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왜곡되어 위협받고 있다.
아직까진 크게 변한 건 없다.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분위기로 볼 때 계속 이렇게 평온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느끼게 될 때에는 이미 늦다. <자유와 평등>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그런데 이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독재는 군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민간독재도 있고 민주독재도 있다.
지금의 여당이 국회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말은 장황해도 내용은 두 마디이다. <내란세력청산>과 <선출된 국민의 뜻>이다. 다수당인 우리가 하는 논리는 곧 '국민의 뜻'이고 이에 반대하는 야당의 논리는 '내란세력의 저항'이라고 한다. <정당해산> 말도 나온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법은 다 만들어서 통과시킨다. 협의는 애당초 할 생각도, 필요도 없다.
민주는 다수가 아니고 협의를 통한 합의의 과정이다. 민의를 그렇게 자신하는가? 아니면 목적을 위해 과정은 일부러 눈을 돌리는 것인가?
무능한 야당은 나라와 국민은 뒷전이고 다음 선거 생각뿐이다. 몸을 너무 사린다. 파편이 튈까 봐서이다. 마치 관제 야당 같다. 매스컴에 얼굴 한번 목소리 한번 내면 끝이다. 오직 믿을 곳이라곤 사법부뿐이다.
그런데, 오늘 대통령실에서 대법원장의 사퇴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였다고 하네.. 여당의 대법원장 사퇴요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 강유정대변인이 이렇게 답했다. "원칙적으로 공감한다" 무서운 논평이다. 대통령의 직접 입도 아닌 대변인이 3부 요인의 한 사람이고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대법원장의 거취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대통령의 뜻이라고 봐야 한다.
대통령은 전국민중 투표한 사람의 49.42%의 표로 당선됐고, 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의석수로는 161석을 가져갔지만 유효투표자 중 득표자수는 50.48%이다. 대통령은 유효투표자수의 49.42%, 민주당은 50.48%만 가져갔고 국민의 힘은 45.08%였다.
유효득표자수의 절반이 투표했을 뿐이다. 국민의 힘과의 득표율 차이는 5.4%이다.'국민의 뜻'을 대의하려면 5.4%만 더 주장하면 된다. 지금 여당의 표를 안 찍은 유권자도 50.58%와 49.52%나 되고, 아예 투표를 안 한 33%의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들 까지 더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나는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관여하고 싶지 않은데 지금 쓰는 이 글은 정말 걱정이 앞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다가 차진아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검찰개혁을 막을 수 있는 건 국민뿐이다. 나라가 망한다고 얘기하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봤다. 정말 용기 있는 소신발언인데 이러한 시대에 왜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한지를 말해 주었다. 다들 침묵하고 있는 와중에..
또,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조희대 대법원장이다. 이 분은 절대 물러나면 안 된다. 물러난다면 무책임한 거고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짓는 거다. 독재의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 소임을 다 해야 한다.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있는데 오직 방파제는 대법원뿐이다. 대법원 청사 1층에 있는 조각상 <'디케'의 저울>처럼 어떤 정치적 고려 없이 중도와 법정신을 수호해야 한다. 수장이 바뀐다면 그냥 둑이 무너지듯 쓰나미가 밀어닥칠 것이다.
지금의 정권은 운동권 정권이다. 진보라는 집을 지었지만 본래부터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불신하고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다.
차교수가 국민만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했는데 국민은 너무 조용하다. 앞장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사태를 막기 위해서 앞장서면 내란세력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사태가 끝나고 난 뒤에야 후회한다.
언론을 제4부라고 하는데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맞는 건 맞다고 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모두 입을 다물었다. 눈치만 볼 뿐이다.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사명' 보다는 생존을 우선시한다.
무엇이 그들을 입을 다물게 하고 있는가? 보수언론들도 정부 여당에 비판적인 언론은 페간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빠진 것 같다. 아예 자체 검열을 하는 것 같다. 방송 시사패널의 논평도 여야의 균형을 의식적으로 맞추고 있다. 패널의 균형 이 아니라 사실과 논리의 균형을 추구해야 正論이다.
요즘은 제5부의 권력부로 떠 오르는 유튜브가 간헐적으로 목소리를 내긴 하나 이 역시 극우에 치우쳐 외면당할 뿐 아니라 개인채널이기에 힘도 없다. 찾아 들어가야 보기 때문에 중간지대에 있는 중도층은 보지 않는다. 그래서 여론에 왜곡현상이 온다. 여론의 저울추가 많이 기울어 경도되어 있다.
정부가 국회를 장악하고 언론의 입을 막아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엘 지블랫(Daniel Ziblatt) 하버드대교수가 공동집필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의 책 내용은 민주주의가 합법적 투표를 통해 무너지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꼭 쿠데타나 계엄만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도 권력층의 의지에 따라 외관상, 법률상, 민주적 절차를 거쳐 독재화될 수 있고 자유와 평등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고, 정부와 국회를 장악한 정당이 어떻게 언론을 길들이고 사법부를 무너뜨리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지금 미국의 상황을 빗대 책을 썼다고 보는데, 한국도 똑같이 적용되는 일반론적 논리이다. 내가 대법원장이 사퇴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도 사퇴를 하면, 다음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지명하면 국회절차를 거쳐 임명하게 되는데 사실상 원하는 사람을 앉힐 수 있다. 그러면 대통령이 三權을 다 쥐는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이다. 설사 순수한 열정이었다 해도, 욕심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의 틈만 주어지면 독재로 가고 싶은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유권자가 치러야 한다.
지금 이 나라에서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건 사법부만이 유일하다. 그런데 여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퇴하라고 연일 채근하고 있다. 말을 안 들으면 대법관수를 늘려 무력화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대법원장은 차진아교수처럼 용기 있게 지금의 국난을 함께 책임지고 수행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이진숙방송통신위원장이 말을 안 들으니 위원장 한 사람을 내리기 위해 법을 통째로 바꿔버렸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통신> 앞에 <미디어>를 넣어 통제의 범위를 더 넓혀 놓았다. 미디어라 하면 인터넷, 유튜브, SNS, OTT 까지도 다 포함하기 때문에 향후 대통령이 지명한 사람이 위원장을 맡으면 간섭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개인검열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 법이 그 법인데 사람 한 명 바꾸려고 제도를 통째 바꾼 것이다. 왜 삼권을 분리시켜 서로 견제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 중국, 러시아, 미국에 이어 마지막 민주압살의 퍼즐을 맞추려는 것인지. 자유를 다시 잃지 않으려면 국민은 눈을 부릅떠야 한다.
風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