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기완'
‘너 죽지 말고 좋은 땅에 가서 살아남으라. 떳떳하게 너 이름 갖고 사람답게 살아라’ 영화가 끝나고 가장 마음에 새겨진 대사다. 트럭에 치어 죽어가면서 아들에게 도망가라는 손짓을 하며 남긴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자, 로기완이 힘든 삶을 살면서도 마지막까지 살게 한 말이다. 영화 내내 나왔던 ‘살아남아라, 죽지 말고 살아라’라는 말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가져야 할 삶의 지침이 아닐까 싶다. 로기완만큼의 고통스러운 삶은 아닐지라도 날마다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삶은 아닐지라도 각자에게 처해진 삶의 무게만큼은 누구나 가늠할 수 없기에 힘겨운 날들을 살아가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든 분들을 위로하며 우주로부터 희망의 빛이 조용히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노라 외치고 싶다.
탈북민으로 몰래 중국에서 어머니와 살던 로기완. 공안들에 의해 로기완의 존재가 발각될 위기해 처해 어머니와 로기완이 도망치다 어머니는 트럭에 치어 죽게 되고, 어머니의 시신을 판 돈으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오게 된다. 벨기에에 오기까지의 과정도 어려웠지만 그곳에서 탈북민이었던 그가 난민 거주자로 등록되기 위한 과정은 험난함 그 자체였다. 난민 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의 신분이 증명되어야 하지만 중국에서 탈북민의 신분이 탄로 날까 봐 모든 신분증이 될만한 것을 버렸던 상황에서 그가 탈북민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은 쉽지 않았고, 그곳에서 조선족이 탈북민으로 위장하는 일이 있기에 더욱더 그의 신분을 증명하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의 신분이 증명되지 않은 상태라 어디서도 떳떳하게 일을 할 수 없기에 화장실에서 먹고 자고 병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화장실에서도 잘 수 없는 상황에 빠진 로기완은 빨래방에서 잠들게 되고 애지중지하며 엄마의 시체를 판 돈을 갖고 다니던 지갑을 잃어버리게 된다. 다행히 그 지갑을 가져간 범인인 마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일은 로기완에게도 마리에게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정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위기가 기회인가
로기완을 보며 삶은 정말 고해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탈북민, 이방인으로 머나먼 타국에서 받는 냉대와 시련은 상상 그 이상이고 그 안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기완의 삶은 처절해서 더욱 눈물겹다. 삶을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놀라움의 연속, 여기서 포기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가도 또 그를 도와주는 누군가는 옆에 있다. 비록 중간에 배신하는 인간이 있지만 인간은 또한 은혜를 입으면 은혜를 갚는 마음이 있기에 괜찮은 이웃들을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벼랑 끝에 있는 마리를 만나며 마리에게 건넨 따뜻한 밥 한 끼는 마리의 마음에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했다.
한국인이지만 벨기에의 사격 선수였던 마리는 자신이 훈련을 간 사이에 아버지가 아픈 어머니를 안락사시켰다고 생각하여 아버지를 미워하고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 불법 사격장에서 사격을 하고 마약을 하고 삶을 포기한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마리의 행동은 이해가 안 될 만큼 무모하고 공감이 안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락사를 원했던 것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아빠에게 자신 역시도 아픈 엄마가 도와달라고 불렀을 때 못 들은 척했다고 고백한 것으로 보아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인해 자신을 자책한 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삶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마리에게 기완은 따스한 존재였고, 두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불법 사격장에서 만난 갱들의 총싸움으로 벨기에서 살기 어렵게 된 마리는 로기완과 아빠와 이별의 순간을 갖고 마다가스카르에서 다시 만나자는 기완의 말을 끝으로 벨기에를 떠나게 된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기완은 난민 허가증을 받게 되고 벨기에를 떠나 약속대로 마다가스카르에서 마리와 만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벼랑 끝에 선 두 사람 로기완과 마리가 마다가스카르에서 재회하며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마치 쇼생크 탈출의 앤디와 레드가 만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로기완은 어머니의 유언처럼 살아남았고, 로기완은 마다가스카르로 떠나기 전 마리 아버지에게 자신이 여기에 오게 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서였다는 편지를 남긴다. 영화는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또한 어디로 떠날 수 있다는 새로운 출발의 이유임을 생각해 보게 된다.
탈북민으로 이방인으로 벨기에에서 살았던 로기완의 삶은 눈물의 시간이었고 고행의 시간이었지만 마리가 있어 그가 살아가는 희망이 되지 않았을까. 인간은 밑바닥에서도 사랑할 대상이 있을 때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아니 그렇게 살아갈 때 고난 속에서도 꽃은 피는 것이다.
탈북민으로 처절한 삶을 살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애쓴 로기완의 역할을 했던 송중기 배우와 삶을 포기한 마리의 역할을 했던 최성은 배우가 좋은 호흡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로기완과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선주 역의 배우, 로기완의 어머니 역을 했던 배우도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건 전개에 있어서 특히 로기완과 마리가 엮이는 장면에서 억지스럽기도 하고 몰입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인간의 진심이 보이는 영화라 생각한다.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슬픔이 계속 묻어났다. 많은 이들이 슬픔의 두 시간을 견디기는 쉽지 않으리라. 웃음의 포인트 없이 분투하며 희망을 향해 달려간 로기완의 삶은 그래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기완을 보며 탈북민과 난민자들의 아픔을 떠올리게 됐고 타인들의 고통에 외면했거나 무관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일들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슬픔을 생각하며 삶을 산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소중한 일임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산다는 것은 새롭게 어디로도 떠날 수 있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 희망의 빛이 있기에 오늘도 열심히 달려간다.
* 영화의 원작소설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를 꼭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