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기'
영화 제목이 메기인 이유
예전에는 수녀원이었다는데 지금은 마리아 사랑 병원. 이곳을 발칵 뒤집은 엑스레이 사진이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동상 위에 걸렸다. 그 병원의 간호사인 윤영은 남자 친구(성원)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자신들의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병원을 그만둘까 생각하여 사직서를 들고 간다. 그런데 병원의 부원장(경진)이 윤영을 의심하며 며칠 쉬다가 오고 뒷문으로 나가라는 말에 윤영은 병원에 다시 나오겠다고 한다. 다음 날 병원에 출근한 사람은 부원장과 윤영뿐. 부원장과 윤영은 출근하지 않은 사람들과 통화를 하는데, 부원장은 그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댔음에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부원장에게 윤영은 방문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한다. 그래서 출근하지 않은 의사의 집을 방문했는데 정말 의사가 긴급한 상황이었음을 알게 되고 부원장과 윤영은 사람을 믿기로 한다. 사실 부원장은 어릴 적 살인누명을 쓴 적이 있었다. 부원장이 시소를 타고 있을 때 어떤 아버지가 아이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데 떨어진 아이가 아버지가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자신과 시소를 타다가 떨어졌다고 소문이 났다. 그때 떨어진 아이가 사실대로 사람들에게 해명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고, 부원장 역시도 해명하지 않아서 결국 살인누명을 쓴 채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그래서 부원장은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부원장과 윤영이 사람들을 믿기로 하여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사과를 깎다가 크게 다쳤다는 남자가 병원으로 왔다. 급하게 치료를 하는 중 그 남자의 몸에서 총알이 나왔고 환자는 사과가 아니라 사슴을 잡다가 그랬다며 변명을 한다. 환자는 범죄자였고 이를 의심하여 신고한 그 두 사람은 신문 기사에 실리게 된다. 그 후 다시 일상으로 회복된 병원. 이때 참신한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메기의 등장이다. 영화 시작부터 나왔던 목소리가 궁금했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메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메기!
그런 어느 날 메기 아버지가 메기가 펄쩍 뛰는 것을 보고 지진이라고 얘기하여 병원에 잠시 소동이 벌어졌고, 비록 지진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지각변동으로 인해 이곳저곳에 큰 싱크홀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데 싱크홀 덕분에 성원은 일자리가 생기게 되고 일을 하다가 윤영이 준 반지를 잃어버린다. 반지를 찾던 중 동료의 발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를 보고 자신의 반지라 의심하던 성원은 그 친구로부터 반지를 사게 되나 그 반지가 자신의 반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즈음 윤영은 성원의 전 여자친구(지연)를 만나게 되고 성원과 지연이 헤어진 이유가 성원이 지연을 때렸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소리를 듣게 되지만 정말 그 말이 사실인지 윤영은 성원에게 물어보지 못한다. 그 후로 의심이 생기게 된 윤영은 재개발로 인해 이사를 해야만 했고, 집을 찾는 것을 도와주던 성원과 만나기 위해 급하게 자전거를 타고 가던 윤영은 죽을 뻔하게 된 상황(계단)에 직면하며 이 모든 것이 성원이 한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고 결국 둘은 헤어진다. 시간이 흐른 후 윤영은 성원을 만나 여자를 때린 적이 있냐고 물어보고 성원은 전 여자 친구를 때린 적이 있다고 대답한다. 그때 또다시 메기가 펄쩍 뛰며 성원은 싱크홀에 빠지고 윤영이 싱크홀을 깊게 들여다보며 영화는 끝이 난다.
믿음과 의심 사이
인간의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들로 하여금 의심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를 믿고 싶지만 믿음에 대해 흔들리는 순간 의심하게 되고 의심은 더 큰 불안을 낳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의심으로 인한 불안을 안고 있으며 그러기에 그런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믿음이 필요하다.
