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부끄럽고 슬프고

영화 ‘세자매'

by 김승희

영화 제목만 보면 안톤 체홉의 세자매가 생각이 나지만 연극 세자매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영화다. 좋은 영화라고 보기를 추천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한참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왜 추천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된, 영화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눈물지으며 앉아 있었던 영화. 진심으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영화, 폭력으로 상처 입은 자에게 드리워진 아픔과 상처,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어른이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영화라 말하고 싶다.


세자매와 진섭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희숙, 미연, 미옥 어느 누구도 정상적이라 말하기에는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첫째 희숙은 작은 꽃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화사한 꽃과는 너무나 먼 시든 꽃처럼 살고 있다. 어둠이 드리워진 공간에서 미안하다, 거지 같다는 말을 달고 사는 희숙은 암으로 아파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말 못 하며 그나마 집을 나가려는 딸에게 엄마가 암이라 말하지만 딸조차도 엄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이런 딸을 위해서 딸이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에게 찾아가 “미안하지만 우리 딸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무릎 꿇고 운다. 뿐만 아니라 따로 살고 있는 남편이란 사람이 찾아와서 돈을 가져가고 뱃살이 이게 뭐냐고 말할 때도 싫은 소리 하지 못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내지 못하며 냉가슴을 앓고 있는 희숙은 나뭇가지로 자신의 다리에 피가 나도록 긁으며 순간의 아픔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마저도 그런 모습을 딸에게 들키는 최악의 삶을 살고 있다.

둘째 미연은 겉으로는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신도시의 52평 아파트, 교수 남편,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고 두 자녀 역시도 잘 키우려고 하고 동생인 미옥이에게도 친절한 언니다. 아버지 생일을 왜 나만 챙겨야 하냐며 동생에게 하는 말을 보자면 가족의 큰일도 책임지는 존재고 큰언니에게 돈도 빌려준다. 그런 미옥에게도 아픔이 있으니 자신이 지휘하는 교회 성가대원과 남편이 부적절한 만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남편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경건한 모습을 보이지만 미연은 기도회로 모인 날 밤중에 성가대원에게 이불을 덮으라고 시킨 채 발로 차며 아무도 모르게 복수를 한다. 집을 나간 남편에게 능력이 있어야 이혼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녀도 홀로 침대 위에서 베개를 엎어놓고 울면서 소리친다.

셋째 미옥은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존재다. 글을 쓰는 극작가이지만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한 채 과자를 입에 달고 살고 몰래몰래 술을 마신다. 돈 때문은 아니라지만 아들이 있는 야채 가게 사장님과 결혼을 했다. 틈만 나면 마신 술로 온전한 정신이 아니기에 소리를 지르고 시도 때도 없이 둘째 언니에게 전화하여 “우리가 갔던 식당 이름이 뭐냐”며 물어보기도 하고 “난, 쓰레기야”라고 말한다. 급기야 새엄마를 돌아이로 저장한 아들의 휴대폰을 보며 상담하기 위해 아들의 담임을 찾아가지만 그마저도 아들의 친엄마가 미리 와 있어서 술을 먹고 간 자신과는 상담을 해주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언니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이냐고 물어본다. 그런 동생에게 언니는 그런 걸 누가 알려주는 것이냐고 말한다. 그나마 남편만이 미옥을 아끼며 미옥에게 맞으면서도 아들에게 새엄마라고 말하며 보호한다.

세자매라 정말 세자매인줄 알았는데, 그들에게는 막냇동생 진섭이 있다. 영화 말미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등장하기까지는 전화상으로 ‘진섭이 어떠냐?’ ‘진섭이 때문에 아빠 계신 곳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남동생이다.

