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던 국가이던 때를 놓치면 제자리로 오기 어렵다
지금의 현상은 정상이 아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과도기적 국면이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국운이 달라진다. 5000년 동안 핍박만 받고 살던 밑바닥 민초대중이 불과 50년 만에 처음으로 밥걱정 안 하고 살게 되었는데 이 체제가 위협을 받고 있다.
미리 말하면 나는 중도층이다.
그리고 염려하는 것은 체제를
바꾸려 한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운동권세력이 전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노동계, 교육계, 문화계, 법조계 등, 보수정부가 신선놀음 하며 권력에 취해 있을 때 그들은 소리소문 없이 들어앉았다. 운동권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이 사람들도 우국충정에서 이겠지만 과연 옳은지는 다른 문제이다. 국가의 체제를 무엇으로 하는가는 국민들의 삶과 연관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이 광경을 즐기면서 보고 있는 나라도 있다.
이 정부가 왜 이렇게 급발진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문재인정부 때 이해찬대표가 말한 20년 장기집권론이 실패하면서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 것 같다. 다음 정권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예 쇠뿔도 단김에 빼려는 모양이다. 그래서 빨리 新사회주의체제로 가자는 것이고 현재의 번영을 만들어 준 자유자본주의 체제는 용도가 다됐다고 보고 종식을 시키겠다고 결심을 한 것 같다.
문재인정부 때도 <자유>를 헌법에서 지우려 했던 적이 있었다. 헌법에서 <자유>를 지우지 않고는 사회주의체제로 갈 수는 없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다. 우리나라의 民度를 생각할 때 제2의 촛불이 켜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행하더라도 전번 촛불은 성공했지만 이번에도 성공한단 보장은 없다. 광화문에 100만 명이 나와도 다 내란세력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면 상상하기 싫은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의 검찰해체도 중대한 사건이다. 일부 소수 정치검사들을 제외하곤 그나마 정권의 눈치를 덜 보던 집단이 검찰이었는데 수사권을 없애고 '공수청'을 만들었다. 법무부에 소속되어 공소유지만 하게 하고 수사는 행안부에 소속된 '중대범죄수사청'에서 하게 되었다.
모두 독립된 기관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수사는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소신대로 하려면 職을 걸어야 가능하다. 과연 정권의 실세를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간 큰 공무원이 있겠는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헌법전문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란 단어 중 <자유> 자를 빼면 이론상으로는 인민민주주의도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 개념의 헌법이 완성되고 그러면 법에 의해 자연스럽게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체제로 갈 수도 있다. 물론 상상이지만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논리이다. 여러분은 지금의 홍콩과 같은 사회를 원하는가. 젊은이들이 지금 누리는 자유 속에서 나오는 창발성에 의한 K문화도 위축될 수 있다. 독재정권 때 검열하던 '방송심의위원회'가 새로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런 사회를 원하는가?
아직은 피부에 와닿는 건 없다. 그래서 조용하다. 옛날에도 사람들이 횃불을 들 때는 내 몸에 직접 느낌이 와야 움직였다. 문제는 법이다. 유신정권 때 모호한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유신헌법을 통과시켰고 그 법으로 반대하는 시민들을 탄압했다. 무서운 건, 일단 나쁜 법이 시행되고 나면 피를 부른다는 것이다. 제5공화국 때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욕하면서 따라 한다고 3, 5 공화국 때의 법 때문에 고생을 하던 운동권이 이제는 집행권력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행사를 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겪지 않으려면 지식인층에서 먼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몸 사림이 너무 심해 도무지 낌새가 없다. 흔히 진보라고 하는 좌파 쪽 사람들은 행동성은 강하나 같은 진영이라는 논리로 침묵하고 있고 우파 쪽 사람들은 마음은 있으나 행동성이 떨어져 입을 닫고 있다. 내란세력이라는 무서운 말을 들을까 봐 다들 입에 재갈을 물었다.
민주주의가 벼랑 위를 아스라이 걷고 있다. 네 미락 내 미락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상관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고 과정이다. 모든 국민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그 결정이 정당성을 얻는다 50.48%의 지지를 받은 당이 45.1%의 지지를 받은 당의 의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 법이 정당성과 정통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결과가 보이는데도 이를 감지하는 지식인들이 침묵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그 사람들이 그나마 높은 연봉에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은 일반인들보다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사회에서 능력에 맞는 그런 보수를 주어도 된다고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층은 의무와 책임이 동반되는 자리이다. 변화의 흐름을 먼저 인지하고 잘못은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함에도 조용하다. 궂은일은 시민들에게 미루고 생색나는 방송이나 출판 같은 일에만 몰두한다. 일반인은 소리쳐도 댓글도 안 붙는다.
자유와 기본권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 위해서는 독재도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독재는 다 나쁘다. 좋은 독재는 없다. 보수독재가 나쁘다면서 진보독재는 괜찮다는 말인가? 법을 통과시키면서 반대의견을 듣지 않는 것이 독재이다. 의회독재인 것이다. 토론과 숙성기간을 거쳐 만들어져야 하는데 힘으로 통과시킨다. 法은 한번 바뀌면 돌려놓기가 정말 至難하다. 그런 것을 안다. 그래서 무리하게 하는 것이다. "별수 있어 따라와야지" 하는 그런 태도이다.
시민들도 설마 하면 안 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홍콩을 생각하면 조금은 숙연해질 것이다. 방법은 악법은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인데 그것을 할 사람이 없다.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목적이 타당하면 과정은 아무렇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삼권분립 중 견제세력으로 남아 있는 게 사법부뿐인데 지금 대법원장 청문회를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지 묻고 싶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상대 진영에게만 하는 것인지, 옳은 진보라면 네 편 내 편 없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심이 사실이 아니고 나의 상상이기만을 바란다.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도를 지향하라는 말은 석가의 中道思想에서 나온 말이다.
2025년 9월 30일
風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