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기준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무려 717만 6,000원이다. 공대는 810만 원이 조금 넘고 의대는 무려 1,030만 원 가까이 된다. 같은 시기 도시근로자 4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20만 7천 원이었다. 한 학기 등록금이 한 가정의 한 달 수입인 것이다. 부모와 자녀 둘로 구성된 4인 가구라면 수입의 3분의 1이 고스란히 등록금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생의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지 오래다.
윤미씨 역시 그랬다. 가정형편을 뻔히 알았기에 부모님에게 등록금을 부탁할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일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공부할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수입과 학점은 반비례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자니 소위 스팩관리가 안 되었고 스팩관리를 하자니 등록금이 없었다. 결국,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조금씩 받은 학자금은 윤미씨를 대학의 졸업과 함께 빚만 4,000만 원이 넘는 백수로 만들었다. 졸업과 동시에 더는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었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윤미씨는 추가 대출을 받아야 했다. 담보도 신용도도 없는 윤미씨가 사용할 수 있는 대출상품은 저축은행의 소액 신용대출뿐이었다. 그렇게 직장을 갖기 전까지 윤미씨는 세 곳의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렇게 윤미씨는 5천만 원이 넘는 대출을 짊어지고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급여는 최저임금이었다. 명목상 급여는 월 190만 원도였지만 세금을 떼고 나면 160만 원이 조금 넘었다. 그녀가 짊어진 빚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월급을 받아도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생황이 어려운 것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두 모은다고 해도 3년은 걸려야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생활비로도 빠듯한 급여였다.
결국, 이자는 연체 되었고 저축은행들의 독촉이 시작되었다. 말이 은행이었지 빚 독촉은 사채업자 수준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왔다. 심지어 회사에까지 전화가 걸려왔다. 불법 추심은 법률에서만 금지될 뿐 현실에서는 횡횡했다. 빚 독촉에 어렵게 취업한 회사마저 다니기 어려워질 것 같았다.
도저히 갚을 수 없을 것 같은 빚과 나날이 늘어나는 이자는 점차 윤미씨의 삶보다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빚의 무게에 짓눌린 삶 속에서 윤미씨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빚으로 빚을 갚는 과정에서 누군가 “차라리 개인회생을 해봐”라는 조언을 주었다.
개인회생은 현재의 수입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 대한 구제 수단이다. 수입에서 법원이 인정한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을 3~5년 동안 꾸준히 갚아 나가면 나머지 빚은 모두 탕감받을 수 있다. 윤미씨의 경우 부양가족이 없는 1인 가구로 월 생계비는 1,096,699원이다. 160여만 원의 급여에서 생계비를 제외한 약 50만 원 정도를 꾸준히 갚아 나가면 나머지 빚은 탕감받을 수 있었다. 매달 불어나는 이자도, 독촉 전화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윤미씨는 개인회생 인가를 받고 벌써 5개월째 꾸준히 빚을 갚아 나가고 있다. 매달 50만 원이라는 돈이 결코 적지는 않았지만 살아갈 의욕조차 느낄 수 없었던 빚의 무게에 비하면 기꺼이 갚을 수 있는 돈이었다. 특히 이렇게 몇 년만 꾸준히 갚으면 모든 빚이 없어진다는 희망, 그 희망이 윤미씨에겐 소중했다. 학자금 대출에서 시작해 삶의 무게까지 짓눌렀던 빚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