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유명한 배우인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뇌브)와 배우가 되지 못하고 작가가 된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의 이야기, 서로의 기억은 다르지만 엄마의 진실을 알게 되는 영화. 잔잔하면서도 진실에 대한, 기억에 대한, 연기에 대한,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 누구보다도 영화를 통해 가족에 대한 여러 면모를 보여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이기에 마음의 파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연기가 기대가 되는 영화이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배우로 회고록 출간을 하게 된 파비안느 집으로 미국에서 사는 딸 뤼미르와 사위 행크(에단 호크), 손녀 샤를로트가 엄마의 책 출간 축하를 위해 오게 된다. 오랜만에 북적이는 집 그리고 그 가족들을 맞이하는 매니저 뤼크, 파비안느와 함께 살고 있는 자크, 출간되기 전 파비안느의 책을 읽지 못했기에 밤을 새우며 책을 읽은 뤼미르는 파비안느 책 속에 담긴 너무나도 거짓된 이야기들로 ‘책 속에는 진실이 없다’고 화를 내고 파비안느는 ‘진실은 재미없다고 배우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평생을 헌신한 매니저 뤼크도 파비안느의 책을 읽고 자신에 대해 단 한 줄의 글도 없는 것을 보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떠나게 된다. 결국 엄마와 딸은 갈등 상황이었지만 영화 촬영에 들어가게 된 파비안느의 매니저로 뤼미르가 담당할 수밖에 없었고, 까다로운 엄마를 따라 뤼미르가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이번 작품은 ‘내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SF 영화로 병든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우주로 가서 7년마다 집으로 오는 이야기이다. 파비안느는 73세인 딸의 역할로 젊은 어머니와의 애틋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머니 역을 맡은 젊은 배우는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난 유명한 사라라는 배우의 뒤를 잇는 각광받는 배우로 사실 ‘사라’라는 배우는 뤼미르가 너무나도 좋아하고 따랐던 파비안느에게는 복잡 미묘한 감정의 배우였다. 그리고 뤼미르는 사라가 사고가 나게 된 책임이 엄마에게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 젊은 배우에 대해 파비안느는 호의적이지 않고 특히 원로 배우인 자신이 볼 때 그녀의 연기가 탐탁지 않으면서도 위기감을 느끼며 예민하게 행동한다. 여러 번의 우여곡절 속에 영화 촬영은 끝나게 되고 그 과정에 젊은 배우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사라가 입던 옷을 젊은 배우에게 주게 된다. 그리고 뤼미르 역시 촬영장에서의 엄마의 모습을 보고 밤에 대화를 나누며 엄마의 진실을 알게 된다. 특히 지금은 작가지만 배우가 꿈이었던 뤼미르가 어릴 때 연극 무대에 섰는데 사실 그때 엄마가 오지 않아 많이 서운했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상냥하게 대해 줬던 사라를 무척이나 따랐다. 그런데 사실 엄마는 그때 딸이 하는 연극에 갔었고 배우였던 엄마가 혹시나 딸의 연기에 대해 사실대로 말할까 가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리고 뤼미르가 사라를 따르다 보니 마치 사라에게 딸을 빼앗긴 것 같아 속상해서 뤼미르를 위해 어떤 배역을 맡게 됐다는 진실을 털어놓게 된다. 엄마의 그 말에 놀란 뤼미르는 그때야 엄마를 다시 보게 되며 ‘엄마가 어떻게 마법을 부린 것이냐며 엄마를 용서할 것 같다’고 이해하고 포옹하게 된다. 그리고 사과를 잘 못하고 한 적이 없다는 파비안느가 뤼크에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작가인 딸이 글을 써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여 결국 뤼크와도 화해하며 뤼크는 다시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딸과의 진실한 대화를 나누던 파비안느는 딸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됐다며 이미 영화 촬영이 끝난 엄마와 딸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찍고 싶다는 뜻을 뤼크에게 전하게 되고,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라는 책 출간 기자회견을 위해 가족들이 떠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엄마와 딸 그리고 진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 엄마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너무나 다른 것이다.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았던 엄마, 상처를 줬던 엄마가 자신의 책 속에 딸과 다정하게 걸었다고 나온 부분의 책을 읽는다면 당연히 딸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런 엄마가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연극 무대에도 오지 않았다. 그러기에 더더욱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줬던 사라라는 배우를 더 따르지 않았을까? 딸에게 있어 엄마는 상처를 주는 존재이고, 아마 그런 엄마를 피해 딸은 미국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엄마는 배우이기 전에 나의 엄마인데 정작 엄마는 엄마로서의 다정한 엄마이기보다는 진정한 배우로서의 품위를 더욱 중요시했던 것은 아닐까? 엄마의 마음속에도 딸에 대한 애틋함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기에 마치 사라가 딸을 그렇게 예뻐하고 딸이 그런 사라를 따랐을 때 얼마나 그 마음에 딸을 빼앗겼다는 질투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기에 말은 안 했지만 딸을 위해 어떤 역할까지 했던 것이다. 다만 그런 마음속의 진실을 파비안느는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파비안느에게 있어서 진실은 표현하지 않는 것,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거짓말 같겠지만 또한 딸에 대한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딸에 대한 마음은 진실이었다. 다만 배우였던 파비안느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진실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것일 뿐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도 진실과 진실을 표현하지 않는 그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파비안느, 뤼미르, 행크, 뤼크, 그리고 샤를로트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진실이 아닌 말을 한다. 그 진실이 아닌 말들은 단순히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기보다는 내면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내뱉는 말들과 표정과 감정이 과연 진실일까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우리는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하지만 진실과 거짓이라고 이분법적처럼 말할 수 없는 상황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그럴 때 진실의 의미를 조금은 더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배우로 산다는 것
