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단짝을 위해 정성으로 만든 프렌치 수프

영화 '프렌치 수프'

by 김승희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한 감정에 이끌리는 좋아함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그 사람을 위해 인내하며 정성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 그 사랑의 대상을 오랫동안 강렬하게 열망하는 것, 그 사랑에 대한 정성과 헌신이 요리를 통하여 고스란히 잘 드러나는 영화 ‘프렌치 수프’이다


1. 음식은 정성과 사랑이다.

1880년대 프랑스의 어느 시골 저택의 외제니(줄리엣 비노쉬)와 도댕(브누아 마지멜) 20년 동안 요리사와 미식가로 서로를 존중하며 만들어낸 그들의 음식은 단순히 요리라기보다는 예술이고 문화이며 정성과 사랑이다. 하나의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쏟아내는 그들의 치열함은 어느 전쟁보다 치열해서 영화 내내 많은 말보다 음악보다 재료를 다듬고 썰고 익히고 끓이는 소리 가득한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과 소리로 한 편의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렇다고 요리를 빠른 시각에 후다닥 만들어내는 속도 빠른 똑같은 음식이 아니라 그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와 그것을 하나하나 다듬고 썰고 익히며 다양한 과정을 거쳐 나오는 그 음식의 변화 과정과 거기에 들어가는 소스까지 아주 느리면서도 그 세세한 과정들이 도댕과 외제니의 손길에서 그리고 그들을 보조하는 비올레트와 그의 조카 폴린이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맛있는 음식이 탄생이 된다. 요리 특집 다큐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는 영화이자 그 음식에 깃든 정성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요리란 단순히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의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만들어가는 문화이고 추억이고 어쩌면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콩소메, 볼로방, 포토푀, 오믈레트 노르베지엔 등등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들이다. 전혀 먹어 보지 못한 그 음식 하나하나 재료를 다듬고 썰고 끓이고 몇 번이나 오븐을 오가며 만들어 내는 음식을 보자면 과연 이것이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음식인지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수십 번의 손이 오가며 하나의 음식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그 음식을 도댕의 친구들이 같이 음미하고 또한 함께 음식을 만들 때 보조하는 비올레트와 폴린도 먹으며 음미한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음식이기에 그 맛이 얼마나 좋을까? 더더군다나 이렇게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들을 먹으며 음식을 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음식과 관련된 일화들과 음식을 만든 요리사들에 대한 얘기를 하며 진정 음식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로 그들의 식탁을 넘치게 한다.


특히나 도댕과 그의 친구들이 유라시아의 왕자에게 초대를 받고 만찬회에 갔을 때 음식의 메뉴 구성에 대해서 낭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엄청난 코스 요리를 보며 언제 어떻게 이 음식을 다 먹을지 생각이 들면서 음식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과 자랑이 넘치는 문화적 장면을 엿보게 된다. 음식의 맛을 제대로 모르는 나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끼니를 때우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진정 맛을 음미하며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경이롭기도 하고 정말 하나의 맛이 완성되려면 문화와 좋은 추억이 필요하다는 도댕의 말처럼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음식 본연의 진정한 맛과 그 맛을 통해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문화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한 그 본연의 맛을 유지하며 그 맛을 내기 위해 인내와 수고하는 과정이 정말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도댕이 프러포즈를 하며 정성과 사랑을 담아 외제니에게 요리를 하고 음식 안에 반지를 감추고 찾게 하는 장면은 로맨틱하면서도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정성과 사랑임을 잘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을 생각하며 만들어주신 음식들도 바로 정성과 사랑이 아닐까. 그냥 스쳐 지나가며 먹었던 음식들이 하나하나 기억이 나며 음식이야말로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것이자 우리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와 좋은 추억이고 음식을 통해 보여준 정성과 사랑의 가치는 단순한 미식을 훨씬 뛰어넘는 것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2. 영혼의 단짝-외제니와 도댕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

요리사와 미식가로 20년 동안 함께 해온 그 두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영혼의 단짝이지 않을까. 한 지붕 아래 부부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며 그들이 보여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은 결국 프랑스 요리 문화와 요리에 대한 진심을 넘어 요리를 통해 한 편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이자 인생을 반추하게 되는 영화임을 알게 된다.


