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과 그림쟁이의 그림은 닮았다
글쓰기가 그렇듯이 그림을 그릴 때 고정된 형식이 없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도 정형이 없다. 빗자루를 붓으로 쓸 수도 있고 커피나 차도 물감으로 대신 쓸 수 있다. 특별한 교범은 없다. 그림의 주제도 그렇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그렇다.
미대출신의 화가이면서 저명한 평론가가 있는 반면, 독학으로 취미를 붙여 한 장 두 장 그려나가는 아마추어 그림쟁이도 있다. 그렇다고 그림쟁이의 그림이 화가의 그림보다 못하다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이다.
예술의 세계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잣대로 남의 작품을 평가할 수 있지만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철학이나 사상 글도 보는 사람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타인이 자기의 생각으로 '맞다' '틀리다'를 재단할 수 없다.
사상은 자유롭다. 정형이라는 틀 안에 가둘 수 없다. 그래서 개똥철학이란 말도 생겨났다. 거기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각자의 생각인 거지.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고,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말은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고 글은 그 말을 기록하는 것인데 그런 행동과 주장에 내용의 요식과 주제의 진실성을 따지는 것은 자유로운 사고를 구속하는 전제적 폭거이다. 사상이나 예술의 가치는 《자유의지》이다.
우리가 가보지 못한 죽음 뒤나 신의 유무는 더욱 그렇다. 수학같은 공식도 없고 정답도 없다. 하물며 맞다 틀렸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다름이 있을 뿐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 정답일 게다
사후문제도 어차피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무신론자가 <종교가 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신학적 목적론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이론과 신의 존재를 반증할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하고 논증의 주장을 받쳐 줄 수 있는 실례實例를 열거해야 한다.
종교가 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종교 관련 성당이나 사찰 같은 건축물의 웅장함과 예술성이다. "신이 없이 어찌 인간이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주장은 일견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신심리학적으로 본다면 신이 있다고 믿는 믿음이 '플라세보효과'를 일으켜 초월적 능력을 발현하는 그런 초능력이 가능할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것이 신의 영감이다. 그런 면에서의 신의 역할론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데레사수녀 같은 성녀도 죽을 때까지 《신의 부재》를 고민했다고 하지 않는가?.
무신론자가 주장의 합리성을 증명하려면 유신론자나 종단의 논리적 흠결을 지적하고 그 주장을 탄핵함으로써 반대 주장의 내적 합목적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만 예를 들면, 부녀자와 어린애까지도 학살하는 IS 같은 단체의 무자비한 행동들은 신이 정말 있다면 절대 방치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신을 위한 종교목적의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런 잔혹한 수단을 행하는 걸 심판하지 않는 신은 과연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있는 것이기는 한가?
신의 문제와 더불어 사후문제나 철학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고 인식의 문제이다. 관측이 불가능한 블랙홀처럼 정답을 알 수 없고 다차원논리처럼 한계도 없는 무한대의 영역이다.
이 것은 어떤 주장이 옳다 그르다를 확답할 수는 없다. 그냥 서로 간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개인 각자의 신념의 문제이다. 어느 주장이 청자聽者의 이해와 합당한가이다.
《죽음》만큼 어려운 말은 없다. 죽은 뒤를 가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만큼 쉬운 말도 없다. 누구든지 죽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