영화는 의심이 더 큰 의심을 만들어내며 또한 어떻게 믿음이 생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메기의 대사 중 우리가 사실이라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라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편집될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을 만큼 의심이 만연한 사회 속에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불법 촬영된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어느 누구도 불법 촬영이 문제이고 그런 범죄를 누가 했는지에 관심이 없고 찍힌 주인공이 누구인지에만 관심을 가지는 영화 속 장면이 우리의 지금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잊어버린 채 의심의 대상만이 남고 그 의심이 의심의 꼬리가 되어 모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원장(경진)이 사진으로 병원이 발칵 뒤집히고 윤영을 의심하며 병원을 쉬라고 했는데 다음 날 많은 사람이 출근을 하지 않자 병원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병원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을 바꾸며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념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조차도 어린 시절 살인미수라는 누명을 썼지만 해명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은 개를 고양이라 말해도 믿을 사람은 믿고 떠들 사람은 떠든다며 자신의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그냥 살아왔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기에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고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나마 윤영의 권유로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병원에 나오지 못한 사실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믿기로 하지만 또한 거짓말을 하는 환자로 인해 의심하게 된다. 만약에 어릴 때 사람들에게 사실을 얘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성원이 역시도 반지를 잃어버리고 그 반지를 찾지 못했을 때 동료의 발가락에 있는 반지를 보고 혹시 자신의 반지가 아닐까 상대방을 의심하게 된다. 만약에 그때 사실대로 물어봤으면 어떨까. 의심으로 인해 결국 돈도 잃고 사람도 잃게 된다. 작품 속 부원장님 믿으셔야 한다며 가장 믿음을 보여주었던 윤영 역시 99%의 믿음과 1% 의심을 말하기도 하고, 성원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의심을 하며 결국 헤어진다. 물론 성원은 전 여자 친구를 때린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윤영은 너무나 잘 헤어졌지만 처음부터 성원이에게 사실임을 미리 확인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때로 우리는 선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어 믿으려 한다. 성원의 전 여자 친구가 등장하기까지 성원은 친절하고 유쾌하고 다정한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나중에 그 실체를 알게 되고 놀라워하는 것처럼 사람은 겉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겪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누군가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불안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 의심으로 인해 진실되지 못한 관계를 만든다면 그 관계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고 서로를 잃어버리는 원인이 된다. 특히 실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의심은 계속해서 의심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렇게 의심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모두가 외로워지게 되며 진실을 외면한 채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회 속에 우리는 더 큰 슬픔 속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의심이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믿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일단 믿지 못하는 사실을 직면하고 그것에 대한 의심의 꼬리를 물고 더 큰 의심 속에 불안함을 감추기보다는 그 의심해서 빠져나와 실체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라는 영화 속 포스트잇에 붙어 있었던 말처럼 우리가 의심의 구덩이를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그 의심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와서 올바른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의심의 늪에서 빠르게 빠져나오기 위한 바른 안목이 필요하며 파편화된 관계에서 벗어나 진실한 관계를 맺을 때 서로의 믿음이 생겨나리라 본다. 그런 면에서 부원장과 윤영의 관계는 굉장히 새롭게 다가온다. 윤영을 의심했던 부원장, 그 이후에 함께 믿음 교육, 광고 촬영 등 여러 경험을 공유하며 경진은 윤영이 이사를 갈 때도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과는 다른 발전된 관계를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 깊다.
싱크홀, 메기(내레이터), 다양한 사회 문제
지각변동으로 인해 여기저기 생기는 싱크홀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싱크홀은 우리 사회의 믿을 수 없는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흔적이자 의심의 구덩이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싱크홀로 인해 발생한 많은 문제가 젊은이들에게는 일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 부조리하지만 돌아가고 돌아가는 것일까? 여기저기 구멍 난 상처들 가운데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가는 것일까?
무엇보다 영화 속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러이터가 메기였다는 것이다. 왜 메기였을까. 세상을 감지하는 그 모든 것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존재가 메기이기 때문일까. 궁금하여 메기를 찾다 보니 메기를 만든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메기는 지진과 같은 지각변동을 예측할 정도로 예민하고 더러운 물에도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그런 메기가 윤영을 위로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메기가 아니라 세상을 감시하는 메기, 세상을 감시하고 감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여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아닌 메기가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감지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편견에 치우치지 않고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법한 생각이 들고 우리 주변에 이런 메기와 같은 존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데이트 폭력, 불법 촬영, 재개발, 청년 실업 문제 등 영화 보는 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어쩌면 그 모든 문제들이 의심에 의심을 더하며 믿음이 사라진 관계들로 인해 생겨나는 우리 사회의 싱크홀이 아닌가 싶다. 영화 보는 동안 여기저기 생겨난 싱크홀에 빠진 것처럼 답답하고 아픈 우리 사회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코믹하면서도 탄탄한 연기자들의 연기와 재미있는 장면들로 인해 유쾌하게 볼 수 있었던 코믹하지만 코믹하지 않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