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있는 고향

영화 ‘변산’ 이야기

by 김승희

출근길에 전철 너머로 아침노을이 너무나도 예뻐서 한참이나 바라본 적이 있다. 최근 ‘변산’이라는 영화를 보는데 하늘을 가득 채운 노을이 나와서 그때가 생각이 났다. 노을이 있는 곳, 노을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그 노을을 바라보며 작가를 꿈꾸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변산’이다.

‘변산’에서의 노을은 아름답기만 한 노을은 아니다. 주인공 학수(박정민)가 고등학교 때 엄마를 잃고 엄마의 무덤가에서 노을을 보면서 시를 썼다. 그 시의 일부가 나온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것이 노을밖에 없네’라는 구절이다. 참으로 시적이면서도 가슴 한편이 아려오기도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엄마를 잃고 장례식장에는 오히려 아버지(장항선)가 오지 않아서 경찰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온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도 나오지 못한 그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학수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다. 그런 학수가 어찌 자라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현재 학수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래퍼를 꿈꾸며 알바를 하면서 쇼미더머니에도 계속 나오는 중이다. 그에게 고향은 그리 정겹지 않은 곳이며 그나마 금의환향받으며 고향을 가고 싶지만 아직 그의 처지가 그러하지 못하다. 그런 그였기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아도 곧장 아버지에게 가야 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고향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내키지는 않지만 내려간 고향 병원에서 본 아버지는 너무나 멀쩡하기만 하다.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학수. 특히 아버지가 시한부라는 사실을 더욱 모르기에 학수는 너무나 가짜 환자인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가 더욱 얄밉기만 하다. 그런 아버지의 병실 옆에서 학수에게 전화를 하며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이가 바로 고등학교 때부터 학수를 짝사랑했던 고등학교 친구 선미(김고은)이다. 선미는 공무원으로 소설책도 낸 작가이다. 학수 아버지가 있는 병실에 자신의 아버지 병간호를 하며 학수 아버지도 보살피고 있다. 그런 선미는 여전히 학수에 대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막말을 하거나 거친 행동을 하는 학수를 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학수에게 자신이 쓴 책을 건네준다. 학수가 썼던 고향에 대한 시를 들려주며 노을 때문에 작가가 되는 꿈을 꿨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선미와의 대화를 통해, 고향의 친구들과의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 결국 학수는 고향에서 그렇게나 원수처럼 여겼던 아버지와 임종의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미안함을 고백하고 아버지 또한 학수에게 잘 살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지켜보며 자신을 좋아했던 선미에게 래퍼로서 사랑을 고백하였고 그 고백을 받아들인 선미는 학수와 결혼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른이 되어서 만나 상황이 뒤바뀌며 싸우는 장면들도 영화 속에 나오지만 그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고향에는 어린 시절 친구들, 여전히 나와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고, 어린 시절과는 너무나 달라진 친구들도 있다는 것. 그 고향에는 화해하지 못한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을 수 있고,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아픔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그 고향에는 보고 싶은 풍경들과 아련한 추억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향은 상처이고 떠나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은 곳이지만 금의환향하고 싶었던 학수처럼 인정받고 잘 돼서 내려가 보고 싶은 곳, 언제나 가보고 싶은 그리운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고향에 대한 기억들과 그 고향에 대한 학수의 마음이 노을을 통해 잘 표현된 영화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하필 학수가 래퍼가 되기를 희망했을까? 래퍼가 등장했을까? 물론 너무나도 래퍼 역할을 잘 해낸 박정민 배우가 놀랍기도 하다. 소설이든 랩이든 뭔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것.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는 것이 랩이 아닌가 싶다. 마음에 담겨둔 표현이 고등학교 때 시를 통해서라면 이후 어른이 되어서 리듬이 있는 랩을 통해 더욱 직접적으로 마음의 울분을 토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직업적 래퍼로서의 래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고향을 떠난 많은 이들이 겪는 삶의 고달픔. 특히 그곳에서의 아픈 추억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고, 타향에서 살아가는 삶의 버거움과 무게감을 또한 풀어보고 싶은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모두가 수많은 이야기를 닮고 있는 래퍼들이 되어서 그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과는 달리 고향에 대한 기억들이 퇴색해져 가고 너무나 일상이 된 것처럼 가까운 곳에서 고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상황이라 고향이 어디라 하기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고 자란 그곳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고향은 여전히 고향이고 마음속에 고향은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그곳이 어디든 상관이 없으며 그곳에는 변함없이 노을이 있다는 것이다. 아픔과 상처가 가득한 곳이 고향이든 아니면 현재 처한 곳이든 변함없이 아름다운 노을은 어디에든 있을 것이다. 그 노을이 비쳐 주는 곳이 마음도 가득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선미처럼 변함없이 나를 좋아하는 그 무엇이 늘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면 더더욱 그곳이 마음의 고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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