때에는 윤회의 비밀도 함께 밝혀질지, 아니면 실제로 밝혀져도 종교권력에 의해 연구자체가 영원히 사장되어 버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2010-07-08 작성
2025-08-09 발표
風草해마루
※ 표시는 발표 시 첨가한 글임 그 외에도 조금씩의 수정은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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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구팀 “시간여행 이론상으로 가능”
시간여행, 정말로 가능할까?
최근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공상과학영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시간여행’이 이론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고 주장해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적어도 어떤 소립자(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한해서는 시간여행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
미국 앨러 배머 대학(the University of Alabama)의 헤인리 파스(Heinrich Pas) 교수는 “‘뉴트리노’(강한 상호작용 - 2개의 소립자가 약 10-15m의 거리에 있을 때 작용하는 힘 - 을 하지 않는 경입자족에 속한 중성미자)는 봄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처럼 지구를 빠져나가버려 어디에도 없는 소립자와 같다.”며 “이러한 뉴트리노가 3차원 세계 밖에도 존재하고 있어 시간여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이스라엘의 유명 공과대학 ‘테크니온 공과대학’(Technion-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의 아모스 오리(Amos Ori) 교수도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해 파스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오리 교수의 이론은 가상의 조건과 상황을 설명하는 수학 방정식으로 그가 고안해 낸 과 학적 용어인 ‘폐쇄된 시간 모양의 커브’(closed time-like curves) 형성의 가설적 조건을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론이 향후 다른 물리학자들에 의해서도 증명이 된다면 ‘타임머신’의 새로운 구성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오리교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사실상 행성처럼 거대한 물체가 잡아당기는 중력이 시공간을 되돌릴 수 있음을 말한다.”며 “지금까지의 시간여행 이론은 시간의 윤곽이 사실상 고리모양의 형태로 돌이킬 수 있다는 ‘벤딩 시공간’에 근거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타임루프’(time loop)의 발생을 가능케 하는 가설적 윤곽을 그려냈다.”며 “이론상으로 ‘타임루프’ 안에서는 시간이 스스로 과거 쪽으로 완만한 굴곡을 그리며 되돌아갈 수 있어서 사람들이 그 루프를 따라 여행한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미국 페르미 연구소(Fermi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는 파스 교수와 오리 교수의 이론을 증명 중에 있으며 오리 교수의 이론은 물리학 저널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에 게재되었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2010-8-9 추가입력
자연(自然)은 없다. 자연이란 낱말 그대로 해석하면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이다. 자연에는 自性이 없다. 자연도 언젠가는 변하기 때문이다. 자성이 있다면 영원히 변하지 않아야 한다. 자연이 없는데 내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제행무상, 제법무아이다. 그러나 자연의 자성은 없지만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고 살아야 한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진리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이다.
2011-2-15 첨서 -풍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