초반에 영화를 보며 이기적이고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파비안느가 너무나 얄밉고 배우면 배우지 꼭 저렇게 행동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대배우지만 엄마로서의 역할이 있는데 배우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구분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기에 파비안느는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산처럼 느껴졌고 그의 거짓말 같은 인생이 위선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그것이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여정이자 고독한 처지를 감수하면서도 배우로서 살아갈 수 있었던 그녀만의 삶의 방식이자 배우로서의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 생각한다. 파비안느는 엄마였지만 또한 배우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엄마로서의 파비안느보다 배우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연기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사위 행크에게도 독설을 퍼붓는 파비안느, 그의 연기를 유튜브로 봤다는 그녀는 사위에게 흉내만 내고 있다고 말하며 연기에 대해 배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준다. 배우는 힘을 아껴야 한다며 어중간한 직업이 아니라고 한다. 일상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배우가 자선이나 정치 같은데 뛰어드는 이유는 자기 일과의 싸움에 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크린 위에서 지니까 현실에 뛰어드는 것이고 현실과 싸우는 척한다고 한다. 자신은 늘 그 전투에서 이겼고, 그래서 고독도 견뎌낸다고 얘기한다. 프랑스어로 말하는 파비안느의 이야기를 미국인 행크가 어느 정도 알아들었을까 싶지만 깨달음이 크다고 한다. 아마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녀의 말이 들렸던 것 같다. 배우로 사는 많은 이들에게도 큰 깨달음이 아닐까 싶고 배우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도 큰 울림이 된다. 자기와의 싸움은 어디에도 있고, 늘 우리는 나의 일과 또 다른 일에 고개를 돌릴 때가 있다. 주변에 고개 돌리지 않으려면 전투에서 늘 이겨야 하며 고독하지만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파비안느의 마음을 알았는지 행크도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뤼미르에게 자신을 왜 데리고 왔는지를 물어본다. 그것은 책의 출간을 축하하기보다는 배우인 남편과 딸과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질투하기를 바랐던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배우로는 결국 파비안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하며 파비안느가 슬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행크의 말을 들으며 뤼미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슬퍼 보이지만 프로다운 프로로서 배우로서 살아가는 배우 파비안느, 배우가 되고 싶었던 뤼미르에게 대배우 파비안느는 넘어설 수 있는 산이었고 그런 대배우를 보며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열등감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배우가 되는 일을 피해 그는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고 진정 그녀도 엄마의 연기를 보며 좋은 것 같다고 말을 한다. 파비안느를 보며 진정한 배우로서의 품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며 슬픔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고독한 길이지만 또한 그렇게 운명처럼 살아가는 것이 배우의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배우
극중극처럼 영화 속의 영화를 보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다. 중요한 것은 영화 속의 영화를 보면서 배우의 삶과 현실의 삶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배우였던 파비안느는 영화 속 딸의 역할을 하며 딸의 입장에서 엄마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고 현실에서 엄마와 딸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진실된 감정을 느끼고는 영화에서도 이렇게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된다. 배우의 연기가 진정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연기가 될 때 진실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속 배우는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거대한 무대 속에 배우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도 우리의 삶을 연기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실수하며, 상처 주며 누군가의 엄마로, 딸로, 할머니로 많은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똑같은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이것도 나의 모습이고, 저것도 나의 모습인 것이다. 때로는 진실을 드러내지 않은 채 오해와 갈등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기에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보이는 것만을 진실로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진실의 눈으로 조금은 더 배려하고 공감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