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인생은 없지만 완벽한 날들은 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두 번째 이야기

by 김승희

3. 음악, 책, 코모레비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의 충만한 일상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음악과 책이다. 특히나 출근길, 퇴근길에 운전하면서 듣는 그의 음악은 1960년대-70년대를 대표하는 올드팝들이다. 그런 음악을 그는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 듣는다. 테이프를 통해서 듣는 그 음악은 출퇴근하는 히라야마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친구이다. 그러기에 그는 늘어진 테이프를 펜으로 돌리기도 하며 소중하게 다룬다. 특히 테이프를 통해 듣던 음악 중에 익숙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라는 곡이 나왔다. 접속 영화를 볼 때 인상 깊게 남아서 휴대폰에 저장했었는데, 히라야마의 퇴근길에 그 노래가 나와서 너무나 반가웠다. 가사는 구슬프지만 그 멜로디를 음미하며 그래 이런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에 더해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보던 그의 책들은 히라야마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특히나 책을 좋아해서 이렇게 글을 쓰는 즐거움까지 느끼게 된 나로서는 책이야말로 완벽한 날들을 단연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꼽는다면 단연 책이다. 책이야말로 인생길을 걸어가는 삶의 지침서이자 황량한 삶의 등불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힘든 노동 이후에 쉽게 잠자리에 들 수 있지만 책 읽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히라야마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다. 바로 이런 삶이 히라야마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아닐까.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 바로 필름카메라로 찍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이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가 바로 코모레비인데, 이 코모레비라는 용어를 쿠기영상에서 보여주면서 이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고 얘기한다. 결국 히라야마가 필름카메라로 날마다 찍었던 코모레비는 어느 것도 똑같지 않은 그 순간에 존재했던 것들이다. 그러기에 히라야마는 날마다 날마다 코모레비를 찍으며 늘 그 순간을 간직했던 것이다. 그 순간의 찬란함을 찍는다는 것은 결국 히라야마의 찬란했던 기록들을 보여주는 것과 같기에 그리도 많은 순간들을 차곡차곡 간직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자신을 기록하게 만든 코모레비는 그러기에 그야말로 히라야마에게는 삶의 희망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마치 김광섭의 ‘생의 감각’이라는 시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채송화처럼 말이다. (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주었다// 생의 감각 중에서) 무너지는 둑의 기슭에 무더기로 핀 채송화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깨운 것처럼 히라야마의 삶 속에 살아 있다는 감각을 깨운 코모레비처럼 우리에게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매일의 나를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이 각자에게 있다면 어떨까. 오늘 하루 감사한 것 3가지 쓰기, 일기 다섯 줄 쓰기, 매일 5분 운동하기 등등 행여 그 어떤 것들을 하지 않더라도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보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삶의 희망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4.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히라야마에게 사실 충만함만 있느냐 그건 아니다. 히라야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특히나 아버지와는 더욱더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히라야마이다. 히라야마의 지금 같은 삶을 살기까지 그에게 놓인 불안과 고독이 없겠는가? 영화를 보다 보면 히라야마와 말은 하지 않지만 히라야마처럼 신사에서 혼자 샌드위치를 먹는 어떤 여인, 히라야마와 자주 눈이 마주쳤던 특이한 동작을 하며 살아가는 노숙자 등 어떤 면에서는 히라야마와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들, 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나온다. 그만큼 불안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히라야마의 단골 가게 주인의 전남편 역시도 지금 암이 전이된 시한부 환자였다. 특히 시한부 환자였던 단골 가게 주인인 전남편이 히라야마에게 했던 질문이 인상 깊었는데 ‘그림자가 겹치면 어두워질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면서 모르는 것들도 알지 못한 채 떠나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때 히라야마는 어떻게 될지 해보자며 자신의 그림자에 전남편의 그림자를 겹쳐 보이게 한다. 겹치니 더 어두워진 것 같다며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며 두 사람은 헤어진다. 낮에 봤던 일렁이는 햇살과 달리 어둠 속에 그림자, 그림자놀이처럼 우리 인생은 어두운 그림자가 또한 존재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인생에는 불안과 고독,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가운데, 수많은 아픔과 사연을 안고 힘겹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날 일터로 향하는 히라야마처럼 말이다. 울면서도 웃고 있는 히라야마처럼 우리 또한 새로운 일상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 나가는 것이다.

히라야마가 조카에게 했던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복잡하고 힘든 일상 속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해 보면 어떨까? 지금 읽는 책 속에 감사하며, 지금 듣는 음악에 감사하며 지금 바라보는 하늘에 미소 지으며, 지금 나에게 보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자.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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