이 땅에 저마다의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고, 아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특히나 가족이라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알콩달콩 살지 못하는 가족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싶다가도 영화 속 세자매의 삶을 보고 있자면 각자 처해 있는 삶의 무게에 짓눌림 당한 느낌이다. 거지 같은 첫째의 삶도, 위선으로 똘똘 뭉쳐진 둘째의 삶도, 소리 지르고 욕하며 나잇값도 못하는 셋째의 삶도 나와 똑같지 않지만 일면 어느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기에 나를 보는 것 같고 씁쓸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

그렇다면 이들이 현재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단 한 마디로 말할 수 없고, 사람은 다양한 경험 속에서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과연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물어보게 된다. 명확하게 인과 관계를 따질 수는 없지만 영화는 흑백 화면을 통해 보여준 이들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현재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영화 첫 장면 흑백의 화면에 내복차림으로 어린아이들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이후 한 번도 나오지 않던 그 장면이 아버지 생신 잔치를 위해 세자매의 가족들이 고향집으로 가는 그 길목에서 다시 나오며 이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금의 삶은 어린 시절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 기억 속에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어 이들의 삶을 옥죄며 아픔으로 가둔 것은 아닐까? 미옥이 미연에게 전화하며 우리 둘이 어렸을 때 막 어딘가로 달려가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 같은데 과연 어디로 간 것이냐고 물어보는 그 기억은 정말 있었던 기억이며 다 기억하지 못했던 셋째 미옥의 기억이 선명하게 둘째 미연의 기억 속에 그려진다.

집 안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창문으로 둘째인 미연과 셋째인 미옥이 내복차림과 맨발인 채 가게로 막 뛰어간다. 그곳에는 술을 마시고 있는 두 명의 어른과 가게 주인이 있었다. 늦은 시각에 그런 차림으로 달려온 아이들을 보고는 누구 딸 아니냐며 아버지가 아직도 엄마 때리냐고 물어본다, 이때 미옥이 이제는 엄마가 아니라 첫째 언니와 막냇동생만 때린다고 한다. 그야말로 첫째는 배다른 언니라 미안한 마음에 그러냐며 술버릇 고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때 언니와 동생을 때리는 폭력적인 아버지 그 아버지를 둘째가 신고해 달라고 아저씨들에게 얘기하지만 정작 아저씨들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버지가 감옥에 가면 좋겠냐고 빨리 가서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빌라”고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주고 보내려고 한다.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반응인가? 폭력을 쓰며 가족을 때리는 아버지보다 아버지 없이 사는 것이 무섭지 않냐며 되려 아버지에게 빌라고 하는 어른들의 그 말은 충격적이고 그렇게 집에 돌아온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아버지에게 맞아 상처투성이인 언니 희숙이 아버지에게 맞아 상처투성이가 된 동생 진섭을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이들의 상처는 맞은 자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자든 결국 상처가 되어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있으면서 그 상처가 그들의 삶 속에서 아물지 않은 채 계속 덧나고 있었다. 그 아픈 기억의 상처는 현재의 삶을 여전히 옥죄고 있어서 그들의 삶 속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의 그림자는 그렇게 깊고 어둡게 지속된다.


난장판-생일잔치

결국 이들의 상처와 아픔은 아버지 생일잔치에서 폭발하고 만다. 장로였던 아버지 생일잔치에 가족들이 앉아 예배를 드리며 기도할 때 막내아들 진섭이 오줌을 싸며 아수라장이 된다. 그런 진섭을 말리는 미옥의 남편과 진섭을 훈계하려는 미연, 훈계하는 미연에게 집 나간 형부 이야기를 꺼내며 언니에게서 아버지의 눈빛이 보인다고 싸우는 미연과 미옥. 이미 난장판이 된 그곳에서 아버지는 연신 목사님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이때 미연이 아버지에게 소리치며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아버지, 목사님에게 사과하지 말고 우리들에게 사과하세요” 그리고는 아홉 살 때 “아버지만 빼고 우리 모두 죽게 해달라고, 아버지 빼고 우리 모두 천국에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자신의 기도를 얘기하며 엉엉 운다. 이런 처절한 고백 속에 드디어 보미가 소리친다. 어쩌면 이 소리가 정말 하고 싶었던 감독의 외침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 어머니에게 사과하세요. 우리 엄마 암이래요. 왜 어른들은 사과를 못하냐”라고 보미가 할아버지에게 사과하라고 소리친다. 보미의 말은 정말 비수같이 꽂히고 그 말에 당황하던 첫째와 모든 가족은 울 수밖에 없었고 영화를 보는 나조차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후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졌는데, 아버지가 자신의 머리로 유리창을 박으며 피를 흘릴 뿐 결코 사과하지 않는 것이다. 사과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진정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사과하지 않는 이 시대의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 이 어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가?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른답지 않은 어른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난장판이었던 생일잔치는 끝나고 진섭은 병원에서 치료받기로 하고, 세자매는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의 집을 찾아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는 희숙의 소망대로 환하게 사진을 찍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불편하고 부끄럽고 슬프고

