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토라는 남자'
1.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오토. 상실감을 넘어서.
아내를 잃는다는 것은, 아니 가족 중에 아니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내(소냐)를 상실한 오토, 거기다 실직까지 하게 된 그는 슬픔을 감내하지 못해 죽기로 작정한다. 그가 시도했던 다양한 죽음의 방법은 시작부터 마트에서 끈을 사면서 5피트 6피트 가격과 관련한 다툼에서부터 이미 까칠한 그의 모습을 알 수 있을 터 천장에 구멍을 뚫고 목을 매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는 떨어지게 된다. 자동차에 가스를 주입해 죽으려 해도,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려 해도 누군가 먼저 떨어져 오히려 그를 살리며 영웅이 된다. 마지막 순간 총으로 죽으려 했지만 아내의 제자 맬컴의 방문으로 그는 끝끝내 마음대로 죽지 못한다. 아내의 말처럼 지금은 때가 아니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결국 그는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 아닌 유전병 비후성 심근증(심장비대증)으로 침대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한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은 오토에게 조금씩의 변화가 찾아오게 된 것은 그곳에 이사 온 멕시코 부부(토미와 마리솔)의 잔잔한 개입이었고, 그 부부와의 소통은 오토로 하여금 상실감을 회복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었다. 인간의 상실감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의 죽음에 사사건건 끼어드는 이웃의 손길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있어 상실의 슬픔을 넘어설 수 있는 그 무엇, 희미한 빛이 아닐까 싶다. 함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와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 자신의 아픔으로 인해 이웃의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누군가와 소통하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지만, 절망의 순간 그 무엇도 붙잡지 않고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 누군가 손 내밀며 찾아올 때 그 손을 함께 잡을 수 있다면 그 상황에서 조금씩 조금씩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연약하고 각자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한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또한 도움을 주며 그렇게 살아간다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 기대고 산다’는 이성부 시의 구절처럼 그렇게 어우러져 기대며 사는 것이 인간이다.
2. 오토라는 남자, 까칠한 오토-톰 행크스.
언제 봐도 어떤 영화에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톰 행크스는 이 영화에서도 세상 까칠한 꼰대 할아버지 오토 역을 나무랄 데 없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훨씬 영화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오토가 아니고 오토라는 남자일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 오토와 같은 사람이, 오토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 있는 수많은 아픔을 가진 채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땅의 오토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아니 나 자신만 보더라도 오토처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일어나 하루를 지내면서 살아가거나 긍휼보다는 규칙과 규율을 더 중요시하며, 이웃들과 소통하지 않은 채 살아갈 때가 너무 많다. 영화 속 오토는 모든 것이 불만인 듯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굴지만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누군가를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아마도 이런 오토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오토들이 세상에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이 땅의 모든 오토와 같은 삶을 사는 누군가에게 던지는 오토를 위한 영화라 제목이 오토라는 남자가 아닐까 싶다. 이 땅에 수많은 오토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오토가 되어 보자.
3. 오토와 마리솔. 운전을 잘하는 오토가 마리솔에게 베푼 친절.
유독 영화 속 운전하는 장면이 눈에 띈다. 영화 초반 오토가 죽으려 할 때도 주차를 못하는 멕시코 부부의 모습에 답답해하며 결국 오토가 밖으로 나오게 되고 그들의 차를 단 한 번에 주차시키며 오토와 멕시코 부부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주차를 도와준 오토에게 고마워하며 오토에게 음식을 건네는 부부와 조금씩 소통하게 된다. 운전을 못하는 남편(토미) 대신 운전을 배우기로 결심한 마리솔은 오토에게 운전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그는 마리솔에게 운전을 가르쳐 준다. 그때마다 오토가 자주 쓰는 머저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사실 듣기 불편함도 있었지만 오토의 말처럼 이 땅의 머저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도 했다. 그런 오토가 자신에게 음식도 나눠주며 소소하게 마음을 여는 마리솔에게 “너는 머저리가 아니다”며 조금씩 마음을 나눈다. 그리고 남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아내의 이야기를 마리솔에게 한다. 임신한 아내와의 달콤한 여행 중 교통사고로 아내가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그의 아이 또한 세상에 나올 수 없음을 마리솔에게 얘기하게 된다. 솔직하게 다가가는 마리솔의 수다스러움이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된 오토는 그녀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며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다. 자신의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아봄이 필요하지 않을까?
