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속도

영화 '행복의 속도' 이야기

by 김승희

'지금도 어디선가 빠르진 않지만 묵묵히 걷고 있는 이들과 아무도 가지 않는 길 위에 있는 분들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자막에 쓰여 있는 감독(박혁지)의 글이 가슴 묵직하게 남는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의 속도(2021)’이다.


무엇보다 행복이 빠른 속도로 나를 찾아와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행복이란 빠른 속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묵묵히, 자신만의 속도로 주어진 길을 걸을 때 느끼는 마음의 속도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각자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나에게 왜 이리 행복이 오지 않는 것일까 막연하게 하루의 삶을 그냥 그냥 보냈던 일상의 순간들이 있었다면 그 순간을 다시금 돌이켜 보자. 비록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지만 그 일상들이 모여 여기까지 나를 존재하게 했고 그렇게 존재했던 모든 시간 속에 모든 것들이 사실은 행복하게 했던 것들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해발 1500m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일본의 오제 국립공원에서 60kg에서 80kg에 달하는 짐을 지고 걷는 사람들, 봇카들의 이야기이다. 이가라시와 이시타카는 전문 봇카로 무거운 짐을 지고 오제 산장에 생필품을 배달하기 위해 10km에 달하는 길을 걷는다. 사람 한, 두 명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나무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그 길을 걷는다. 영화는 그 길을 걷는 봇카들의 뒷모습과 그들이 걷는 길 위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오제의 풍경들,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꽃들과 그곳을 방문한 방문객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 봇카들의 가족과 일상의 모습 - 잠자리를 잡는 아이와 이가라시, 이시타가가 봇카로서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는지 몸이 다치면 할 수 없는데 걱정하는 가족들과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까지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위해 3년 동안 그 봇카들의 모습을 찍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들려오던 봇카들의 숨소리 그러면서도 묵묵히 걸어가는 뒷모습은 영화 보는 내내 잔잔함과 마음의 울림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떠올릴까’라는 생각이 사실 들기도 했다. 이 힘든 노동을 하면서 말이다. 왜 감독은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에게 ‘행복의 속도를 얘기하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영화를 보면서 잠시 그 생각들을 내려놓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이가라시가 관광객들에게 “이렇게 좋은 날씨는 드물어요. 천천히 즐기면서 걸어보세요”라고 따스하게 말하는 장면, 아름다운 광경을 사진에 담고 가족들과 함께 보고, 아들과 함께 오제를 찾는 장면에서 ‘아 그렇구나’ 정작 그렇게 힘든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안일한 연민과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부끄러워졌다. 천천히, 묵묵히 길을 걸으며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 일을 소중히 여기며 하는 것이고 특히나 산장에 이 물건을 가져가야 한다는 그 마음으로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만의 속도로 걸으면서 사계절 변하는 오제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러기에 산장에 있는 사람들은 봇카들에게 정말 감사해했고, 그 감사에 봇카들은 보람을 느낀다고 하였다. 나 역시 그들의 걷는 뒷모습을 따라가면서 풍경들을 보게 되었고, 그들이 산장에 도착했을 때 뿌듯함을 느끼게 됐다. 긴장감을 내려놓고 영화를 보다 보니 내 마음의 속도도 느려지는 것 같고 새소리, 물소리, 꽃 한 송이, 나무들이 정겹게 느껴지며 평안함이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지금도 행복을 위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빠른 속도에 지치고 힘들어 그것이 행복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돈을 벌면 행복해지겠지. 좋은 직장과 좋은 배우자를 얻으면. 더 넓은 집과 명예를 얻는다면 행복해지겠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열한 것들이 행복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것들만이 나에게 행복을 주었을까?라고 물어보고 싶다. 더운 여름날 누군가가 나에게 준 시원한 물 한 잔이, 너무 힘들어 그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얘기해 주던 그 말이,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안 되던 어떤 일이 성공했을 때, 말없이 내 옆에서 누군가 짐을 들어주었을 때, 집에 들어오면 “다녀왔어요” 환하게 웃어주는 가족이 있을 그때, 혼자 먹고 있을 때 슬며시 다가와 앞에서 ‘같이 먹자’라고 했을 때 나열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순간들을 쉽게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라고 나와 있다.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모두 다를 수 있겠지만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일상의 삶 속에서, 매 순간에서 얼마나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각자의 행복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 기준을 어떻게 잡을지 행복의 속도를 보며 다시 조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면 그 걸음이 그 속도가 분명 나에게 다가오는 행복의 속도이고 행복한 발걸음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면 떠오르는 나태주의 시로 나의 행복한 순간을 공유하며 마무리 짓고 싶다.


행복 /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모든 날들이 행복한 날들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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