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 ‘지구를 지켜라’

by 김승희

최근 ‘부고니아’라는 영화가 한국 영화의 리메이크작이고 해서, 비운의 명작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서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드디어 그 영화를 보게 됐다. 바로 2003년에 나온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여러 말을 듣는 것보다 직접 봐야 하는구나, ‘아 그래서 그런 말을 아는구나’를 실감했다. 불편함, 잔인함, 황당함, 발칙함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마지막을 향해 가는 영화를 보면서 ‘뛰어난 감독이구나’,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비록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많은 상을 받은 좋은 작품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외계인을 연구한 병구(신하균)가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화학 회사 사장 강만식(백윤식)을 외계인이라 생각하여 납치한다. 특히 그가 강만식을 납치한 이유는 외계인 왕자와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가 다녔던 회사 사장으로 어머니가 화학공장에서 일하다가 약품 중독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부터 납치된 강만식은 고문 자리에 앉아서 물파스 고문, 다리미 고문, 전기 고문 등 참으로 웃기면서도 지독한 고문을 받는다. 이거 무슨 장난인가 싶기도 하고 왜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지 참으로 병구와 그리고 병구를 도와주는 순이(황정민)의 행동이 우스꽝스럽기도 처절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그 고문의 과정을 거치며 드러나는 병구의 힘들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병구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는지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광부였던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고통, 친구들로부터의 폭력,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체벌, 소년원에서 간수에게 받은 폭행,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연인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까지 자신의 피로 혈서를 쓰는 병구는 처절하다 못해 참담했고 그가 약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고통의 끝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괴롭혔던 누군가를 살해하고 외계인을 잡아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미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에게 악을 행사했던 이들이 그에게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나 강렬한 외계인이었고, 그런 외계인에게 고통받은 존재들이 가득한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외계인을 처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 외계인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병구가 키우는 강아지가 지구였고, 어머니의 유언과도 같은 말이 ‘지구를 지켜라’이기에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그 말은 강아지 지구를 지키라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 무엇과도 맞서 싸우라는 말인지 분명 무엇인지 명료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떠올렸던 지구정복이라는 말, 보이지 않는 외계인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지구를 쳐들어 올 수 있기에 지켜야 하는 것처럼 그런 외계인과 같은 존재들이 현실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권력을 가지고 약한 자를 누르는 자, 학교, 회사, 사회 어느 곳에든 존재하는 폭력적인 자,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누르려 하는 자들이 외계인이 아닐까. 더 놀랍고 놀라웠던 것은 정말 강만식이 외계인 왕자였다는 것, 그 외계인 왕자가 실험을 하면서 푸른 행성인 지구가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폭력이 난무하는 이곳은 결국 희망이 없어서 폭파시켜 버리겠다는 충격적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면서 또한 다른 측면에서 영화를 보게 하는 강력한 반전이었다.


외계인에게 폭파당한 지구, 희망이 없는 지구 이 엄청난 충격의 결말을 통해 과연 이 영화는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 지구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폭파되어 버린 지구에서도 마지막 남겨진 텔레비전 화면에는 어린 시절 해맑게 강아지 지구와 노는 병구의 모습이 다큐처럼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슬프고 괴롭고 그래서 더욱 가슴의 울림이 있다. 폭력이 난무한 세상,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고통스러운 세상은 희망이 없다. 악이 득세하는 세상 속 전쟁과 약한 자를 억누르는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한 모습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 악하고 힘든 세상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너무나 아픔이고 상처이다. 상처가 많았기에 그렇게 어린 시절 해맑게 웃던 병구도 병든 지구처럼 병들어 잔인하게 누군가를 살해하고 잔인하고 처절하게 죽어갔다. 그렇게 병구를 잡으려던 형사들도 모두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이대로 끝이 나야 하는 것인가?


가장 충격적이지만 가장 뼈아픈 상황을 직면하며 그래도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과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의 모습을 우리는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도 지키고 싶어 했던 병구의 지구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병구가 정말 지키고 싶어 했던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어린 시절 해맑게 놀던 지구와의 모습,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하모니카를 불던 모습, 병구를 돕던 순이의 애처로움, 어머니와 아버지의 존재, 세상에서 영웅으로 살기 위해 병구가 지구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남아 있는 소중한 것들은 보이는 것일 수도 보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분명 그 소중한 것들이 있는 아름다운 지구는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하는 우리의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 이상 병들지 않도록, 더 이상 아픔으로 죽어가지 않도록,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아름다운 것들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그 몸부림을 위한 우리의 애씀이 무엇보다 있어야 할 것이다.


날 것 같은, 낭자한 피와 괴기한 장면, 잔인함과 황당한 스토리까지 그러나 그 발칙함 속에 묻어나는 뛰어난 상상력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때로는 내용을 압도하면서도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놀라운 요소가 아닐까? 그러기에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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