영화 속 도댕은 외제니에게 ‘결혼합시다’라고 청혼한다. 아마 이 청혼은 처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외제니가 앞으로도 여러 번 듣게 될 말이라고 하며 “우리는 어느 부부보다 함께 시간을 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라며 거절한다. 그 거절에 마음 상해할 것 같지만 도댕은 그렇지 않다. 그런 그의 사랑의 마음이 더욱 간절하게 되는 것은 외제니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외제니는 괜찮다고 생기가 넘친다고 말하지만 외제니는 또 쓰러지게 된다. 그런 외제니를 생각하며 도댕은 정성껏 수프를 만들고, 오로지 외제니를 위한 음식들을 만든 후 프러포즈를 한다. 이런 도댕이 정성스러운 마음을 외제니도 알게 되고 그렇게 거절했던 결혼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람들과 만찬회를 열고 가을에 결혼하기로 했다고 외제니와 도댕이 많은 사람들에게 발표했는데, 결국 외제니는 결혼의 순간을 맞이하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외제니가 죽을 것이라 생각을 못했다. 물론 영화 초반 비올레트의 조카 폴린이 음식에 대한 천재 소녀로 외제니가 폴린을 가리켰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아아 후에 외제니 뒤를 이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외제니를 떠난 도댕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한동안 음식도 거부했던 도댕은 결국 폴린과 함께 또다시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훌륭한 맛을 낸 요리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요리사를 만나기 위해 폴린과 함께 떠난다. 그리고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 도댕과 외제니가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보낸 부엌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도댕과 외제니가 나눈 대사가 이어진다. 한 지붕 아래 그들은 각자의 방을 쓰고 있었는데 도댕이 외제니 방에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날은 겨우 두 번이라고 한다. 사실 외제니 역시 자신의 방을 열고 도댕을 기다린 날들도 많았지만 오로지 두 번 방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런 도댕에게 외제니는 물어본다. “어떻게 그렇게 지조와 인내를 지킬 수 있었냐고?” 이때 도댕은 성 오귀스탱의 말을 인용하며 ‘행복은 갖고 있는 것을 계속 열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물어본다. 외제니가 “나는 당신의 아내였나요? 아니면 요리사였나요?” 중요한 질문에 도댕은 “나의 요리사였다”라고 말하고 외제니는 만족한다. 얼마나 멋진 대사였는지 영화를 보고도 그 멋진 대사를 급하게 받아 썼다. 사랑이란 육체적인 열망과 감정이 아니라 계속 열망하는 것, 서로가 존중하고 서로 동등하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름다운 사랑임을 깨닫는다. 부부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 그들은 그렇게 20년의 사랑을 유지해 올 수 있었으리라


그러기에 이 영화는 한여름을 사랑한 외제니의 주체적인 삶이 무엇보다 돋보였던 영화였다.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니라 요리사로서의 삶으로 도댕과 평등하게 지금까지 지내온 동반자로서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는다. 한여름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간 외제니의 삶이 병으로 마감이 되며 아쉬움이 남지만 음식을 맛보고 그 재료를 맞출 정도의 뛰어난 미각을 자랑한 폴린이 외제니의 뒤를 이을 존재임을 보여주며 삶이란 그렇게 계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임을, 상실한 도댕이 폴린과 요리를 하며 다시 삶을 회복하는 것처럼 시련 가운데서도 삶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배우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 속에 나온 많은 음식들과 와인, 그리고 그들이 나눴던 요리사들에 대한 배경지식을 알면 더욱더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향기들, 그리고 시각을 자극하는 멋진 요리들이 오감을 자극하며 오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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