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엄마와 딸’, 나태주 ‘너 가다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도
엄마와 헤어질 땐 눈물이 난다.
낙엽 타는 노모(老母)의 적막한 얼굴과
젖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기차를 타면
추수 끝낸 가을 들판처럼
비어가는 내 마음
순례자인 어머니가
순례자인 딸을 낳은
아프지만 아름다운 세상
늘 함께 살고 싶어도
함께 살 수는 없고
엄마와 딸이
서로를 감싸주며
꿈에서도 하나 되는
미역빛 그리움이여
너 가다가
힘들거든 뒤를 돌아보거라
조그만 내가
있을 것이다
너 가다가
다리 아프거든
뒤를 보거라
더 작아진 내가
있을 것이다
너 가다가
눈물나거든
뒤를 보거라
조그만 점으로 내가
보일 것이다
짧은 시간 엄마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헛헛한 마음을 달래길 없어 이해인 수녀님의 『작은 위로』라는 시집을 펼쳤는데, 바로 첫 페이지에 ‘엄마와 딸’이라는 시가 적혀 있었다.
특히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엄마와 헤어질 땐 눈물이 난다’는 그 말이 참으로 다가왔다. 함께 하는 시간이 적기도 했지만 또한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더 마음에 다가왔다. 살갑게 말을 건네지는 못했지만 잠시 작별의 손을 흔들며 ‘부디 아프지 말고 평안한 마음으로 사시기’를 기도했다. 기도하는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기를 기도하며 걷다 보니 더욱 그리움으로 마음이 추수 끝낸 가을 들판처럼 허전했다.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아빠로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하면서도 또한 늘 함께 할 수는 없기에 이렇게 헤어질 때 눈물이 나는 것일까. 세상의 눈물이 모두 슬픔은 아니기에 눈물의 언어로 마음을 어루만지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넓혀 가는 것은 어떨까? 비록 한 공간에 있지는 않아도 한 하늘 아래 있기에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서로를 감싸며 아프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나태주 시인의 딸에게 보내는 시에 나왔던 ‘너 가다가’라는 시처럼 너를 위해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가 되어주시는 부모님, 그리고 세상의 모든 너를 위해 헌신해 주신 많은 분들처럼 자녀들에게, 부모님에게,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주는 존재, 한없이 작아지는 존재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를 그리워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제목처럼 '작은 위로'가 되어 주기를 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