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의 함정[想念]

많이 안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by 풍초김해수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은 프랑스 미디어철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evy)가 1990년대에 개념화한 이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더 나은 답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피에르 레비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든지 무엇인가는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완전한 지식은 한곳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흩어져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은 이 흩어진 지식과 역량을 식별하고, 연결하고, 동원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장이 됩니다"라고 집단지성이 인터페이스를 통해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요즘은 AI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말을 다수결의 원리에 등치 해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다수가 동의하면 맞는 답이라는 거다. 그러나 집단지성은 위험도 같이 내포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보다는 그룹의 의견에 동조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고 또, 다양성이 있는 의견이 배제되거나 무시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수가 찬성한다고 해도 이 것은 확률적 논리이지 꼭 맞다고 볼 수도 없다. 그게 100% 정답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열명 중 아홉 명이 다 똑같은 주장을 해도 다른 주장을 하는 한 사람의 말이 더 정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집단사고(Groupthink)의 오류위험을 경고하는 논리도 있다. 다수가 동조하면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확률도 많아진다.


여러 사람이 달리기를 할 때 결승지점의 데이프를 끊는 것은 1등으로 달려간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보기만 했지, 그 감을 모른다. 내 몸이 결승테이프에 닿는 느낌은 한 사람만 안다. 눈으로 본다고 다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철학에서도 진리는 사실과 논리의 일치 문제이지 사람 수와는 상관이 없다. 어떤 사안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증거와 논리적 타당성으로 판단해야지 동의자가 많다는 이유로 결정된다면 사실이 왜곡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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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말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얼마나 알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어떤 책을 썼으며, 전공과 직업이 무엇인지의 외형에 따라서 그 분야에 전문가라는 인식을 갖고 "그 말이 맞겠네"라고 동의한다. 거꾸로 어떤 사람이 철학적 사유로 인생을 논할 때 그 사람이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학벌도 좋지 않고, 전문적 식견이 부족하다는 근거로 그 사람의 논리를 진실로 받아들이길 주저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며 여러 사람의 동의했다고 꼭 맞는 말도 아니다. 문제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다 서울대학교를 나온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전 재산을 봉납하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이 무지해서 그런 요설에 빠지지는 않았을 거다. 배움이 많아도 자기 모습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거다.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특이한 시선으로 본질을 집어내는 사람이 있다. 인간은 통합적 시선을 가진 자와 개별적 시선을 가진 자로 나뉜다. 그 사람만의 독특한 논리와 감각으로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부분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정답은 없는 것이기도 하다. 다수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면 정답이고 받지 못하면 오답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라고 하는 시간을 지나다 보면 오답이 정답이 될 수도 있다.


현대과학에서 <맞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는 뉴턴도 아인슈타인도 항상 자기의 이론이 깨질 수 있다는 전제로 발표하기 때문이다. 과학의 역사가 그렇다.


오늘 자기가 하는 주장이 다 궤변이고 억지주장이 될 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볼 때 그 분야에 전문가도 아니고 細密雜多한 지식이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원전 5세기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도 인간의 인식과 상황에 따라 진리가 달라진다고 했고, 후대의 니체(Nietzsche)도 권력과 해석에 따라 진리는 달라진다고 하였다. 이렇듯 진리란 세월이 흐르고 나서 밝혀질 수도 묻힐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異說을 잘 용인하지 않는 풍토이긴 하다.


나도 그래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주장을 갖고 그때마다 조금씩 써 나가고 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열심히 할 뿐이다. 풀같이 살다가 그냥 바람같이 가는 것이 아쉬워 생각날 때마다 몇 자씩 적곤 한다.



風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