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제계획의 인가결정일을 기준일로 하여 평가한 개인회생채권에 대한 총변제액이 채무자가 파산하는 때에 배당받을 총액보다 적지 아니할 것.”(「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614조 제①항 제4호)
개인회생이 인가되면 3~5년 동안 매달 일정한 금액을 꼬박꼬박 갚아나가게 된다. 이렇게 회생 기간 동안 갚을 돈을 모두 합친 것을 ‘총변제액’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월 50만 원씩 3년 동안 갚아나간다고 하면 총 변제액은 1,800만 원(50만 원 * 36개월)이 된다. 하지만 이 1,800만 원은 3년 동안 다달이 갚아나갈 예정인 돈이기 때문에 개인회생이 인가되는 시점에서 1,800만 원을 온전히 인정할 수는 없다. 미래에 갚을 예정인 돈이기에 그만큼의 이자를 고려해야 한다. 법원은 라이프니츠 계산식을 통해 36개월 동안 갚아나갈 총변제액의 현재가치를 계산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미래의 1,800만 원은 현재의 1,689만 원이 된다. 이를 ‘현재가치’라고 한다. 개인회생이 인가되기 위해서는 현재가치가 최소한 ‘청산가치’보다는 많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가치’는 모든 빚을 합한 ‘총채무' 보다 적어야 한다. 개인회생을 했는데 빚보다 많은 돈을 갚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청산가치’는 지금 당장 채무자가 가진 전 재산을 처분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을 뜻한다. 결국, 빚을 다 갚을 필요는 없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처분한 것보다는 많이 갚으라”라는 것이다. 만약 현재가치가 청산가치보다 적다면 채무자는 개인회생을 통해 빚을 모두 청산하고도 돈이 남게 된다. 그렇다면 안 그래도 빌려준 돈을 모두 회수할 수 없어 억울한 채권자로서는 너무나도 불합리한 제도일 것이다. 이를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이라고 한다.
정리하면,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은 전 재산을 동원해도 감당할 수 없는(총채무 > 청산가치) 채무자가 회생기간 동안 최소한 전 재산보다는 많은 빚을 갚아야 나머지 빚을 탕감해준다는 것이다.
총채무 > 현재가치 > 청산가치
하지만 당연한 듯한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이 때로는 매우 억울한 사례를 만들기도 한다. 정현씨가 그랬다. 정현씨는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했다. 대기업에서 LED 모듈을 사와 다양한 조명장치로 조립 후 납품하는 공장이었다. 소위 잘나갈 때는 직원이 10명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2019년 코로나 19 팬더믹 사태 이후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되었다. 비슷한 규모의 업체 중에서는 그래도 견실했지만 그래 봤자 매달 따박따박 생활비를 가져갈 수 있는 정도였다. 코로나 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하자 당장 직원들 월급이 문제였다. 몇 달 버티지 못해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다.
가족 같았던 직원들까지 내보내면서 견뎠지만, 코로나 19사태는 해를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거래처들이 한둘씩 쓰러졌다. 거래처의 부도는 외상대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뜻했다. 매출이 급감한 상태에서 외상대금마저 회수가 되지 않자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공장을 운영해 오면서 조금씩 빌려 썼던 대출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정현씨는 개인회생을 선택했다.
하지만 개인회생 상담을 받은 정현씨는 오히려 더 큰 좌절을 겪어야 했다. 정현씨 아버지는 고향에 조그마한 선산을 가지고 계셨다. 선산이라고 해봤자 산 한 귀퉁이의 조그마한 땅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몇몇 조상님들이 잘 모셔져 있고 아버지의 묫자리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령이신 아버지는 몇 해 전 선산을 장남인 정현씨에게 증여했다. 사고팔고 할 재산이 아닌 대대손손 물려가며 소중히 가꿔나가야 할 가문의 자산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선산 역시 정현씨의 재산으로 보았다.
선산이 정현씨의 재산으로 계산되자 ‘청산가치 보장의 원칙’이 문제 되었다. 조그마한 산이라고 해도 시가는 2억 원이 넘었다. 개인회생 최대 기간인 5년(60개월)으로 잡아도 매월 갚아야 하는 돈은 400만 원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어 개인회생을 신청한 이들에게 월 400만 원의 변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변제액은 수입에서 생활비를 제안 금액인데, 정현씨는 수입 자체가 4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선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개인회생은 불가했다. 정현씨도 변호사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정현씨의 사업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내시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는 “조상님들이 모신 선산이 네놈 때문에 날아갈 판이다”며 역정을 내셨다.
정현씨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던 차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어차피 선산은 명의만 정현씨 것이었을 뿐 실질은 정현씨 가문의 재산이었다. 아버지가 정현 씨에게 선산을 물려줄 때는 선산을 잘 가꾸어 조상님들을 잘 모시라는 것이 조건이었다. 하지만 정현씨는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빚쟁이들에게 선산을 처분당할 위기에 처했다. 선산을 잘 가꾸라는 증여의 조건을 이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증여의 조건이 어그러졌으니 증여계약은 취소되어야 한다. 증여계약을 취소하고 선산을 다시 아버지 명의로 돌려놓으면 정현씨의 재산이 대폭 줄어들어 청산가치 역시 적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현씨의 개인회생 또한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증여계약을 취소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정현씨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했다. 증여계약취소송이다.
정현씨에게 증여계약 취소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아버지가 우격다짐으로 선산을 명의를 다시 돌려 버리셨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을 통해 선산의 명의를 돌려놓는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겠지만 이처럼 임의로 명의를 변경하게 된다면 상황이 다르다. 법원은 정현씨가 고의로 빚을 갚지 않기 위해 재산의 대부분인 선산을 아버지에게 증여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는 대표적인 사기회생에 해당한다. 법원이 사기회생이라 판단한다면 회생신청이 불허가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정현씨는 개인회생 기회를 이처럼 허무하게 놓쳐버리고 말았다.
재산적 가치가 없는 선산까지도 철저히 재산으로 평가하는 청산가치 때문에 정현씨는 도저히 해어나올 수 없는 빚은 수렁에 한 걸은 더 빠져들고 말았다. 당연히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는 경계해야 하지만 끝끝내 아쉬운 사건이었다.