앞으로 세자매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희숙이 미연에게 그래도 가족밖에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은 조금은 다독일 것이며 각자의 삶 속에서 또한 분투하며 살아갈 것이다. 분명한 것은 조금은 달라진 삶의 변화는 있으리라. 그러나 끝까지 사과하지 않은 아버지는 과연 어떨까? 짙은 폭력의 그림자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종교 속에 포장되어 진정한 경건함을 잃어버리고 위선적으로 살아가며 사과조차 하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불편했는데, 그 불편한 감정들이 생일잔치 장면에서 폭발하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숨죽이며 살아왔던 희숙의 말과 행동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며 희숙에게 감정이 이입된 부분도 있었지만 인간에 대한 멈출 수 없는 분노와 그런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왔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밀려오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나는 정말 했었나라는 자괴감이 밀려오면서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게 했다.

영화 보는 내내 정말 불편한 장면들이 있었다. 미옥의 소리 지르고 과자를 먹는 모습이 너무 과장되어 보였고, 희숙의 딸 보미의 차림과 마요네즈를 먹는 장면, 자해하는 장면들은 날 것처럼 불편했지만 정작 가장 불편했던 것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나오는 미연의 모습과 종교적인 장면들이 기독교인으로서 많이 불편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폭력적인 아버지가 장로님으로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드리는 장면에서 더욱더 불편함이 폭발했던 것 같다.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특정한 종교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종교로 포장된 인간의 위선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끼며, 죄악된 인간의 모습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불편했고 부끄러웠고 슬펐다.

왜 인간은 이렇게 악하며 못난 인간들이 많은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비단 그 폭력은 신체적 폭력만이 아닌 언어적 폭력, 정서적 폭력까지 폭력으로 인한 상처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이며 트라우마로 남는다. 어쩌면 우리 사회 곳곳이 폭력에 물들어 있는 채 어둠의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특히나 폭력으로 시달린 희숙이 스스로 자해하는 장면은 폭력이 스스로에게 어떻게 폭력을 가하는지를 너무나 절실히 보여준다. 미연조차도 그렇게 싫은 아버지를 닮아서인가 폭력으로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폭력으로 받은 상처는 또한 깊게 썩어질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멈추기를 바란다. 특히 어릴 때의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 얼마나 평생 가슴에 상처를 주며 그렇게 살아가게 만드는지를 영화는 똑똑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폭력은 크든 작든 어떤 것이든 우리 사회 곳곳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폭력을 휘둘렀으면 아니 사과할 그 어떤 행동을 했다면 진정으로 사과하기를 소망한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진정한 어른이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진정으로 사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보미가 외쳤던 “왜 어른들은 사과를 못해.”라는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왜 어른들은 사과를 못할까? 왜 인간답지 않은 인간으로 살면서 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인가? 미안함이 없는 사회 속에 뻔뻔한 인간들이 경건한 척 살아가는 사회라면 이 사회는 사람다운 사회가 아니고 어느 누구에게도 진정한 어른이 되라고 가르칠 수 있는 사회는 아닌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버젓이 잘못한 인간이 사과도 없이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누가 제대로 참답게 살아가려고 하겠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며 미안하다는 그 말 한마디를 진심으로 하며 용서를 구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희숙이 조심스럽게 함께 사진을 찍자는 바람은 그러기에 삭막한 이 시대 속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되새겨보게 된다. 단란한 가족사진 한 장도 없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을까? 폭력이 난무하고 가족이 무너진 이 시대 속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를 다시 한번 물어보며 기억 속에 잠재된 우리의 내면이 정말 건강해지기를 소망한다.

가족이라는 모습에 폭력의 그림자와 상처 그리고 희망의 빛을 담아낸 감독의 연출과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배우들이 강렬하게 보여준 연기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이들의 연기가 더욱 현실을 실감 나게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한 편의 영화가 이렇게 오랫동안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바라기는 울음 뒤에 그냥 울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오늘을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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