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답고 인생은 길다.

영화 ‘아무르’

by 김승희

영화의 시작과 함께 소방관, 경찰이 집 문을 부수며 들어온다. 관리인들의 신고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문을 부수고 들어온 집에서 냄새가 나는지 경찰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테이프로 잠긴 문을 여니 침대에 늙은 부인이 죽어 있다. 그녀의 얼굴과 주변에는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80대의 노부부 안느와 조르주는 제자의 피아노 연주회를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둑이 들어온 것처럼 안느에게 찾아든 뇌졸중으로 인해 오른쪽에 마비가 오고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다시 병원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는 안느의 부탁으로 조르주는 아내의 간병을 하게 된다.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얘기도 들려주고, 신문도 읽어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마비된 다리를 들어 올리며 운동도 시켜주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만 안느의 병은 더욱 심각해져 말도 어눌해지고 치매 증세까지 더욱 악화되기만 한다. 그런 부모의 집을 방문한 딸과 사위 진지하게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지 않겠냐 하지만 조르주가 얘기한다. ‘네가 모시고 살 것이냐’ 아니면 ‘요양 병원에 데리고 갈 것이냐’ 지금 간호사가 오고 있고 의사도 오고 있고 다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조르주, 그러나 그도 죽음의 악몽에 시달리고, 기저귀까지 차야 하는 안느는 비록 말하지는 못하지만 떠먹여 주는 죽도 제대로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겠다고 한다. 억지로 먹인 물을 뱉는 안느에게 뺨을 때리며 미안하다고 한다. 결국 계속 아프다고 힘들어하는 안느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안심을 시킨 후 베개로 그녀의 얼굴을 감싼 후 숨을 쉬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꽃을 장식한 후 그 자신도 유서와 같은 글을 쓰고 누워 있을 때 환상인지 안느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안느를 따라 집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녀의 딸이 텅 빈 집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질병과 고통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었던 조르주와 안느, 오랜만에 온 딸이 아빠에게 이 집에 들어올 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을 나누는 소리가 편안했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어느 누구보다도 금슬이 좋은 부부다. 특히 음악가로 누구보다도 고상하게 살았을 것 같은 안느,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제자의 피아노 연주회를 찾는 그들의 일상은 평범하면서도 교양과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기에 여전히 집의 중심에 피아노가 놓여 있고 음악을 듣고 책을 본다. 그런 부부에게도 일상의 균열이 오듯, 도둑처럼 얘기치 못하게 질병이 찾아온다. 조르주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 안느, 커피조차도 따르지 못할 정도로 마비가 오는 오른쪽, 경동맥이 막혔다고 수술을 안 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실패 확률이 5%라고 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결국 안느는 오른쪽이 마비된 채 병원을 나오게 된다. 누구에게도 어떤 사람에게도 나이를 불문하고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질병이다. 특히나 뇌졸중으로 인한 오른쪽 마비, 그리고 어눌해지는 말과 치매까지 그 질병을 어느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드는 것도 서러운데 거기에다가 도둑처럼 찾아온 질병은 비단 환자만이 아니라 환자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에게 참 많은 고통과 불안을 경험하게 한다. 일단 질병으로 인한 간병은 누가 할 것인지. 요양 병원에 보내야 할 것인지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갈림의 상황에 놓여 있게 된다. 특히 안느처럼 다시 병원으로 입원시키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는 아내가 있다면 남편의 입장은 어떨까?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편 조르주는 애쓰고 노력한다. 아내의 간병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영화는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조르주가 어떻게 간병을 하고 어떻게 안느가 반응하는지에 온전히 초점이 가 있다. 음식을 만들고, 씻기고, 얘기하고, 운동을 시키고 두 사람의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묘사되며 적막한 공간을 채운다. 그 숨이 막힐 듯한 그 모습을 지극히 담담히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 우리에게도 저런 모습이 올 수 있구나. 누구에게 찾아올 수 있는 질병 앞에 우리가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저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병이 나아지지 않고 더 악화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됨을 인식하게 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조르주지만 자기 뜻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안느, 조르주가 없는 틈을 타 뭔가를 해보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안느, 그 어떤 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안느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하고 더 이상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한다. 더군다나 기저귀까지 차야 하는 신세가 된 안느,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안느가 이제 할 수 있는 말은 아파, 아파라는 말이다. 결국 그렇게 사이가 좋던 두 부부 사이에도 질병으로 인한, 간병으로 인한 갈등은 극심해지고 그 고통은 서로에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질병이 고통스러운 것은 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지만 고통으로 인한 갈등은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극심한 갈등 속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안느의 고통을 더 이상 볼 수 없던 조르주는 그녀의 고통을 영원히 잠재워 준다.

아무르- 사랑

아내를 영원히 잠들게 한 조르주의 행위는 충격이면서도 극심한 고통 속에 도달한 조르주의 안타까운 심정을 또한 생각해 보게 된다. ‘오랜 간병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점점 악화되어 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조르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내를 영원히 잠들게 한 채 그녀에게 옷을 입히고 꽃을 장식하고 문을 폐쇄했을 때의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마도 조르주가 느꼈던 것은 아내의 죽음뿐만 아니라 자신도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불안과 그 불안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영원히 스스로도 잠들겠다는 또 하나의 자신에 대한 죽음의 행위가 아닐까? 조르주의 모습이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했어야 하는가 생각을 하지만 그가 견뎌야 하는 삶의 고통만큼은 분명히 느껴진다. 아내를 향한 그 사랑은 변함이 없고, 아내 또한 남편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조르주와 안느가 나누는 대화에 가장 많이 했던 단어는 ‘미안해’, ‘용서해’라는 말이다. 그 어떤 말을 하면서도 서로가 미안해하고 용서하라고 말을 한다. 그들의 말에 묻어나는 그 말들이 때로는 마음에 없는 말처럼 상대방을 아프게 하기에 미안함과 용서함으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기에 제목이 아무르(사랑)인가? 사실 영화 속에는 서로의 사랑하는 모습보다는 아픔과 고통이 묻어나는 모습이 너무나 많지만 그 고통을 함께 견디고 견디는 모든 시간들이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며, 인내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플 때 함께 견디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하는 것. 영화 속 내내 보여 준 노부부의 모습은 그러기에 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고통스럽지만 지극히 사랑스럽고 우리 삶에 다가올 또 하나의 모습이기에 깊은 울림이 있다.


인생은 아름답고 인생은 길다.

부부가 함께 음식을 나눌 때 안느가 조르주에게 앨범을 갖다 달라고 한다. 그리고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지난 시절의 모습을 보던 안느가 말한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그런데 인생은 길다고 한다. 그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아름답지만 때로는 힘들게 살아가는 그 삶이 참으로 길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삶의 존엄을 유지하지 못한 채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그 시간이 안느에게는 길고 길게 느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순간순간을 돌아보면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태어남도, 질병의 순간도 어쩌면 죽음의 순간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이기에 우리는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인생이 누구에게는 길고 또 누구에게는 짧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모든 순간은 아름답지 않을까. 아름다운 인생 속에 누군가와 함께 고통을 나눌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 영화의 시작이 집에 오고 집을 나가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데 어쩌면 집이라는 공간은 인생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닐까, 우리의 인생도 시작이 있고 끝이 있듯 그 집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고 언젠가는 그 집을 나가야 한다.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는 그 순간이 두렵고 슬프지만 우리는 분명 그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바라기는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잠잠히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이겨나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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