4. 내 인생의 소냐.
영화 속 가장 인상 깊은 대사는 오토가 아내를 만난 삶을 표현할 때 썼던 ‘소냐를 만나기 전에 내 삶은 흑백이었다. 소냐는 컬러였지.’라는 말이다. 첫눈에 반한 소냐다. 유전병으로 군대를 가지 못하게 된 오토가 운명처럼 만난 여인이 소냐였다. 책을 떨어뜨린 소냐의 책을 줍고 반대편 기차를 타게 된 오토가 소냐와 만나 사랑을 나누며 그야말로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행복의 시간도 잠시 임신한 아내와의 여행 중에 만난 사고로 인해 아이도 잃고 아내는 하반신 마비라는 고통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소냐를 오토는 지극 정성으로 사랑했고, 그런 소냐를 잃은 오토는 그야말로 삶의 의미를 상실했던 것이다. 소냐가 없는 인생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소냐가 죽은 이후에도 소냐와 함께 삶을 같이 하며 누구와도 소통을 하려 하지 않고 까칠하게 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오토가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려고 하는 순간 소냐의 제자인 맬컴이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부탁을 하고 결국 죽지 못한 오토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로 작정한다. 맬컴은 소냐의 제자로 오토가 맬컴을 만났을 때 소냐 얘기를 하면서 소냐는 트랜스젠더였던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준 선생님으로 선생님 덕분에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친절하고 편견이 없던 소냐를 어느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소냐를 잃었으니 오토는 오죽했을까. 오토의 상실함과 까칠함과 분노의 행동은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소냐를 만난 그의 인생은 그야말로 흑백과 컬러가 바뀌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우리 모두도 그렇게 내 인생의 소냐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의 아내, 나의 남편, 나의 아이, 나의 부모님, 나의 이웃이 진정한 소냐인데 혹시 진정 소냐를 알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방황을 거두고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네가 나의 진정한 소냐임을 말해 보는 것이 어떨까.
5. 과하지 않은 장면과 슬픔에 매몰되지 않은 허전함을 채우는 고양이. 어쩌면 상실한 자에게 하나님이 상실함을 채우기 위해 고양이를 보낸 준 것이 아닐까. 영화 속 차에 들어가 있던 고양이를 쫓아내던 오토. 눈 속에 얼어붙은 고양이를 그냥 지나치려 하던 오토. 그러나 고양이를 기르던 이웃이 더 이상 고양이를 기를 수 없어 오토에게 고양이를 맡겼을 때 그는 고양이를 외면하지 않고 기른다. 오토는 그 고양이를 키우며, 아내가 자던 침대에도 고양이가 눕도록 허락한다. 규율과 규칙을 중시하며 누구에게도 까칠한 오토지만 실상 오토는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고양이를 쓰다듬는 오토. 그 허전함을 달래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며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생각이 나서 쓰다듬어 보았다.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유독 고양이가 나오면 더 인상 깊게 보는 것 같다. 삶의 의미를 잃고 죽어가는 까칠한 오토가 이웃들과 조금씩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이웃과 함께 하는 모습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장면들이 슬픔 속에서도 따뜻함이 묻어나서 훈훈하고 과하지 않게 느껴지며 삶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어떤 아픔이든 겪고 있다. 단지 말을 안 할 뿐이다. 그런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와 진정한 마음을 나누는 것, 따스한 보살핌.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공감한다면 그 어려운 관계를 우리는 조금씩 맺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변을,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관심을, 소냐가 맬컴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진정으로 불러주기를 바란다. 소냐의 사랑스러움이 오토라는 남자를 살게 했듯이 내 인생의 컬러와 같은 존재를 만나고 또한 그런 존재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